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전상준
예천군 풍양면에는 낙동강 1천300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주막집인 '삼강주막'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풍양장터(낙상2리)는 삼강주막과 6㎞ 정도 떨어져 있고, 면사무소와 파출소, 초`중`고등학교가 있으며 닷새마다 장이 선다.
지금은 장터에 상설 건물이 있어 상거래가 늘 이루어지나, 내 어릴 때는 면사무소 앞 넓은 도로가 시장이었다. 장날마다 멀리서 장사꾼이 공산품을 트럭에 가득 싣고 오고, 가까운 마을에서는 말수레나 소달구지로 농산물을 가져와 팔고 사거나 물물교환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리 가득 사람들로 붐볐다.
큰 길가에는 먼 일가 아저씨 내외가 살고 있었다. 장날마다 시장에서 생선과 소금 건어물을 팔고, 장꾼에게 점심을 해 주었다. 부모님과 참 다정하게 지낸 분이다. 내가 갓난아기 때 어머니가 몹시 아파 젖이 나오지 않아, 아주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했다. 자기 집에는 아들이 많으니 하나 정도 죽어도 괜찮다면서 외아들인 나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장날이면 점심은 늘 아주머니 가게에서 얻어먹었다. 큰 가마솥에 끊인 쇠고깃국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밥을 먹고는 우시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중개인으로 활동하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와 눈을 한 번 맞춘 후 주위를 서성이면 과자를 사 먹을 수 있게 돈을 손에 쥐여 줬다.
마을 뒤에는 덕암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앞에는 대구로 가는 한길이 쭉 뻗어 있다. 길 따라 조금 가면 논밭을 가로질러 큰 도랑이 있다. 그 도랑을 우리는 '큰걸가'라 불렸다.
여름 장마 때는 물이 범람해 논에서 한창 자라는 벼를 묻어버리기도 하고, 하루에 두 번씩 들어오는 버스가 빠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장마가 길어지기라도 하면 물고기가 올라와 물이 빠질 때 미쳐 내려가지 못하고 도랑 바닥에 흰 배를 드러내고 숨을 헐떡거리면, 동무와 서로 잡겠다고 옷이 젖는 줄도 몰랐다.
큰걸가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놀이터다. 소를 몰고 가 풀을 뜯어 먹게 하고는 친구들과 모여 달리기`씨름`고무신 차기`말타기`미끄럼타기 등을 했다. 놀이가 지겨워지면 남의 집 참외나 수박밭에 들어가 서리도 하고, 가끔 소싸움을 붙여 놓고 "우리 소 이겨라"하며 응원도 했다.
뒷산(덕암산) 중턱 바위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굴이 있다. '호랑이굴'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겁이나 가까이 가지 못했으나, 고학년부터는 용기를 내 굴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굴 속에는 반짝이는 빛이 보였고 그것을 우리는 호랑이 눈이라 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호랑이를 잡겠다고 굴 입구에 청솔가지를 꺾어다 불을 놓았다. 호랑이가 연기에 숨이 막혀 튀어나올 것에 대비해 손에는 몽둥이를 하나씩 들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불을 때니 따뜻해 잠을 더 잘 자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연기에 질식이라도 했는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뒷산 꼭대기에 오르면 앞에는 풍양장터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에는 낙동강이 훤히 보인다. 여름에 홍수가 나면 물 구경 가자며 뒷산을 올랐다. 산 너머 마을이 강물에 잠겨 황톳물에 덮여 있고, 강 안쪽에는 수박`참외, 어떤 땐 소`돼지`집도 떠내려왔다.
고향에는 재종형님 두 분이 계신다. 고향에 갈 때마다 늘 하는 버릇대로 형님 집 들러 안부 묻고, 친구 집 들러 정담을 나누며 그간 적조(積阻)했던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다 온다.
그러나 며칠 전에는 좀 다른 체험을 했다. 어린 시절 자란 집을 찾았다. 고향을 떠나면서 처분해 지금은 남의 소유로 되어 있다. 초가집이던 그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고쳐 아담하다. 비만 오면 질벅거리던 골목길도 시멘트로 포장해 깨끗하다. '많이 변했구나!' 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것이 있었다. 집 뒤 감나무다. 연초록의 잎이 깨끗하다.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가지에 누런 감꽃이 헤아릴 수 없이 달려 있다.
객지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많이 바빴나 보다. 해마다 몇 차례씩 고향을 다녀왔건만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향 집 뒤꼍 감나무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살아온 인생이 슬퍼진다.
"회룡포의 물돌이 마을 풍경이 눈에 선하다." "삼강주막 부엌 벽에 막대를 그어 놓은 듯한 흔적이 외상으로 술을 팔고 기록해 둔 장부였구나." "용문사의 윤장대를 만지고 왔으니 나는 팔만대장경을 한 번 읽은 거나 마찬가지다." 지난달 대구문인협회 임원진 문화탐방 행사를 예천에서 가졌다. 그때 다녀오면서 한 임원들의 소회다.
탐방 장소를 정할 때 회룡포가 국가로부터 '명승' 지정을 받았던 점이 고려됐다. 삼강주막에서 우리 시대 마지막 주막의 정서와 서민들의 애환도 느껴보자고 했다. 천년고찰 용문사에서 불경을 보관하고 있는 '윤장대'를 한 번 돌려 보고, 짬을 내 돌아오는 길에 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해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초간 권문해 선생의 정자 '초간정'에도 들를 수 있다고 했다.
삼강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삼강주막의 근황도 물어보고, 예천군 문화관광과에 문의도 했다. 문화재해설가는 자기가 맡은 곳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웃음으로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올여름에 있을 '2012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이번 문화탐방의 절정은 '예천참우마을본가'에서 점심으로 먹은 예천참우였다. 그 맛은 매일신문 주간매일에 '고향의 맛' 기행을 100회 이상 쓴 구활 선생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종일 내린 비 속에서도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땅' 예천 문화탐방 행사는 잘 마쳤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예천에 한 번 더 오면 세금 내는 나무 '석송령'(천연기념물 294호), 내성천 백사장의 명사십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선몽대', 철조여래좌상(보물 667호)이 있는 '한천사', 외로운 회화나무 한 그루와 소나무 세 그루가 동무하고 있는 동래정씨의 정자 '삼수정', 예천온천, 학가산 자연휴양림, 2012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의 주제관인 '예천곤충생태원'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고향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점점 흐릿해져만 가고 있으나 언제나 그립다. 거기엔 추억이 남아 있고, 그리움이 숨어 있다. 일찍 향수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 풍양을 고향으로 둔 친구 몇이 '애향동우회'를 만들어 해마다 한두 번씩 고향을 찾는다. 풍양장터에서 함께 자란 동무들이 그립다.
(2012년 6월 16일(토) 매일신문 '나의 살던 고향은' 특집)
* 전상준: 수필가, 대구문인협회 총무이사 전상준, 예천 풍양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