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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 및 제7주년 광복절 경축식 모습(19528.15, 중앙청광장)
취임일이 마침 8.15여서 광복절 경축식을 겸해 열렸다.
오늘 취임식에서 내가 다시 지게 되는 책임은 내가 할 수만 있으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나간 4년 동안에 행한 정부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앞으로 오는 일은 좀 쉬우리라고는 볼 수 없는 터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국민이 이 위험한 때를 당해서 정부 관료나 일반 평민이나 너 나를 물론하고 누구나 각각 나라의 직책과 민족의 사명 외에는 다른 것은 감히 복종할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당한 노력과 고초를 우리들이 피하고 우리 몸의 평안과 마음에 원하는 것을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대로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 할 것입니다. 밖에서는 노력해서 이남 이북의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릴 일을 하든지, 전쟁에 나가서 악독한 원수를 쳐 물리치든지 노력하든지, 정부에서 무슨 직책을 맡아 진행하도록 하든지 각각 실수하거나 실패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다 희생적으로 공헌할 때입니다. 모든 한인(韓人) 남녀는 다 같이 사명을 맡아서 고상(高尙)하고 영웅스러운 공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백만 명의 반수(半數)되는 우리 청년들이 희생적 제단에 저의 생명을 바쳐서 냉정한 담량(膽量)과 백절불굴(百折不屈)하는 결심으로 무도한 공산당의 침략(侵掠)에서 우리를 구해내기 위하여 싸우는 중입니다.
1천만 우리 동포는 가산(家産)을 잃어버리고 도로(道路)에 방황하니 무염지욕(無厭之慾)을 가진 적군들이 우리를 정복(征服)하자는 희망으로 파괴 소탕(破壞掃蕩)한 중에서 살길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북에 7백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적색 학정(赤色虐政) 아래서 피를 흘리고 애통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구해내지 않고서는 잠시라도 평안히 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불의(不意)한 전쟁의 참혹한 전재(戰災)로 우리나라는 거의 다 적지(赤地)가 되었으니, 2백만 우리 동포가 잔혹한 사상(死傷)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반도의 한 가족도 비참한 지경(地境)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게 되었으며, 각각 우리의 포악한 원수들의 죄를 징벌하고 우리 파괴된 나라에서 몰아내라는 요청을 하기에 정당한 이유를 안 가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환난(患難)에 대해서 우리는 한 가지 경력(經歷)으로 배운 것이 있으니 이것은 곧, 동족상애(同族相愛)와 호상원조(互相援助)의 뜻을 깊이 배운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가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몸을 둘째로 생각하든지 아주 잊어버린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런 애국심과 통일정신으로 우리나라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모든 파괴 중에서도 전보다 몇 갑절 강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충분히 훈련받고 무장한 국방군이 준비되어서 육지와 해면(海面)과 공중에서 모든 방면으로 전투력이 증가되며, 무기(武器) 무장(武裝)이 날로 구비(具備)해지는 것이니 이 용감한 군인들은 모든 연합군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우리 원수들이 미워하며 두려워하고 우리 민중의 영원한 감격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민국(民國)의 방패가 되어있느니 만치 우리는 어디까지든지 이 사람들의 뒤를 받치도록 맹세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으로 당하는 몇 해 동안은 우리의 해결할 문제가 중대하고 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위로되는 것은 이 문제를 우리가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53개 자유국들이 우리 옆에 서서 나가기를 보증한 것입니다. 또 16개국의 군인들이 우리 땅에서 같이 서서 원수들을 쳐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반도에서 일어난 어려운 문제는 세계에서 공동의 투쟁과 충돌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문제를 정복(征服)하기에는 우리의 도움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을 우리 도시와 우리 집에서 싸워나가느니 만치 우리나라를 재건하기에도 다수의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쉬지 않는 노력으로 성취할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방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직책을 더욱 행할수록 우리 친우들이 더욱 감동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들이 더 희생할 것입니다.
