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만났던 천경자 화백의 그림 몇 점은 감동보다 갈증만 더하게 하는 아쉬운 만남이었다.
그런데 다행이 고흥 분청문화 박물관에서 12월 31일까지 탄생 100주년 기념 천경자 화백 특별전이 열리고 있단다.
그럼 당연히 달려 가야지
오랜만에 고흥을 향하여 출발~
들어서는 초입에 '길위의 갤러리' 라는 이름으로 도자기들이 띄엄띄엄 전시되어 있다.
걸어서 간다면 보고 가는 재미가 쏠쏠하겠구나.
입장료를 낼랬더니 천경자 화백의 대형 걸개를 가리키며 이 분 덕에 무료란다.
엥?
입장료가 더해질 줄 알았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입장.
1층 상설 전시실부터 둘러 본다.
먼저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고흥의 역사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문화실이 보인다.
비파형 동검을 출토한 운대 고인돌, 가지무늬 토기가 발굴된 한천 고인돌 등의 모형과 지배 세력이 입었을 철갑옷, 금동신발, 금동관의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분청사기실에는 고흥 운대리 일대 가마터에서 발굴된 분청사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나 '덤벙분청사기' 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백토물에 덤벙 담가 꺼내는 방법으로 그릇의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이란다.
도자기 발굴과 쪼개진 자기를 복원해 보는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을 듯하다.
유초등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설화문학실도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 천경자 화백의 특별전을 만난다.
왜 분청문화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리는 걸까 궁금했는데 천경자 화백의 고향이 고흥이다.
특별전은 《찬란한 전설 천경자》라는 타이틀로 7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시절 본 화사한 <길례언니>의 모습을 시작으로 대통령 상을 받은 '정'을 감상할 수 있는 <청춘의 문>
동양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시기 <꿈과 바람>
세계 여행에 나서며 파리에 정착했던 <파리 시절>
각종 출판물과 다수의 수필집을 볼 수 있는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늘 화첩을 들고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렸던, 그림이 종교였던 <자유로운 여자>
치열한 창작 정신으로 70여년의 세월 그림을 그렸던 <찬란한 전설>
이 주제들 속에 화백의 다양한 그림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건 여인들의 모습이다.
수줍은 듯 보이나 강렬한 눈빛을 지닌 여인들.
꽃과 나비를 머리에 얹거나 모자를 쓴 화사한
여인들의 모습에서 천경자 화백을 마주하는 것 같다.
유리상자 안의 35마리의 뱀들을 그린 '생태'
얽히고 섥혀 있는 뱀의 그림은 조금 느닷없고 당황스러웠다.
책자를 통해 보니 피난 당시 뱀의 형태를 들여다 보고 드로잉하며 밤마다 어떻게 구도를 잡을 것인가 구상했단다.
그렇게 여동생을 잃은 아픔과 배고픔, 슬픔,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고 한다.
아직도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은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생채기를 입으며 절필을 선언했던 천경자 화백.
굴곡진 삶의 터널을 지날 때마다 그림을 통해 극복하고 이겨낸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강인함과 화사함으로 거듭나고 있는 듯하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 <환상여행>으로 재해석한 이이남 작가의 작품도 특별했다.
특별전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작품들과 접하지 못한 작품들이 어우러져 화사한 꽃밭으로도 이끌고 많은 여인들을 만나면서 세계 곳곳으로 환상여행을 떠나는 듯했다.
편하게 앉은뱅이 소파에 누워 여유와 아늑함을 느끼며 누렸던 안온한 시간이었다.
PS.
특별전 작품은 촬영불가로 책자에 소개된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올림.
첫댓글 그림을 볼 줄도 모르고 감상할 줄도 모릅니다. 그냥 그림인가 보다 지나칠 뿐입니다.
그림을 보고 감동을 느낀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감동을 받는가 배우고 싶습니다.
화가 친구가 있습니다. 그에게 똑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이 그 분야 유명한 누군가가 한번 띄워주면 그 가치가 뛴다고 했습니다.
10년 전에 광주시 하남3지구 도시개발사업의 문화재 발굴 현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도자기 굽는 가마 터가 나왔습니다.
거기서 흙을 긁고 사진을 찍고 살피는 연구원과 잠깐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원이라 해봐야 완전 노가다나 다름없었습니다.
낮에는 현장에서 이렇게 일하고, 저녁에는 낮에 수집한 자료를 컴퓨터로 정리한다고 했습니다.
일하는 노임 단가가 참으로 낮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국사학과 취업의 문이 좁은 것도 그 때 알았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림을 보는 눈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선지 추상화나 요즘 현대 미술보다는 고전적인 그림들을 더 좋아해요.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스웨덴 뭉크미술관 방문때 고흐 특별전을 봤는데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때 제대로 된 감동을 맛본 거 같아요.
또다시 그런 감동을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답니다.
아직 그런 작품을 만나진 못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