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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포터 장로님은 오래전에 자녀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하심과 그분의 사랑에 대한 나의 간증은 내 인생에서 나침반 역할을 해 주었다.
… 그것은 그분이 살아 계시며,
어려울 때마다
나의 구속주이자 친구가 되어 주신다는,
영이 주신 순수하고도 강렬한 증거였지.”
“우리의 과제는
… [구주를] 알아가고,
그분에 대한 신앙으로
이 세상의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란다.”
“그분을 신뢰하면서 충실하고 참되게 살자.”
브루스 더글라스 포터는 세상을 이겼습니다.
우리가 모두 세상을 이기기 위해 조금씩 더 노력하기를, 그리고 중대한 죄는 간과하지 말고, 작은 실수나 잘못에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영적 진보에 박차를 가하고, 다른 사람을 후하게 돕기를 소망합니다. 구주께 더욱 온전히 의지할 때, 이생에서 더 큰 평안을 얻을 것이며 영원한 운명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지니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세상을 이기십시오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general-conference/2017/04/overcoming-the-world?lang=kor&id=p56-p61#p56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브루스 디 포터
칠십인 정원회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행합니다.
저는 조셉 비 워스린 장로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1897년에 시인 루드야드 키플링은 교만에 대해 대영제국에 전하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글을 썼습니다.
소동과 외침은 사라지고,
대장과 왕들은 떠나는데,
그 옛날 그대의 희생은 그대로네,
우리 겸손하고 상한 심령,”
키플링이 그 옛날 희생으로서 통회하는 심령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아마 시편 51편에 있는 다윗 왕의 말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 [즉,]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17절). 다윗의 시는 구약 시대에서조차도 주님의 백성은 번제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경륜의 시대에서 요구된 희생 제물들은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을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인 메시야의 속죄의 희생을 상징했습니다. 앰율레크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보라, 이것이 율법의 온 뜻이니, 곧 모든 것이 저 크고도 마지막이 되는 희생을 가리킴이라 …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니]”(앨마서 34: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미 대륙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번제를 폐할지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하나도 받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
이에 너희는 상한 마음 … 을 가지고 내게로 오면 내가 그에게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제3니파이 9:19~20).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왜 희생으로 간주됩니까?
모든 면에서, 우리는 구주의 생애에서 완벽한 모범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전혀 죄가 없으셨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나타내 보이신 것처럼,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생을 사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6:38).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내게 배우라”(마태복음 11:29). 그리고 속죄에 수반된 최후의 희생을 치를 때가 왔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고도 하셨지만,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 드린 구주의 완전한 순종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의 완전한 모범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상한 마음이란 경건의 영원한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이 모두 그분께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요구하는 희생은 모든 형태의 교만을 버리는 희생입니다. 숙련된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처럼, 상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주님의 손안에서 반죽이 되어 모양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역시 회개의 전제 조건입니다. 리하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한즉 구속은 거룩하신 메시야 안에서 거룩하신 메시야를 통하여 임하나니 …
보라, 그는 죄를 위한 희생으로 자신을 바치사,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모든 자를 위하여 율법의 목적에 부응하시나니, 그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율법의 목적이 부응될 수 없느니라”(니파이후서 2:6~7).
