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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 생일입니다. 21번째 생일 21년 전에 성인 10명과 소리가 너무 좀 울리죠. 21년 전에 성인 10명과 어린이 4명이 파리에서 5~60km 떨어진 물랭이라는 수양관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파리 시보구에 있는 엠베의 사무실, 미시옹 뽀빌레 에방젤릭이라고 하는 사무실을 빌려서 우리 예배를 시작을 했는데 벌써 21년이 지났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수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를 다녀갔습니다. 이런 일들과 이런 분들의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서 교회의 역사가 만들어졌고, 우리는 어느새 21살이라는 성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눈물의 기도와 수고의 땀으로 함께 섬겨주신 우리 모든 교우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함으로 7년을 수일같이 지냈다고 창세기 29장 2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 교회 21년 역사를 돌아보면 당장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이 있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너무나 빨리 이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사랑함으로 교회를 섬겨왔기 때문에 그런 것인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래는 과거처럼 주님을 더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함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행복한 신앙생활,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 같은 그런 신앙생활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저는 창립 주일마다 몇 가지 본문을 가지고 늘 묵상을 하면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은 그중에 하나 에베소서 말씀을 가지고 교회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회에 대한 신학, 교회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여러분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하늘 아버지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 어디 계셔요? 하늘 보자 아버지 우편에 지난주에는 우리 마음속에 계시다고 그랬는데 언젠가는 우리 교회 안에 함께 계신다고 그랬는데 이건 또 무슨 말씀이냐 이게 헷갈리면 안 됩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늘 해분이라고 하는 그 천상 천사들과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마지막 날에 그분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권한을 가지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십니다.
우리도 오늘 고백했어요. 사도신경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거기 계시다가 그분은 마지막 날에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세상은 끝나는 거예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는가 그 예수님과 어떻게 교제를 할 수 있는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본질이 말씀이셨고 말씀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그분이 지금 하늘 보좌에 계시는데 그분 말씀이신 그분을 우리가 지금 이 중간기에 만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록된 말씀 성경이죠. 선포되는 말씀 설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말씀 성만찬입니다.
이 3중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진정으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가셔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삼위일체 중에 한 분이신 성령님 그분이 예수라고 하는 이름으로 그가 내 이름으로 오시리라 그러셨어요. 그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이름을 가지고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몸을 성전 삼으시고 지금 함께 계시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성령 예수님께서 보내신 그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을 만나는 거예요. 성령과 교제하는 거예요.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시고 또 훈련시켰던 제자 사도들을 통해서 탄생시킨 주님의 영적 몸이에요.
주님의 영적인 몸 누구든지 교회에 오면 이 교회를 통해서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하나 되는 우리가 주님의 지체가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주님과 더불어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어요? 교회를 통해서 왜? 교회는 주님의 영적인 몸이기 때문에 교회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사회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래서 신령한 단체예요. 그냥 몇 사람이 모여가지고 우리끼리 교회하자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또 교회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워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 나 주님 사랑합니다. 물론 관념적으로 내 생각 느낌은 그럴 수 있겠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주님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저 하늘에 계신 분을 어떻게 사랑하느냐 이거 그 사랑이 현실로 나타나는 길은 주님의 영적인 몸이신 몸인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지체된 성도들을 사랑하고 이 교회를 더불어 이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거예요. 그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모한다면 교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교회를 아끼고 잘 섬겨야 돼요. 그걸 주님께서 나를 섬기는 거다 나를 사랑하는 거다 이렇게 인정하신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우리가 관념적으로 말로만 하는 것은 다 어떤 의미에서 허황된 거예요 말만 하는 거예요. 그냥 멘트만 날리는 거예요. 사랑은 구체적인 겁니다. 섬김은 구체적인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주님의 영적인 몸인 교회와 더불어 교회를 통해서 하는 것이죠.
