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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에 히바 이찬칼라를 돌아보고 점심식사를 한 후 호텔에 모여 오후 1시에 버스를 타고 키질쿰사막에 있는 호라즘왕국의 성을 보러가는 일정이다.
새벽에 일어나 대충 이찬칼라를 한 바퀴 돌아 본 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선배부부와 함께 호텔을 나서 성곽 밖을 돌아 서문으로 간다.
히바 성은 크게 내성인 이찬 칼라(Itchan Kara)와 외성인 디샨 칼라(Deshan Kara)로 구성돼 있는데, 투르크어로 이찬( Itchan)은 안, 칼라(Kara) 는 도시란 뜻이다. 디샨 (Deshan)에 대해선 알려진 것은 없고 내성에 대칭되는 말이라고 한다. 완벽하게 남아 있는 이찬 칼라는 모래 언덕 위에 기반을 다진 후 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건물을 짓고 성벽을 쌓아 몇몇 채색 타일로 장식한 건물을 제외하면 성 전체가 황토 빛 일색이지만 옛 풍치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내성을 둘러 싼 성벽의 높이는 7~8m이고, 두께는 5~6m이며, 전체 길이는 2,250m에 달한다고 한다. 성은 남북 길이 650m, 동서 길이 400m, 높이 10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찬칼라라고 불려진다. 성벽 구조에서 특이한 것은 30m 간격으로 둥근 탑이 있는데 망루 역할을 하며, 탑과 성벽 사이에는 톱니 모양의 난간 통로를 설치했고, 성벽 밖에는 도랑을 파 물을 대는 해자(垓字)를 만들어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고 하나 해자의 모습은 일부만 남아 있다.
이찬 칼라(Itchan Kala)는 히바성 안에 있는 구시가지로 18~19세기 건설된 50개 이상의 역사적 건축물과 250개의 고택이 있으며, 주마 모스크(Djuma Mosque)는 10세기에 건축되었고 쿤야 아르크는 18세기 건설되고 19세기 재건된 왕궁으로 전통적으로 히바 칸국의 칸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이찬 칼라 안에는 모스크 20여개와 마드라사 20여개, 6개의 미나렛이 있다고 한다. 서문에서 들어가 동문으로 난 대로를 따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데 이 대로변에 볼거리들이 다 몰려 있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라힘 칸 마드라사가 보인다. 무함마드 라힘 칸 마드라사는 1871년, 당시 히바 칸국의 군주였던 무함마드 라힘 2세(Muhammad Rahim Khan II)에 의해 완공되어 신학교로 쓰이고 있는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신학교로 방이 125개인 2층 건물이다. 그는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시인이자 학자였으며, 자신의 통치시기에 히바의 학문과 문화 발전을 위해 이 건물을 지어 당시 수많은 학자와 신학자들이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타일 장식이 돋보이는 건축물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입구에는 상인들이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안에는 이 마드라사를 만든 무함마드 라힘 칸 2세에 대해서 사진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고 당시 히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사진, 물레 등 섬유 관련 물건,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으나 건물 규모에 비해 내부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고 볼거리도 많지 않다. 또한 이슬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이슬람최고재판소가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오리엔트 스타 히바호텔로 쓰이고 있고 환전소도 호텔 안에 있으며 그 호텔에서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무하마드 아민 칸 마드라사를 지나니 앞을 가로 막는 육중한 푸른색 탑이 유명한 칼타 미나렛이다. 투르크어로 ‘칼타’는 ‘짧다’는 뜻으로 ‘짧은 미나렛’이란 의미인데 이는 짓다가 그만 둔 낮은 탑(26m)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히바 사람들은 이 탑이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푸르다는 투르크 어“콕‘을 붙여‘콕 미나렛’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855년에 완공된 이 탑은 히바왕국의 무하마드 아민 칸이 높이 109m의 미나렛을 지어 꼭대기에서 400km 떨어진 부하라왕국의 수도 부하라를 바라보려 했으나 소식을 들은 부하라 왕이 탑을 짓던 건축공들을 몰래 매수해 탑을 계속 짓지 못하게 하자, 이에 격노한 아민 칸이 건축공들을 모두 처형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실제 아민 칸은 1855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해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게 정설이란다. 칼타 미나렛은 29m에서 건축이 중단되었는데 기단부의 둘레를 감안하면 꼭대기까지 다 지었으면 높이가 70~80m 정도였을 것이라 한다. 마드라사의 2층과 칼타 미나렛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칼타 미나렛에도 들어갈 수가 있는가 보다.