우리가 죄를 짓고 용서를 바랄 때,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은 “회개함에 이른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린도후서 7:10)을 경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로부터 깨끗해지려는 소망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우리의 마음이 슬픔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화평을 맛보고자 원할 때 옵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반항이나 원망 없이 기꺼이 행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렇게 유순해진 상태에서 속죄는 효력을 발휘하고 참된 회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회개한 사람들은 양심의 평안과, 하나님과 화해한 기쁨으로 그들을 채워주는 성신의 성결케 하는 권능을 경험할 것입니다. 신성한 속성이 놀랍게도 우리에게 거할 때, 우리에게 상한 마음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치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즐거움과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 받을 때, 상한 마음은 유혹에 대항하는 신성한 방패가 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 마음이 상하였고 나의 심령이 통회하오니, 지옥의 문이 내 앞에서 내내 닫혀 있기를 원하나이다!”(니파이후서 4:32) 베냐민 왕은 만일 그의 백성들이 지극히 겸손하게 산다면, 그들이 항상 기뻐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고, … 죄사함을 항상 간직하게”(모사이야서 4:12)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바칠 때 세상적인 매력은 간단히 그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상한 마음의 특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해서 받으신 고통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구주께서 모든 인간을 위한 죄를 짊어지셨을 때, 그분은 “만물 아래로 … 내”려가셨습니다.(교리와 성약 88:6) 골고다에서 그분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이사야서 53:12) 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완전한 사랑으로 그분의 큰 심장은 문자 그대로 터질 듯 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주와 그분의 고통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음도 구주에 대한 감사로 벅찰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 자신 전부를 그분께 희생으로 드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화평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이사야서 61:1)실 것이며 “감미로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감미로우며 … 순결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순결한”(앨마서 32:42)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general-conference/2007/10/a-broken-heart-and-a-contrite-spirit?lang=kor&id=title1%2Cp1-p2%2Ckicker1%2Cp3%2Cp4-p7%2Cp8-p13#title1
아름다운 아침
브루스 디 포터 장로
칠십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소망과 기운을 잃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한 다락방으로 목요일 저녁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제자들은 이 만찬이 언젠가 최후의 만찬이라 불리게 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더라면 그들은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겟세마네와 골고다의 시련이 곧 시작되리라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오늘날 우리는 주님께서 에녹에게 “사악함과 보복의 날”(모세서 7:60)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격동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환난과 역경의 시기가 닥쳐오겠지만, 그럼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재림을 준비하시어 지상에 그분의 교회와 왕국을 회복하신 마지막 경륜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님은 자신의 손자 손녀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더욱 험난해진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들은 생애 동안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건들 중에는 그들의 용기와 신앙을 요구하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움과 인도를 구한다면, 역경을 극복할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패커 장로님은 또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문명의 존립 자체가 달려 있는 도덕적 가치가 더욱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두려워 말라”, Ensign 또는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77, 78쪽)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소망과 기운을 잃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주신 예수님의 권고 말씀 중 가장 먼저 기록된 두 마디는 “무서워하지 말라”(누가복음 5:10)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역을 베푸시는 동안 여러 차례 그 권고를 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하며, 두려워 말라. 이는 나 주가 너희와 함께 하며, 너희 곁에 서 있을 것임이니”(교리와 성약 68:6)
주님께서는 교회와 백성들 곁에 서 계실 것이며,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기 때문에 시온과 스테이크에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또 시온의 땅에 그리고 그 스테이크들에 집합하는 것이, 진노가 온 땅에, 섞인 것이 없이 쏟아져 내릴 때 폭풍우를 피하고 진노를 피할 방어진이 되며 피난처가 되게 하라.”(교리와 성약 115:6)
교회는 회원들을 위한 안전의 방벽으로서 서 있습니다. 비록 세태가 때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 빠지기도 할 테지만, 충실한 후기 성도들은 시온의 스테이크에서 평안을 찾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손대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굴러 나아가 결국에는 온 땅을 가득 채우는 듯할 것이며(다니엘 2:31~45; 교리와 성약 65:2 참조) 어떠한 인간도 그 앞을 가로막을 힘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주관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잇돌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니파이는 시현을 통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어린 양의 권능이 “성약의 백성 위에” 내려옴을 보았으며 그들이 “큰 영광 중에 의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무장”(니파이전서 14:14)하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진실되게 남아 있고 영을 인도자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요새로 삼아 무장할 수 있습니다. 시련이 올 수도 있고 우리에게, 또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겸손히, 조용히 신뢰할 때 그분은 우리가 어떤 시련을 겪든지 인도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깊은 내면에 평화가 느껴질 것입니다.