요즘은 이 교회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신앙이 왜곡되곤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를 좀 쉽게 생각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또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리스도인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교회에서 시험 든 사람들 중에는 나는 교회는 싫어 나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예수도 사랑하고 나는 하나님도 믿고 예수도 믿지만 나는 교회는 안 믿어 이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맞는 말 같은데 진짜 틀린 말입니다. 교회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거예요. 오늘 우리가 또 고백했지 않습니까? 사도 신경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믿고 성자 하나님을 믿고 성령 하나님을 믿듯이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돼요. 근데 우리의 신앙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너무나 가볍습니다. 가볍기 기틀과 같아요. 주님께서 이 땅에 남겨놓으신 이것은 내 영적인 몸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나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우리가 믿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쉽게 생각하고 경멸히 여긴다면 또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 신앙의 왜곡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오늘 교회의 생일을 맞이하여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장깔뱅은 지상에 있는 가시적 교회, 제도적 교회는 우리의 영적 어머니라고 그랬어요. 영적 어머니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서 마치 엄마가 자녀를 낳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듯이 이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을 낳고 그리고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이는 양육 훈련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낳아놓으면 생명체지만 그 생명체가 그 사람이 존재가 사람 노릇을 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은 많은 돌봄과 훈련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가정에서 그 일을 엄마가 시작하는 것처럼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으로 세워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의지해야 합니다.
교회 나가면 뭐 하냐 교회에 나가면 좋은 일이 많아요. 우리에게 영적으로 꼭 필요한 일들이 다 교회에 있어요. 훈련받고 양육되고 성장하고 또 이웃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고 때로는 힘들죠 부딪히죠. 왜 안 맞으니까 부부 간에도 안 맞고, 여러분 형제가 한 배에서 나온 형제 간에도 안 맞아요. 어떻게 둘째와 첫째의 성질이 다른지 그런데 전혀 낯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러나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어디서 교회에서 그러니까 나는 예수 믿고 나 혼자 신앙생활 아주 고고하게 하겠다고 혼자 머무르면 성장이 없어요. 나중에 이상해져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의지하라는 거예요. 교회 안에 나를 위한 모든 요소가 있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고 공경해야 돼요. 우리가 부모님을 의지 어릴 때는 의지하지만 나이가 들면 철이 들면 철든 자식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공경합니다.
그냥 교회에 와서 내가 필요한 것만 누려서는 안 돼요.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의 그 헌신과 정말 CFC 찬양대 찬양팀 일부 2부 보면요. 얼마나 성도들이 헌신을 하는지 몰라요. 그렇지 않아 우리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c4c가 없다 그러면 예배 못 드립니다. 이걸 우리가 21년을 세팅을 했어요. 세팅하고 풀고 세팅하고 풀고 그런 헌신과 사랑이 필요한 거예요. 철든 후에 자식이 부모를 엄마를 공경하고 감사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느 때 때로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그 하나님의 영적 은혜를 충분히 느리고 기뻐할 때도 있지만 그러고 딱 따먹고 도망가버리면 안 돼요.
그다음에는 내가 헌신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에 오고 오는 세대가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거예요. 나만 은혜받고 말아버리면 그다음에 어떡하라는 거예요.
교회를 우리가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가시적 교회는 오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오류가 있어요. 오류가 없는 절대적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 초대교회 편지가 다 교회 문제 때문에 쓴 거예요. 문제 없는 교회는 안 씁니다. 다 문제 때문에 쓴 거예요.
교회 안에 들어와 보면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거룩하지 못한 요소들이 많았어요. 여긴 천사들만 모인 줄 알았더니 악마가 진짜 많은 걸 와서 보면 나는 또 너무너무 너무 시험들게 하는 사람이 많아요.
실제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만 이런 사람인 줄 알았더니 교회 안에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또 사기꾼들이 교회에 또 막 잠입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 집사 되고 장로 돼가지고 나중에 아예 교회 좀 믿으려고 한 사람을 막 쫓아낼 만큼 그럴 수 있어요.
교회는 그런 요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완벽하다. 완벽히 거룩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우리 시험 들어 왜 교회가 그러냐? 우리는 다 죄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너도 죄인, 나도 죄인 옆에 쳐다봐요. 다 죄인이었어. 지금도 죄인인지 몰라. 다만 예수님이 그 피로 너는 의롭다라고 칭했을 뿐이에요. 지금도 죄성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막 설교 들으면서도 막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쁜 생각 많이 하는 사람도 있어요.
지금 이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우리 속에 죄와 막 분노가 차고 넘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이 교회인데 어떻게 교회가 오류가 없겠습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어느 날 이렇게 어릴 때는요. 우리 엄마 아빠는 막 아빠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훌륭한 사람인 줄 알고 엄마는 정말 천사 같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깨어날 때가 있어요.
