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그곳에 가고 싶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윤
몇 달 전,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밤늦게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지만 그 날은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을 켜자마자 화면엔 눈에 익은 장면들이 보였다. 바로 군산의 모습이었다. 텔레비전에서 군산에 대해 다큐멘터리로 만든 방송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내겐 군산 이란 도시는 참 이상하다. 아기가 상처 난 부위를 보기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으로 자꾸 보는 그런 기분이랄까. 왠지 마음이 아득해지는 것 같아 채널을 바꾸려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계속 보고 있었다. 난 군산에서 사는 3년 동안 집안에만 갇혀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의외로 군산의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군산이 그리 큰 도시도 아니고, 우스갯소리로 어디에서 길을 잃든지 앞만 보고 쭉 걸어가면 집이 나온다고 군산 토박이 미용실 아줌마가 말할 정도의 규모라 거의 돌아다녔던 모양이다.
군산에서 지낸 3년 동안, 남편은 주말을 모두 내게 할애했다. 늘 여행을 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잠깐이라도 군산 나들이를 갔다. 남편은 음식이란 사랑의 표현이며 따뜻한 위로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늘 일에 쫓기느라 평소엔 잘 못 챙긴다는 미안한 마음에서 나를 데리고 군산에 있는 음식점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땐 잘 먹지 않아서 돈이 아까울 정도였지만 남편은 굴하지 않고 맛집탐방을 계속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군산의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나 보다.
화면에 해망동 시장이 보였다. 해망동 시장은 남편과 조개를 사려고 자주 갔었다. 그곳은 비릿한 바다냄새가 풍겼지만 바다라 하기에는 왠지 좁아 보였다. 그래도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고기를 낚는 어선들이 많이 정박해 있었다. 난 겨울에 그곳에 가면 바람이 너무 강해 갈매기가 날지 않고 떠다닌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 남편의 단골집에서 조개며 대하를 사기도 하고 회를 뜨기도 했었다. 난 요리할 줄도 모르면서 조개를 사서 삶아 먹기도 하고, 국물을 내서 먹기도 했었다. 당시, 난 내가 만든 요리라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꽤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또 새벽시장에 가서 껍질을 까지 않은 굴을 사오기도 했다. 그 작업은 힘이 들어서 껍질을 까는 수고를 평생 다시 하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굴은 참 맛있었다. 해망동시장 근처에는 조선은행이며 옛 군산세관 같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은 인적도 드물고 쓸쓸한 동네다. 그러나 그곳에 가 보면 왠지 전생에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나 싶은 아련한 향수를 느꼈다.
그리고 비응항도 화면에 나왔다. 별안간 낚시를 하겠다며 남편이 비응항 근처에서 낚싯대와 지렁이를 샀던 기억이 났다. 무척 더웠던 어느 여름날, 남편이 퇴근한 뒤 함께 비응항에 가서 낚시를 했다. 그러나 고기는 낚이지 않고 이상한 물체만 걸려들었다. 비록 허탕을 쳤으나 밤낚시를 하러 나가는 수십 척의 배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곳에 간 김에 풍력발전소에 가서 커다란 풍력발전기를 구경했다. 그곳은 여름에 가면 특히 좋았다.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머리 위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천국행일 것이다. 그러나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 아래서 눈을 감고 날개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묘해서 자주 서 있곤 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월명동이 보인다. 월명공원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땀이 흠뻑 났다. 올라 갈 때는 힘드나 내려 올 때는 맘이 개운했다. 월명공원에 오르다 보면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무대가 된 군산 앞바다가 보인다. 일제 시대 우리나라 쌀을 약탈해가기 위해 일본 사람들의 배가 밤에 들어왔는데 그 밤바다 풍경이 장관이었다 한다. 난 그곳에 서서 그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월명동 그곳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일본식 집들이 많다. 일본인의 만행은 싫으나 그 집 모습은 왠지 맘에 든다. 훗날 작가가 되면 월명동의 일본식 집에서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등반을 하고 내려오면 이성당이라는 전통 있는 빵집에서 빵을 먹기도 했었다.
정든 곳을 떠나, 아는 이들이 없고, 날씨가 좋지 않아 난 그곳에 살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군산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곳을 그리워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했던 옛 연인에 대한 감정이 이런 게 아닐까. 증오하면서도 가끔 아련한 추억으로 찾아오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좋아하던 레스토랑 화이트 뮤즈의 ‘레아 살롱가’를 닮은 그 여가수는 아직도 노래를 할까? 맘이 답답할 때 무작정 나가기도 했고, 오랜만에 군산 집에 놀러온 가족들과 또 남편과 함께 산책했던 은파유원지는 그대로일까? 내가 살던 아파트는 색을 다시 칠했다는데 그 모습이 어떨까? 군산의 그 횟집은 아직도 밑반찬이 많이 나올까? 비응항의 풍력발전기의 날개 돌아가는 소리는 아직도 웅장할까? 군산은 지금 빠르게 발전 중이라 아마도 1년 동안에 많이 변했을 것이다.
언젠가 난 군산에 갈 것이다. 그곳에 남아있을 내 추억의 발자취를 찾을 생각을 하면 맘이 설레기도 한다. 아직도 난 군산에 다시 가서 살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곳으로 기억될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왠지 군산, 그곳에 가고 싶다.
(201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