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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9. 22
와일드카드(Wild Card)는 카드 게임에서 ‘만능’으로 쓰인다. 다른 모든 카드를 대체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스포츠에서는 뜻이 좀 다르다. 아깝게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을 얻지 못한 팀이나 선수에게 추가로 진출권을 주는 제도다. 이른바 최후의 ‘보너스’다.
한국 프로야구에 처음으로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 것은 양대 리그 시절이던 1999년과 2000년이다. 각 리그 2위 팀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한 리그 3위 팀이 다른 리그 2위 팀보다 승률이 높을 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두 팀이 짧은 준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렸다. 상황에 따라 한 리그에서 3팀, 다른 리그에서 1팀이 각각 올라갈 수도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진짜 ‘와일드카드’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상 최초로 10구단 체제가 출범한 지난해다. 이 와일드카드 도입은 결과적으로 KBO리그 흥행을 폭발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다.
#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됐다
메이저리그는 1994년 처음으로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해부터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가 동부·중부·서부의 3개 지구로 나뉘면서 지구 우승팀이 홀수가 된 탓이다. 이 때문에 세 지구 2위 팀 가운데 가장 승률이 높은 구단에게 와일드카드를 주고 디비전 시리즈에 참가할 수 있게 했다. 와일드카드를 따낸 팀은 세 우승팀 가운데 가장 승률이 높은 팀과 5전 3선승제의 디비전 시리즈를 치러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권을 다퉜다.
도입 첫 해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파업으로 와일드카드 팀이 탄생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95년에 처음으로 와일드카드 팀이 나왔다. 내셔널리그의 콜로라도와 아메리칸 리그의 뉴욕 양키스였다.
그러나 이후 와일드카드 팀들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사례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예상보다 더 많이 나왔다. 2011년에도 와일드카드로 진출한 세인트루이스가 우승하자, 2012년부터 와일드카드 결정 방식이 손질됐다. 한 팀이 아니라 두 팀이 와일드카드를 얻고, ‘원 게임 플레이오프’를 통해 디비전 시리즈 진출자를 가리는 형태다. 두 팀 중 성적이 더 좋았던 팀이 홈구장에서 경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전까지 와일드카드 진출팀들은 지구 우승팀들과 사실상 동등한 조건에서 디비전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도가 바뀐 이후 와일드카드 팀들에게 단판 승부의 부담감이 추가됐다. 형평성 면에서도 일리가 있는 제도라는 호평이 잇따랐다. 지구 우승에 대한 프리미엄이 늘어났다는 것은 ‘와일드카드에 안주하지 말고 우승을 노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동시에 손에 땀을 쥐는 포스트시즌 게임이 하나 추가됐으니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변화다.
# 한국의 와일드카드 도입 효과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은 ‘4강’의 동의어였다. 정규시즌 4위 안에 들어야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2015년부터 10구단 체제가 출범하면서 KBO리그도 와일드카드 도입을 의결했다. 처음 안건이 나왔을 때만 해도, 4위와 5위의 게임차가 1.5경기 이내일 때만 단판 승부로 준플레이오프 진출 팀을 가리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논의가 거듭되면서 방식이 바뀌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무조건 치르되, 4위 팀에 1승과 홈 어드밴티지를 주는 방식이다.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필요한 경기 수는 최대 2경기. 대신 4위가 1승을 먼저 안고 시작한다. 또한 4위 팀은 무승부만 한 번 해도 1승 1무로 준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낸다. 그러나 5위는 무조건 2경기를 다 이겨야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다. 1무든 1패든 먼저 2승을 하지 못하면 곧바로 탈락인 것이다. 상위 순위 팀에게 1승의 어드밴티지를 주는 일본의 클라이막스 시리즈 방식과 메이저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특징을 적절하게 섞었다.