우리 아빠가 이상하네. 그럴 때가 있어요. 우리 아빠가 센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니네. 문제도 많네. 우리 엄마도 그러네. 이제부터는 엄마 아빠 아니다. 그럴 수는 없는 거예요. 엄마 아빠에게 그런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인 거예요. 우리가 섬기는 교회 안에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원치 않는 목사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교회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걸 잘 정리를 해야 돼요. 그러면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하는데 교회가 거룩한 게 없지 않느냐? 이 사람도 죄인이고 저 사람도 죄인이고 정말 시험 들어 못 살겠다. 내가 볼 때는 당신도 죄인이야.
교회가 거룩한 것은요. 우리 성도들의 도덕성 때문에 거룩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다 문제가 있어 교회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부족함을 다 덮었어요.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거룩하기에 교회가 거룩한 거예요.
여전히 우리는 문제가 계속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교회가 어쨌다 저쨌다 말하기 시작하면 다닐 교회가 없어요. 다닐 교회가 없습니다. 어디 가도 최소한 그런 사람은 있어요. 그래서 이 교회 가 보니까 어떤 교회는 저 교회보다 더 흉악한 사람이 있어 더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함. 교회의 온전함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있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면서 이 오류가 많은 그리고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그것을 서로 인정하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자기를 고쳐가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몸이다. 완전히 100% 온전한 몸은 아니라는 거예요.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온전할 뿐인 겁니다. 교회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22절에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교회에 머리로 세우셨어. 그리고 그 예수님은 만물의 머리로 먼저 세우셨어요. 그러니까 교회는 만물보다 위에 있고 그 위에 그리스도가 계신 거예요. 교회의 주인은 누구냐 주님이십니다. 머리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기관입니다.
마음도 머리에 있어요. 우리 동양 사람들은 마음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여기 있어요. 그러지만 여기는 그냥 느끼는 것뿐이에요. 모든 이 느낌 자체도 머리가 통제하는 거예요. 전두엽, 후두엽 여러 가지 나누잖아요. 그 안에서 모든 걸 통제합니다. 우리 생각 느낌, 감정까지도 예수님은 우리 몸 전체를 통제하시는 유일하신 주인이십니다. 파리 선한 교회 주님도 주인도 오직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머리의 통제에 100% 따릅니다. 이게 가끔 안 따라지기 시작하면 그건 병원 가야 돼는 울어라 그러는데 자꾸 웃음이 나와 그럼 병원 가야 되는 거예요. 지금 머리에서는 지금 웃어야 될 타임 으로 그렇게 지금 명령을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 우울증이야. 병원 가야 되는 거예요. 앞으로 가라고 그러는데 자꾸 옆으로 가 병원 가야 되는 거예요. 건강한 몸은 오직 머리로부터 통제를 받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병인입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는 없어요.
우리 교회에는 저를 비롯해서 교회 개척 멤버들이 있어요. 물론 처음부터 21년 동안 섬겨온 거 정말 귀한 일이고 또 어떤 분들은 누구보다 더 많이 헌신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럴지라도 우리는 주인 행세를 해서는 안 돼. 저를 포함해서 이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머리이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늘 묻고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로만 카톨릭 교회와 우리 개신교의 차이는 성직론에도 있어요. 로만 카톨릭 교회는 교황과 주교에게 주교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그 교황님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예요. 모든 전권을 가졌어요. 그리고 교회도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교회가 아니에요. 거기서 제일 중요한 건 주교가 있느냐는 거예요.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개신교의 교역 교역자로는 달라요. 하이아키가 아닙니다. 군주적 구조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밑에 담임 목사가 있고 그 밑에 부목사가 있고 장로가 있고 권사가 있고 이렇게 도표를 그릴 때는 우리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리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개신교 안에는 어떤 계급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고 자매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형제고 자매예요. 그러니까 저보고 원희웅 형제 그래도 괜찮아 사실은 오늘 이따 끝나고 해봐요. 원희웅 형제 그래도 이게 그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신학교 시절에 어느 저희 제가 묵던 집 앞에 구교를 본 적 있는데 젊은 분이 젊은 신부님이 그 나이 드신 분한테 그분은 한 30대 후반 나이 드신 분은 한 60대쯤 됐는데 아무개 형제 딱 반말을 까더라고 그러니까 그 꼼짝을 못하더라고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게 통하더라고요. 성직자들도 하려면 사실은 신부가 됐어야 돼요. 아무리 형제 뭐 이렇게 해도 그분들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그 교역론이 그렇다 이거예요. 그만큼 거기 성직자가 권위가 있고 중요해요. 그렇다고 우리가 카톨릭 신부를 따라갈 수 없잖아요.