쿤야 아르크 궁전으로 들어간다. 이 궁전은 19세기 건설한 타시 하울리 궁전(Tash Khauli Palace)보다 오래된 것이라고 하여 쿠냐라고 했는데 코니에(쿤야 Kunya) 우르겐치의 코니에와 같은 의미라 한다. 아불 가지 아누샤 칸은 아버지와 함께 건축 붐을 일으켰는데 이 궁전은 1686년 건축되었으나 이란 군대가 파괴해 현재 건물은 18세기 말 완공되어 19세기 초 증축한 복합 건물로 칸들의 거처나 집무장소 뿐만 아니라, 하렘이나 무기창고, 화약공장, 조폐소, 감옥 등 부대시설도 있다. 가장 화려한 곳은 2개의 나무기둥이 받치고 있는 옥좌 테라스인데, 벽은 칠보 타일로, 천장은 적색, 황색, 녹색, 흑색의 다양한 색채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넓은 중정은 둥근 토대가 아직 남아 있었다. 궁정 입구에는 처형장이, 성벽을 따라서 감옥이 늘어서 있다.
이 궁전은 아무도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없으며, 궁전을 들어오려면 문 뒤에는 방의 ‘쿠시백’이라는 행정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이 행정관들이 방문자들의 이유를 알고 난 뒤 칸에게 알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칸을 알현하는데 히바는 1~2개월이 걸리지만 부하라는 6~12개월 걸린다고 하며, 행정관들은 알현을 기다리는 동안에 칸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묻는다고 한다. 칸을 면담하려면 소유한 것에 1/10을 내야하고, 교역을 통해 이익이 생기면 또 세금을 내기 때문에 칸은 엄청난 부를 챙겼다고 하며, 대상들은 알현을 마치면 묶을 장소로 이동했다고 한다. 대상들의 대기소에는 깊이 7m의 우물이 있는데 우물의 물맛이 매우 시원하고 짜지 않았다고 한다. 칸을 알현하는 장소에는 백금옥좌가 있었고, 알현할 때 머리가 칸보다 높아도 안 되고, 눈을 마주쳐도 안되며, 천정에 있는 8개의 별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전망대에 누구나 올라가 이찬 칼라를 볼 수 있지만 전에는 칸이 혼자 올라 이찬칼라를 바라보았다고 하며, 이 궁 안에는 칸만 들어갈 수 있는 여인들의 숙소 하렘이었는데 일반인들은 하렘을 들어다 볼 수 없도록 더 높은 건물은 못 짓게 했다고 한다. 히바성의 특징은 성벽이 매우 두꺼워 그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몇 군데 있어, 타고 올라가서 히바를 전반적으로 내려다보기로 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어두워 힘들게 올라가는데 올라가면 이찬 칼라와 히바 성 밖의 풍경들이 다 보인다. 이 도시가 어떤 역사의 굴곡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가 와는 상관이 없이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쿤야 아르크 전망대에서 내려와 동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주마 모스크(Juma Mosque, Juma masjid)다. Juma라는 말은 금요일이란 뜻이고 masjid는 모스크의 아랍어로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에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주마 모스크는 이슬람국가 어디나 있으며 고유명사가 아니고 예배당이란 일반명사인 셈이다. 주마 모스크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 중 하나로 아라비아의 유명한 지리학자 알 무카다시 사파르에 의하면 이 모스크는 10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여러 번의 재건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말경이라고 한다. 주마 모스크는 여느 모스크와는 달리 단층에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아치형 정문, 돔 등도 없다. 하지만, 55×46m의 넓은 예배당에 약 3m 간격으로 212개(218개 또는 213개) 기둥이 있다. 각 기둥들은 위에는 벌집모양의 장식 무카르나(Muqarna)가 장식돼 있지 않지만 기둥은 꽃이나 나무 등이 색다르고 화려하게 조각돼 있으며, 호레즘과 아랍의 사원 등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기둥은 중세 호레즘의 수도였던 카타(현재 아무다리야 강에 수몰되어 있음)에서 옮겨온 것인데 1,00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쿠히스탄'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데, 돔이나 아치가 아닌 나무기둥으로 천장을 지지하는 게 특징이다. 이 나무기둥은 같은 문양이 하나도 없으며, 굵기, 받침대도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히바 목각예술을 보여주는 박물관처럼 보인다. 나무가 상하면, 히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나무기둥을 만들어 기부한다고 하는데 모스크에 가족이 만든 기둥을 세우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자 가족의 복을 비는 일이라고 한다. 이 기둥 중에는 4개의 기둥은 10~11세기 것으로 쿠피체(고대 아라비아 문자)로 적힌 편지에 언급이 되고 있으며, 모스크에 행운과 자비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4개의 기둥 중 가장 유명한 나무기둥은 1000년을 버틴 나무기둥인데 기둥 표면에 새겨졌을 문양은 닳고 달아 나무 본연의 모습만 남아있다. 이 모스크에서는 5천명이 예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주마 모스크는 일반 모스크와는 다르게 고즈넉한 분위기로 예배당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주마 모스크는 은은한 천연조명이 있어 신비한 모습인데 원래 천장에 3개의 구멍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유리를 붙여 조명을 하고 있다.