지난해 처음 등장한 와일드카드 제도는 KBO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불러왔다.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상위 4개 팀의 판도가 일찌감치 갈라졌다. 8월이 끝난 시점에 삼성, NC, 두산, 넥센이 4강권을 형성해 나머지 6개 팀과의 격차를 벌려 나갔다. 4위 넥센과 5위 한화의 격차가 무려 6.5경기였다. 이전처럼 4강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면, 자칫 장기 레이스의 중후반이 너무 싱겁고 김빠질 뻔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5위 경쟁은 전례 없이 치열했다. 5~8위 간 격차가 단 3경기에 불과했다. 한화와 KIA가 게임차 없는 5위와 6위였고, 7위 SK도 5위에 고작 1.5경기 차 뒤졌을 정도다. 3경기라면 남은 한 달 사이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격차. 게다가 이 와일드카드 경쟁에 포함된 팀들이 대부분 인기 구단들이라 팬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과정도 대단했다. 가장 뒤에 있던 8위 롯데가 9월 초 연승 행진을 펼치면서 단숨에 5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여전히 초접전은 계속됐다. 이 시점에 7위였던 KIA와의 게임차는 ‘0’이었다. 아주 근소한 승률 차이로 세 팀의 순위가 갈렸다. 8위로 처진 SK는 5~7위 그룹에 2.5경기 차로 뒤져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이번엔 SK가 연승 가도를 달렸다. 연승과 연패 한 번에 날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9월의 마지막 날, 롯데는 하필이면 경쟁자 KIA에게 2연패를 당해 가장 먼저 5위 경쟁에서 낙오됐다. 그리고 한화가 10월 3일 수원 kt전에서 져 두 번째로 5강 탈락이 확정됐다. 남은 건 SK와 KIA의 싸움. 마지막까지 버티던 KIA는 결국 한화가 탈락한 하루 뒤인 10월 4일 잠실 두산전에서 패하면서 끝내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 지난해 넥센과 SK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11회말 넥센 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윤석민(왼쪽에서 두번째)의 플라이볼을 놓치는 유격수 김성현의 끝내기 실책으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넥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극적인 승부의 승리자가 된 SK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경쟁에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쏟아 부은 탓일까. 어렵게 찾아온 SK의 가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이미 1승을 안고 있던 넥센과 만났고, 연장 승부 끝에 끝내기 실책으로 졌다.
# 3·4위 싸움도 치열해졌다
와일드카드 도입은 5위에게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3위와 4위 경쟁도 예년보다 훨씬 치열해졌다. 이전까지 많은 감독들은 “3위와 4위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는 1위나 플레이오프에 먼저 오르는 2위와 달리, 3위와 4위는 동일하게 준플레이오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3위는 1차전을 홈에서 시작한다는 이점만 있을 뿐, 갈 길이 멀기는 4위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생기면서 3위에게는 4위에 비해 확실한 장점이 생겼다. 4위가 준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탈락할 위험이 생긴 데 반해 3위는 그렇지 않다. 또한 가을 잔치의 첫 판에서 이미 5위 팀과 전쟁을 치르고 온 4위 팀을 만나게 됐다. 4위 팀의 가장 좋은 선발 투수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만나게 될 가능성도 적어진 셈이다. 이제 4위 팀에게도 기를 쓰고 3위 자리를 탈환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정규시즌 순위 경쟁에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부수효과다.
실제로 지난해 두산은 KIA의 5강 탈락이 확정됐던 바로 그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3위 자리를 지켜냈다. 그 경기가 두산의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다. 그 마지막 한 게임의 결과로 3~5위의 희비가 갈라진 것이다. 두산은 그렇게 준플레이오프에 선착했고, SK와 연장 승부를 펼치고 오느라 기진맥진한 넥센을 꺾었다. 그 여파는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사실 한국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진짜 ‘와일드카드’ 진출팀을 가리는 미국의 단판승부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국내 제도상, 4위 안에 들지 못한 5위 팀에게 와일드카드라는 자격이 주어진다. 5위가 ‘와일드카드’를 따내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얻는 것이고, 4위와 5위의 대결은 ‘준플레이오프 진출 결정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KBO에서 팬들의 편의와 이해를 위해 와일드카드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어쨌든 지난해 와일드카드는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평균 관중이 급감했던 KBO리그의 흥행을 다시 일으킨 주역이었다. 올해 역시 두산, NC, 넥센이 1~3위를 공고하게 지키는 가운데 4위와 5위를 둘러싼 순위 전쟁이 프로야구팬들을 더 흥미진진하게 했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72호]
메이저리그에선…양 리그 ‘와카’ 팀끼리 WS 맞짱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당연히 아니다. 1995년 첫 와일드카드 팀이 탄생한 이후 지난해까지 21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여섯 번이나 와일드카드 진출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승은 하지 못했더라도 와일드카드 팀이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한 경우 역시 10번이나 된다. 그저 잠깐 가을 무대에 발을 들여 놓은 것으로 만족하느냐, 혹은 그 카드를 발판 삼아 새로운 기회를 여느냐는 그 이후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6번의 우승 가운데 5번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도입된 2012년 이전에 나왔다. ‘와일드카드의 기적’을 처음으로 열었던 팀은 1997년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를 따냈던 플로리다였다. 이후에도 선전은 계속됐다. 2000년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해 두 번째 정상을 노렸다가 아쉽게 실패했다.