우리는 신부도 아니고 우리는 제사장도 아니고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은 하지만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은 기능적으로는 내가 풀타임 사역자로 설교와 가르침과 여러 가지 목회적인 일 그건 전문성을 가져야 되니까 신학을 졸업하고 훈련을 받고 그 일을 위임받아서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여러분들을 양을 칠하는 위임을 받아서 그 일을 감당 하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형제 자매예요. 여러분이 저보고 성 형제 그래도 할 말 없어요. 우리 다 같이 형제 자매 좋지. 다만 우리가 기능적으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더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신앙생활이 행복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교역자들은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건 아무나 하는 건 아닙니다. 훈련받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풀타임으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존경도 받고 또 존중도 해야 됩니다.
제가 형제 자매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해서 에이 오늘부터 그냥 막 가자 그러면 안 돼요. 그래도 교회의 목회자로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서 마치 내가 여러분 자신이 어떤 문제를 위해서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눈물로 기도하는 사역자들이니까 저와 우리 교역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해 주셔야 돼요.
그러나 절대적 권위가 있는 건 아니다. 오직 교회의 절대적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이 주님을 바라보듯이 저희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실까 거기에 함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면 어느 날 예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 그런 교회들이 있어요. 예수가 안 보여. 오직 예수님을 부르짖어도 나중에 보면 예수님이 안 보여. 담임 목사만 보여
그러면 안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목사를 신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그 팬덤에 굉장히 막 약해가지고 정치를 해도 막 과도하게 또 신앙생활을 해도 과도하게 막 그래서 옛날부터 무슨 부흥사 팬이 있어가지고 막 쫓아다니고요. 목회자 팬이 있어가지고 쫓아다니고 뭐 약간의 팬이 있는 것은 괜찮아 약간의 그렇지만 막 이 이성을 잃을 만큼 어느 정도로 이러냐 신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목사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러다가 어느 날 그런 거 보고 시험 들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처럼 생각해서 너무 높은 자리에 올려놨다가 자기가 올려놓고 자기가 실망하는 거예요. 어느 날 그러고는 시험 들어가지고 이제는 끌어내리는 겁니다.
그게 문제예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그런 것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어떤 목사님도 완전하지 않다. 우리 다 같은 형제들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혹시 살다가 제 약점이 보일 수 있어요. 처음에 예수 믿고 교회 오면요 다 좋아 보여요. 목사님이 정말 막 너무 정말 예수님 같아 보일 수도 있어요.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 시간이 있어요. 눈 먼 시간 그러다가 어느 날 이제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목사님도 문제가 있구나 그러면 정말 실망스러운 나 교회 안 다녀 참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아 그러면 저 사람의 부족함을 위해서 내가 기도해야 되겠구나 내가 그 부족함을 채우는 동역자가 되면 좋겠구나 이렇게 하면서 가면 얼마나 아름다운 팀이 되겠어요.
근데 막 너무 그러던 사람은 반드시 끌어내립니다. 그래서 어디 부임해서 갈 때 유명한 말이 있어요. 처음 와서 가방을 들어준 사람이 너를 쫓아낸다. 이게 과잉한 친절. 저는 막 과잉한 칭찬과 과잉한 친절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그 사람이 과잉하게 저를 공격할 수 있어요. 그냥 사랑도 사랑 관계도 어느 정도 적당한 선이 좋아요.
우리 교회는 너무 뜨거운 사랑 말고 교인 관계도 약간 차갑지 않을 정도의 깔끔한 관계가 제일 좋아. 그렇지. 너무 사랑하다가 또 너무 미워해버려. 교회도 그런 게 마찬가지. 목회자도 그렇게. 근데 그런 우리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한국 사회는 그런 게 굉장히 강해가지고요. 그 큰 교회 훌륭한 교회 목사님들이 암이 많이 걸려 우리같이 그냥 그 변두리 외곽의 작은 교회들은요. 암 걸릴 일이 별로 없어요. 근데 그분들은 막 어떨 때는 한국 가서 보면 부러워 우리 저렇게 하는 교인들 몇 사람만 있으면 내가 막 날마다 힘이 나겠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많은 반면 또 실망해가지고 막 끌어내리고 크리틱 하는 분들이 많아가지고 누구도 암 걸렸대 누구도 암 걸렸대. 저는 암 걸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 형제 자매로 살아요. 저는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진짜로 그래가지고 어떤 분들은 막 약을 한 주먹씩 털어놔요. 그를 목회는 멋있어. 근데 다 뭐냐 하면 잘못된 과도한 이해 설정을 너무 높이 해놓고 너무 지나치게 과도하게 친절하게 섬기다가 또 어느 날 실망해가지고 그러는 것이 그러면 서로 괴롭고 피곤한 거예요. 우리 다 같은 똑같은 형제 자매다.
