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야당과 여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무조건 자유인권민주주의의 가치 아래 하나로 모여 민주적 토론과 합의절차를 통해 동화적 통합으로 나이가 북한독재정권을 최대한 빨리 붕괴시켜야 할 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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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갖는 규범적 효력의 본질은 주권자의 결단이 아니라 "동화적 통합의 기초가 되는 공감적 가치의 실현에 있다"는 '동화적 통합이론'
"동화와 통합을 위해서 자유와 평등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이 연대감입니다.
특히 제가 오랫동안 그 문화를 체험했던 독일과 비교했을 때 연대의식이 매우 취약해 보입니다.
연대의식을 강화시키는 것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겸허함입니다. 철저히 자신을 낮추면서 못 가진 사람과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연대의 핵심입니다.
공동체적 삶의 기초가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다는 단순 명확한 진리를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하느냐가 연대와 통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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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민주화 이끈 허영 교수의 `동화적 통합론`이 빛을 발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
1980년대 초중반 헌법학을 공부하는 모든 대학생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원조 스타'가 있다.
당시 연세대 법대교수였고 현 경희대 석좌교수 허영 교수다.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이 시대정신이던 시절, 그가 소개한 헌법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학계와 대학사회에 신선한 파문을 던졌다.
그의 헌법관을 정리한 '헌법이론과 헌법'(전 3권) 중 1980년 간행된 상권에서 그는 헌법이 갖는 규범적 효력의 본질은 주권자의 결단이 아니라 "동화적 통합의 기초가 되는 ●●공감적 가치(자유인권민주주의)●●의 실현에 있다"는 '동화적 통합이론'을 제시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법학도는 물론 정치ㆍ사회학도와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다.
서울대 법대 김철수ㆍ권영성 교수의 결단주의 헌법관과 당시 연세대 법대 허영 교수의 통합론적 헌법관은 헌법의 모든 쟁점에서 치열하게 맞붙으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1988년 아시아 최초로 헌법재판소가 세워진 것도 일정 부분 그의 이론이 기여했다.
당시의 기성 질서는 결단주의 헌법학자들의 이론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시대정신과 대학생들은 허영의 편이었다. 아니, 팬이었다 해도 좋을 만큼 그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도 아픔과 상처는 있었다.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2년 3월 경희대 교수로 임용되고 얼마 안 지나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기업사채를 동결한 8ㆍ3조치가 단행됐다.
천주교가 발행하던 '창조'지에 보낸 비판론을 사전 검열한 중앙정보부가 게재를 중단시키고 그를 끌고 갔다.
"중정에서 3일 동안 일생 최악의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종의 반성문 같은 걸 쓰고 풀려났는데 한국의 학문적 현실에 회의가 느껴지고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휴직하고 1975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어요.
그 이듬해 경희대로부터 해직 통보를 받았습니다.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는 내친김에 가일층 학구열을 불태웠고 바이로이트대학에서 동양인 최초로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을 받았다.
독일어권에서 교수를 할 수 있는 자격으로, 그의 학문적 성취에 보낸 경의라 할 수 있다.
허교수 왈
"본대학과 바이로이트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모교로 복직했으나 연구에 전념하기엔 학내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1982년 마침 연세대가 정법대학 법학과를 법과대학으로 독립시키면서 교수들을 채용하기에 연세대로 옮기게 된 거죠."
국가개조를 넘어 국가혁신론이 비등하는 지금 그가 꿈꿔온 사회 통합과 공감적 가치의 실현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결단주의 헌법이론을 법리적 기초로 삼던 군사정권을 극복한 것은 분명히 큰 발전이고 통합으로 가는 중요한 고비를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개혁을 말하기 전에 지금 동화적 통합을 위한 헌법적 원칙인 대의민주주의 가 위기에 봉착해 있어요.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진짜 더 큰 문제는 '제왕적 국회'예요.
가장 큰 걸림돌이 국회선진화법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진화법이 아니라 국회장애화법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이걸 고쳐서 당장 다수결 원칙에 따르는 국회의 기능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대의민주주의는 고사하고 맙니다.
만약 고칠 수 없다면 대통령에게 비상입법권을 부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는 특히 국회의원들의 제왕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현 정부 2기 내각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어떻게 청문회 대상자에게 '예, 아니요'로만 답변하라고 강요할 수 있습니까. 세계 어디를 봐도 이런 청문회는 없습니다.
세상에 예, 아니요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자연현상밖에 없어요. 사람의 인성과 사상, 사회적 현상은 결코 예, 아니요로 답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가 사회 통합을 위해 방점을 찍은 개념은 '연대(連帶)'다.
"과거 우리 사회를 모래알에 비유했다면 지금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기치 아래 여러 개의 응집된 모래덩어리가 생겨났습니다.
여러 개의 덩어리를 전체로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겠지요. 물론 사회문화나 구성원들의 의식도 더 성숙돼야 하고요." 그가 말하는 사회의식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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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통합을 위해서 자유와 평등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이 연대감입니다.
특히 제가 오랫동안 그 문화를 체험했던 독일과 비교했을 때 연대의식이 매우 취약해 보입니다.
연대의식을 강화시키는 것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겸허함입니다. 철저히 자신을 낮추면서 못 가진 사람과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연대의 핵심입니다.
공동체적 삶의 기초가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다는 단순 명확한 진리를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하느냐가 연대와 통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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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동화적 통합이론이 전체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통합론이 헤겔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 좌파 이론가들이 그렇게 주장하기도 합니다. 동화적 통합은 인간 존엄성같이 사회구성원들의 공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상향식의 통합을 추구합니다. 하향식인 전체주의와는 상극입니다. 무조건적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전체의 통합을 추구하는 철학이지요."
■ 프로필
허영 교수는 1936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경희대 졸업 후 1971년 독일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유신헌법의 이론적 기초가 됐던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에 맞서 루돌프 스멘트 등이 체계화한 동화적 통합론을 주창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한국 헌법학 이론의 기틀을 다졌다. 그가 동화적 통합론을 바탕으로 집대성한 '헌법이론과 헌법'은 종전 결단주의와 법실증주의 중심의 '고시 헌법'을 비로소 이론적인 학문의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고 시절 고2 때까지 학년 수위를 다퉜으나 3학년 때 폐결핵을 앓으면서 성적이 떨어져 476명 중 11등으로 졸업
1966년 결혼하고 신혼의 단꿈에 젖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독일 유학
"폐결핵 때문에 담배는 애당초 배울 생각도 안 했지만 술은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와인을 즐김
주종과 청탁을 불문하고 술을 즐겼고 위스키도 많이 마셨는데 많은 제자들이 술로 이겨보겠다고 도전했지만 당해낸 제자가 없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