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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6일 주일 설교
시리즈 주제: 우리가 얻은 이 큰 구원 5
제목:
하늘로 올라가나, 하늘이 내려오나?
(시편 96:11~13)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설교 개요
1. 문제제기: 하나님은 언제 오시는가?
2. 예배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념하는 것이다!
3. 하늘로 올라가나, 하늘이 내려오나?
4.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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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하나님은 언제 오시는가?
예수께서 일성(一聲)으로 말씀하신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 4:17)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 왔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이었고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편지에서 말하기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만물의 마지막이 정말 가까이 왔습니까? 베드로의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생전에 인자가 오리라!’(마 16:28, 막 9:1, 눅 9: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마 24:34, 막 13:30, 눅 21:32)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신 때를 세상 끝이라고 이해했습니다(히 9:26). 야고보는 교회의 부자들에게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고 질책했습니다(약 5:3).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고(계 1:1, 2:16, 3:11, 11:14, 22:6, 7, 12, 20), 요한은 그에 대한 화답으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라나타!’(고전 16:22)라는 말로 편지의 끝인사를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속히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굳게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활동을 성경은 심판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땅을 심판하시고 세계를 심판하시며 자기 백성을 심판하십니다(시 96:13). 이 말씀은 하나님이 땅을 바로잡으시고 온 세계와 자기 백성을 바로잡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땅을 바로잡으셨고 온 세상을 바로잡아 질서를 세우시고 충만하게 채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처럼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분임을 굳게 믿고 있었고, 그것을 늘 기억하며 찬송을 통해 기리는 백성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를 믿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고백하는 최종적인 결론은 하나님이 속히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환호이며 최고의 찬송이자 기대였습니다.
나라를 잃고 땅이 적군에게 짓밟히고 백성의 장정들은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던 시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괴로움과 탄식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 하나님의 시온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이 외친 신앙고백은 이것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에서도 모든 전쟁이 끝난 후에 하나님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날에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찬송도 같은 주제였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 19:6)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땅과 세상과 그 백성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활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증거이며 신앙고백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념하는 것이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기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기에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확신하는 사람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의 기쁨은 피조세계에 대하여도 이렇게 명령할 정도입니다.
표준새번역성경으로 오늘 본문 시편 96:11~13을 보겠습니다:
11 하늘은 즐거워하고, 땅은 기뻐 외치며,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도 다 크게 외쳐라.
12 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도 다 기뻐하며 뛰어라. 그러면 숲 속의 나무들도 모두 즐거이 노래할 것이다.
13 주님이 오실 것이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니 숲 속의 나무들도 주님 앞에서 즐거이 노래할 것이다. 주님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진리로 뭇 백성을 판결하실 것이다.
지난 주에 저는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감사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크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신 것도 놀라운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행하신 일들은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입니다. 누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죽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일 때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으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이것이 사도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로마서 5:8).
예언자 하박국은 일년 농사에 실패했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하늘에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이제 곧 이 모든 일이 바로잡히겠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셨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것이며, 그 하나님이 모든 나라와 민족을 통치하시며, 만물을 주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노래할 때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기뻐하고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마르크스는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잠시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아편처럼 고통을 잊게 하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빼앗아 간다고 평가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하심을 찬양하는 것인데,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체험이 마치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어떤 경험을 하십니까? 여러분의 예배와 기도는 여러분의 삶에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진정한 예배와 기도는 우리들에게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보고 시장에서 그것을 체감합니다. 우리의 통장 잔고와 결재일을 알려주는 문자를 확인하고 마음에 부담을 느낍니다. 우리는 교회의 현재 상황을 보고 염려합니다. 우리는 점점 우리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걱정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에 눌려서 살면 괴롭고 슬픕니다. 그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술로 달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하여 시름을 잊으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도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얼마나 크고 오묘한지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도 중에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동안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기쁨이 밀려옵니다.