회복 초창기에 교회 회원들은 격심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브리검 영 회장님은 그 시기에 대해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방에서 당장이라도 살인과 파괴의 악행을 저지르겠다고 위협하는 폭도들에 둘러싸였을 때, 저의 영은, 마치 지금 제가 즐거워하고 있듯이, 그저 기쁘기만 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전망이 아무리 흐리고 암울하게 보일지라도 복음 안에서 그 결과가 진리의 대의에 유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제가 알지 못한 적은 없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브리검 영[1997], 357쪽)
선교사 시절 제 동반자였던 폴은 언제나 유쾌한 친구였습니다. 아버지가 된 지 몇 년 안 되었을 때 폴은 다발성 경화증을 앓았습니다. 그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쁨과 훌륭한 유머감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계속 봉사했습니다. 한 번은 휠체어를 타고 제 사무실에 들어오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삶이 바야흐로 시작되었다네!”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에 수백 명의 응원을 받으며 휠체어를 타고 올림픽 성화 봉송을 했던 폴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활활 타오르던 그 불꽃처럼 폴의 신앙은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절대 시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다닐 때 여러 청년들과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같이 살았던 브루스는 제가 알아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낙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으며, 곁에 있으면 항상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의 유쾌함은 구주와 복음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또 다른 친구인 톰이 대학 교정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습니다. 아침 7시밖에 안 되어 교정은 텅 비고 어두웠습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톰은 ‘정말 지독한 날씨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걸어가는데, 어두운 눈보라 속에서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휘몰아치는 눈발을 헤치며 늘 낙천적인 친구인 브루스가 나타났습니다. 브루스는 팔을 하늘로 뻗은 채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클라호마에 나오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 아름다운 아침! 오, 아름다운 날! 내 마음 가득 아름다운 느낌, 오늘 하루 모든 일 잘되리.”(Richard Rodgers and Oscar Hammerstein II, “Oh, What a Beautiful Morning” [1943])
그 후로 그 짙은 눈보라 속에서 들려온 밝은 목소리는 제게 신앙과 희망의 참된 정수를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두워져 가는 세상에서도 우리 후기 성도는 하늘의 힘이 하나님의 교회와 그 백성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기에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침, 복천년의 새벽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며,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동쪽에서 나타나시고 지상을 다시 다스리실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아름다웠던 두 아침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1820년 어느 아름답고 화창한 봄날, 뉴욕 팔마이라에서 조셉 스미스라는 소년이 숲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로 간구했습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께서 나타나셨고, 이 지상에는 때가 찬 경륜의 시대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또한 거의 2,000년 전의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예루살렘 성 밖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 부활절 아침에 태양은 더욱더 환한 빛을 비췄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몇몇 여인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붓기 위해 동산 무덤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만난 두 천사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5~6)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셨음을 간증드립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자비로운 계획과 그분의 영원한 사랑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신앙으로 하늘을 보며 “오, 아름다운 아침”이라고 외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름다운 아침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general-conference/2013/04/beautiful-mornings?lang=kor&id=title1%2Cp1-p2%2Ckicker1%2Cp3-p7#title1
왕국 건설
브루스 디 포터 장로
칠십인 정원회
“주님의 교회는 그 초기 시절부터, 겸손하고 헌신적인 자세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했던 보통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약 25년 전, 저희 가족은 제가 다니는 대학원이 있는 매사추세츠 주에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 공부가 매우 과중했기 때문에 저는 여가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교회에 있는데 와드 초등회 회장님이 오시더니 2주 동안 초등회 임시 교사로 봉사해 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시 초등회는 평일 오후에 모임을 가졌는데, 제 일정상 초등회 반을 가르칠 시간을 내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초등회를 가르치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저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국제 정치학 관련 서적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 어쩐지 초등회 공과보다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결국 저는 초등회가 시작되기 30분 전에서야 공과 내용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나와 교정 끝에 있는 와드 예배당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걸음은 느려졌고, 몇 분 늦게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초등회 교실문을 열려고 하는데, 이미 어린이들은 개회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찬송가였는데, 그 멜로디와 가사 내용은 제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나 너 사랑하듯 서로 사랑해
새 계명 주니 서로 사랑해
서로 사랑하면 너 내제자인 줄
다 이 일로 알게 되리라
(“서로 사랑해”, 찬송가, 193장)
노래에 감화되어 문가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동안, 영은 저에게 지금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저 편에 있는 대학의 수많은 교실과 연구실에서는 저명한 학자들이 세상의 문제에 대한 해답들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가치있었다 할지라도, 대학은 혼란스러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얻지 못했고 또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거기 바로 제 앞에 주님의 대답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 이 세상에 주님의 왕국을 조용히 건설하는 일이 그 대답이었습니다. 그날 초등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은 타락한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계획의 한 작은 부분이었습니다.
