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및 탈출
전역을 6개월 앞둔 1976년 여름 유격훈련장. 나에겐 군 생활 중 마지막 유격훈련이다. 5박6일 동안 유격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훈련일정인 도피 및 탈출(야간 산악 행군)이다. 우리대원들은 직할부대에 다른 대원들과 함께 사계청소를 끝으로 훈련장 철수를 마무리했다. 오후 3시 저녁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각자 완전군장을 꾸리며 직할대 각 대대별로 인원점검을 마치고 유격장을 출발했다.
3년(34개월 15일)의 군 생활 중 마지막 유격훈련과 2주간에 유격조교훈련. 그리고 5박6일 동안 훈련받을 때만 해도 그곳이 어느 마을인지 전혀 몰랐고 어렴풋이 가평 어느 곳이려니 하는 정도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가? 수많은 선착순, 피티체조, 쪼그려 뛰기, 오리걸음, 하강과 암벽타기 그리고 야간에 유격대원들을 깜짝 놀라 기절하게 하는 담력훈련 등 생각나지 않는 각종 얼차려 동작. 깊은 산중에 훈련장 경계망을 뚫고 몰래 마을로 내려와 우리대원 세 명과 함께 잦을 따다가 동네 민간인에게 들켜 도망가던 일(그 후 나는 자대에 복귀하여 근무 중일 때 민원이 들어와 헌병대에 잡혀 갔었다)등을 생각하며 도피 및 탈출훈련을 끝으로 부대에 복귀하므로 대원들의 유격훈련은 끝이 난다.
이제 유격장에서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훈련일정인 적진에 들어갔다가 탈출하는 도피 및 탈출훈련이다. 어디가 목적지인 줄도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도 모른다. 유격대장(당시 사단 통신대대장) 통솔 하에 통신대대를 선두로 긴 팔 전투복을 걷어 올리며 묵묵히 행군은 시작되었다. 선두가 유격장을 출발한 시간은 대충 오후 5시 정도로 기억된다.
이 훈련만 무사히 마치면 자대에 복귀해 내무생활을 생각하는 등 유격훈련장을 뒤로하며 우리대원들은 출발했다. 밤새도록 걷는 야간산악행군이라고 했다. 오십분 행군에 십분 휴식을 반복하며 이곳 산속 지형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다. 산속 길은 거리가 몇Km인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행군코스는 어느 코스인지도 모르고 그저 앞에 병사만 따라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생각나건 데 명지산을 넘는 다는 말만 누구한테 들었다. 상판이 능선을 지나 귀목이라는 능선에 오르니 해는 그 때 까지도 서쪽 하늘에 걸쳐 있으면서도 강렬했다.
어느 정도 체력의 소모가 오기 시작하며 기나 긴 여름 해는 이미 산등성이를 넘었고 깊은 산속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전투복은 땀으로 젖어 흥건했다. 얼마동안(한 시간 정도) 행군을 하고 10분간 휴식이면 배낭을 베개 그냥 좌우로 퍼질러 눕는다. 출발 할 때 병사들 간에 웃고 장난치며 마지막 훈련일정인 야간행군에 자신에 차 있었던 병사들에 얼굴모습은 사라진지 오래고 모두들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계속되는 산악행군에다 반복하는 휴식 끝 하면 또 출발이다. 어느 병사인지 간부인지 지금 지나는 위치가 귀목고개라고 했다. 앞서가고 뒤따라오면서 용기를 준다고 위로했던 서로간의 짧은 대화는 끊어진지 오래다. 모두들 지쳐가는 모습들이다. 나뿐인가! 모든 대원들은 체력이 고갈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쉬어도 담배피우는 병사도 물 마시는 병사도 말 한마디 없이 5분간 휴식이면 털썩 주저앉으면서 모두 가수면 상채로 들어간다.
