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천주교 원주교구 2026.01.01.(가해) 《들빛》 제 2527호 P.3~4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제 5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요약)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하여 이 말씀은 그저 평화를 향한 바람이 아니라,
이 인사를 받는 이들에게 참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고 결과적으로 모든 현실에도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러하기에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온 세상에 날마다 가장 조용한 변혁을 외칩니다.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며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품어 안으시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인류를 갈라놓는 분열의 장벽들을 허무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선물을 지녔든 지니지 않았다고 느끼든, 우리 마음을 평화에 열려 있게 합시다!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또 우리의 손 닿는 곳 너머에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그 평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알아봅시다.
평화는 하나의 목표이기 이전에 실재이고 여정입니다. 평화는 우리의 선택을 이끌고 밝히는 원칙입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이 두려움과 낙담 속에 모여 있는 곳에 오신 것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는 계속해서 그분 증인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통해서 문과 장벽을 뚫고 들어갑니다.
이러한 선물을 통하여 우리는 선을 기억하고 선이 승리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선을 다시 선택할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함께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평화를 향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지라도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세상 앞에서 종종 큰 무력감에 짓눌리곤 합니다. 평화를 먼 이상이라고 여길 때,
우리는 평화가 부정되거나 심지어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이 일어나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됩니다. 올바른 생각들,
사려 깊은 말들, 그리고 평화가 가까이 왔다고 말할 역량이 우리에게는 부족한 듯합니다.
평화가 사람들이 살이가고 가꾸며 지켜나가는 현실이 되지 않을 때,
가정생활과 공공 생활 안에 공격성이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평화의 원수들도 사랑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하며, 관계를 단절하거나 줄기차게 비난만 하지 말고
경청하며 다른 이들과 최대한 대화를 나누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은 전쟁의 진화에 주목하였습니다.
“현대 전쟁의 독특한 위험은, 현대식 과학 무기를 보유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범죄를 자행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종의 냉혹한 연쇄 반응으로 인간 의지가 극도의 참혹한 결정을 내리도록 충동을 받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한자리에 모인 전 세계의 주교들이 모든 사람에게,
특히 국가 통치자들과 군사 지도자들에게 하느님 앞에서
또 온 인류 앞에서 그토록 막중한 책임을 심사숙고하기를 간청한다.”(80항 참조)
선은 무기를 내려놓게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하느님께서 어린아이가 되신 이유일 것입니다.
가장 깊이 내려가 죽은 이들의 거처에까지 다다르는 그 강생의 신비는
젊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시작되어 베들레헴의 구유 안에서 드러납니다. 천사들은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하며,
무방비 상태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알립니다.
인간은 그분을 돌봄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루카복음 2장 13절~14절)
고통받는 인류를 위하여 종교가 해야 하는 본질적인 역할은 생각과 말까지도
무기로 삼고자 하는 유혹이 날로 자라나지 않게 막아내는 일입니다.
올바른 이성만이 아니라 위대한 영적 전통들도 우리에게 혈연이나 민족을 넘어설 것을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은 거부하는 집단을 넘어설 것을 가르쳐 줍니다.
믿는 이들은 무엇보다 삶의 증언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욕하는 이러한 형태의 신성 모독을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물론 평화의 길이요 전통과 문화 안에서 만남의 언어인 기도와 영성,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를 증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는 배려하며
생명을 살리는 사목적 창의성을 통하여, 평화가 그저 유토피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이것이 정치적 차원의 중요성을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높은 공적 책임을 맡은 이들은
“전 세계 국가들이 더욱 인도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숙고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정은 상호 신뢰, 조약의 성실성,
체결된 조약 의무 이행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의 초점을 정밀하게 검토해야 하는데, 여기서 계약 이행의 성실성, 계약의 지속성,
계약의 풍요로운 결실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상의 평화 118항 참조)
이것이 외교와 중재, 국제법이 맡은 무장 해제의 길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국제적 힘의 균형이 깨지는 가운데,
정의와 인간 존엄성의 위기는 경종을 울리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불안과 분쟁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악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희망을 살아 있게 하는 모든 영적, 문화적, 정치적 발의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며,
“세계화의 원동력이 인간 의지와는 동떨어진 알 수 없는 비인간적 익명의 힘이나 구조의 산물인 양”
"숙명론적으로 보는 시각"의 확산에 맞서야 합니다.(진리 안의 사랑 입항 참조)
우리는 이러한 전략에 대항하여 시민 사회 안에서 자기 인식, 책임 있는 연대의 형태들, 비폭력적인 참여의 경험,
크고 작은 수준에서 회복적 정의의 실천을 북돋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희년이 맺는 열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희망의 희년은 수많은 사람이 순례자로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마음과 정신과 삶의 무장 해제를 내면에서부터 시작하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약속을 이루어 주심으로써 분명 이에 음답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야 2장 4절~5절)
바티칸에서
2025년 12월 8일
레오 14세 교황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P.S. 선이 있으면 악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만 있으시고 악은 없으셨다. 모두가 한국인처럼 한다면,
세계는 저절로 평화로워질 것이다. 예수님도 한국인을 축복 또는 징계를 하실 것이다. 예수님도 한국인을
인류 모두만큼 사랑하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