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영에 대한 추억 "
의성 탑리에서 안동으로 유학와서 용상동 산밑의 외집 (나는 그옆집) 에서 자취하면서, 도시락 반찬으론 늘 다마내기와 고추장만
싸와서 딴 놈 반찬 다 빼앗아 먹던 그 놈. 넉살도 좋고 노여움도
탈 줄 모르고 낯가죽도 꽤나 두꺼웠었지...
체육복, 교련복 안가져와 빌릴라 치면, 먼저 바지벗고 팬티만 입은
채 옆반으로 달려가서 빌리던 그 친구. 상체 알통 꽤나 자랑하고 늘
철봉,평행봉 애용하던 그 친구. 아마 울릉도의 "이탁"이나 포항의
"정중기"는 잘 알테지. 한 집에서 자취했던걸로 기억난다.
그 이름 " 이준영 "
내가 이 친구를 왜 꺼내놓는냐 하면, 대단히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건 학창때나 사회에서나 변함이 없었으나, 무척이나 <情> 많고
의리 있는 놈이라고 추억한다. 고3 학창시절 같은 반 되어서도
옆자리 근처에 자리하지 않거나, 뭐 별다른 인연없으면 말 한마디
하지않고도 졸업하고, 그 후에도 일생 한 번 만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준영이는 내가 군 생활때 같은부대에 근무하면서 내가
신세(?)를 많이진 에피소드를 소개 하고자 한다.
그때가...
76년 후반기 교육(군의학교)을 마치고 돌팔이 주특기를 안동36사
울진연대(107연대)로 전입, 대기병 때 사역병으로 어느 사무실에
갔더니만 가죽잠바에 포마드 기름을 듬뿍 묻힌 올빽의 신사가
나타나며 대뜸 하는 말 " 야! 너, 창수 아이가? " 하더라
난 그곳이 보안대 인 줄도 모르고 얼떨떨 한데 다짜고짜 인솔한
인사계 상사(50대)를 쪼인트 한 대 날리며
" 이새끼야! 누가 내 친구를 사역병으로 데리고 오랬어 앙? " 하며
호통을 치니, 그 상사 그자리에서 난감해 하는 모습보다가, 내가
얼마나 황당하고 무안하던지...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준영이 자기 딴에는 친구를 보니 반갑고 좋아사서 그랬다고 나중에 얘기를 하더라만, 그 때 그상사 날 째려보면 하는 말...
" 내가 쫄다구 친구가 보안대 부관인 줄 어떻게 아냐고! 박 이병
너 이시키 골치 아픈 놈! " 이라는 말을 듣고 심상치 않음을 예감
했다. 나중에 보니 고등학교 졸업전에 보안 하사관 지원하여 그 때
벌써 중사로 파견대(울진공사) 부책임자로 있었는데, 그 당시 보안대 파워에다가, 원래 거친 성품이라 부대 뿐 아니라 울진관내에 그
명성(?)이 자자했었지...
그 때 의 만남으로 나는 그놈이 근무하는 기간 내내 가슴 쪼리고
눈치 보면서 생활했었다. (사실 내가 집이 영양이고 근무지가 울진이라 아는 사람도 많았다) 준영이 지는 동무를 위한다고 연대장.
대대장 들에게 쫄병인 날 데리고 가서는 " 내 안고동기 " 라고 하면서 잘 봐주라고... 그렇지 않으면 재미 없을거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얘기인가? 내가 소속 된 의무중대에 와서는 중대 전원에게 " 내 친구 손대면 죽이뿐다고 하고, 고참들 에게 전입신고 받으모 영창보내뿐다! " 고 했으니, 그것 때문에 무려 약 1개월을 전입신고 대기 상태로 지내다가 준영이 보다 더 빽 쎈 고참에게 죽도록 뚜드려 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함께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안고 21기 김영일 대위님, 22기
강성호 중위님도 "이준영 중사" 하모 고개를 내 질렀었지...
준영이 딴에는 동무라고 자기 방식으로 나에 대한 우정을 표현한다고 한 건데, 난 참 애럽꼬 억쑤로 힘이들었었어...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만약, 준영이 위치였다면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벌써 엊그제 같은 일인데 30여년이 흐른 지금에 생각하면 준영이
직업군인 생활도 파란이 많았다고 들었다만, 어찌됐건 그 때의
준영이의 행동에 진한우정과 마음깊은 우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그 친구 " 이준영 중사 " 로써 또 " 중년의 이준영 " 이가 마뉘마뉘 보고 싶구나...
문득 친구 생각에 솜씨없는 글 올린다꼬 죽껐따. 또 읽는 여러분들도 더 죽껐찌 ㅎㅎㅎ
탁이나 중기가 혹시 준영이 소식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
연락처 알모 후딱 쫌 올리주소!!!
