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시조문학의 발흥과 현재
정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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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태수 시조시인의 <편편산조>에 나타난 부산여성시조시인
부산시조시인 편편산조
- 낙동강 · 528
서태수
흘러, 시조 천 년
낭창낭창 물길 위에
강바람 간들간들 나부끼는 윤슬 조각
한여름 매미 날개로 편편엽엽 반짝인다
잉어 꿈 한 생애를 역류하는 샛강 붕어
강물 위 조각보를 낱낱샅샅 톺아보니
부산의 시조시인들 이미지를 새겼더라
용두산 정기 받아 팔각정자 다듬더니
버드나무 육각기둥 김상훈 기웃하고
노래하는 갈가마귀 박달수 날개 넓다
양원식이 돌리는 사방무늬 쳇바퀴에
왕대숲 옛 메아리 임종찬 화답하고
전치탁 맞장구치는 갖춘마디 변주곡
암반 위 곰솔로 선 정해송 어깨 저편
솔밭 너머 참나무 류준형 낙엽 지고
하구둑 도요새 이성호 포르르 난다
주강식 던져주는 유리조각 시누댓잎
솔숲에 이는 안개 김용태 얼른 품어
띠구름 그윽한 정자 돌담집도 멋이네
여류 시인 굽어도는 꽃물길 다채로와
바람 언덕 백목련 박옥위 그늘 건너
붉은 장미 꽃다발 전연희 밭 고르네
여우 꼬리 스피츠 정현숙 내달으니
정자 마당 해당화 이말라 붉게 피고
꼬리 세운 갈색 고양이 손영자 스쳐간다
단풍 호수 황포돛배 윤원영 얼핏 뵈자
재 너머 들국화꽃 제만자 향을 뿜고
모래땅 붉은 민들레 정인경 목청 맑다
자상히 살펴보니 춤사위도 그려 넣고
더러는 시적 특징도 은근슬쩍 고명 없어
버무린 긍정과 부정 상징성이 난해하다
장강의 깊은 속뜻 우리 어찌 다 알랴만
연미복 입은 참새 정해원은 변함없고
색즉시공 김현우는 서책 품은 문어렸다
해금 켜는 직박구리 백승수 운율 깊고
찻물 배인 백자 다관 안영희 빛깔 곱고
당초무늬 분청대접 하경민은 넉넉하다
사하촌 시월 연잎 황다연 빛 가을인데
벼랑바위 갯고둥 전일희는 고향 갔나
서북향 붉은해바라기 이숙례도 먼 빛이네
시조 가락 어울마당 일고 잦는 물길 여운
고개 내민 강둑 거북 강신구 엉금 기고
뒷동메 조릿대 꺾어 전병태가 외로 돈다
연꽃 아래 가물치 심성보 풀쩍 뛰자
파도 타는 나뭇잎 최해진 출렁이고
올챙이 품은 두꺼비 서관호는 요지부동
구르는 징검돌로 박정선 넘나들고
유월 나도밤나무 김소해 시절 타니
싱거운 천일염의 이상훈 표 차반 좋다
청태 덮은 석비레담 최연근은 비 맞았나
옮겨 심은 회화나무 이석래 착근할까
툇마루 복륜 춘란꽃 장명웅은 분째 없네
업적 큰 선배님들 길고 굵은 발자취들
욱은 솔밭 화초 같은, 깊은 강 잉어 같은
시조단 함께 엮어갈 새 물줄기 여럿 있네
손증호 몸사위는 갯바위에 얹힌 소금
둠벙의 참개구리 변현상 노래 굵고
늦가을 무화과 열매 은근 달짝 우아지라
벚꽃길 산벚나무 배종관 자드락에
길섶 조팝나무꽃 최성아 낮게 피고
돋을무늬 야생화밭 이광도 어울렸네
산책길 참달팽이 이양순 살금 기니
반쯤 벙근 붉은 작약 정희경 만개한데
부뚜막 얼룩고양이 이옥진은 털갈이 중
뒤란 자색 꽃창포 김정이 머리 감자
국립공원 봉선화 김덕남 씨방 영글어
긴 강둑 천지사방이 부산시조 터앝이라
이 세상 천만 빛깔 향 없는 열매 없어
시가 과일이라면 시인은 꽃이려니
벗네들 함께 어울린 풍류세월 아니련가
아는 듯 모르는 듯 말 없는 물길 따라
무심한 바람결에 방울방울 새긴 서정
행여나 파도 일어도 그냥 그리 여기소서
(시조시인 이미지는 2018년 여름 기준)
서태수 시조시인은 위와 같이 많은 시조시인들의 개성을 노래하였지만 필자 또한 『부산시조』 45호 (2019)의 <멋스러움과 인간미를 가진 자부심의 단체>에서 부산시조문단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특성도 여성시조라 다른 점은 없이 단체의 적절한 윤활유의 역할을 하며 창작에서는 남성 시조시인들의 문학세계를 뛰어넘고 있다.