목사는요. 집에서도 힘들어요. 집에 가면 집에 가면 가족들이 성숙한 가족은 그냥 아빠구나 남편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목사님 오셨어. 얘들아 목사님 오셨어 말은 그래 안 해도 마음으로는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중성이 있는 거야. 아빠를 볼 때 이게 아빠구나. 아빠는 집에 가서 옷도 벗고 살아야 되고 양말도 함부로 벗어놓을 수도 있고 교회에서는 그렇게 못하잖아요. 집에 가서는 그렇게 해야 될 거 아니요. 그 자녀들한테 난 부부 싸움도 할 수 있는 거고 또 자녀들한테 잔소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목사님이 잔소리하냐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나는 거기서 그냥 그러니까 인간으로 살고 싶은 거예요. 제가 우리 집사람하고 결혼한 이유가 뭐냐면 안 믿는 집 빈 것은 뭐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안 믿는 집이었어요.
근데 사모의 꿈이 없었어. 막 사무를 꿈꾸는 사람이 무섭더라고. 나는 결혼해서도 막 그 목사님으로만 볼 거 아니에요. 근데 아무 생각이 없어. 그런 게 그냥 한 남자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저기 해가지고 처갓집에 박해와 그걸 견디고 내가 해버렸잖아요. 그냥 한 남자로 보는 거죠.
근데 이제 집에 우리 애들을 키울 때 집에 가서 밥상머리 교육을 해서요. 이제 밥 먹을 때 이제 얘기도 이렇게 하고 하잖아요. 하면서 좋은 얘기만 합니까? 너 왜 그렇게 하냐 이렇게 하냐 하는데 첫째가 이만한 때야. 진짜 유치원 조금 더 유치원 같기도 한데 오늘 없어서 더 말을 편하게 출장 가가지고 누가 이러지 마 그래 하면서 팍 이렇게 잔소리지. 지가 볼 때는 그럼 아빠가 아빠가 잔소리 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보통 애들은 들을 텐데 숟가락을 딱 넣더니
목사가 왜 그래
할 말을 잃었어요. 이게 어처구니가 없는 거예요. 어처구니가 뭔지 알죠? 맷돌을 돌려야 되는 맷돌 잡이가 없어져버린 거예요. 그래가지고 더 이상 야 이거 황당하다. 걔가 이제 기준을 그렇게 정한 거예요. 아빠 평소에는 자기가 나를 필요할 때는 아빠지. 근데 이제 지금 불리하니까 목사인 거야. 목사 이 사람이 목사가 왜 이래 그러니까 괴로운 거예요. 내가 괴로운 거예요. 교회 안에서도 설정을 그렇게 내 마음대로 딱 이렇게 해놓고 거기에 기준에 안 미치면 또 자기 필요에 따라 또 우리가 해외에 사는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 이 디아스포라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자기가 필요할 때는 한국 사람이야 그래서 막 한국 사람처럼 헌신해 주세요 했다가 뭐 또 반대로 다른 게 불리하면 프랑스 사람처럼 또 행동해 그게 여기 이제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하면 서로 피곤하다. 그냥 우리는 한 분 주님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고 우리 모두 형제 자매인데 그냥 저는 사례비 받고 월급 받고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조금 더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님의 사람이니까 존경하고 존중해 준다.
그런 정도로만 저를 이해해 주시고 우리 모두 여러분 하나님 나라까지 가는 필그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함께 가는 동무들이에요. 불교에서는 이걸 도반이라고 합니다. 도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우리 도잖아요. 복음의 도를 따라 함께 가는데 제가 여러분보다 조금 더 전문성이 있어 그러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같이 가는 거예요.
