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참가족 (마르코복음 3,31-35)
제임스 티소트 외 2명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코 3,33.35)
제임스 티소트(James Tissot, 1836-1902)가 1894년경에 그린
<호숫가에서 군중들을 가르치는 예수님>은
어머님과 형제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신다는 사람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며 팔을 벌려 되물으시는 예수님의 반응을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 팔을 벌리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누가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인가를 묵상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에 참석하는 형제들이 예수님의 몸을 함께 밥으로 나누는
한 식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형제들을 자꾸 외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과 고통에 동참해야 할 일이 생기면 더욱 그렀습니다.
내 식구가 굶어죽고 있는데 우리는 먹을 것을 나누지 않겠습니까?
내 형제가 아파하고 있는데 우리는 돌보지 않겠습니까?
내 형제가 가족을 잃어 슬퍼하고 있는데 위로해주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팔을 벌려 내 식구를 모두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숙이고 턱을 궤며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내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가를 깊이 성찰합니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Carl Heinrich Bloch, 1834-1890)가 1877년에 그린 <산상설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는 말씀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위에 앉아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있고, 그 내용은 행복선언입니다.
그 행복은 하늘나라를 위해 물질의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억지로 지키지 않고,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지키고 또 다른 이들에게 지키도록 가르칩니다.
그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자선을 베풉니다.
그들은 숨을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숨어서 기도하고,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은 것처럼 그들도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며,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을 위해 단식합니다.
그들은 좀도 녹도 쓸지 않는 하늘에 보물을 쌓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 않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봅니다.
그들은 구원을 청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늘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들은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 주고,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좋은 열매를 맺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여 반석위에 집을 짓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위에 앉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것은
바위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나게 한 모세처럼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바위, 저의 구원자이시듯이
예수님께서 구원의 바위이심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도미니코수도회 수사였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가 1440년경에 그린 <산상 설교>는
맑고 순수한 색체와 간결하고 정제된 형태와 구도를 통해
그리스도교 정신을 더욱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헐벗은 바위 모습으로 묘사된 산 중턱 중앙에 앉아 있고,
그 주위에는 열두 제자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가난입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님이 계시고 말씀이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영적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왼손에 두루마리를 접어들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지상의 행복보다는 천상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전하고 있고,
제자들은 시선을 모으고 입을 다문 채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입은 파스텔 톤 옷에 있는 주름은 바위산의 능선들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큰 원을 형성하고 있어 화면 전체가 역동적이고 리듬감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밝고 화사하면서도 고요하고 거룩한 분위기가 곁들여져 있기에
그림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중심의 가치관보다는
하느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변화되도록 오묘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느낌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