솔직히 참 부러운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격려하며 다정하게 자주 모이고 진한 우정과 절제된 선비들의 모습들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합창을 하며 즉흥적인 연극을 꾸미고 춤을 추는 그야말로 자생적인 예술적 끼를 즐기고 표현하는 문인들이다. 때문에 품격이 있는 문인들의 집단으로서 부산시조시인들을 들 수 있다.
부산시조시인들은 영남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창작집단으로서도 손색없는 발전을 더욱 추가하게 될 것이다. 어느 문학단체보다도 협력이 돋보이는 단체가 아닌가.
4. 부산여성시조문학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인 중에서 시조시인이 차지하는 비 중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전국의 시조시인 인구를 감안 하고 또 그 활동상을 생각한다면 150여 명의 부산시조 시인들은 수적으로나 활동면에서나 도드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30여 명이 넘는 부산의 여성시조시인들은 왕성한 창작과 시조 보급 등의 활동으로 시조문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자료들은 참고자료에 밝힌 것과 같이 정희경 시조시인의 <여 성의 힘, 시조의 힘>에 발췌한 내용들이다.
1980년대 등단한 부산의 여성시조시인들은 개척자였다. 부산시조시인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최초의 여성시조 단체인 '부산여류시조문학회'를 창립하고 부산에 시조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부산여류시조문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은 박옥위 시인 을 필두로 하여 현재 부산시조의 르네상스를 만들고 있는 전연희 시인과 김소해, 손무경, 손영자, 이말라, 장정애, 제만자, 하경민 시인이 1980년대 등단하여 부산 여성시조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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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희경, 김덕남
최근 몇 년 사이 학구적인 정희경의 시조와 김덕남의 단단한 서정적이며 사회적인 관점의 시조는 부사시조단의 한 특성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기에 기대되는 바 크다.
정희경鄭熙暻
1966년 대구 출생. 200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및 2010년 서정 과현실 등단. 시조집 『지슬리』,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 현대시 조100인선집 『빛들의 저녁시간』. 시조평론집 『시조, 소통과 공존 을 위하여』. 가람시조문학 신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선정 올해의 시조집상, 오늘의시조시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등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선정.
침침한 운촌시장 어귀를 지켜내던
낡은 목조 건물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앞에 쪼그려 앉던 난전도 흩어지고
밀려난 푸성귀들 누렇게 뜨는 밤
공사 중 접근금지 빛을 내는 노란 철책
시멘트 굳어진 땅에 건물들이 올라간다
별이 된 명희 영희 허기 달래던 시장골목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외등으로 떠 있다
가녀린 불빛 아래로 하루살이 모인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문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의 중편소설
고흐가 선물해 준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
타히티역 출구에 후두둑 비가 내린다
떠나 온 아를의 방에 해바라기 피겠다
손을 떠난 우산은 사이프러스의 별이 되거나
거울 속 자화상으로 선명히 남아있다
원시의 타히티섬엔 해가 반짝 나겠다
- 「우산에 관한 기억」
김덕남金德南
1950년 경북 경주 출생.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집 『봄 탓이로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선정 올해의 시조집상 및 신인상, 이 호우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시조시학 젊은 시인상 등. 아르코 창작지원금 선정.
그대 귀에 달린 것은 귀고리가 아니다
노예의 상징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한 끼의 입맛을 위한 이력서일 뿐이다
그대 코 뚫은 것은 피어싱이 아니다
유혹의 허방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살가죽 벗겨지도록 짐 지우기 위함이다
엉덩짝 불도장은 비정규의 주홍글씨
빌딩이 높을수록 그늘은 더욱 깊어
지상의 모든 고삐로 생채기는 덧난다
- 「귀표 혹은 코뚜레」 전문
귀표와 코뚜레, 불도장, 고삐 등을 통해 인간의 사회현상까지도 비꼬고 있는 점이 이 시조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사물을 통해 인간을 읽는다는 것은 평소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사유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시조로 직진을 거듭하고 있는 김덕남 시인의 평소 올곧고 적극적인 성격이 잘 반영된 시조이기도 하다.
젖내 문득 그리운 날 위양못 찾아간다
물속 하늘 날아가도 젖지 않는 백로 날개
높아서 더 깊어지는 새의 길이 보인다
신음도 진통제도 흘려보낸 못물 아래
푸드덕 깃을 치며 손흔드는 고운 엄마
낮아서 더 넓어지는 물의 길을 읽는다
- 「위양못」 전문
그 외에 주목할 시조시인으로 윤원형, 최성아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여성시조는 중흥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현실에 바탕을 두 고 쓴 작품들도 많았다. 많은 시조시인들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 부분은 앞으로 보완과 수정을 거쳐야 할 과제를 남긴다. 자료에 협조해준 김덕남 시조시인과 정희경 시조시인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 《여기》 2021.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