함께 출발한 대원들은 240명 정도는 되었다. 출발 당시 선두와 후미가 보였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어휴! 어휴! 지친 신음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산행 중에도 하행은 없고 계속 오르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내려갈 때가 없었을까! 매우 힘드니까 그런 생각뿐이다. 산행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앞에 병사가 왼쪽으로 가면 귀목봉 이라고 했다. 전역 후 주말등산에 미쳐 명지산에 등산할 때 안 일이지만 그제야 귀목봉 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명지산을 넘는 다고 했다. 아니 또 얼마 지나니 왼쪽 방향으로 가면 명지산 정상이라고 했다. 군에 오기 전에는 명지산이 어디 붙어 있었는지도 모르는 나였다. 정상이고 뭐고 어서 자대 복귀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별빛도 달빛도 전혀 보이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의 야간행군은 계속됐다. 이따금씩 식식대며 들리는 병사들에 힘든 쇳소리와 눈에도 보이지 않은 칠흑 같은 산속에서 나뭇가지를 헤치며 무아지경으로 오르고 내리고 한다. 감각도 무뎌지나 보다. 그런데 강렬했던 햇빛과 무더웠지만 좋았던 날씨가 깊은 산속하늘을 덮치더니 빗방울이 나뭇잎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주룩주룩 내리며 그렇지 않아도 전혀 식별이 안 되는 병사들에 모습에 행군 중에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야전용 손전등도 훈련이기에 사용 할 수가 없다. 비바람이 세차게 분다. 방향감각도 없다. 흔히 즐기는 등산이 아니다. 너무 힘들다. 일렬종대인데도 앞에 대원이 전혀 안 보인다. 오직 앞서가는 대원에 군화 발소리만 듣고 따라가야 한다. 길을 잃지 않고 낙오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가야 한다. 10분간 휴식이 소멸된 지 오래다.
설령 낙오되더라도 누가 함께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리 아픈지도 모르겠다. 숨도 차지 않는다. 체력이 그동안에 훈련으로 잘 적응된 것 같았다. 정말이지 전혀 앞뒤를 보아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깊은 산속이다. 주저앉을 수도 없다. 아무 생각도 없다. 이것을 무아지경이라고 하나? 분대장 소대장은 고사하고 지휘자에 음성도 전혀 안 들린다. 깊은 산속에서의 비는 계속 억수같이 내린다. 굵은 빗방울이 나뭇잎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와 짊어진 배낭은 빗물이 스며들어 천근이다. 소총을 비롯해 철모 등 소지한 개인화기는 모두가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다행이 그때까지 전투화는 물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놈에 철모는 왜 그리 무거운가!
깊은 산 속에서 몇 능선을 넘었는가. 지금도 어디인줄 모르겠는데 지금 더듬어 보니 아마 가평읍에서 화천 광덕리로 넘어가는 산 길(작전도로)같았다.(지금은 이 길이 77번 국도로 지정되어 전 구간 포장됐음) 이 길은 사방 계곡에서 내려오는 빗물로 인해 작전도로가 개울로 변해버렸다. 전투화 안에 물이 흠뻑 배어 발이 천근이 됐다. 직할부대 각 제대별로 출발했던 대원들이 우리대대, 타 대대 할 것 없이 모두 혼성으로 뒤죽박죽 됐다. 산행 중에 적지 않은 병사들이 따라오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우……. 하며 신음하는 병사들이 하나 둘씩 털썩 주저앉고 만다. 내 앞에 가던 대원 하나가 도저히 못가겠다고 신음하며 퍽 퍽 주저앉으며 낙오되어 갔다. 별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지나쳤다. 우리대대 대원은 아니었다. 뒤에 따라오던 다른 대대병사들이 그 대원을 부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도 못 간단다. 위생병도 없다. 하긴 위생병이 있어도 어찌 하겠는가! 지치고 낙오된 병사에게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장교, 부사관 간부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부대도 마찬가지다. 