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5
ㅡ 백제 전성기, 근초고왕 1 ㅡ
(근초고왕 직전 왕들)
삼국의 각 국 전성기는 한강유역 을 차지하고 있을 때 이루어 졌다. 그러다보니 한강유역을 첫 번째로 차지한 백제가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실, 백제는 건국하고 나서 300년 가까이 지나 제8대 '고이왕'(재위: 234년~286년)
시대에 와서야 고대국가로 체계를 잡았다. 앞 편 백제 초기상황에서 자세히 정리했다.
그리고 <제 9대 책계왕, 제 10대 군서왕, 제 11대 비류왕, 제 12대 계왕을 거쳐 오늘의 주인공 제 13대 근초고왕>에 이른다.
13대 '근초고왕' 때 백제는 최고 전성기를 달린다. 그러나 '고이왕' 이후 '근초고왕' 이전 <책계왕 군서왕 비류왕 계왕> 네 왕중 '비류왕'의 '비류'는 들어 보기는 했지만 나머지 세 왕들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들 일 것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접하는 백제왕들이다. 삼국사기에는 나름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만큼 역사적 큰 사건은 없었다.
그래도 간략히나마 정리하고 넘어 간다.
[대방은 우리 장인의 나라이다. 그 요청을 돕지 않을 수 없다.]
ㅡ 삼국사기 백제본기 ㅡ
이것은 백제 제 9대 '책계왕'과 관련된 기록이다.
'책계왕'은 8대 고이왕 장남으로 체구가 장대하고 의지가 굳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책계왕에게 '대방군'이 장인 나라라 한 이유는 대방군 왕 딸 '보과'를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대방군이 고구려 침략을 받자 '책계왕'은 백제군사를 보내어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맞붙은 첫 번째 기록이다. 책계왕의 대방군 구원때문에 백제는 고구려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고구려와 백제사이에 별 충돌이 없었다.
그리고 책계왕이 죽고 17년 후인 315년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 과'대방군'을 멸망시키면서 고구려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이때부터 양국관계는 더 험악하게 변했다.
고이왕 시절부터 시작해서 책계왕 시절에는 백제가 '요동' '요서'등 중국대륙을 경영했다는 설도 있다.
'책계왕'은 가뜩이나 기록이 적은 백제군주들 중에서도 특히 기록이적은 군주이다.
책계왕12년 재위기간동안 '삼국사기'에 남은 기록은 고작 5줄 밖에 없다.
'비류백제 대륙경영설'을 믿는 일부학자들은 책계왕이 대륙에 머무르며 전쟁을 치루었다는 삼국사기 이전 일부 다른 기록이 있음에도 '비류백제대륙경영설'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김부식과 삼국사기 저자들은 '삼국사기' 기록에서는 이런 기록을 아예 뺐다고 주장한다
책계왕이후 왕위에 오른 것은 백제의 제10대 군주 '분서왕'이다.
'분서왕'은 '책계왕' 장남으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해 아버지 책계왕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분서왕' 또한 기록이 많지 않다. 6년이 조금 넘는 재위기간 기록은 아래와 같다.
[분서(西)왕 7년(304) 봄 2월 몰래 병사를 보내 낙랑의 서현(西縣)을 습격해 빼앗았다. 겨울 10월, 임금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ㅡ 삼국사기백제본기ㅡ
자객에 의해 왕의 목숨을 빼앗긴 중대한 일에 대한 백제가 취한 추후조치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당시 분서왕 자식들이 다 어렸고 분서왕에 이어 왕위에 오르는 '비류왕' 대에도 자객을 보낸 '낙랑' 과 싸웠다는기록이 없어 비류왕 배후설이 주장되기도 한다.
10대 '분서왕'이 죽자 그의 아들 '계'(契)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 하여 '비류'가 신하들 추대 받아 즉위하였다. '비류왕'은 활을 잘 쏘았으며 성품이 너그러웠다고 한다.
제 11대 '비류왕'(304년~344년 40년 집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비류왕'은 '구수왕' 둘째 아들이자 '사반왕' 동생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다른 줄에 의하면 그는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얻었다고 나온다.
이 말은 구수왕 사반왕 혈통들이 고이왕측에 의해 거의 멸족되다 시피 했다는 말이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비류왕'은 '구수왕' 둘째아들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비류왕은 구수왕이 죽은 지 70년이 지난 뒤에서야 왕위 에 오른다. 그리고 비류왕은 40년 을 재위했다.