이 두 해째의 난리를 겪은 뒤에는 우리의 첫째 직책은 전쟁 전선(戰爭前線)에서 할 일입니다. 우리가 승전해서 원수들을 다 항복 받을 때까지 우리는 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마크 클라크(Mark Wayne Clark) 장군과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은 우리에게 선언하기를, “우리 땅에서 토굴을 파고 있는 공산군이 어떠한 강력(强力)으로 우리를 쳐들어오든지 우리는 능히 정복시킬 결심과 능력이 상당(相當)하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 때와 그 후에라도 우리가 행할 보편적 목적은 악독한 원수들이 우리에게 피를 흘리게 한 상처를 합창(合瘡)시키는데 있을 것입니다.
국제연합 제국(諸國)과 우리의 가장 친절한 우방인 북미합중국이 여러 번 선언하기를, 자기들의 목적은 우리와 같다고 한 것이니, 즉 우리 대한(大韓)이 통일 독립 민주국가로 완전히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통일의 목적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구체적 방책을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얼마쯤은 우리 원수들의 정략(政略)과 계획에 달렸지만 동시에 우리의 마음속에 맺힌 결심과 담량(膽量)과 목적이 얼마나 공고한가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단언하는 것은 우리 한국은 분열되거나 얼마쯤 남의 점령을 당하고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세계도 공산 제국주의(共産帝國主義)를 허락해서 저들의 승리한 것을 길러 주고는 자유세계도 부지(扶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산 제국주의는 모든 연합국을 대립해서 전 세계의 민족주의를 타도시킬 목적으로 할 것이니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세계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전은 모든 나라들의 승전입니다. 만일 우리가 실패한다면 세계 모든 자유 국민에게 비극적인 실패일 것입니다. 자유세계의 단결심은 누가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치는 힘이 들수록 모든 반공국(反共國)들의 공동 안전을 위해서 단결심이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은 크렘믈린에 있는 모든 불의(不義)한 사람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과정을 잘만 배우게 되면 집단 안전(集團安全)의 길이 우리 앞에 널리 열려있어서 모든 자유를 원하는 세계 민족들의 한량(限量)없는 물산(物産)과 번성(繁盛)이 평화의 새 시기를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국내에서도 모든 내정(內政)과 지방에 관계되는 문제들도 앞으로 몇 해 동안에는 국제상(國際上)에 영향이 없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살 수 없는 물가 고등(物價高騰)으로 민중의 혈맥을 모두 말려주는 이 문제도 전답(田畓)에서와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회복되어야만 충분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도시와 촌락과 우리들 가정과 생산 근원은 우리를 도와서 집단 안전을 위하여 싸우는 나라들이 각각 자기들의 부담으로 도와줄 그 수량을 충분히 내어주기 전에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태평양 전체에 대한 문제와 전 세계에 대한 문제는 지금 한국 내에서 되어가는 문제와 결연(結聯)되고 있으니 이는 처음으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담대(膽大)히 일어나서 근대의 제일 악독한 전쟁을 싸워나가며 공산당 제국주의의 오래 내려오는 것을 끝막기로 결심한 까닭입니다. 그 끝을 한국에서 막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나의 개인 메세지로써 우리 국민과 또 친근하고 관후(寬厚)한 우리 연합국에 대해 한마디 하려 합니다.
