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불능의 강산에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념과 시장경제로의 선택이 없었다면 사회주의로 가고 말았을 아찔한 순간이었던 지난 역사의 이념 선택은 세계 10위권으로 발돋움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지금도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란 논리에 충격을 받는다. 개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학생들에게 설파함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점령군이란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는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군대’ 라고 정의하고 있다. 해방군은 어떤 군대일까? 사전 적의 의미로는 ‘속박되거나 가두어졌던 것을 풀어서 자유롭게 해 주는 군대’ 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해석하자면 미국은 솔직한 발표이고 소련은 가식적 발표였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해방 전후로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려보자 1945년 2차대전 말엽 독일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했지만, 일본만은 패전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자살 특공대를 동원하여 저항했다. 일본군의 저항에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내고있는 미국은 소련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소련은 가담하지 않았고 결국 일본의 ‘히로시마’ 와 ‘나가사끼’ 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전쟁에 승기를 잡자 소련은 일본의 쇠퇴를 감지하고 일본에 8월8일 전쟁선포를하고 만주에 주둔하고있는 일본군을 토벌하고 9일 웅기를 폭격, 경흥으로 진격하여 13일에는 청진으로 남하하여 38도선까지 소련군의 빠른 진주를 바라본 미국은 위협을 느껴 8월 13일 영국, 소련, 중국에 1호 명령을 전달 하였고 이것이 수락되자 8, 15일 일반명령 1호가 태평양지역 최고 사령부에 전달되어 맥아더 사령관은 9월 2일 일반명령을 선포 하였고 1945년 2월 얄타회담의 비 공식적 합의에따라 한반도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주둔하였다.
우리민족이 원하던 진정한 독립은 민족자주독립 국가의 염원, 어떤 세력도 간섭할 수 없는 주권 국가로써 국제 사회의 동등한 자격을 얻는 것, 국민 주권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하여 시민사회를 이룩하는 것, 시장경제를 통해 근대화를 이루는 것, 식민지 종속경제를 탈피하여 반 봉건적 지주 소작제를 철폐함으로써 농토를 농민에게 분배하고, 친일파 부일세력의 잔재를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었으나 이러한 우리의 과제는 해방을 스스로 쟁취하지못했고 해방 정국을 이끌 주도세력의 부재로 지금까지 친일척결과 통일문제가 미 해결의 숙제로 남고말았다.
그러므로 8, 15 해방이 우리 민족에게 던져진 의미는 세계사적으로 벌어진 이념 구조에 대한 이해로부터 다시금 조명해야 하며 해방의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뜻은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우선 주어진 해방론으로, 해방의 직접적 원인이 연합군이 일제를 패망시켰기에 해방이 주어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해방은 연합군이 우리에게 준 임시적 선물이며 국가 수립 과정에서 외세의 영향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며 국제적으로 규정된다는 결정론적 견해이며 해방 직후 대부분 우익 정치 세력과 박헌영이 주도한 조선 공산당도 인정한 입장이다. 현재 남한 당국이 수긍하고 있는 정설로 타율적 수동적 해방론을 뜻한다.
다음은 자율적 해방론이다 이 이론은 북한에서 등장한 해방론으로 한민족의 해방은 싸워서 쟁취한 해방으로 규정하며 싸움의 주체를 항일 무장 투쟁으로 본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후 북한 학계는 김일성이 소련군의 일원으로 해방 전투에 참여했다는 쟁취 적 해방이라 믿는다. 이 이론의 취약점은 이와 관련한 북한 학계의 주장이 시기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며 객관적 사실을 너무 무시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 복합적 외세론이다. 이 이론은 해방의 자율적 기여론 또는 해방 준비론으로 불린다. 이것은 내세론과 외세론을 상호 결합한 이론이다.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지속하였던 독립운동이 해방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해방에 대해 일정한 이바지를 했다고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연합군의 기여까지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해방의 주연은 연합국의 승리였지만 한민족 스스로 전개한 독립투쟁도 부차적이긴 하지만 해방을 성취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간주한다. 이 이론은 남한 내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객관적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려는 외국의 학자들이 취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논의와 달리 8, 15이후 전개된 남한의 역사에 대한 평가에 따라 해방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다.
