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금요일
징파나루연수원의 또다른 아침이 안개 지욱하게 열렸다. 버스로 출발지로 이동하는 동안 대장님은 오늘도 일정과 주의사항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해주신다. 늘 하시던 안내지만 오늘은 이별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대장님의 어휘와 어감에서 언뜻언뜻 드러난다. 언제부터인지 나 또한 걸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은 심정이 점차 커지던 차였기에 대장님의 뉘앙스가 바로 와닿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임진강 두지나루 황포돛배가 출발지이다.
체조와 안마해주기로 몸을 푼다음 출발이다.
통일! Go!Go!Go!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을 걷는다. 초입에 살짝 오르막을 올라 숲으로 들어가는가 했더니 금세 도로가 나온다. 주변 나무들에는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거미줄이 무수히 걸려있다
가을로 들어서는 들을 지나서 논둑길을 걷는다.
얼마 걷지 않아 사진촬영 시간이 주어진다. 요며칠 우리 조 대원들이 단체사진에 적극적이지 않으신 거 같아서 혼자 멀리 다른조의 모습이 담긴 풍광을 담아본다.
아이쿠~ 이번엔 내가 분위기 파악을 못했나보다. 우리조 사진을 찍자고 하시네.
논둑 아래로 내려가 논 가까이 가서 찍고 싶었지만 길을 걷다보면 싫어하는 농부가 있더라는 큰형님의 만류가 일리가 있다. 그냥 논둑에서 찍는다. 찰칵!
사진 촬영 장소에서 조금 더 걸으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는 이제 임진강을 건넌다. 통일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민통선 검문소를 통과해야하는데, 부대 사정으로 한참을 기다려서야 통과허가가 떨어진다. 허가가 나기까지의 시간 동안 대장님의 얼굴에는 대원들을 향한 미안함과 초조함이 섞여있다. 대장님이 미안해 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통일촌에 들어가서야 버스에서 내려 매점을 둘러보며 식당예약시간을 기다린다.
오늘 점심은 파주 특산물인 장단콩 백반. 비지찌개와 청국장이 인원에 비해 양이 부족하다. 다른 조에서 찌개를 더 달라고 하는데 마지막이라는 말이 들린다. 반찬이라도 더 주면 좋겠는데, 일하시는 분이 바빠서 반찬을 더 달라고 할 틈이 없다. 찬이 부족해서 식사를 제대로 못한 분이 있어 안타깝다.
여유시간을 넉넉하게 가진 뒤, 버스로 도라산평화공원으로 이동한다. 조성한지 얼마되지 않은 거 같지만 조형물도 다양하고 정갈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멀리 4.27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던 도보다리가 있어 가까이 가 본다.
남북이 우리조처럼 가까워지는 날이 통일이 된 날이리라. 도보다리 사진을 1조부터 찍었기에 조원들 모두 함께 여유롭게 한 바퀴 산책하고,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전시관이 궁금해서 들어가본다.
전시물을 둘러보다보니 창밖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고, 조원들이 각자의 시간을 갖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모습만 봐도 흐뭇해지는 사람들...
전 대원이 버스로 돌아갈 시간, 조별 사진들을 남긴다. 우리 조는 여기서만 한 장. 찰칵!!
내일이면 이 버스와도 작별일텐데, 여기서도 찰칵!
이제 버스를 타고 판문점으로 이동한다.
판문점 가기 전 부대버스 두 대로 나누어 탄다. 다른 팀들의 관람 순서가 밀려 우리는 버스에서 대기한다. 멀리 이곳 JSA대대 군인들을 면회 오는 가족들이 머문다는 숙소가 보인다.
JSA대원의 안내에 따라 건물로 들어간다. 절차 상 약간의 교육을 받고, 서약서에 서명한 다음, 안보교육관도 둘러본다
안보교육관 안이어도 담당 군인의 안내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으니 하릴 없이 장난삼아 이런 사진도 찍어 본다.
대기시간이 길어져서인지 바깥으로 나와서 종교시설 자유관람 시간이 주어졌다. 아름다움에 눈여겨 보고있던 성당 앞에서 또 사진놀이. 대장님과도 많이 편해진 듯, 함께 찰칵!