그러나 위아래는 없다. 오직 오직 우리 몸이라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에서 오직 명령하시고 오직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아멘 성격화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날 목사도 아무것도 별거 아니네 그래가지고 막 맞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제 막 그러지 말고 적당한 선을 늘 지켜주면 좋다고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는가 23절에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 공동번역에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이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만물을 완성한다. 그게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로 이루셨는데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을 세상에 펼치는 일을 누가 하느냐 교회를 통해서 하신다는 다른 말로 하면 교회에 속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와 성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 구원의 역사를 세상에 전달하는 선교입니다. 선교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예요. 선교를 위한 이게 절약함입니다. 함대라 이거예요. 이 사실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어느 날 좌초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가 재정이 많고 선교를 할 여력이 있어서 하든지 아니면은 없어도 선교는 해야 되는 거예요. 어떤 방법으로든 왜 그걸 위해서 존재하니까 그걸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축복하시고 그것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어떤 시기에 보면 우리끼리 아주 좋을 때가 있어요. 우리끼리 너무 좋아 재정도 안정되고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너무너무 행복해. 누가 들어오는 게 너무 불편해 왜 분위기 끼니까 새로운 사람 와가지고 막 이상한 소리하고 그러니까 우리끼리 이 분위기 그러면 그게 선교를 위한 함대가 아니라 그냥 파티장이 돼버리는 거예요. 사교장이 돼버리는 거예요. 그 교회는 방향을 잃은 교회가 됩니다. 머지 않아 좌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면서 하신 부탁과 명령이 뭐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받고 예루살렘, 사마리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선교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이제 코로나를 끝내고 2024년 4년 만에 단기 선교를 떠납니다. 얼마나 우리 저는 가고 싶었는지 몰라요. 아프리카를 처음 다녀온 다음부터 아프리카와 그 영혼들을 사랑하게 돼서.
근데 이제 우리 교인들이 오랫동안 선교를 안 해가지고 갈 수 있을까 얼마나 모일까 그러는데 어제 이제 우리가 오늘 발대식도 오늘 발대식이죠. 출정식도 하고 이제 이제 이제 어제 이제 첫 모임을 하고 이제 훈련이 들어가는데 언제 제가 쭉 참석해 보니까 정말 이 주님의 선교를 위해서 마음에 품었던 우리 영혼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셨더라고요. 그리고 막 지금 인원이 넘쳐가지고 아이고 한두 명 빠져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막 차고 넘쳐요.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구나.
근데 선교는 그렇게 쉬운 건 아닙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이라는 것은요. 순교자라는 뜻이에요. 자기 희생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번 내년 2월에 가는 선교회는 우리가 여기 이번에 가는 선교사들이 다 자비량합니다. 비행기 값이 천 유로 정도 들어요. 물론 거기 가서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도 우리가 헌금해서 하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 혜택 받고 가는 게 아니에요. 다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가는 거예요. 그 희생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머지 못 가시는 분들도 한마음으로 동참하셔야 돼요. 내가 못 가지만 내가 재정으로 내가 동참하겠다. 그래서 그 나머지 우리가 거기 가서 사는 모든 사역을 여러분 지원해 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한마음으로 우리가 가면 이게 이제 우리가 가서 하지만 여러분들이 또 한 것이 되는 거 어쨌든 이 선교는 희생이 따릅니다. 어제 보니까 이제 자기 상황들을 다 얘기하는데 그냥 상황이 좋아서 가는 사람 별로 없어요. 어떤 사람은 직장을 포기하고도 가요. 학업 혹시 그때 무슨 입시가 올 수도 있는데 그냥 선포하고 가는 거예요.
저는 대개 단기 선교 갔다 오면 하나님께서 꼭 선물을 주시더라고 껴도 자기가 포기한 것보다 더 놀라운 근데 혹시 안 주실 수도 있어 이거 괜히 얘기해놨다가 나중에 또 야 목사님 말 이거 못 믿겠네 그러면 안 됩니다. 안 주실 수도 있어.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주님 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한다면 그 자체가 복된 것이고 또 하나님은 또 선물을 주십니다.
하여튼 그런 그런 우리 이번에 담기 선교사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나 어제 감사했는지 몰라요. 이번 팀은 아주 과거도 좋았지만 최고 좋은 팀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21살 된 우리 교회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건강한 교회,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그리고 선교를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