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룟 유다는 구원에로 택한 자의 탈락에 대한 예가 되지 못한다. 유다는 사역(事役)을 위한 택함이지 구원의 택함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가
그리스도의 양으로 헤아려진 것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주님은 다른 본문에서
오직 사역(事役)과 관련해서만
유다가 사도들과 함께 자기의 택함을 받았다고 주장하신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즉
주님은 사도직을 위하여 유다를 선택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선택과 관련해서는
그를 택함 받은 사람들의 수에 들지 못하도록 멀리 내쫓으신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요 13:18).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두 본문에 나타나는
'선택'이라는 말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다면
비참하게 그것에 연루되어 곤란을 겪을 것이나.
만약
그것들을 구별(區別)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게 될 것이다.
예정(豫定)은 올바르게 이해(理解)되기만 하면
믿음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최고(最高)의 확정(確定)이 된다는 것이다.
- 칼빈의 예정론(존 칼빈, 기독교강요(3권 24장 9))-라틴어 최종판 직역, 생명의 말씀사, 문병호 옮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