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소리길을 눈으로 간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내려가던 눈길이 한곳에 묶였다. 매점으로 쓰던 건물의 문이 열려있고 알 수 없는 기운이 밖으로 뻗어 나온다. 쓰다 버린 상자와 포장지 등의 폐지로 두껍게 뭉쳐진 종이가 노란 테이프로 빈틈없이 발라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불상 모양이다. 버려진 종이를 모아 불체를 조성하다니, 순간 나도 모르게 눈앞이 확 열려 옷깃을 여몄다.
이 불상은 보통 부처님처럼 청동이나 번쩍이는 금박을 입히지 않았다. 사물 중에서도 가장 낮고 못난 버려진 것으로 만든 탓인지 오히려 청정한 고요함이 몸에서 배어 나온다. 사방을 종이로 발라 굴이 된 모양도 석굴암에 못지않은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어느 미술가 그룹이 상점으로 사용되다 버려진 육각정을 종이 법당으로 개조했다. 전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 백여덟 명이 주워 모은 것을, 노란 테이프로 감아 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안치했다. 복장 유물로는 노인들의 소원을 적어 넣었다. 육각정이 매점으로 쓰였다는데 착안해서 매점불이라 명명했다.
매점불은 반듯한 두상에 동글동글한 곱슬머리를 지니고 있다. 눈은 세상 모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보살펴 주기 위해 투명하면서 인자하다. 간조롬하게 다문 입은 속마음을 심언(心言)으로 전달하여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게 할 것 같다. 귀는 어려운 사정과 소원을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크게 열려있다. 오른팔은 힘든 사람들의 걱정을 가라앉히느라 너무 바쁘게 움직여 근육 살이 올랐다. 단청 칠한 손끝과 가부좌를 튼 다리에도 간절한 소망이 얹혀 있다. 가슴에는 아직 해결해 주지 못한 회원이 가득 들어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매점 불은 중생들의 무거운 짐을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모두 거두어들인다.
일반 사찰의 부처님은 보통 대웅전의 높은 좌대 위에 앉아있다. 부처님을 마주 보고 앉으면 세심교 밖 세상과 단절된 청정한 분위기에 저절로 녹아든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우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시주가 의무는 아니지만 시주함이 앞에 놓여 있으면 법당으로 선뜻 들어가기가 어렵다. 대웅전 밖에서 불상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일 뿐이다. 그런데 매점 불 부처님은 가진 것 없는 이가 원하는 것을 적어 넣을 수 있게 소원함을 앞에 놓았다. 메모지와 볼펜까지 마련해 뒀으니 누구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소망을 적어 넣을 수 있다.
매점 불은 길옆에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도 사천왕도 없고 주지 스님은 더더욱 없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언제든지 쉽게 들를 수 있다. 가게로 쓰다 버린 육각정이니 세상에서 가장 값싸게 지은 사찰이겠다. 소원함에는 시줏돈이 아니라 눈물이 클렁클렁 흐를 애틋한 사연이 가득할 것이다. 매점불님은 시주 걱정은 말라며 손사래를 치느라 한쪽 팔을 조금 치켜들었다. 그 몸짓이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좋아하는 음식을 열거하기는 쉽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면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을 기억해 보라면 쉽게 떠오른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특급 호텔의 뷔페 음식이나 만찬 요리가 아니다. 객지 생활을 하다가 고향 집에 들렀을 때 어머니가 차려 내준 밥을 잊을 수 없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상관이 없다. 배고프고 힘들어 지쳤을 때 누군가가 차려 준 따뜻한 밥이 외로움과 아픔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감정을 다독여 편안하게 해 주는 밥상을 마련해 주는 이가 마음의 치유자다. 밥 한 상을 굳이 비유한다면 내겐 포근한 손길과 눈길로 어머니처럼 보듬어 주는 부처님이다.
매점불의 얼굴을 자세히 올려다본다. 다소곳이 앉은 모습에서 50여 년 전 시장 골목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때 어머니는 오일장 담벼락에 앉아 채소를 팔고 있었다. 내 공납금 마감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돈이 모자랐다. 고심 끝에 열무랑 콩잎을 내다 팔기로 했다. 연한 열무와 보드라운 콩잎을 다발로 묶어 시장으로 갔다. 경험이 없는 어머니는 젊은 새댁의 흥정에 머쓱하고 씁쓰레했지만, 공납금을 마련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마음을 강하게 다졌다. 쉽게 팔리지 않아서 오랜 시간 앉아있었지만, 그때 엄마의 모습은 당당했다. 고개를 약간 숙였지만, 어깨가 반듯하고 허리가 꼿꼿한 매점 불의 모습이셨다.
불교에서 108이라는 숫자는 모든 번뇌를 상징한다. 이 숫자에 일치하는 백여덟 어르신들이 모은 찢어지고 버려진 폐지로 불체를 조성했다니 흙바닥에서 자애로운 한 분 스승이 태어난 셈이다. 문턱 낮은 매점이라 언제든지 혼자라도 들러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바뀐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같은 매점불이 오가는 사람들이 복을 얻도록 돕고 있으니 세상의 어느 부처보다 낮으면서도 높기만 하다.
산을 내려오는 길 옆의 나무와 돌과 풀잎들이 매점불에 눈길을 준 덕분인지 유달리 깨끗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구름과 햇살에 눈길을 준다. 육각정 안에 앉은 폐지 부처님이 나를 지켜보듯 그것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상은 모두가 바라보는 피안의 세계이다.
첫댓글
페지로 이룩한 부처님이라 의미가깊으네요. 꼭 한번 가보고 싶으네요.
이 사람도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답니다. 저 역시 불신자는 아니나 한번 보고 싶어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