구수왕이 234년에 죽었기때문에구수왕이 죽기 직전에 비류왕이 태어났다 쳐도 비류왕이 344년에 사망했으니 대략 110세에 죽은 것이 된다. 또한 비류왕과 비류왕 형 사반왕 사이에는 70년 이상 연대 차이가 나므로 형제 여부에 관하여도 생물학적으로 가능성이 없다.
이 기록에도 또 뭔가 조작이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앞 편에서도 말했지만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숫자에 약해 그냥 대충 썼다기 보다는 백제시대 당시 쓰여진 역사서를 참고하여 삼국사기를 기록했기 때문에 자기들 마음대로 고칠 수 없어 년대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도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말했듯이 고이왕-책계왕-분서왕에서 돌연 구수왕 아들인 비류왕으로 왕위 승계가 바뀌면서 비류왕은 고이왕 직계혈통은 아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비류왕이 죽고나서 고이왕 직계혈통 분서왕 맏아들 이었던 '계왕'이 12대 왕으로 계승한다. 계왕은 재위 3년 만에 죽는다. 그리고 왕위는 다시 비류왕 둘째아들 '근초고왕' 에게 돌아 갔다. 어떻게 보면 피튀기는 왕위계승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혈통이 다른 계승자에게 서로 왕위를 양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기록까지 바꾸어버린 무서운 왕위쟁탈전이 있었지 않나하고 추정된다.
이처럼 백제 왕위계승을 보면 우리가 아는 일반상식과는 달라 많이 헷갈리게 한다. 년대나 왕 연령도 상식 밖이다.
원삼국시대 때 이러한 상식밖의 기록들은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 신라 삼국이 거의 다 마찬가지였다.
특히 현존하는 백제기록이 얼마나 부실한지 알 수 있는 사례는 곧 정리할 백제 최고전성기를 이끈 명군임에도 재위기간 2/3에 가까운 시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는 '근초고왕'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근초고왕 업적은 삼국사기 보다 중국기록과 일본기록에 더 자세히 나오고 있다. 백제멸망 이후 수 백년 이후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 한계를 볼 수 있다.
우리가 '비류'란 이름을 기억하는 것 것은 백제 시조 중 한 명 '비류' 와 '비류백제대륙경영설' 때문이다.
'비류백제대륙경영설'은 백제가 한반도 뿐만아니라 중국대륙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경영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비류백제대륙경영설'은 역사적 증거가 부족하여 학계 에서는 신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다수설은 백제와 중국 동부지역 간 교류는 인정되나, 그것이 백제가 대륙을 직접 경영했다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으며, 고고학적 증거도 거의 없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적인 가설로만 남아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왕 호칭은 '비류왕'으로 해놓고 비류왕 시기에 대륙과 관련된 기록은
물론 분서왕까지 혼인관계를 맺던대방에 대한 기록도 없다는 것이다. 굳이 대륙뿐만 아니라 비류왕 시기 40년 간이나 전쟁, 외교 와 관련된 기록이 거의 없다.
천재지변, 반란, 사냥, 선정에 대한기록만이 전해진다.
비류왕 시기에 비교적 큰 사건은 <'우복'의 반란> 정도이다.
그 마저도 토벌 되었다.
당시 동아시아는 격변기로 중국은 '오호십육국'시대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었고 고구려는 미천왕이 낙랑군을 313년에 멸망시켰다.
314년에는 대방군도 고구려에 의해 축출당하면서 고구려가 백제 북부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류왕을 이어 왕위를 계승한 '계왕'은 '분서왕' 맏아들이다. 앞서 설명한 분서왕이 자객 칼에 맞아 죽은 것에 대해 비류왕쪽을 의심하기도 했다는데 '계왕'이 비류왕 후계로 즉위한 것을 보면 앞 뒤가 맞지 않는다.
삼국사기 '계왕' 본기에는 단 두 줄만 나온다.
[一年冬十月 계왕이 즉위하다
三年秋九月 계왕이 죽다]
계왕은 2년 재위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이 나돈다. '계왕가공설' '비류계에 의한 시해설' 등이다.
'계왕가공설'은 '분서왕'이 낙랑 자객에 의해 암살된 것이 아니라 '비류왕'측에 의해 암살 당했는데 그것을 감추기 위해 '분서왕' 아들 '계왕'을 가공으로 끼워넣기 했다는 설이다.
어쨌든 '계왕'은 즉위 2년만에 죽고 비류왕 둘째 아들 '근초고왕'이 즉위함으로서 고이왕 계는 완전 도태되고 이후 백제 왕들은 '근초고왕' 후손들로 대를 잇게 된다.
[近肖古王 比流王第二子也 體貌奇偉 有遠識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식견이 넓었다.]
ㅡ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조 ㅡ 첫 문장이다.
이어서 근초고왕 업적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