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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대림절.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마태복음 3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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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하나님이 하루, 한 달, 일 년, 이렇게 시간을 구분해서 정해 주신 것은, 구분되는 시점마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정리하며 살아가라는 참 의미가 있습니다. 흐트러지고 망가진 인생을 바로잡고 무계획적인 삶을 정리하지 않는 다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이 세월을 허비하며 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항상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맘 때쯤 되어서 느끼는 것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고 바쁘게 지내온 시간이었는데, 무언가 정리하려 하면 도무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정리하는 것을 신앙적인 면에서 들여다보면 더더구나 참 초라하기만 합니다. 매 해의 결산이 이렇게 빈약해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고개를 들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라고 했습니다. 삶의 열매, 성령의 열매들은 고사하고, 우리의 몸(육체)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서는 주님의 자녀요 거룩한 성도라고 불려 지기에 너무나도 죄송스럽지 않을까 깊은 고민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한 해 동안 무엇을 하시면서, 어떤 소망을 고대하시면서 사셨습니까? 서민들이 일주일 동안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열에 여섯 일곱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라고 대답 한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OECD 30개 국가 중에서 12번째로 복권 판매액이 발생하고, 2015년도에 복권 판매액이 무려 3조 5천억 원이나 되었습니다. 이 00구 지역에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로또복권 집이 있다고 하더군요. 서민들은 로또 복권 사는 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매 주같이 복권을 사고 있다는 한 시민은 신문사 인터뷰를 통해, “뼈 빠지게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현실이 갑갑합니다. 로또를 사면 혹시 당첨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시 동안이지만 기분이 좋아집니다. 비용도 비싼 편이 아니라 부담이 없으니 담배나 술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 합니다.”(2016. 2.7일자 한겨레신문 내용 중)라고 말했습니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시죠? 돈에 대한 압박감은 누구나 있기 마련입니다.
뉴스나 신문기사의 수많은 사건사고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가 ‘돈’ 때문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추악한 ‘돈의 전쟁’ 늪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궁핍하게 사는 것은 참 고달픈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생계를 위해 폐지를 주어 살아야 하는, 이른바 ‘폐지노인’이 무려 17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폐지 값은 계속 내려가서 하루에 만원을 벌려면 200kg이나 모아야 합니다. 이런 노인 분들 앞에서 “돈이 최고가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면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이런 분들에게는 백 마디의 말을 하는 것보다 돈 몇 천원 드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소통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뱅이였던 흥부가 벼락부자가 된 후에 너무나도 흥에 겨워서 불렀던 “돈 타령”이라는 판소리 대목이 있습니다. “돈 봐라 돈봐라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봐라 돈 돈 봐라... ~ 얼씨구나 좋네.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을 가진 돈, 이 돈을 두었다가 무엇허여 큰 자식은 글 갈(가르)치고 작은 놈은 학교보낼테요 얼씨구절씨구 어얼시고 돈 봐라 돈 봐라 돈돈돈돈...” 돈 타령을 부르니 저도 돈에 취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한 켯에는 벼락부자가 된 흥부가 되어서 마음껏 돈타령을 불러보는 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삶의 고달픈 현실인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참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돈이면 다 될 것이라는 물질최고주의는 냉정하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포기 대상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돈이 우리의 최고의 관심사라는 것은 이미 우리의 마음이 다 빼앗긴 상태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인간이 절대로 버리지 못할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가장 쉽게 무너트릴 수 있는 요소가 ‘돈’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했다면 우리들에게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주셨을 겁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돈 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분, 바로 하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돈에 비할 바가 아닌 복음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서, 돈 때문에 허물어졌던 마음이 새로운 평안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돈을 쫓아 살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찾아오셔서 위로와 안식을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은 대림절, 바로 기다림이 시작되는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전의 4주 동안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대림절은 ‘오다’라는 라틴어(adnentus)에서 유래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재림하실 주님이 오신다는 의미(에피파네이아- ἐπιφάνεια, 파루시아-Παρουσία, 나타남, 도착)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대림절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부활승천하신 주님이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 하실 것도 함께 고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중세에는 대림절 기간에는 금욕, 금식, 고행의 시간을 가졌는데, 종교개혁 이후에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기쁨의 절기로 지켜왔습니다. 대림절에는 다섯 개의 촛불을 켭니다. 다 각각의 의미가 이름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첫째 주일에는, 임마누엘의 메시아가 오심을 대망(待望-바라고 기다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을 켭니다. 오늘 켠 저 촛불이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입니다. 둘 째 주일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살아온 나의 부정한 모습을 회개하고 구유에 누인 구원자 아기 예수를 찾아나서는 의미로 “회개와 평화의 촛불”을 켭니다. 셋째 주일에는, 구유에 누인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이웃을 향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짐하며 “결단과 실천의 촛불”을 켭니다. 넷째 주일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사랑과 화목의 촛불”을 켭니다. 다섯째 주일에는, 죄인이었던 우리(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예수님의 공로를 찬양하는 “감사와 환희의 촛불”을 켭니다. 대림절 기간에 다섯 가지 의미들을 기억하시면서 한해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미진한 부분을 잘 마무리하면서 기도와 절제 가운데 새로운 한해를 소망과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를 착실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준비한 인물이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쯤 전에 이미 구약에서 예언 되었던 인물입니다. 이사야 40: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세례요한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구약의 마지막 성경책인 말라기서에도,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는 말씀으로 누군가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할 것임을 예언하였는데, 그 사람이 곧 세례요한 이었습니다. (말 3:1; 4:5) 예수님께서도 세례요한을 가리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세례요한이 준비한 길을 따라서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어떤 인물입니까? 세례요한의 가문은 아비야 반열(다윗 시대에 제사장 가문을 24반열로 나누었는데, 그 중 여덟 번째 가문이 아비야 반열)에 속하는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 제사장 이었는데, 사가랴가 성전에 분향하러 들어갔을 때 천사가 나타나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이 임신할 것을 알려 주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합니다. 