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증(證)을 논(論)하다
곽란(霍亂) 일증(一證)은 상토(上吐) 하사(下瀉)를 반복(反覆)하므로 불녕(不寧)하고 휘곽요란(揮霍撩亂: 제멋대로 요란하다)하므로 곽란(霍亂)이라 한다. 이는 한사(寒邪)가 장(臟)을 상(傷)한 병(病)이다.
외(外)로 풍한(風寒)을 받으므로 한기(寒氣)가 장(臟)에 들어가 병(病)이 되거나, 구복(口腹)을 삼가지 못하여 식음(食飮)에 내상(內傷)하여 병(病)이 되거나, 기(飢)에 상(傷)하였다가 포(飽)에 실(失)하는 곧 기(飢)할 때 위기(胃氣)가 이미 상(傷)하였는데 또 과(過)하게 포식(飽食)하여 불화(不化)하므로 병(病)이 되거나, 수토(水土)의 기령(氣令)에 한습(寒濕)으로 비(脾)를 상(傷)하여 병(病)이 되거나, 가뭄 끝에 장마(:旱潦)나 폭우(暴雨)로 청탁(淸濁)이 서로 혼(混)하여 사기(沙氣) 음독(陰毒)에 잘못 중(中)하므로 병(病)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모두 한습(寒濕)이 비(脾)를 상(傷)한 증(證)이다.
사기(邪)가 비위(脾胃)에 있으면 중초(中焦)가 받지 못하므로 상(上)으로 나오니 토(吐)가 되고 하(下)로 나오니 사(瀉)가 된다.
'사기(邪)를 쉽게 받다.'는 것은 반드시 그 비기(脾氣)가 본래 유(柔: 허약하다)하다는 것이고 '토(吐)하고 사(瀉)한다'는 것은 비기(脾氣)가 더 이상 허(虛)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곽란(霍亂)을 치료(治)하려면 반드시 마땅히 화위(和胃) 건비(健脾)를 위주로 하여야 한다. 건(健)이란 배보(培補)를 말하니, 그 사기(邪氣)가 이미 거(去)하여도 위기(胃氣)가 상(傷)을 받았으므로 배보(培補)가 아니면 안 된다. 화(和)란 조화(調和)를 말하니, 위기(胃氣)가 비록 상(傷)하였지만 사기(邪)가 미진(未盡)한 것이므로 그 사정(邪正)을 살피고 참작하여 조화(調和)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한(寒)은 적고 체(滯)가 많다면 단지 온평(溫平)한 방제(劑)로 조(調)하여야 한다.
만약 체(滯)가 한(寒)으로 인하면 온열(溫熱)의 방제(劑)가 아니면 조(調)할 수 없다.
제가(諸家)에서 화(火)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곽란(霍亂)의 병(病)은 대부분 하추(夏秋)의 사이에 있으니 어찌 상한(傷寒)으로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다. 아! 그 잘못(謬)이 또한 심(甚)하도다! 이는 하(夏) 추(秋)가 교체(交)할 시에는 장(臟)이 한(寒)한 병(病)이 많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는 성서(盛暑)가 살(殺: 감소하다)하려 하고 신량(新凉)이 처음 기(起)하므로 천인(天人)의 기(氣)가 바뀌어(:易) 한(寒)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혹서(酷暑)의 시령(:令)을 맞아 생랭(生冷)한 음식을 부절(不節)하니, 질병(疾病)이 시한(時寒)으로 인하여 동(動)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추(夏秋)의 외열(外熱)은 쉽게 알지만 장부(臟腑)의 내한(內寒)은 알기 어려우니라. 따라서 열(熱)에 쓸 때 열(熱)을 멀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한(寒)에 쓸 때 한(寒)을 멀리하여야 한다는 것은 잘 모르느니라. 소견(:見)이 천루(淺陋: 얕고 좁다)하여 이와 같은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대부분 잘못하게 된다. 배우는 자는 당연히 이를 깊이 살펴야 한다.
一. 전근(轉筋)의 곽란증(霍亂證)은 그 족(足)과 복(腹)의 근육(筋)이 구련(拘攣) 급통(急痛)하고, 심지어는 음환(陰丸)이 견축(牽縮: 당기고 쪼그라들다)하며 그 통(痛)이 소복(小腹)으로까지 박(迫: 다그치다)하니, 가장 급(急)한 증후(候)이다. 이는 족양명(足陽明) 족궐음(足厥陰)의 기혈(氣血)이 모두 상(傷)한 증후(候)이다.
하간(河間)이 이른 것을 보건대 "전근(轉筋)은 경(經)에서 말하는 반려(反戾: 뒤집히고 어그러지다)이다. 열기(熱氣)가 근(筋)을 조삭(燥爍)하게 하니 연계(攣瘛: 경련)하면서 통(痛)하니, 화(火)는 번삭(燔爍)과 조동(燥動)을 주(主)하는 까닭이다. 혹자(或者)가 '한(寒)이 근(筋)에 객(客)한 것이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寒)은 비록 수인(收引)을 주(主)하지만 단지 궐역(厥逆)이나 금고(禁固)나 불편(不便)한 굴신이 될 뿐이지, 어찌 전근(轉筋)이 되겠는가? 전(轉)이라 말하는 것은 동(動)이다. 양(陽)은 동(動)이고 음(陰)은 정(靜)이니, 열증(熱證)임이 분명(明)하다." 하였다. 단계(丹溪)도 이르기를 "전근(轉筋)은 혈열(血熱)에 속(屬)한다." 하였다.