주어진 해방론이나 복합적 외세론은 1945년 8, 15일 해방을 일단 일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이론들은 외세에 의해 해방이 주어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이 수립되어 광복을 이룩했으며 자주적으로 한국 사회가 발전되고 있으므로 8, 15 해방은 본질적 해방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입장은 남한 내의 전통적인 보수적 시각을 반영한다.
이와는 달리 수정주의자들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진정한 해방은 통일된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외세의 개입으로 통일과 자주화가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방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본다. 그들의 입장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의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음은 인정하지만, 통일국가의 수립이 좌절되었음이 외세에 의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리하여 1945년의 해방을 분단시대의 기점으로 불완전한 해방으로 보는 견해이다. 또 다른 이론은 현재의 남한은 자주성이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부정된 해방론으로 남한의 정치 상황은 지배자만 교체 되었을 뿐 1945년 이후에도 외세의 종속성은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다고 본다.
해방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던 1945년 8, 15일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한민족은 새로운 삶을 실현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서 벗어났으며 매판 자본가의 착취에 더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해방은 전 근대적인 제도를 척결하는 반봉건적 혁명을 의미했고 나아가 일제 잔재의 소탕과 친일파의 처단을 의미했으며 제국주의의 침략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장애가 이러한 꿈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해방) (신편 한국사) (우리역사넷)
중국, 소련의 사회주의를 택한 북쪽의 공산 진영에서는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했으며, 모든 토지를 국가 소유로 몰수해 버렸고 남한에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지주들의 땅을 정부에서 수매하여 소작 농민에게 유상 불하해 농민들의 소작료 부담을 없애 주는 등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전환으로 오늘에 부를 이룩하였다.
미국의 일반명령 1호에 점령군이란 단어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소련도 만주와 이북에 잔존하고 있는 일본군을 척결 하는데는 미국과 같은 점령군임에는 같았으나 미국의 일반명령 1호에 점령군이란 표현은 일본, 중국, 소련에 대한 확실한 경고의 뜻이 포함된 단어를 문제삼고 있음이고, 소련의 해방군이란 달콤한 단어 속에는 일본으로부터 모든 압제와 핍박에서 한민족을 해방시키고 제국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회귀로 만들려는 검은 속셈은 감추고 해방이란 단어로 미화시켰음이 타당하다 사료된다.
그들은 남, 북 양쪽에서 자국의 체제와 이념을 실현할 자기네 편의 말을 잘 듣는 자를 지도자로 앉혔고 스탈린의 정부 수립 후로 남침을 감행했던 패악은 공개된 스탈린 외교문서에 기록됨을 보면서 진정한 해방군이라면 우리 민족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민족자주의 발판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모두 자국 이념의 틀 속에서 우리민족을 재단했으니 과연 소련의 해방군이란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남, 북 양쪽 모두 능력자가 없었기에 일본 시절에 정치와 행정에 숙달된 부역자들도 기용함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고 북한 정권 역시 일제 잔재를 청산했다고 선전은 하고 있지만, 청산을 증명할 근거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어떻든 외세에 의한 일본에서의 해방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과, 남, 북의 이념대립으로 사분오열된 국민의 갈라짐으로 통일의 염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느 쪽의 잘못이 아닌 양쪽 모두가 책임에서 면할 수 없을진대 70년이 넘은 세월 속에서도 편향된 논쟁만 해야 하는지 과거에만 매달리다 보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처럼 각각 다른 이념 속에서 통일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 이념의 다툼은 또 다른 혼란만 가중시키는 통일보다 남, 북의 이념과 정치가 배제된 사학가들의 객관적인 역사의식으로 논쟁을 종결지어 하나 된 국민의식으로의 발전된 통일을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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