그러나 플로리다의 첫 와일드카드 우승과 메츠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돌풍의 서막에 불과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3년 연속 와일드카드 진출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이변의 퍼레이드가 열렸다. 특히 2002년에는 내셔널리그의 샌프란시스코와 아메리칸리그의 애너하임이 역대 최초로 양 리그 와일드카드 진출팀끼리 월드시리즈를 펼쳤다. 그 결과 애너하임이 우승했다.
2003년에는 플로리다가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승리한 뒤 결국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해 내셔널리그는 9월 1일까지 플로리다, 필라델피아, 휴스턴, 세인트루이스가 2경기 차 안에서 와일드카드 한 장을 놓고 접전을 펼쳤다. 와일드카드 레이스 8위인 애리조나와 1위 플로리다의 게임차가 4경기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였다. 특히 중부지구에선 3팀이 1.5경기 차 안에서 2위 전쟁을 했다. 결국 시즌 종료 이틀을 남기고 플로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그리고 결국 그 여세를 몰아 메이저리그 100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2004년 우승팀 역시 와일드카드 보스턴이었다. 숙적인 양키스를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극적으로 꺾고 월드시리즈에 오른 뒤, 세인트루이스를 완파하고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뿐만 아니다. 이듬해인 2005년에도 휴스턴이 4년 연속 와일드카드 우승에 도전했다. 필라델피아, 플로리다와 막판까지 숨 막히는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친 끝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리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그해 100승 팀인 세인트루이스를 무너뜨리고 창단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다만 전력상 우세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그해 월드시리즈에서는 휴스턴의 돌풍을 잠재웠다.
이렇게 와일드카드 팀들의 반란이 계속되자 당시 메이저리그에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려면 지구 우승보다 와일드카드가 낫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등장했다. 2002~2004년을 포함해 14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에 올랐던 애틀랜타가 그 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은 단 한 차례밖에 못했던 사례를 비유한 것이다. 와일드카드 팀들이 월드시리즈를 3연패하는 동안, 최강의 스타 군단 뉴욕 양키스도 3년 내내 바로 그 세 팀에 발목을 잡혔다.
2004년 보스턴 이후 6년간 나오지 않았던 와일드카드 우승의 물꼬를 다시 튼 팀은 2011년의 세인트루이스였다. 과정부터 극적이었다. 정규시즌 최종일에 극적으로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는 그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양대 리그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승률이 낮았다. 전력도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렵게 월드시리즈에 올랐지만, 2승3패까지 밀렸다. 그런데 벼랑 끝에서 치른 6차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마지막 7차전에선 선발 크리스 카펜터가 호투하고 앨런 크레이그가 결승 홈런을 터트려 6-2로 이겼다. 월드시리즈 역전 우승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19번밖에 없던 일이었다. 예상을 완벽하게 뒤엎은 세인트루이스의 반전 우승은 결국 2012년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새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또 다른 기적이 펼쳐졌다. 2002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와일드카드 팀들끼리 맞붙는 월드시리즈가 열렸다.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캔자스시티는 오클랜드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한 뒤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내리 패전 없이 3승과 4승을 따내면서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8연승으로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마지막 순간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웃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가 월드시리즈에서만 3승을 따내는 위용을 뽐내면서 4승 3패로 결국 캔자스시티를 꺾었다. 통산 6호 와일드카드 우승팀의 영광은 캔자스시티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에게 돌아갔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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