긴 기다림 끝에 멋진 JSA 대원이 안내하는 버스에 올라 이동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서 버스가 선다. 버스 안에서 촬영할 시간이 주어진다. 자유로움 대신 통제가 존재하는 곳, 민통선의 의미가 몸으로 느껴진다. 저 다리 위에 서면 돌아오지 않는 비극의 의미가 더욱더 진하게 느껴질텐데...
그렇게 버스는 이동하여 드어 판문점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걷지만 JSA 대원들의 통제에 따르고 걸어야만 한다. 당연히 사진은 허락하는 장소에서 허락하는 방향으로만 찍을 수 있다.
특히나, 요즘 코로나로 북한에서는 더욱 예민해져 있으니 유념하란다.
드디어 뉴스와 영화에서만 보던 파란 건물이다. 뒤편이 북측 판문각이란다. 눈앞에서 보니 정말 지척이다. 휴전과 종전에 대한 주권 없는 당사자인 우리 남한의 현실이 떠올라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 있는 듯 하다.
남북 협상 장소로 들어가 본다. 회의장 저 끝 문 하나만 열면 북한인데, 세상에서 가장 열기 힘든 문이 아닐까.
JSA 대원의 안내에 따라 자그마한 반송을 만난다. 남북 양측 정상이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으로 심고 남북의 강물을 부었다는 바로 그 나무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듯하던 통일, 이렇게 조금씩은 가까워지려나.
그리고 드디어 4.27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현장, 도보다리 부근으로 이동한다. 실제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 다리의 폭도 도보다리 위에서의 회담 테이블로의 이동 중 경호를 위해 넓힌 것이란다.
무거운 마음으로 판문점과 그 주변 시설물들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올라 징파나루연수원으로 돌아온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장님이 며칠간 강조하시던 장기자랑 시간을 알려주신다. 시간 여유가 조금 있기에. 우리 조는 여성대원의 방에 모두 모여 마지막 연습을 해본다.
드디어 장기자랑 시간이다. 각 조의 개성이 어찌 그리 다양한지, 그리고 어찌 그리 모두 열심히 준비했는지 기발하고도 놀랍다.
특히 개성이 팡팡 튀는 아이디어로 소품을 택배로 공수해서 준비한 팀과, 우리 조가 연습을 하는 동안 노트북을 부여잡고 있던 두 청춘남녀가 만들어 낸 영상물에 슬쩍 위기 의식을 느낀다.
우리는 연령이 가장 많은 조라, 마스게임 순서를 잊게 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대장님은 늦게서야 발표순번을 주신다. 처음으로 미움!
나름 준비한 동작이 있어 무대가 좁으니 롤브라인더라도 올려도 될까 여쭤보니 그냥 하란다. 이번엔 서운!
어쩔 수 없이 좁지만 어찌어찌 해본다. 어랏~ 제법 착착 통일감 있......으려다 살짝 부족하더니, 마지막 앉아서 마무리를 하기로 했는데 책상에 가려질 거 같다. 그래서 대부분 서서 마무리. 단 한 사람 약속대로 앉아서 마무리 동작. 통일이여~ 오~~라~~~~!
우리는 의도치않게 남북분단의 현실을 통일되지 않은 마무리 동작으로 표현하고야 말았다.
드디어 시상의 순간. 다양한 상들로 푸짐한 마무리였고, 특히나 우리 조가 1등이라니~ 얼쑤~~!
미움과 서운함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씻겨져버렸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오늘의 하이라이트.
실향민으로서 가볼 수 없는 땅을 바라보았던 한 대원의 심정을 들으며 문득 내 마음 속에 있던 매듭이 하나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치관이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구나. 다르기 때문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닿을 수 있는 공감에서 통일의 싹이 틀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마음이 쓸쓸하다. 전체대원과의 이별을 앞둔 밤이기에.
이은미가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으며 남몰래 눈물을 닦아내다 잠이 든다.
< 3기 통일걷기에 공유되었던 사진을 일부 사용했어요. 공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
첫댓글 누님, 밤늦은 시간까지 12일차 후기를 작성하셨군요^^
어느덧 일정이 마무리되어가고 판문점을 견학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기면 걷고 싶은 길이었어요~~~~
후기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가 바뀌고서야 다시 리뷰를합니다
그리고 추억을 밟아 그 때를 생각하며 미소 가득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