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1(한밤의 미풍)
정현수
이른 아침 고요의 정적을 깨우는 경운기의 털털 거리는 소리는 부지런한 농부의 하루를 시작하는 긍정의 화음이다. 일 소만큼 움직임이 한가롭고 여유가 있는 유유한 삶의 밑거름의 소리다. 소서(小暑)가 막 지난 지금, 더위가 조금 느껴지고 농부의 일 손도 또다시 바빠지는 시기이다. 들깨 모종도 옮겨 심어야 하고 콩 밭이나 고구마 밭 김매기도 해야 하며 논의 성가시고 허접스러운 풀도 뽑아 주어야 한다. 내 집 옆 꽤 큰 텃밭에는 팔십 중반이신 할머니가 옥수수밭 틈에 부추 모종을 심고 계신다. 구부정한 모습이지만 밭일에 노련한 모습은 세월의 흔적이 엿보여 애처롭기도 하고 하시는 일이 장하시다. 뭔가 하나라도 더 심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는 할머니의 짠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농사에 찌든 이장님 일 톤 트럭도 벌써 목장에 와 있다. 6시면 어김없이 60두 정도가 되는 소의 아침거리를 챙겨주어야 한다. 이런 이곳의 목가적 아침 풍경은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감싸는 평화롭고도 아늑함을 주는듯하고, 일상에서도 그런 그들의 안달복달하는 모습 또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인간미가 아주 풍부하게 느껴지는 그들 순수성에 나의 나태가 죄가 되는 것 같아 괜히 부담스럽고 한편 속상하다. 뭐라도 해야 하였기에 그제 아침부터 오늘 오전까지 정원에 몇 그루 안되는 나무들을 큰 전지가위로 예쁘게 깎아 잘 다듬어 밥값을 한 것 같아 조금은 으쓱할 수 있어 다행이다. 주목나무도 타원형으로 모양새 있게 다듬었고 자두나무, 대추나무도 쥐똥나무 울타리의 잔가지까지 키가 비슷하게 정리하여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대충 정리가 끝나면 뒤뜰 작은 텃밭에 상추나 열무 같은 푸성귀를 심을 생각이다.
인터넷도, tv도 아직 감감무소식이고 새로 구입한 휴대폰도 잠정 불통이다. 문명의 이기에서 떠나 열흘의 지나도록 지내보니 어쩌면 이 짓까지도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에 소외되고 보니 때론 무료하고 적막하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한 삶이 아닌가 싶다.(물론 섣부른 결론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나 스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사 모든 일에 만족하고 부족이 없으면 하지만 아직 모자란 내 한계는 분명하다. 남들에게는 보이는 것을 난 못 본 것 같고 다른 이들은 듣는 것을 나는 듣지 못한 것이 아닌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난 내 존재감을 방치하듯 나에게 인색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철저하게 자신을 무시하지 안 했나? 내 가족, 내 친한 지인에게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또 어설픈 관용은 얼마나 나를 기만했었던가? 나 홀로 고상했고 나 혼자서 격에 맞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는 안 했나?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면서 스스로 나를 다스린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도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다른 이와 이해관계에 있을 때 얼른 나를 돌아 보게 하는 일을 종종 저지르고 만다. '사람인지라' 하는 변명은 안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 이 낡은 모자람은 좀 더 가치 있는 정신세계로 언제나 들어서려나? 또 되씹어 보고 다시 다짐해 본다. 자신이 없는 공허함은 제발 이제는 멀리하고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겸손한 중용만 지켰으면 한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이고, 그저 '옴마니반매훔'이다.
혼자서 하는 짐 정리는 틈틈이 놀며 쉬며 닷새 정도에 대충 마무리되고 이젠 오후 한때 고독을 느끼기도 하며, 가끔 한 눈을 팔 정도로 여유도 생겨 근처 여기저기 훑어보기도 했다. 저수지 제방 공사는 높이를 더 높여야 하고 저수량도 오랜 가뭄으로 저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 길 정도의 얕은 물속에는 토종 어인 붕어는 거의 사라지고 외래종인 블루길, 베스 등이 호수를 점령하고 있다 한다. 수면 위로는 을씨년스러운 제방 취수탑, 둥그런 시멘트 구조물이 덩그러니 나 홀로다. 호수 건너 몇 호 안되는 작은 마을은 취수탑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다. 여러 정물을 적당히 뒤섞어 놓은 듯 마법 같은 묘한 연결이다. 저 건너 탐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하궁 마을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는 산책하기에는 그만인 한가로운 길이다. 길 옆 숲에는 미국 참나무가 울창하고, 파란 하늘과 녹색의 들판은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것과 함께 내 마음은 이 찬란한 초여름에 취해 기쁨을 느끼며 마냥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것,
세상사에 어울리고 휩쓸리어 단순히 좋은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으며 살고 있다는 것은 조건 없는 평범하고도 막연한 행복의 느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행복의 정의에 무겁게 얽매여 틀과 기존 질서에 갇힌 듯 참 행복(단순한)을 느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일탈하여 행복 정의의 모순(?)을 깨버리는 단순한 행동과 인식이 필요하다. 행복은 절대 풍요로움이 아니고 행복은 절대 위엄 있는 사교도 아니다. 행복은 남이 거저 주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선함 속에서 함께하는 모든 것의 사랑 속에서 스스로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찾으면 금방 가까이에서 나에게로 분명 다가온다.
낼모레 밤이면 보름달이 뜰 것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밝은 달이 구름 사이로 흐른다. 꽉 찬 보름달은 아니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산속의 밤을 황홀로 쏟아 놓는다. 달이 뜨기 전 윤곽조차 구별 못 했던 풍경들이 쏟아지는 달빛에 정리 정돈이 된 듯 산과 들, 집들은 제자리에 놓여 있다. 이럴 때는 시린 고독이 더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월광 소나타는 내 맘을 후비고 저 멀리 가느다란 소쩍새 울음소리는 달콤한 무료함에 빠지게 한다. 마음의 안위를 가지려 진정한 삶의 더께가 않고 잘 익은 정을 찾아 여기까지 흘러온 나! 엄습해오는 아림이 내가 거역할 수 없는 만큼 다가와 이 한밤 다시 추레해지는 기분이다. 한낱 감상이지만 단박에 스며드는 고독이 응어리져 더욱 아려온다. 그래, 지금 이 기분 그냥 이대로 느껴보자. 7월의 한밤의 미풍은 더위도 잠재우고 아늑하고 평화로이 덥지 않게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하며 잔잔하고 기분 좋게 내게로 불어온다.
2014.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