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에 다녀온지도 사흘이 흘렀습니다.
지난 주말은 날이 참 따뜻했는데, 오늘은 조금 쌀쌀합니다.
그래도 철암에서 마음 속 장작불을 지펴놓고 와서 그런지, 아직도 마음은 따뜻합니다.
말로만 듣던 아름다운 철암에 다녀와서 행복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거대한 낙동강 발원지가 조용한 황지 연못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울렸고
고구마 맛탕 서로의 입에, 그리고 처음보는 제입에도 넣어주는 태헌이, 하음이 모습에서
지옥은 자기입에 넣기 바쁘지만 천국은 상대입에 넣어주기 바쁘다는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기차역에 마중나와주신 김동찬 선생님과 혜진선생님 눈동자를 보면서
신기하게도 꼬꼬마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마주한 기분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기보다
어렸을 적 동네에서 부대끼고 살던 그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만나고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잘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적은 제가 스스로 거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철암의 따뜻함에 기대고 싶었는지, 평안하게 지내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겼습니다.
보아, 진호, 규영이 나잇대의 제 모습이 떠올라 몰래 혼자 추억에 잠기기도 했지요.
웅장한 태백산 천제단도 정말 신비로웠습니다.
올라가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가자는 지원이 마음,
돌 줍고 자기 나름의 재미 찾아가며 언니 기다리는 소헌이 마음,
지원이 마음 조급해지지말라고 다리 주물러주시는 강돈호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거대한 절경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지요.
철암은 제 고향보다는 더 큰 마을이지만, 제 고향과 참 닮아있었습니다.
호들갑으로 즐기는 낯섦보다는 무던하게 끄덕거리게 되는 익숙함에 가까웠지요.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이 운동장에서 나이 가리지 않고 서로 아끼며 노는 일,
누구엄마, 누구아빠 가르지 않고 어른들 아이들 모여서 맛있는 것 나누는 일,
참 감사하고, 어찌보면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분위기 속 함께하면서 마음껏 웃었습니다.
김치찌개, 고구마맛탕, 고로케, 옥수수, 홍시 … 맛있고 감사한 음식으로 배도 든든히 채웠습니다.
누군가 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이면 그 일이 가장 어렵고 대단한 지경에 오른 상태라는데
제가 철암에서 느낀 감정이 그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광활선생님들 맞이하고, 다가와주고, 면접까지 꾸린 철암 친구들 모습이 참 멋있고, 대단했습니다.
든든한 언니오빠형누나, 발랄한 동생들과 함께하는 철암 일상이 부러웠지요.
동시에 제가 여러분께 많이 자랑했던 제 고향 인제, 인제 동네 친구들도 떠오르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철암 친구들과 대화하며 편안하고, 참 재밌었습니다.
이틀 간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아가도 되는 걸까요?
제 유년시절 추억을 예쁘게 포장해 선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크나큰 행운이었지요.
20장 가량 되는 자기소개서 읽기 지루했을텐데도 열심히 읽고 질문해주어 고맙습니다.
진지한 태도로 묻고, 제 대답에 웃음으로 공감해주어 힘이 났습니다.
'박수정'하면 떠오르는 보라색, 분홍색으로 멋진 목걸이 만들어주어서도 고맙습니다.
광활 29기 명찰도 알록달록,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목걸이, 명찰, 철암 친구들이 써준 응원의 말, 소헌이가 쥐어준 하트돌…
잘 갈무리해 책상 서랍 가장 소중한 곳에 넣어두었습니다.
진호가 끓여준 차, 지원 보아가 만들어준 빼빼로, 다은이가 챙겨준 간식도 어찌나 달콤했는지! 게눈 감추듯 먹었어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 제가 나아갈 길이 명확해지리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대학 생활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따라 이리저리 배우러 발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앞두고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니, 얄팍한 마음이 익숙함을 자꾸 좇으려 했습니다.
5년동안 배웠으니 이제는 정말 도전하고 실천하며 새로운 배움을 누릴 시기임을 깨달았는데
아직 학생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나가기 싫은 연약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암탉 잎싹은 마당을 나감으로 여러 일과 사건을 마주합니다.
그것이 잎싹에게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지만, 고난이 될 때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마당을 나온 일이 의미없는 일이라던가, 후회가 되는 일은 아니었겠지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 마당을 나가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당 밖은 불확실합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불안하고, 낯선 곳이지요.
하지만 새로운 도전과 기대하지 못한 기쁨을 낳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마주한 이틀, 철암이 어떠해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 마당이고, 다른 길이 마당 밖이라고 구분짓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 가야하고 아니고 … 부족한 제가 뭐라고 생각하고 판단할까요.
지원사를 쓰고 기도하고 기대하던 시간들은 그저 감사함과 사랑으로 가득찬 시간이었습니다.
때마침 마당을 나가던 길에 감사하게도 철암 친구들을 마주할 기회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철암은 꼭 제 고향같았거든요. 익숙해서 진부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 매주 서울에서 인제에 내려가는 지금도, 인제에 갈때마다 좋고, 새롭고, 행복합니다.
철암에서 맞을 광활과 겨울도 꼭 그렇겠구나, 아니 훨씬 더 좋겠구나 기대되고 설렜습니다.
집에가면 부모님 사랑 속 평안히 누리며 새로움을 발견하고, 또 몰랐던 것 많이 배울 수 있지만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엉뚱한 도전과 일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공부 쉬운 주변 고등학교 가지 않고 나혼자 큰 옆마을 기숙사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되는 전공이 아니라 사회학과에 입학 예치금 넣었을 때가 꼭 그랬습니다.