내 평생은 우리나라의 운명과 같아서 계속적 투쟁과 인내력으로 진행해 온 것인데 어떤 때는 앞에 장해(障害)가 너무도 커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1882년 한미(韓美)조약 이후로 우리가 밖으로는 각국의 제국주의와 안으로는 추락하여가는 군주 정치의 학정(虐政)을 대항할 적에 희망도 보이지 않은 것을 싸워왔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는 이 싸움 시작하던 사람들이 다 없어지기 전에 민주 정치를 세워 민의에다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놓고 세계 모든 결심한 친구들이 우리를 호위하고 있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본의 무력가(武力家)들이 폭력으로 우리의 독립문을 닫아놓은 뒤에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를 포기하고 잊어버렸으나 우리 민중은 굴복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국가의 자유를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 의병(義兵)들이 싸우며 보호하려고 했고, 1919년에 만세운동으로 우리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중국과 만주에서는 우리 국군의 잔병(殘兵)이 1945년까지 싸워오다가 마지막으로는 공화민주국가(共和民主國家)의 결실이 되어 지나간 4년 동안에 처음으로 민국정부(民國政府)를 건설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에게 정치상 굴복을 거부해서 싸운 것입니다. 미국 군정(軍政)시대에 소련과 교섭해서 평화적으로 협상을 열어서 평화적 담판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통일시키자는 주의(主義)는 지금에 와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 자유국가와 합해서 전쟁으로 결과 내기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도 우리 사람들의 이전에 싸워오던 전쟁과 같이 결국은 승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목적이 우리 이웃의 자유를 없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자유를 회복하고 보유하자는 것이니만치 우리는 실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간담(肝膽)에 깊이 갈망(渴望)하며 원하는 바는 내가 60년 동안을 공헌해서 분투노력한 이 나라를 내 생명이 끝나기 전에 굳건히 안전과 자유와 통일을 민주국가 안에서 성립되는 것을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위 정치상 파동이 일대 위기라고 세계에 전파된 것이 실상은 손 안의 풍파였던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몇몇 외국 친우들과 외국 신문기자들이 나의 정치적 원수들의 말을 듣고 내가 병력을 이용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민주정체(民主政體)를 없이 하련다는 괴상한 언론으로 곧이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평생 역사와 나의 주장하는 목적을 아는 친우들은 이런 낭설(浪說)을 듣고 웃었으며 혹은 분개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동포가 나를 전적(全的)으로 지지한 힘으로 우리가 반대자들과 대립하여 그들을 이기고, 그 결과로 오래 싸워오던 개헌안을 통과시켜서 대통령선거권을 국회에 맡겨주지 않고 민중의 직접 투표로 행하게 된 것이므로 우리의 민주정체와 주의(主義)가 절대로 굳건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통일과 우리의 민주정체를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나의 생명과 나의 공헌(貢獻)을 다 하기를 다시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전 민족에게 대하여 각 개인에게 일일이 말하노니 이 공동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때까지 각인(各人)의 모든 생각이나 주장을 다 버리고 일심협력하라는 것입니다.
4천여 년의 역사를 계속하며 우리의 신성한 조상들이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내려오며 이 금수강산에서 살며 일하다가, 필요한 때에는 다 일어나 싸워서 우리의 거룩한 유업(遺業)을 우리들에게 물려주었고, 또 앞으로 이 신성한 유업을 보유할 책임을 우리의 손에 끼쳐준 것입니다.
우리의 오랜 역사상에 어떤 시대를 물론하고, 오늘 우리가 당한 형편같이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난리를 담대히 치르고 직책을 다 힘껏 행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다 합해서 연속 진행할 것입니다. 우리가 같이 일하며 같이 희생하며 우리가 같이 싸워서 마침내 승전할 것입니다. 승전이 우리 마음과 우리 간담(肝膽)에 있을 동안에는 우리가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제일 위험한 것은 다 지나갔으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오직 승전과 성공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마칩니다.
주)
무염지욕(無厭之慾) :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심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
: 미국 육군 대장으로, 6・25 전쟁 때 3대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지휘하였고, 정전협정에 반대하다 눈물을 흘리며 당시 유엔군 대표로 휴전 협정(1953.6.28.)에 서명한 바 있다. 저서로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를 남겼다.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1892~1992)
: 미국 육군 대장으로, 6・25 전쟁 때 미 8군 사령관으로 참전하였으며, 한국군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외동아들인 항공장교 밴플리트 대위는 6・25 전쟁 때 북한 지역에 대한 야간 공습에 나섰다가 실종된 바 있다.
합창(合瘡) : 종기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서 아묾
참고)
제2대 대통령취임식이 열린 1952년 8월 15일, 그 무렵에는 38선을 축으로 남북한 간에 밀고 밀리는 6.25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당초 임시수도 부산에서 취임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취임식이자 휴전 협상이 한창 진행 중에 열리는 취임식이라는 점을 감안,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에서 휴전 협상 반대와 국토통일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자는 의지 아래 취임식을 서울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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