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선묘善妙사랑
안규수
산빛이 곱다. 숲은 푸르게 견디어 온 시간을 잊고 한철 붉어지기로 했다. 숲의 기운에서 발화한 빛깔로 속세의 티끌 같은 각질을 털고 저리 아름답게 물들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신비롭고 가슴 떨리는 일인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늦은 오후 영주 부석사 浮石寺에 당도했다. 고해의 산맥을 넘어온 들녘에서 푸른 절벽처럼 우뚝한 절은 노을에 젖어 있다. 소백 연봉 뒤로 저무는 석양이 무량수전에 비치어, 일몰의 부석사는 깊은 침묵에 묻혀 있다.
부석사 안양루에서 소백 연봉은 말 떼가 질주하듯이 출렁거리면서 지평선 너머로 달려간다. 이 산하는 흔들리는 산하였고, 부석사의 ‘뜰 浮’ 자처럼 떠 있는 산하였으며, 그 저무는 산하를 바라보는 나는 물오리처럼 거기에 빠져서 숨을 헐떡이며 자맥질할 뿐이었다. 들판을 건너오는 비스듬한 석양은 무량수전의 천 년 된 기둥 속으로 스며든다. 그 무한강산 앞에서 젊은 사미승이 7세기의 들판을 향하여 저녁 예불의 종을 때렸고, 아미타불은 들판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이승에서 자비를 베풀고 좋은 일을 많이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인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바라보고 있다.
무량수전은 정교하면서 세련된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일주문을 지나 찬찬히 걸어 올라가는 길, 기대했던 무량수전 모습은 조금씩만 살짝 드러내고, 안양루 밑을 지나 계단에 올라섰을 때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처마선, 처마 곡선의 황홀함에 놀라 문득 뒤돌아보면 저 멀리 펼쳐지는 소백산의 장대한 능선이 겹겹이 펼쳐진다.
무량수전 앞에서 서니 날렵한 지붕 곡선이 눈에 들어왔다. 절이 떠서 부석사가 아니라 그 절 마당에서 사람이 둥둥 떠서 부석사인 것 같다. 마치 처마가 춤을 추는 듯 출렁인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이지만 그 출렁거림은 엄연한 사실로 보였다. 그 덕분에 곡선의 효과는 극대화되는 것 같았다. 이 같은 곡선의 미학은 무량수전 건물에 담겨 있는 다양하고 절묘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안 허리 곡曲, 귀솟음 등이 그걸 말하고 있다. 안 허리 곡은 건물 가운데 보다 귀퉁이의 처마 끝을 좀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하고 귀솟음은 건물 귀퉁이 쪽을 가운데보다 높게 처리한 것을 말한다. 고려의 건축 장인들은 무량수전에 왜 이런 장치를 넣었을까? 건축물은 정면에서 보면 귀퉁이 쪽 처마와 기둥이 실제 높이보다 처져 보인다. 보는 사람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안 허리 곡과 귀솟음은 이 같은 착시를 막기 위한 고안이었다. 모퉁이 쪽이 처져 보이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그 부분을 높게 튀어나오도록 설계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건축적 고안이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서로 어울리면서 빼어난 곡선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건물 앞면이 마치 볼록거울처럼 휘어져 보이는 것도 안 허리 곡, 귀솟음 덕분이다. 그렇게 휘어진 건물의 곡선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인다. 무량수전 앞에 섰을 때, 지붕과 기둥이 출렁거리듯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직선의 목재가 만들어 낸 곡선의 아름다움이다.
이 절을 창건한 신라 의상義湘 법사의 젊었을 때 연애 이야기는 퍽 흥미롭다. 선묘善妙는 젊은 구도자 의상을 사랑했다. 그는 중국 산동 반도의 바닷가 여자로 중국으로 유학을 간 의상이 묵었던 집의 딸이다. 선묘는 의상에게 푹 빠져 이 멋진 구도자를 파계시켜 살림을 차리고 싶었다. 그는 의상의 공부를 정성껏 뒷바라지했다. 하지만 의상은 공부를 마치고 한마디 말도 없이 신라로 돌아갔다.
선묘는 의상을 태운 배가 저 멀리 희미하게 사라지자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의상은 돌아와서 부석사를 세웠다. 의상을 따라온 선묘의 넋은 용이 되어 부석사 무량수전 밑 땅속에서 이 웅장한 화엄종찰을 떠받치고 있다고 한다. 선묘는 용이 되어서도 의상을 향한 애절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무량수전 뒤편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가엾은 선묘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 있다. 불법佛法의 바다는 넓고, 슬픔의 바다도 넓다.
부석사는 신라 화엄종찰이다. 소백의 장엄한 산하는 그 굽이치고 넘실대는 풍경만으로도 이미 한 경전을 구현한 듯한 설렘을 준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연봉이 그러하다.
10월의 소백산맥은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태백산에서 서남방으로 방향을 틀어잡은 산세는 힘찬 기세로 부석사의 먼 남쪽 외곽을 달려 나간다. 형제봉, 비로봉 등이 단연 우뚝하고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이 큰 봉우리들 사이로 앞질러 달려 나가고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 어떤 아름다운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 풍경을 설명하려는 자에게 오히려 침묵을 명령하는 듯하다. 안양루에 걸린 낡은 현판의 기록을 보면, 시인 묵객들의 시구가 걸려 있다. 이 웅장한 산하 앞에서 한낱 티끌로 떠도는 인간 존재의 슬픔을 토로하고 있고, 또 한없는 산하와 합치하는 듯한 존재의 부풀어 오르는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그 웅장한 매혹만으로 이 여행을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화엄 도량을 건설하던 젊은 의상의 불심佛心을 나 같은 속인이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젊은 의상, 부석사에서 내려다보이는 소백산맥의 풍광이 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그는 이미 1,300년 전에 가고 없으나 그 산하의 매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풍광은 나의 종교적 상상력을 절정으로 몰아가고 있다. 무량수전 안의 아미타불은 그 발아래 산하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는다. 아미타불은 몸을 옆으로 돌려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모든 건축물은 다른 건축물과 마주치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 있다. 또한 건축물은 웅장한 산하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고, 산하의 풍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비켜서 있다.
왜 그럴까. 이걸 생각하고 해석하는 일은 무량수전 곡선의 미학과도 연관이 있는 듯싶다. 어찌 신라 건축 장인들의 그 숭고한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오늘의 부석사는 의상을 향한 선묘의 애틋한 사랑이 있기에 저리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백미白眉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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