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학명
자금우과 |
Ardisia japonica |
겨울날에 남해안이나 섬 지방, 또는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색다른 상록의 자연경관이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중북부지방에서는 초록을 떨쳐버린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지난 세월의 아쉬움을 느낄 때,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후박나무, 참식나무, 까마귀쪽나무 등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이름도 생소한 늘푸른나무들로 온 산은 겨울에도 초록덮개다. 그러나 제대로 잘 보존된 상록수 숲은 사실 욕심쟁이들만 모여 사는 곳이다. 다른 종류는 아예 발을 못 붙이도록 저희들끼리 잔뜩 잎을 내밀어 숲속은 대낮에도 빛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구름이라도 살짝 끼면 거의 깜깜한 수준이다. 이런 상록수 숲에 감히 어느 나무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자금우란 나무는 당당히 터전을 잡고 있다.
자금우(紫金牛)는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아름다운 빛을 내는 소’란 뜻이다. ‘자금’이란 불교용어로 부처님 조각상에서 나오는 신비한 빛을 일컫는다.
자금 빛을 내는 덩치 큰 소의 이미지로 나무를 상상했다면 너무도 다른 모습에 실망할 것이다. 실제로 자금우는 가느다란 몸체에 키 자람이라고 해봐야 한 뼘 남짓한 피그미나무다. 그렇다면 왜 이름만 이렇게 근사한 것일까? 작은 몸체가 한약재로 쓰이는데, 그 약의 이름이 ‘자금우’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붙인 이름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기관지에 특히 효험이 있으며, 그 외에도 종기에서부터 습진까지 여러 가지 처방이 알려져 있다.
자금우는 우리나라의 남해안에서 울릉도까지, 그리고 일본과 중국 및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펼치는 나무다. 직접 햇빛을 받지 않아도 상록수 그늘 밑에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번식은 낙엽이 썩어서 쌓인 부엽토 속에 땅속줄기를 이리저리 뻗어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가는데, 서로 연결되어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줄기는 하늘로 향하여 곧바로 서지 않는다. 사실 햇빛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바에야 그럴 필요도 없다. 땅속처럼 땅 위 줄기도 옆 뻗음으로 충분하다. 자금우는 나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자라는 모습만 보면 군말 없이 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잎은 주로 마주나기로 달리지만 흔히 줄기 끝에서는 돌려나기로 모여 달린다. 작은 달걀 크기에 표면에는 윤기가 있고, 가장자리에는 거의 침처럼 생긴 톱니가 있다. 음지에서 자라는 잎이라 수명이 길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잎갈이를 하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다. 작년에 자란 줄기의 잎겨드랑이에서는 6~7월에 걸쳐 손톱 크기 남짓한 꽃이 핀다. 다섯 장의 꽃잎(정확히는 花冠)은 거의 흰빛이며, 차츰 주근깨 소녀의 얼굴마냥 보랏빛 반점이 점점이 생긴다. 거의 땅에 붙어 있다시피 한 키에 꽃은 아래로 달려 있다 보니 눈에 잘 띄지 않고 수정을 해줄 곤충도 그리 많지 않다. 개미가 도와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자금우는 종자 번식에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땅속줄기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꽃이 지고 나면 초록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다가 가을이 되면 콩알 굵기로 빨갛게 익는다. 열매는 겨울을 넘겨 다음해 꽃이 필 때까지 달려 있다. 초록을 바탕으로 잎 사이사이에 2~3개씩 얼굴을 내미는 빨간 열매는 자금우의 매력 포인트다. 아파트와 같은 회색공간에 특히 잘 어울리는 나무다.
자금우와 매우 비슷한 나무로 산호수가 있다. 자라는 지역도 같고 잎 모양이나 줄기가 옆으로 뻗어나가는 모습도 거의 차이가 없다. 산호수는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크고 때로는 겹 톱니이며, 양면에 털이 있는 점이 자금우와 다르다. 자금우의 또 다른 형제인 백량금은 키가 더 크고, 잎이 길며 두껍고, 가장자리에 둔한 물결 톱니가 있어서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다. 이 셋이 모여 자금우과(科)라는 일가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