준영아~~어디에서 뭘 하더라도 늘 건강하고, 23기 문디들에게
연락쫌하고 (졸업앨범에는 없다)...
어렵고 힘든 시절 울진 성류굴 앞 근남 연대에서의 푸른제복의
푸른추억을 깊이 간직하면서.....
다음에 만나모 내 쏘주 한 잔 진하게 사꾸마~~
- 박 창 수 -
첫댓글 근데 창수야 준영이란 놈이 어떤 놈이야. 그 새끼 억수로 웃긴다. 이글을 쓰면서도 웃고 있다. ㄲㄲㄲㄲㄲ 그런데 그런 놈이 의리있고 좋은 놈이래.....
준영이가 2학년때 4반이였는데 한반이였던것 같다 의성아들 왜 많이 있었는데 나이도 탁이보다 많았고 꼴통 짓도 꽤 하고 괴짜 기질이 있었지 혹시 근황을 알거나 기억있으마 한자씩 부탁한다 송화는 영 기억이 없는 모양이군 하긴 앨범에도 없으니 말이야
준영이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봐준 건가. 인간의 의리상으로는 그래야 하고, 국가조직으로서는 뭐가 좀 기강이 없다. 그러기에 인생살이가 묘한 것이다.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예를 들자면 많다. 그 서슬 퍼렀던 보안대는 요즈음 어디 있는지.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개인적으로는 불편해지는게 선진국이다. 몇년 전 부시정부 출범 초기 백악관 대변인 하던 대머리 노총각이 장가가서 가족에 충실하기 위해 대변인 직을 사임한 기억이 난다. 이름이 뭐더라. 그런가 하면,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공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파워는 강해진다. 이건 선진국도 마찬가지.
좀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생각은 여러가지이다. 이게 이중 잣대라는 거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의리, 남이 하면 비리....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잘해준 사람이라면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의리는 있다고 한다.
난 또 샌님 같은 발언을 하고 말았네.
황판사님 난 준영이의 방식에 어떤 논리 보다 그냥 순수하고 단순한 면만 봐 주길 바란다 그땐 지휘관. 부대장 정기 근황보고서에 잘못올라가면 진급누락되던 시절이라 대단히 끝발 부릴때였지
창수! 친구 준영이에 대한 추억이구나. 사회에 나오고 아직 만난적이 없다. 아마 울릉도의 탁이는 알고 있을 것 같다. 탁이하고 고향이 의성 가음면 같은 동네이거던. 용상동 산기슭 붉은 기와집에서 자치생활 할 때가 생각나는구먼. 자네는 그 집 바로 아래집에서 하숙을 했고 ...
좋은 친구 좋은 인생! 여기 들어오면 나가기 싫은 이유를 아는사람 손들어라
중기야 이제 완쾌 되었겠지? 기억하는구나 맞아 처음엔 1년 자취하다가 하숙했지 그기와집 딸이 안동여고를 다녔지. 아! 먼옜날얘기....
보안대 류동식이 인는데 물으면 되겠구먼. 동식이하고 연락하거나,텔 아는 친구는 꼭연락해주라. 이렇게 무심하냐...
난 전혀 기억이 없다. 난 보결로 안고에 들어갔는 갑다.
창수야, 대구 떠나고는 대구 잊어버렸나. 준영이 친구가 보안대 근무했구나. 군에서 친구 만나면 반갑제. 반가워하지 않는 녀석들도 있지만.
교현아 연락못해 미안 대구있을때가 그립다 다들 잘있겠지? 자네 글 보면서 늘 생각했다 대구 한번 가꾸마
엉뚱하기로 말하자면 나오라 할만큼 괴짜였던 준영이 기억이 나지만 나도 그의 근황을 모르니..하여튼 웃기는 친구였지..뭔가 특이한데가 있어야 오래 기억에 남는데 말이야..
나도 준영이가 문득 궁금해서 부산 친구들 한테도 며칠 전에 모였을 때 물어 보았더니 아무도 모르는구나. 탁이가 들어와서 답을 해 주어야 하겠지만 역시 잘은 모르고 부인이 어떤 일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만 듣고는 지금껏 소식을 모른다고 하더라. 앞에 나가서 웃기기도 잘하고 재미있는 친구인데, 보고싶다
좋은추억이구나.... 야들아~~ 반창회떄 동학사에서 창수를 만났는데 서울총무맡아 홈커밍 대회행사때문에 고생많았다며 양주 한셋트를 하사하시길래 아껴먹고있다... 먹고싶으면 전화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