내가 말한다.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見)에 속(屬)하니, 그를 따르면 안 된다.
잠시 내경([內經])으로 바로 질책(質)하여 보자면 '경근(經筋)의 병(病)은 한(寒)하면 반절(反折) 근급(筋急)하고 열(熱)하면 근(筋)이 이종(弛縱) 불수(不收)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전근(轉筋)은 반절(反折) 근급(筋急)의 병(病)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데 어째서 열(熱)이라고 말하는가?
전(轉)이라고 말하는 것은 견강(堅强)하게 급통(急痛)하여 마치 비틀리는(:扭轉) 듯한 모양(:狀)이므로 전근(轉筋)이라 말하였다. 요즘 서북방(西北方)에서는 전(轉)이라는 글자를 거성(去聲: zhuàn)으로 발음하니, 곧 회전하다는 의미(:義)이다. 그런데 하간(河間)은 '전(轉)이란 동(動)이다.'고 하였으니, 이것도 억지(:强)가 아니겠는가?
또 전근(轉筋)을 앓으면 반드시 대토(大吐) 대사(大瀉)한 뒤에 이 증(證)이 있는데, 토(吐) 사(瀉)의 앞에 먼저 전근(轉筋)이 나타난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만약 토(吐) 사(瀉)하기 전에 전근(轉)하면서 화(火)라고 말한다면 화(火)로 인하여 병(病)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토(吐) 사(瀉)한 뒤에 전근(轉)하니 이는 상하(上下)로 모두 이미 화(火)가 거(去)하였는데 어찌 토(吐) 사(瀉)로 인하여 도리어 화(火)가 생기겠는가? 또 토(吐) 사(瀉) 전에는 화(火)가 어째서 전근(轉)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하간(河間)은 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양명(陽明)은 오장육부(五臟六腑)의 해(海)이니, 종근(宗筋)의 윤(潤)을 주(主)한다. 이 증(證)은 양명(陽明)의 혈기(血氣)가 갑자기(:驟) 손(損)하므로 근(筋)이 급(急)하므로 그런 것이지, 본래 화(火)는 아니다.
진무택(陳無擇)의 말을 보건대, '전근(轉筋)은 양명(陽明)이 종근(宗筋)을 양(養)하기 때문인데, 양명은 위(胃)와 대장(大腸)에 속(屬)한다. 지금 갑작스런 토(吐) 하(吐)로 진액(津液)이 갑자기 망(亡)하고, 사기(四氣)를 외감(外感)하고 칠정(七情)에 내상(內傷)하므로 제맥(諸脈)을 공폐(攻閉)하여 근(筋)을 고삭(枯削)케 하니, 종근(宗筋)이 양(養)을 실(失)하므로 반드시 연축(攣縮)에 이르게 된다. 심(甚)하여 난축(卵縮) 설권(舌卷)하면 난치(難治)가 된다.' 하였다. 이 설(說)이 정말 합당(:切當)한 것이다.
만약 하간(河間)을 따라서 화(火)로 보고 치료(治)한다면 잘못(:誤)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따라서 '그를 따르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一. 하추(夏秋)에 신량(新凉)으로 교대(:交)하거나 질풍(疾風) 폭우(暴雨)이거나 사한(乍寒) 사난(乍煖)할 때에는 모두 음양(陰陽)이 상박(相駁)하는 시기(:時)이다. 양생(養生)을 잘하려면 이 시기(時)에 매우 삼가야 한다. 외(外)로 의피(衣被), 내(內)로는 구복(口腹)을 마땅히 증(增)하여야 하면 증(增)하고 마땅히 절(節)하여야 하면 절(節)하여야 하니, 대략(略)이라도 주의(意)만 하면 질병(疾)을 물리치는(:却) 것 또한 어렵지 않다. 만약 조금이라도 부조(不調)함이 있는데 약간의 한(寒)이 침입(侵)하면 곽란(霍亂) 토사(吐瀉) 교장(攪腸) 복통(腹痛) 학리(瘧痢)의 종류(類)가 되어 경각(頃刻)에 이를 수 있으니, 이처럼 소홀(忽)함이 미(微)하여도 그 해(害)는 대(大)한다.
또 사람마다 고량(高粱)과 여곽(藜藿)이 부동(不同)하고 박약(薄弱)과 강장(强壯)이 서로 너무 다르니라(:逈異). 강(强)하여도 강(强)을 과신(:恃)하면 안 되니, 만약 약(弱)하게 되면 이를 돌이켜 약(弱)함을 벗어날(:忘)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아끼려면(:珍) 이를 소홀(忽)히 여기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