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과 사주명리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학습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거대한 벽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오감이라는 생물학적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 자극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물질적 증거와 현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생존해 왔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과학적 기기로 측정 가능한 가시적인 데이터만이 진실로 인정받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의 흐름이나 우주의 거대한 섭리를 직관적으로 체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초학자들이 음양의 개념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자연의 이치가 나와는 무관한 추상적인 철학처럼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크게 두 가지의 거대한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현상계와 비현상계입니다. 현상계란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이 피어나며 사람이 밥을 먹고 돈을 벌고 움직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오감으로 직접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비현상계란 그러한 현상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추동하는 원동력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질서와 법칙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겨울이라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뒤 봄이 되면 스스로 껍질을 깨고 싹을 틔워내는 현상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씨앗 내부에서 왜 하필 그 시점에 세포가 분열하고 지상으로 솟구쳐 오를 힘을 발생시켰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생명의 의지와 기운의 역동성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주명리는 바로 이 현상계와 비현상계를 동등한 비중으로 관통하며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주팔자라고 부르는 네 개의 기둥과 여덟 개의 글자는 철저하게 현상계에 드러난 시간의 좌표이자 결과물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연도와 월, 그리고 태어난 날과 시각이라는 데이터는 객관적인 사실이자 변할 수 없는 현상계의 팩트입니다. 그러나 그 여덟 글자 안에서 목이 화를 생하고 화가 토를 생하며 금이 수를 생조하는 일련의 작용들은 철저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상계의 영역인 오행의 생극제화와 기운의 왕쇠강약을 다룹니다. 현실에서 어떤 사람은 재물이 흥하고 어떤 사람은 관재구설에 휘말리며 어떤 시기에는 건강이 나빠지는 등의 구체적인 길흉화복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상계의 기운들이 상호작용을 일으킨 끝에 현상계로 최종적으로 인과응보의 형태로 발현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두 세계를 동시에 이해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현혹되지 않고 그 이면에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조정자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밤이 깊어지면 만물이 잠들고 세상이 가장 어두워지지만 그 고요한 암흑의 극점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태동하는 것은 바로 아침을 열어젖히는 양의 기운입니다. 한여름의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서늘한 결실을 맺게 하는 숙살지권의 음의 기운이 조용히 잉태되고 있듯이 자연의 모든 현상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양속에 음이 품어져 있고 음속에 양이 자라나는 순환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학습자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사계절의 교차, 낮과 밤의 바뀜, 인간의 감정이 격앙되었다가 가라앉는 리듬 등을 거울삼아 자연 현상이라는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우주의 거대한 숨결을 사유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주 명식의 글자 하나하나에 매몰되어 길흉의 단편적인 판정에만 연연하는 태도를 버리고, 글자가 품고 있는 기운의 온오프와 생명의 장생제왕이라는 보이지 않는 흐름의 주기를 읽어내는 훈련을 반복할 때 비로소 사주명리의 진정한 깊이와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현상계의 결과는 비현상계의 원인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깊이 깨달을 때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운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비로소 온전히 체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