1831년 10월, 주님은 회복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열쇠가 지상에 있는 인간에게 위임되었나니, 그 곳에서 복음이 땅끝까지 굴러 퍼지며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채 산에서 뜨인 돌이 굴러 퍼지듯이 드디어는 온 세상을 가득 채우리라.”(교리와 성약 65:2)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될 그 왕국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전능자의 지혜 안에서, 말일에 하나님의 왕국 건설은 그날 제가 초등회에서 목격한 것 만큼이나 평범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온 지상에 세워지고 있는 성전 이야기와 문을 활짝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먼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고 성별된 선교사들을 통해 온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왕국의 건설이 우리 자신의 와드나 지부와는 먼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외적인 팽창과 내적인 단련 모두를 통해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시온은 그 아름다움이 더해져야 하고 거룩함이 더해져야 하고 그 경계가 넓혀져야 하며 그 스테이크는 강하게 되어야 함이라 …”(교리와 성약 82:14) 우리는 주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봉사하도록 부름 받아야 하거나 교회나 세상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왕국을 세우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을 가꾸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신앙을 키워 줌으로써 가족 안에서 왕국을 세우기도 하고, 부름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 안에 왕국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추수할 준비를 하면서 들판에서 수고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와드와 지역 사회에서 왕국을 강화시키기 위해 집이라는 들판에서 수고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그 초기 시절부터, 겸손하고 헌신적인 자세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했던 보통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직분에 부름 받는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부지런히”(교리와 성약 107:99) 행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다음과 같은 현대의 계시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라. 너희는 위대한 사업의 기초를 닦고 있음이라.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교리와 성약 64:33)
조셉 에프 스미스 대관장님은 한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대의는 한 세대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복음 교리, 111쪽) 여러 세대가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은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가족, 즉 가정이라는 조용한 성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자녀의 양육은 성스러운 특권입니다. 대관장단은 교회의 부모님들에게 가정의 밤과 가족 기도 시간을 갖고 가정에서 복음을 공부하고 자녀들과 함께 건전한 활동 시간을 보내도록 당부해 오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한때 자신들이 배운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면, 그 자녀들은 진리의 횃불을 또 다른 세대에게 전달하게 되고 왕국은 더욱 더 강해집니다. “우리는 영원히 밝은 세상의 등대수”(찬송가, 11장)인 것입니다.
제 어린 시절에, 부친께서는 자주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를 복음 토론 시간으로 이끄셨습니다. 이제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그때 가족과 가졌던 복음 토론 시간이 제 자신의 간증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이 “거하시는 시온 산” 위에 낮이면 구름, 밤이면 화염의 빛(이사야 4:5)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영이 계속해서 백성들의 가정에 임재 할 때가 오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좋아합니다.
주님의 왕국에는 교회와 가족뿐 아니라 그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포함 됩니다. 구세주께서는 성역을 베푸시는 동안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위대한 말일의 사업에 헌신하고자 진실로 소망하면,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전념하여 볼 것이고, 우리의 생각은 “예수의 증거”(요한계시록 19:10)로 밝아질 것이며 우리의 마음은 순결해지고 성결케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도와 공부와 명상은 우리의 영혼 속에 왕국을 건설하는 데 절대 필요합니다. 모든 참된 봉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분에 대해 조용히 상고하고 그분과 대화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그분을 제대로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지상에 회복되었으며 다시는 하나님이 취해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간증을 드립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업의 입안자요, 완결자가 되시며, 교회의 초석이 되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되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힘과 권세를 통해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 그 왕국이 주님이 강림하시는 때에 하늘 왕국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다음의 전승가는 회복의 찬가도 될 수 있습니다.
승리의 나팔소리 널리 울려 퍼지네
심판대에 앉은 주님 우릴 심판하시네
우리 응답 빨리 하며 주께 찬양하리라
우리의 하나님
(“전승가”, 찬송가, 22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왕국 건설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general-conference/2001/04/building-the-kingdom?lang=kor&id=title1%2Cp1-p2%2Ckicker1%2Cp3-p4%2Cp5-p8%2Cp9-p10#title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