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가정생활
이시돌(가칭 : 선량하고 가난한 농민)목장이 창설되니 금악리 주민들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있게 되고 이시돌 협회에 가입하여 양돈업과 축산업도 하고
일부는 직원 및 인부로 고용되어 일을 하니 이시돌 덕을 많이 보았으며, 외부에서조차 금악리 사람들은 이시돌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다.
이시돌 목장창설은 임 신부님이라는 분이 하셨는데, 그 당시 그가 금악마을 사람들의 곤궁한 삶에 여러 방도로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철갑탄피와 납탄피는 다 주워 없어지고 이시돌 창설도 거의 끝이 났다.
개인농장은 1가구당 몇 만평씩 농지를 확보하여 천주교 회원들에게 분배하니 이들은 드럼통 같은 주택을 짓고 축사, 돈사를 천주교로부터 자금일부를 지원받고 20여 가구가 시설되어 1개 동네가 형성되어 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천주교에 의지하여 살고 있지만 우리 금악 주민들은 교인이 아니므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지금은 비료가 있어 농사짓는 일에 큰 염려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비료가 없었다. 비료 없이 맨땅에다 농사를 지으면 지금의 10분의1도 수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태역(억세 밭)밭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다.
큰 밭갈쇠(억새밭을 갈수 있는 힘이 센 숫소)가 있는 사람은 새밭을 갈고 메밀이나 산디(밭벼)를 파종하고 수확하여 먹는다.
소가 없는 사람은 쇠붙이로 만든 따비(삽의 일종)라는 삽을 가지고 억새밭을 일구는데 워낙 힘이 많이 들고 하루 종일 개간하여도 억새 뿌리가 있어서 몇십평 정도밖에 개간할 수가 없다.
이 땅에 농사를 짓는다.
새로 개간된 밭에는 보리나 콩 등을 경작하고 수확을 하는데 비료대신 소 거름을 넣는다.
소가 있는 농가는 돼지우리 안에 소 거름을 갔다 넣으면 돼지가 밟으면서 분뇨가 혼합 발효되면서 최고 질 좋은 거름이 된다.
1년 정도 지나서 11월이 되면 거름을 마당으로 꺼내어 보리씨앗을 섞어 사람발로 밟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보리가 퇴비의 영양분을 흡수하여 잘 자라게 된다. 보리씨앗이 골고루 섞어지도록 뒤집으면서 밟는다.
이 거름을 맥(짚으로 만든 물건 담는 그릇)에 담고 소등에 실어 밭으로 운반하여 놓고 난 다음사람 손으로 골고루 뿌려야 한다.
지금은 기온이 높아서 눈이 없지만 그 당시 50여 년 전에는 초겨울만 되면 눈 싸라기가 주룩주룩 내려서 밭에 운반한 거름은 꽁꽁 얼어서 커다란 덩어리가 되고 말았었다.
이것을 쇠스랑으로 부수면서 일일이 손으로 밭에다 골고루 뿌리는데 꽁꽁 얼어붙은 거름을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뿌려야 하니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못 견디게 재래식방법으로 농사를 지었으니 수확량은 적고 따라서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다음해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봄이 되면 밭에 파종한 보리는 채 여물기도 전에 노란색깔이 조금 나기시작하면 낫을 들고 가서 몇 다발(한 아름) 베어다가 장만해서 솥에 넣고서는 삶고 볶고 맷돌에 갈아 산나물을 뜯어다 넣고 죽을 끓이는데, 물반죽반 한 그릇 떠보면 거울보다 더 맑은 죽에 얼굴이 비친다.
그래도 이죽 한 그릇을 먹으면 굶었던 뱃속이 든든하여 진다.
이런 생활을 몇 년째 하다 보니 중과석이란 비료가 나오고 암모니아로 만든 요소비료가 나오게 되었고 비료를 밭에 넣고 농사를 지으니 수확이 많아져 먹을 양식이 충분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이렇게 보릿고개 흉년을 넘기면서 생활하였으나 지금은 집집마다 경운기 및 트랙터가 있고 젊은 사람들은 각종 기계화된 농기구를 많이 확보하여 농사를 지으니 농사일도 편하게 되고 양식이 남아돌아 보리를 팔고 조, 콩을 팔면서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은 그 당시의 대통령이 부럽지 않은 천국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그 힘든 시절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불렀던 노래 몇 곡이 있는데 아래에 적어본다.
밭가는 노래 “요쇠야 저쇠야 돌아오라 어식어식 거딱거딱 걸어나 보라 요놈이 쇠 바른 질 아니걸엉 어드레 감시니”어헝어허~ 어야 어허어어~야어야 [부림패 가린석을 잡고 노래를 이어간다] 어허어허~ 어어어허~ 돌아 나오라 어허어~어야 요쇠저쇠 돌아나오라 어허어허어어 어허어어어어~ 돌아 나오라 요쇠 일락서산에 에헤에에~ 해지는 처리 모르는 쇠로구나”
짚 두드리는 노래 “서두리도 더럼마야 서두리도 더럼마”
김 메는 노래 “어기여랑 사대로구나 검질직곡 골너문 밭에 앞멍에랑 들어나오라 뒷멍에랑 물러나가라 앞멍에에 곤아장아자 빨리 저오랜 두손을 친다 오늘해도 벌써나진다 내일오랑 검질을 메게”
나무 베는 노래 “에야 홍애로구나 어어~ 어야도 홍아 어허어허어어이 홍아기로고낭아 어여싸”
흙덩이 부수는 노래 “서궁아기 더럼마 홍애로다 호옹에 서궁나미 더럼마 어야호오”
흙 이기며 두드리는 노래 “서두리 더럼마 서두리 더럼 어기 더럼마 서두리 더럼 서두리 더럼”
보리 훑트는 노래 “어야두리야 홍애로다 어허두리 더두럼아 허두리더럼아 홍애로다 허두리야 홍애로다 허두레더럼아 산이로다”
촐(꼴)비는 노래 “어허어허야 홍아기로고나 어허어허어어어 홍아기로고나 아허어야 방아홍아기로고나 두럼두려어험 아헤어허어허마야”
아기구덕 흥글멍 아기재우는 노래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아기 재와도라 느내아기 재와주마 아니아니 재와주당 질긴질긴 말총배로 발목다리 손목다리 무꺼노앙 기푼기푼 천지소에 디리첫닥 내첫닥게 노고낭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아긴 잘도잔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김 메는 노래 “어기여랑 사대로고나 앞멍에랑 들어나오라 뒷멍에랑 나고나가라 어기여랑 사대로고나 사디불렁 앞멍에가게 어기여랑 사디야 검질짓고 골너문밭에 사디로나 우겨김매자 어기여랑 사대로고나 어기여랑 사대야 어기여랑 사대로고나 오늘오늘 오늘이여 매일장상 오늘 이민 다시오기 어려워라 어기여랑 사대로고나 요나이랑 멧나이졍 일천간장 섹이멍살리 어기여랑 사대로고나”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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