모스크 앞에는 32.5m 높이의 미나렛이 있는데 이 계단을 올라가려면 81개 계단을 좁은 내부의 통로를 통해서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내일 호자 미나렛을 올라가 볼 생각이고 동문으로 간다.
이찬칼라의 동문은 노예의 문이라고 불리는데 막상 동문 밖으로 나가면 텅 빈 공터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동문이 노예의 문이라고 불린 것은 동문 앞이 3세기에 걸쳐 중앙아시아 최대 노예시장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족쇄에 묶이거나, 벗겨져서 줄에 묶인 노예들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히바의 왕은 여행객들이 보이면 모두 잡아다 노예로 만들어 판매했고, 노예를 충당하기 위해 인근 나라와 도시들의 주민들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어 판매했다. 노예들은 키질쿰 사막을 건너 온 투르크인 부족과 초원의 카자흐족들에게 아주 잘 팔렸다. 장사가 잘돼 이문이 많이 남으니 18세기엔 남하한 러시아인들까지 잡아다가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러시아가 반발해 노예해방을 요구하며 군대를 파견해 히바를 점령해 버린다. 히바가 호레즘의 중심 도시가 되고 나서 마을에는 거대한 노예시장이 만들어 졌다. 주로 외국인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어서 판매했는데 50세 이하의 쓸 만한 외국인들만 용도별로 분류해 판매했고, 50세가 넘으면 유효기간이 지난 상품이라며 폐기 처리했다고 한다. 노예시장에서는 러시아인, 페르시아인을 비롯해 다양한 민족들을 강제로 납치해 판매했는데 러시아노예가 가장 힘이 좋고 쓸데가 많다고 소문나서인지 아무리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내놔도 러시아 신상(新商)이 나오면 순식간에 품절되곤 했다. 명품으로 취급되던 러시아 신상노예는 당시 낙타 6마리 값 정도했고 다른 외국인은 보통 낙타 4마리 값 정도였고 여자 노예들은 낙타 2마리에 거래가 되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노예들은 주로 다 벗겨서 알몸으로 시장에 묶어두고 판매를 했는데, 건강한 페니스를 가진 젊은 남성들은 여자들에게 잘 팔리고, 젊고 예쁜 여자들은 발기부전 남성들의 부부관계를 위한 발기 도우미 용도로도 팔려갔다는 기록도 있었다. 당시 러시아인 노예는 3,000명 정도였으며, 그 외에 3만 명 이상의 노예들이 있었다. 이런 노예제도는 히바왕국 말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에 러시아는 러시아인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견했으며, 1873년 드디어 히바를 전면 항복시켜 인간을 상품화시키고, 성노예 등으로 삼았던 더럽고 끔찍한 노예시장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히바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히바왕국이 러시아에게 침략을 당할 때까지 이곳에서 노예를 사고팔았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는 전쟁에서 패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노예가 되어서 팔려가는 것이 예사로 그것이 당연한 시대이었지만, 인간을 신의 자녀로 여기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들도 사람을 노예로 사고파는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는데, 이곳 히바왕국도 이슬람국가였음에도 심지어 자국민이나 이웃 나라의 주민들까지 납치해 노예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적지들에서 예나 지금이나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하는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악랄한 인간들의 본성과 그런 짓을 보고도 교세 확장에만 혈안이 된 종교의 본질을 확인하면서 슬퍼지게 된다. 그러나 감상(感傷)을 접고 다시 동문 안으로 들어간다.
동문으로 다시 들어와 골목길을 걷다가 보니 압둘라혼 마드라사(Abdullaxon madrasasi)가 보여 들어갔더니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외관은 채색이 된 정문도 없고 수수하다기 보다는 방치가 되어 있는 느낌으로 박물관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광산물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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