그 기쁨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그 기쁨에 취하여 그저 노래하고 즐거워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우리를 덮고 있던 의심과 염려의 구름이 사라지면 우리의 마음에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릅니다. 그 태양빛은 우리의 현실에 새로운 빛을 비쳐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희망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의 가족과 교회를 위해서 희망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가치가 있으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중에 우리는 그것을 꿈꿉니다. 그 꿈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벌써 자신이 새로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예배와 기도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하며 새로운 용기와 지혜를 줍니다.
3. 하늘로 올라가나, 하늘이 내려오나?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강림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구원을 경험하고 나서 그 의미를 교회에 편지로 설명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한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습니다(엡 2:5~6).’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고후 5:17).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새롭게 빚으신 이유는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 2:10).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우리는 죄에 얽매여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를 따라 욕심을 좇아 행하며 이 세상을 어둡게 하는 일에 일조(一助)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기준을 따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면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유혹을 받아 그릇된 길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점차 성장하면서 신앙의 차원에서 볼 때 어린 아이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부모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여 흔들리지 않게 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가장 큰 깨우침은 구원이 이 세상에서 건짐을 받아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나를 위하여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나를 부르셨고 구원하셨다는 깨우침입니다. 전에는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동참하는 것이 저의 최고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구원받는 것은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냐, 아니면 하늘이 내려오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 세상을 탈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이미 새겨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펼쳐지고 실현되는 것이며, 그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생명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온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예수님은 양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목자와 같습니다. 양이 생명을 얻게 한다는 말은 양이 잘 먹고 잘 살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보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복을 명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시들게 하는 것은 모두 죄입니다.
전에는 이 말씀을 그저 죽은 후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풍성히 누려야 할 곳은 지금 이곳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이 세상에 지으셨으니 우리가 생명을 누려야 할 곳은 이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나무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모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가르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포착하지 못했을 때는 쉽게 흔들리고 더 많이 두려워하며 미혹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확신하게 될수록 삶은 안정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그 진리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바르게 세워주십니다. 그것은 하늘의 청사진이 나의 마음 속에 분명하게 그려지는 것이며, 나의 마음 속에 그려진 청사진은 나의 삶 속에서 나타나 이 땅에 펼쳐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믿음과 순종이 모일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4.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제가 구원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그 질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만약 구원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참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며, 그 결과로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고 나아지는 것이라면, 그런 일은 교회보다 정부나 대기업이 훨씬 잘 하지 않습니까?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그들이 더 크고 대단하게 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나은 일을 한다고 자부합니다. 심지어 목회자들보다 자신들이 더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이 되게 하는 일이라면 교회보다 자선단체나 공공기관이 훨씬 더 크고 더 많이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홍익인간을 국가의 이념으로 내걸면서도 착취하고 전쟁합니다. 우리는 정의사회구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삼청교육대와 같은 시설을 만들어 인권을 유린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정의를 말하면서도 때로는 불공평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자신에게 더 큰 잘못이 있음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결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유토피아, 즉 낙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에서는 지금도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매장하기 위해서 굴삭기를 동원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천년 전에 사람들은 하늘에 닿을 탑을 쌓으려고 했지만 결국 혼잡한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모양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시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탑은 완성되지 못하고 흉한 몰골을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
저는 인본주의의 극치인 공산주의 운동이 흉한 모습의 바벨탑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1917년에 일어난 볼세비키 혁명으로 세워진 소비에트연방은 1991년에 해체되었습니다. 74년만의 일입니다. 아시아를 정복하겠다고 나선 일본제국도 1945년에 패망했습니다. 그렇게 되고도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아직도 제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즉, 구원받아야 할 인간의 실상이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부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입니까? 정치인과 법조인, 그리고 경제인과 교사, 그리고 목회자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암울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까?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이토록 암울한 세상에 살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배우고 하나님이 하신 일과 약속을 배우면서 저는 하나님이 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설교의 첫부분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한 베드로의 편지도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려고 임하신다고 노래하는 시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들은 모두 실제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으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자신들의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배운 대로,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곧 심판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절망의 구름이 짙게 드리워질지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마침내 땅과 온 세상과 그 백성들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신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그런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은 지구촌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 미덕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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