특별히 천사가 “요한”에 대해서 예언하기를,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눅 1:14,15)라고 말해 줍니다. 천사의 예언대로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아기가 출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라고 칭송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시고, 이름도 주시고, 사명도 정해놓으신 아주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이종사촌형님이었습니다. 그가 자라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그는 성경에서 곧바로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주는, 소위 “세례 요한”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성인의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세례요한이 오직 예수님을 예비하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명에 충실한 일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한은 강력한 선포자요 심한 독설가였습니다. 거침없이 질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그가 선포한 첫 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회개운동의 선포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몸에는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른 모습으로, 광야에서 홀로 지내면서 메뚜기를 잡아먹고 야생 꿀(석청)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언뜻 보기에는 광인(狂人으로 보였을 수도 있고, 기인(奇人, 괴짜, eccentric)이라고 불릴만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언자요 선지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큰 울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회개하라’는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불 같은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현장처럼 세례요한의 선포는 강력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 죄를 자복한 후에 요한을 통하여 세례 받기를 자청했습니다. 세례는 죄를 씻어내는 행위이고, 죄는 하나님만이 사하실수 있기 때문에,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곧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죄 사함의 권능을 행하시기 위해 요단강가에 영광으로 임재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그대로,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을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듣고, 회개하고, 죄 씻음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기다림의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이제는 만남의 기쁨만 누리면 됩니다.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는 이미 회개하고, 세례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기만 하면 우리 주님이 알아서 우리에게로 오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 시대에도, 말씀 듣고, 회개하고, 성령에 의지하여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동일하게 반복되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 순서대로 행하지 않으면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해 주었던” 요한의 선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대림절 기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선포되는 음성(혹은 묵상 중에 임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과 회개를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찾아오실 아기 예수님,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대림절 기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고, 하나님을 간절히 부를 때입니다. 정말 열심히 주님의 이름을 찾고, 부르시고, 회개하고, 성령을 구하셔서,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기를 소망하면서 경건함으로 생활하는 대림절 기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한은 당시 시대에 가장 파격적인 선포를 하는 선지자였으며 가장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따랐던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래새인과 사두개인들과 같이 율법에 충실한 외식주의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세례요한의 선포를 증오하였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참과 진리를 거부하고 물 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강직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느냐” 거의 막말에 가까운 담대한 말을 하였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알량한 자존심과, 나 혹은 우리 집단 아니면 안 된다는 편협한 이성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아니 오시고 싶어도 여지를 열어 주지 않기 때문에 오시는 길 자체가 막혀 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5장에서 “주님이 강림하실 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지도 않고, 오셨어도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멸망 뿐 입니다. 듣기에 거북하다고 해서 다 나쁜 말은 아닙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이런 독설을 하더라도 그들이 돌이킬 수 만 있다면 더 심한 말로라도 그들의 완고함을 꺾어버려야 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은 요한에게, 그리고 이 시대에 특별한 어느 누구에게만 한정적으로 주어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다 이 말씀을 받고 나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내 가족과 이웃도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결과는 참혹합니다.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무서운 영원 형벌을 예고하시는 말씀이 이미 우리에게 선포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습니다. 약속대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가셨고,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짧은 기다림 후에는 주님과 만나고 함께 하는 시간은 영~원합니다. 이와 비례하여 멸망당하고 불구덩이에 던져져 있는 형벌의 시간도 영원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있다”고 하면서, 시간의 급박성을 경고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에 던져질 그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시려고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 서 계십니다. 하루 속히 회개하여 가까이 다가온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매 해 반복되는 대림절에 우리 주님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세례 요한을 지칭하여 예언 되었던 이 말씀이 이제는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을 포함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들이 아기 예수 탄생으로 인해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이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만을 원하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아기예수님과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불과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아직 내가 성령세례 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분은, “주님! 이번 대림절에는 저에게 성령의 세례를 꼭 베풀어 주십시오!” 간절히 소망하시고, 아직도 성령이 내 마음에 계신다는 확신이 없는 분은, “주님!, 이번 대림절에 내 마음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제가 더 이상 조금의 의심도 없이 살아가게 해주십시오!”라고 소망하면서 대림절을 지켜 가십시오. 반드시 우리 주님은 찾고, 부르는 심령 안에 거룩한 성결의 영으로 영광 중에 충만하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간절한 소망과 기다림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또 고대하면서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시기를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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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을 받고 광야에서 외쳤던 세례요한의 심정으로 우리 모두가 이번 대림절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주님의 이름을 찾고, 부르면서, 우리 마음에 찾아오실 주님을 만난다는 기쁜 소망 가운데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소망이요 자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