삶에 있어 좋고 나쁜 일이 어디있을까요, 다양한 선택과 만남이 있는 것 뿐이겠습니다.
이정도면 엉뚱한 선택을 좋아하는 것이 제 성격인것 같기도 합니다.
겨울방학에 평안과 누림보다는 불확실성과 낯섦, 불안함을 택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 불확실성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또 다른 것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훗날에 이 글을 보면 부끄러울수 도 있으나 지금은 그냥 마음이 자연스러운대로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진심으로 맞아준 철암에 진솔하게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청소년 역사책모임, 어린이 역사책모임, 면접위원 친구들 … 함께하며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진중과 유쾌 어딘가의 매력으로 동생들 총애 받는 태희,
장난기 가득한 규영이의 애정어린 눈빛과 유머감각,
산책할 때 맨뒤에서 동생들과 손잡고 함께오는 현아의 따스함,
수줍은 얼굴로 조곤조곤 응원과 농담 건네는 려원이의 배려심,
선곡센스 만점인 재현이와, 동생들과 다정히 이야기하고 간식나눠준 주환이
산행하는 동안 발랄한 에너지로 제게 힘과 미소 듬뿍 나눠준 소헌이,
면접 질문 정성껏 또박또박 읽으며 대답에 박수쳐 준 우빈이,
맑은 시선과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합격 응원해준 지헌이,
먼저 다가와 손잡아주고 학교생활로 대화 물꼬 터준 보아,
숨차지 않고 태백산 천제단까지 오르게 도와준 지원이,
얼굴 보자마자 이름 알아봐주고 가는 길 간식 배웅 해준 다은이,
부드럽게 면접 분위기 풀어주고 환대해준 예준이와 수줍고 조심스레 질문해준 동건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포옹해준 예헌이와 씩씩하고 밝게 놀았던 승민이 모두 고맙습니다.
진호의 다정하고 전문적인 안내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꽃차 만드는 방법 알려준 하음이와 여름광활 추억 나눠준 재인이도 고맙습니다.
제가 먼저 가고 싶다고 지원해, 선생님과 철암 친구들이 정성으로 맞이해주셨는데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정말 죄송하고 참 부끄러웠습니다.
평가가 아닌 이런 순전한 마음의 환대와 사랑을 받아본 것이 얼마만인지요.
여러분이 봉고차 쫓아오며 배웅해주는데 응원해주는 기분 들어 몰래 눈물 조금 훔쳤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부족한 이야기 정성스레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광활에 지원하고 준비하는 기간동안, 그리고 여러분 만나는 동안 참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까 하다가 말이 길어졌습니다.
글솜씨가 좋지 않아 마음을 다 적어내려다보니까요.
철암 친구들과 선생님, 광활29기 선생님들께 참 감사한 이틀이었습니다.
이틀간 얼마나 좋았는지,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동시에 철암의 겨울이 참 아름답고 풍성하리라는 확신도 듭니다.
모두 건강한 겨울 되세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또 철암에서 뵙고싶습니다. 아름다운 철암 많이 자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정 올림.
첫댓글 박수정 선생님의 앞날을 묵묵히 응원합니다. 철암에서 잠시 동안 정말 반가웠습니다. 좋은 날 좋은 시간에 다시 만나요!
태희! 만나게되어 참 좋고 반가웠어요 ㅎㅎ 응원해줘서 고맙습니다, 저도 응원해요. 우리 좋은 날에 만나요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새로운 길 응원합니다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선생님, 짧은 시간동안 많이 배우고
누릴 수 있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할게요
감사합니다 :)
함께 산 오르며 대화할수 있어 좋았어요
선택한 길이 궁금하지만 훗날 경험한 것들을 들을 기회가 있길 기대합니다
응원할게요~
선생님! 만나뵙게되어 참 기뻤어요 ~
또 뵐 수 있을 좋은 날을 기대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응원하고 있을게요 !
감사합니다 😊
수정선생님 저에겐 선생님과 함께한 1박2일이귀하고 행복했습니다ㅎㅎ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과 이번 겨울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언제나 선생님을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혜진쌤과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아름다운 추억 많이 쌓아가네요,
저도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요
열정 넘치는 모습 멋있어요 ..!
감사합니다 ㅎㅎ 화이팅 😊
박수정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겨울방학 건강하고 신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ㅎㅎ
저는 건강히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댓글확인이 늦어 안부를 이제야 여쭙네요,
이제 완연한 겨울인데 선생님도 잘 지내고 계시지요?
도서관 카페 종종들어와보며 따뜻한 방학보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수정 며칠 전 대설에 눈이 왔어요.
박수정 선생님 고향 마을에도 눈이 오겠지요?
겨울방학에 박수정 선생님 오시면 인제 여행팀을 꾸려볼까 싶었어요.
꽁꽁 얼어 붙은 인제 내린천에서 썰매타고,
예술작품 같은 황태덕장에 가보고,
박수정 선생님 고향집 골목탐험도 하고요.
상상 여행 합니다.
겨우내 꿈꾸는 일 마음껏 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세요~!
응원합니다
@김동찬 선생님... ㅜㅜ 그런 멋진 계획이...
언제든 소중한 기회가 닿는다면
상상이 현실이 되면 좋겠습니다.. !!!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참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저 또한 철암의 겨울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