계곡 따라 내려오는 대원들 모두가 패잔병 같았다. 하긴 도피하고 탈출하는 훈련인데 상관이 무슨 필요 있으랴! 손목시계도 없다. 몇 시 인지도 모른 체 서로 간에 관심도 없다. 누군가가 새벽 3시란다. 그러나 지나온 산행한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니 12시간이나 되었다. 계속 개울로 변한 도로를 따라 지친 모습으로 걸울 수밖에 없었다. 이 깊은 산속에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 한 채가 보였다. 아니 이런 깊은 산중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 그런데 순간 내 집(이동)생각이 났다. 중풍에 누워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기도 안 들어 온 집에 조그마한 호롱불로 밝기를 대신하고 계시겠지! 시커먼 하늘이 보였다. 전신주를 따라 우리 대원들은 계속 내려오는 중이다. 민간인 집이 보이는 것을 보니 그래도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가를 지나면서 편한 길이 나왔다. 다시 개인장비와 몸을 추스리고 행군은 계속됐다. 올라가는 행군은 끝났나 보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잠시 불빛이 보였다. 어느 부대인지는 모르는 위병소다. 그토록 산행을 방해했던 줄기찬 비는 어느 새 그쳤다. 기후변화가 심한 깊고 깊은 산 속이라 더운 여름이고 많은 비가 내린 것 같았다. 명지산(1267M). 아니 우리부대가 아니라 야수교라고 하는 부대라고 누가 말했다. 초소에 위병이 지나가는 우리대원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가 아마 새벽 4시 정도는 된 것 같았다.
새벽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사물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승안리 마을이라고 생각된다. 날은 밝았지만 밤새 행군으로 대원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각 대대별로 질서 있게 출발했지만 행군대열이 흐트러지며 엉망이 되어 적지 않은 병사들이 낙오자가 생겼나 보다. 병사들이 흩어짐으로 인하여 인원파악이 되질 않는지 사단지휘부와 각 대대에 보고하는 무전기 소리가 바삐 들린다.
유격장에서 출발한 순서가 아닌 현재 인원파악이 되는 대대부터 다시 출발했다. 이미 사단 지휘부에서 수송대대에 연락이 되어 우리들을 태우려고 트럭이 온다는 연락이 어느 선임하사가 말해 주었다. 각 대대별로 재편성하여 경춘국도(지금은 상색리 같음)양편으로 갈라 부대(현리)를 향해 계속 행군하고 있었다. 한 40분 정도 국도 양쪽으로 갈라서 청평을 향해 걸었을까. 위장막을 두른 M602트럭 10여대가 청평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국도변에서 출발했던 인원을 확인한 후 우리대원들은 트럭에 승차할 수 있었다. 다행이 내가 속한 정비대대는 낙오자는 한 명도 없었다. 트럭에서 우리대대 20여명의 대원은 지친 모습이었다. 마치 전장에서 살아 온 것처럼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 힘을 내자. 부대를 향한 트럭 안에서 내가 선임이었기에 나의 구령에 따라 군가가 시작했다. 군가는 사단가. 요령은 다같이. 힘차게 트럭 안에서 마지막 힘을 냈다. 조국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첫댓글 나도 한 때엔 조국에 운명을 두 어께에 짊어 졌었다.
네 우리 안수집사님처럼 조국을위해 헌신하시는 분이 계셔서 잘 살고있습니다. 전쟁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전개가 경험에 의한 세심함과 사실감이 들어있어요~
젊은 날의 한 때입니다. 감사합니다. 맹호
그림은 안 보입니다 (검은색)
예. 집사님, 사진이 아니고 동영상입니다.
맹호 안수집사님!군 사랑이 대단하셔
큰놈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일주일 휴가 왔네요 반갑고 깨물어 주고 싶다니꺄요 ^^
휴가 나왔다ㅡ구요?
저 놈들 백령도서 포 쏘던데...ㅋ
아들과 좋은시간 보내세요. 회장님
맹호, 날 뛸 자리 마련되다?
ㅎㅎㅎ호호호.......감사합니다. 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