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57
유자효 시인
의정부에서 열린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 경기도 예선 / 눈먼 여인이 누런 개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로 들어섰다 / 대회장 밖에 개는 공손하게 앉았다 / 여인은 화장실로 가서 짊어지고 온 가방을 풀어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 여인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 몇 번을 맨발로 연습한 대회장 밖의 감각을 / 맨발로 확인하며 단상에 올랐다 / 아무도 그녀가 눈이 먼 줄 몰랐다 / 여인은 창과 함께 시를 낭송했다 / 낭송은 다소 서툴렀지만 절절한 한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 여인의 차례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 개는 눈을 끔벅이며 구석에 묵묵히 엎드려 있었다 / 누가 바라보면 개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어진 눈 / 어진 눈이었다 /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 마치 어느 착한 사람이 개의 형상을 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 했다 / 여인은 장려상을 타고 / 개는 다시 여인을 인도해 건널목을 건넜다 / 아무도 그 개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묵묵히 엎드려 있던 누런 등과 / 천천히 끔벅이던 어진 눈 / 이름 없는 무수한 성자 중의 하나가 / 개가 되어 여인을 인도하고 있었다 / 저 흔한 우리 누렁이 중의 하나가 되어.
지난 2006년 어느 날 시집 『성자가 된 개』(시학사 간)를 받았다. 유자효 시인의 역작이었다. 이 시집 첫 쪽에 수록된 작품 「개」를 읽는 순간 아아, 시적인 공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으로 몇 번을 통독(通讀)했다.
그는 의정부에서 열린 재능시낭송회 심사를 하면서 시각장애인 출연자와 개의 상관성을 묘사하면서 ‘이름 없는 무수한 성자 중의 하나가 / 개가 되어 여인을 인도하고 있었다’는 시적 진실을 들려주고 있었다.
유자효 시인과는 한국시인협회의 행사때나 일반적인 문학행사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훤칠한 그의 장신과 인자한 신사풍의 외모는 우리 시인들을(특히 여성시인들) 매료(魅了)시키고 있어서 항상 인기가 좋았다.
그는 그의 저서 칼럼 모음집 『나는 희망을 보았다』(고요아침 간)에서 ‘내게는 문학이 구원이었다. 문학은 내 영혼을 구원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나는 문학을 놓지 못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내 영혼의 눈길은 문학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10대 때 시작된 글쓰기를 60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오고 있으며 이제는 내 활동의 절대적인 부분을 점령해오고 있는 것이다.(「나는 왜 문학을 해야 하는가」중에서)’라는 말과 같이 문학을 위한 지향적인 그의 정신은 영혼의 구원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1947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불어과를 졸업하였다. 문단에는 20세에 신아일보 지상백일장에 시가 입선(「명천촌가」노산 이은상 선)하고 다음해에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입선(「소묘 3제」미당 서정주 선), 그리고 그해에 불교신문에 시조가 당선(「산사」초정 김상옥 선)하여 문학의 길로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후 그는 ‘잉여촌 동인’에 참여하면서 다시 『시조문학』에 4회 추천을 완료(「혼례」월하 이태극 선)하는 입지적인 시인으로 지금까지 많은 저서와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는 첫 시집『성 수요일의 저녁』을 비롯해서『짧은 사랑』『내 영혼은』『지금은 슬퍼할 때』『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떠남』『금지된 장난』『아쉬움에 대하여』『성자가 된 개』『여행의 끝』『전철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다』『주머니 속의 여자』『사랑하는 아들아』『심장과 뼈』『아버지의 힘』등 15권의 시집과『피보씨는 지금 독서중입니다』『라라의 투쟁』『세상의 다른 이름』『다시 볼 수 없어 더욱 그립다』『나는 희망을 보았다』등 5권의 산문집도 발간하였다.
이러한 문학의 업적을 인정 받아 현대시조문학상(1997), 후광문학상(2002), 편운문학상(2002), 정지용문학상(2005), 유심작품상(2008), 한국문학상(2009), 현대불교문학상(2011)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밖에도 서울대 사법대학 ‘자랑스런 동문패’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제3대 지용회 회장(2010)과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사장, 시와시학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에는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에 재임하고 있다.
그는 문단뿐만 아니라, 방송 및 언론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1974년에 KBS한국방송공사 공채 2기생으로 기자직에 입사하여 KBS 유럽 총국장 서리 겸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후 SBS로 옮겨 초대 청치부장과 부국장 대우 국제부장 겸 해설위원 그리고 부국장급 해설위원, 보도제작국장, 라디오 본부장, 이사 대우 기획실장, 논설실장, SBS 이사, 자문위원을 지내고 한국방송기자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에도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재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로로 제1회 한국참언론인대상과 한국불교언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국악방송에서 <유자효의 책 읽는 밤>과 불교 TV에서 <선승에게 길을 묻다>를 인기리에 진행하고 있다.
범종이 운다 / 세상의 만물을 깨우는 소리 / 잠들기 싫어 /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목어를 친다 / 깨침이 무엇인가 / 평생 반야심경을 외우면 / 다다를 수 있는 것인가 / 무릎이 내려앉도록 생각하면 /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 오늘도 못다 한 한 아름 / 못다 간 길.
--「도량석」전문
그는 불교에 심취해 있다. 이 ‘깨침’에 대한 화두를 붙들고 골돌하게 불도의 길을 탐색하고 있다. 그의 어떤 글에 보면 ‘나의 6남매 가운데 나만 빼고는 모두 기독교도 들이다.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 절을 하는 사람은 나와 내 아들뿐이다. 동생과 조카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절과 기도가 그렇게 다른 것인지,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절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동생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간혹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그의 진솔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할머니는 불심이 돈독하셨고 어머니도 절에 가서 스님에게 온갖 고민거리를 틀어놓는 불자여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가서 불교와 인간과의 상관을 숙지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불심과 동행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나의 시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엄격한 정직성으로 시를 썼다. 나의 작품들이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까지 산 한 남성의 치열한 삶의 기록이 될 것이다’라고 한국대표시선 100에서 유자효『아버지의 힘』 ‘시인의 말’에서 자신의 시세계를 전망하고 있다.
한편 시집 『심장과 뼈』에서 작품 해설을 한 동국대 장영우 교수는 ‘유자효 시인은 과묵하고 굼뜬 걸음으로 사십년 넘는 세월 동안 시와 시조를 써온 현역이다. 그는 최근 괄목할 정도의 시업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몇 년 동안의 열정과 몰두 이후 그는 근작시를 통해 속도를 다소 늦춰 세상을 넓게 바라보면서 삶을 위한 일정한 보폭과 속도의 달리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낸다’는 그의 작품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잃을 줄 알게 하소서 / 가짐보다도 / 더 소중한 것이 / 잃음인 것을 / 이 가을 / 뚝 뚝 떨어지는 / 낙과(落果)의 지혜로 / 은혜로이 / 베푸소서 / 떠날 줄 알게 하소서 / 머무름보다 / 더 빛나는 것이 / 떠남인 것을 / 이 저문 들녘 / 철새들이 남겨둔 / 보금자리가 / 약속의 / 훈장이 되게 하소서’라는 작품 「떠날 줄 알게 하소서」처럼 오늘도 합장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유자효 시인이여, ‘예순다섯 고개를 넘으며 예기치 않게 대수술(시집『심장과 뼈』의 ‘인사말 중에서’)’한 일이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