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객관화 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남편은 나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의지하고 싶을때 직언을 하면 진짜 꿀밤을 여지없이 한대 때리고 싶어진다. 실제 행동을 한적은 없지만, 그냥 아무런 조건없이 진짜 내편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그러나 남편도 진짜 내편이 되어주질 못한다. 우방이 되었다가 진짜 적이 되었다가.
며칠전 사행연 행사에서 직원들을 만났다. 진짜 솔직한 감정이 나타났다. 앉아있는 직원들이 3355 자기무리로 앉아있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다. 20년이상 나는 같은장소에서 같은얼굴로 서로 업무를 하면서 상처를 주고 받았다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말이 나올까? 나는 이해가 잘 되지않았다.
나는 안과 밖이 다르게 행동이 나오지않는다. 좋으면 몸이 저절로 그곳으로 가고, 싫으면 오만상이 얼굴에 표현되고 가까이 가지질 않는다. 상대가 좋아하면 가고 상대가 싫어하는 눈치면 몸이 가질 않는다. 모든 게 인지상정일테다.
선배들이 많이 챙겼던게 생각이 난다.
그런데 나의 고집으로 나는 상대가 보이질않았다. 아마도 핑게이지만 내코가 석자라 타인이 보이질않았을 게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챙겨야한다. 또 챙겨야하는 위치에 왔고, 아래위로 잘 해야하는 자리가 내 자리다
과거의 감정에 휘둘릴때가 아니다.
누구나 조직에서 이런 기분은 느낄테니까. 자녀가 잘 자라주고, 부모가 건강하게 계셔주면 이젠 사회에 봉사할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받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일도 관계도,
조직에 몸담고 있는한 조직의 생리를 잘 알아야한다. 경험은 20년차인데 사고가 10년차이거나 일이 10년차라면 많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조직에서는 불필요한 존재, 골치덩이가 되어간다. 실제 이런 친구들이 있다. 몇은 안되지만 주변의 해가되는친구들, 상대를 아프게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법도 배워야한다... 그래야 조직생활을 잘 보낼수있다.
과연 나는 어떤 친구인가...
나는 1남3년의 막내로 부모님의 넉넉한 사랑과 경제적인 어려움없이 자랐다. 지금까지도 아버지만 빼고 모두들 가정을 이루어 잘 생활하고 있다. 더하여 주변에 좋은 이웃도 만나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고있고 남편과 하나되는 시간도 가지고 있다.
이또한 감사할일이고 하나님께 고마워해야한다. 나는 주님과 함께 교재하고싶고 교회가서 앉아있었던거 뿐인데 선물은 한보따리를 주셨다. 이제는 진심으로 받은걸 나눠야한다. 주님 나누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처렴 이기적인 친구도 나눔이 가능할까요? 베품이 가능할까요?
무조건적인 베품이 있을수있을까요?
저는 선배님들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잖아요. 아무런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보았잖아요. 지금도 받고있잖아요.
방법은 기다려주고 그냥 인내하는거고 바보라고 해도 바보임을 감내하는거
이론은 잘 아는데 왜 실제 행동은 잘안되어 아픈마음이 상대에게 나오는 걸까요?
6급 경쟁하면서 자궁경부암에 걸렸습니다. 10년간 몸을 돌보지않았기에 아마 그런결과가 나오는건 당연한걸로 받아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몸을 돌봐야합니다.
몸도 돌보고, 주변도 돌보고 잘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인생2막도 잘 펼쳐나갈수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부었는지 내몸을위해 먹는거며 가꾸는걸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더 많이 웃고 조금더 밝은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상처는 훌훌 털어버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