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국의 비젼(2)
사악한 제국?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거의 최고의 정치적 욕설이다. 이보다 심한 말은 '파시스트'밖에 없다. 제국에 대한 현대의 비판은 대개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1,제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많은 피정복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
2,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실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국은 파괴와 착취의 사악한
엔진이기때문이다. 모든 민족은 자결권이 있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번 서술은 난센스에 불과하고, 2번은 큰 문제가 있다.
실제 제국은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 이 시기에 살던 인류의 대부분은 제국에 속해 있었다. 제국은 매우 안정된 형태의 정부다. 대부분의 제국은 반란을 너무나 쉽게 진압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대개 외부의 침공이나 내분에 따른 지배 엘리트의 분열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복당한 민족이 제국의 지배자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기록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은 수백 년에 걸쳐 복속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제국에 서서히 소화되어 고요의 문화가 흐지부지되는 게 보통이었다.
가령 기원후 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의 침공으로 마침내 무너졌을 때, 누만시아, 아르베르니, 헬베티아, 삼늄, 루시타니아,움브리아, 에트루리아 종족(아르베르니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에 살던 고대 종족을 말하고, 헬베티아는 스위스족, 삼늄은 고대 이탈리아, 루시타니아는 포르투갈, 움브리아는 고대 이탈리아 중북부,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 중부를 가리킨다-옮긴이)을 비롯해 수세기 전 로마에 정복당했던 민족들은 커다란 물고기 속에서 나온 성경 속 요나와는 달리 가리가리 찢긴 제국의 시체에서 살아나오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스스로 그런 국가의 국민이라고 믿었고 그 나라의 언어를 썼고 그 나라의 신을 섬겼고 그 나라의 신화와 전설을 읊었던 사람들의 생물학적 후손들은 이제 로마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숭배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제국이 무너진다고 해서 피지배 민족들이 독립하는 일은 드물었다. 옛 제국이 붕괴하거나 후퇴한 자리에 생긴 진공에는 새로운 제국이 발을 들여놓았다. 가장 명백한 예가 중동 지역이다. 국경이 어느 정도 안정된 많은 독립국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재 그 지역의 정치적 상황은 지난 수천 년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중동에 마지막으로 이런 국면이 조성된 것은 기원전 8세기, 거의 3천 년 전의 일이었다! 기원전 8세기 네오 아시리아 제국이 발흥한 이래 20세기 중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중동은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다음 주자에게 넘겨지는 바통처럼 한 제국의 손에서 다른 제국의 손으로 넘어가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마침내 그 바통을 떨어뜨렸을 즈음에는 이미 아람, 아몬, 페니키아, 필리스티아, 모아브, 에돔을 비롯해 아시리아에 정복되었던 민족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늘날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들이 고대 중동 민족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에 불과할 따름이며, 이런 주장조차 어느정도 과장되어 있다. 예컨대 현대 유대인이 지닌 정치, 경제, 사회적 관습은 고대 유대 왕국에서 유래한 부분이 크지 않다. 그보다는 지난 2천 년간 자신들이 그 휘하에서 살았던 제국들에서 유래한 부분이 더 크다. 만일 다윗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의 초정통파 시나고그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동유럽식 복장에 게르만 방언(이디시어)으로 말하며 바빌로니아 문서(탈무드)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크게 당황할 것이다. 고대 유대 왕국에는 시나고그, 탈무드 경전, 심지어 토라 율법 두루마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많은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노예화, 국외 추방, 대량학살은 제국의 일반적 수단으로 꼽힌다. 기원후 83년 로마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하여 현지 칼레도니아 종족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 로마의 대응은 이 지역을 초토화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평화 제의에 대해 칼가쿠스 족장은 로마인들을 '세상의 악당들'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약탈과 학살과 강도질을 두고 제국이라는 허튼 이름을 붙이고, 사막을 만들어 놓은 뒤 이를 평화라고 부른다."2
그렇다고 해서 제국이 그 뒤에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제국을 검게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예술, 사법제도,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로마 제국주의가 제공한 이익과 번역 덕분에 키케로와 세네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색과 집필을 할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이 인도 신민을 착취해서 축적한 부가 없었다면 건설될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슬라브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지배하면서 얻은 이익으로 하이든에게 월급을 주고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후손을 위해 칼가쿠스의 연설을 적어둔 칼레도니아 작가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 덕분이다. 사실 타키투스는 아마 이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는 타키쿠스가 문제의 연설을 지어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로마 상류계층이 자신들의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대변하도록 하기 위해서 칼레도니아의 족장인 칼가쿠스의 캐릭터까지 창조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엘리트 문화와 고급 예술을 넘어서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칼로써 강요당했던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꿈꾼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사람들은 한漢 나라의 언어로 말하고 꿈꾼다. 원래 기원이 무엇이었든, 알래스카 배로 반도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두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거주자는 네 개의 제국언어 -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영어 - 중 하나로 의사소통을 한다. 오늘날 이집트인은 아랍어로 말하고, 스스로를 아랍인이라고 생각하며, 아랍 제국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했으며 자신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여러 차례의 반란을 철권으로 진압했던 제국을 말이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약 1천만 명의 줄루족은 19세기에 있었던 줄루족의 영광의 시대를 들먹이지만, 사실 그들 대부분은 줄루 제국에 대항해서 싸웠으며 유혈 군사작전을 통해서 강제로 제국에 편입된 종족들의 후예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