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어휘 연구] 54. 이름을 두 번 연거푸 부르시는 하나님 | 남대극 교수
https://youtu.be/8HCUwxGl32Q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또다시 '에스라넷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연구하는 목적은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기 위함입니다. 단어와 어휘가 없으면 개념이 없고, 개념이 없으면 신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중요한 개념을 담은 어휘 연구를 진행하겠습니다.
오늘은 54번째 시간으로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 자꾸만 '두 번씩' 부르시는 독특한 사역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 53번째 강의에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부르심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공부했고, 오늘은 직접 사람을 부르실 때 특별한 방법으로 이름을 두 번 연거푸 부르시는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의 독특한 방법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이는 부르심의 속편으로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아주 흥미롭고 이채로운 방법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 나가서 부르시는 활동으로 인간 역사를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뒤 하나님의 면전에서 도망하여 숨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 나가서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3장 9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아마 하와도 함께 부르셨을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숨은 물리적 위치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너의 현재 영적 주소가 어디냐? 내 말을 어기고 왜 거기에 숨어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아픈 심정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으로 시작된 죄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숨바꼭질은 이 지구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찾아다니시며 이름을 부르시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이름을 두 번씩 부르시는 경우들을 찾아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의 음성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 음성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그의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사건입니다. 이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당장 아이를 데리고 모리아 산(예루살렘)을 향해 떠납니다. 그들이 살던 곳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60마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90여 km가 넘는 사흘 길이나 걸어야 하는 머나먼 여정이었습니다. 마침내 모리아 산 꼭대기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뒤,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얹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는 찰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다급하게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굉장히 다급하게 두 번 부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칼이 내려치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자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매우 위급하고 다급한 상황'일 때 이름을 두 번씩 부르십니다.
(많은 화가가 제단을 쌓고 나무를 얹은 채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칼을 내리치려 할 때, 사자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을 다급히 붙잡아 칼을 떨어뜨리는 극적인 장면을 상상하여 성화로 그리곤 했습니다.) 이삭 역시 아버지가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바치라 하셨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와 똑같이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자는 대로 제단 위에 순종하여 올라갔습니다. 만약 100세나 더 많은 아버지를 향해 이삭이 거역하며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하고 도망쳐 버렸다면 이 시험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순종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합치되었을 때, 하나님은 급히 그들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시며 칼을 멈추게 하셨고, 숲에 걸린 숫양을 대신 제물로 바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두 번씩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46장에 나오는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 음성입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이 진작 죽은 줄로만 알고 슬퍼하다가, 그가 살아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아들들의 인도를 받아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선대부터 대대로 살던 정든 이스라엘 본토를 떠나 국경을 넘어 머나먼 타국인 애굽으로 가야 하는 매우 중대하고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마침내 야곱 일행은 이스라엘 최남단 국경 도시인 브엘세바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을 때,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 때처럼 칼이 내려치는 급박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평생 살던 고국을 떠나 내일 아침이면 국경을 넘어가야 하는, 어쩌면 고령의 나이에 두 번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에 스며든 스산함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불안한 마음을 아시고 자비롭게 달래기라도 하시듯 하나님은 은근하고 다정하게 "야곱아, 야곱아" 하고 두 번 부르신 것입니다.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두려워하는 야곱을 안심시키고 동행을 약속하시는 '깊은 위로와 격려의 순간'에 하나님은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야곱 일행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거쳐 헤브론을 지나 영토의 최남단인 브엘세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뒤 애굽의 고센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영토를 표현할 때 최북단 '단'에서부터 최남단 '브엘세바'까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고대 유적지로 잘 보존된 브엘세바의 역사적 전경을 보면 고대의 우물과 성채 시스템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현대의 브엘세바 도시는 이 유적지에서 조금 동쪽에 새로이 번화해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모세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모세야, 모세야 하시는 음성입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태어나 40년을 살다가,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나그네로 또다시 40년을 보내게 됩니다. 인간적인 소망이 다 끊어지고 목자로 늙어가던 어느 날, 모세는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서 없어지지 않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광야에서 평생 보지 못한 신비로운 광경이었기에 모세가 그것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갈 때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셨습니다.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엄숙히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임재가 있는 곳이기에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이 엄숙한 만남을 통해 모세는 "이제 애굽으로 돌아가서 고통받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오라"는 엄청난 민족적 소명을 부여받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고 홍해를 건너 신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는 위대한 역사를 이룹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극히 중대하고 거룩한 사명을 부여하실 때'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에 나오는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시는 음성입니다. 기도로 태어난 귀한 아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서원대로 어릴 때부터 엘리 제사장 수하의 성소에서 자라며 봉사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린 사무엘이 잠자리에 누웠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잠결에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부른 줄 알고 달려가 "제사장님, 저를 부르셨나이까" 물었습니다. 엘리는 "내가 부르지 않았다, 가서 자거라"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자 엘리 제사장은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부르시는 줄을 깨닫고, "다시 너를 부르시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후 여호와께서 다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연거푸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이 배운 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응답하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시고 엘리 가문의 몰락과 이스라엘에 임할 중대한 미래의 예언을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소년일지라도 '미래의 엄숙한 역사적 사건을 예고하시고 계시하실 때' 다정하면서도 뚜렷하게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한나가 어린 자식을 제사장에게 눈물로 위탁하여 성소에서 자라나게 하던 아름다운 믿음의 배경 속에서 일어난 위대한 사건입니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닌 도성 아리엘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이사야 29장 1절에 나오는 아리엘아, 아리엘아 하시는 탄식입니다. '아리엘(Ariel)'은 '하나님의 사자(Lion of God)'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거룩한 도성인 '예수살렘'을 가리키는 영광스러운 애칭이자 별명입니다. 왕과 제사장,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위대한 도성이었지만, 그 백성들은 허울 좋은 종교적 의식만 반복할 뿐 하나님의 말씀에는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죄악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매우 슬프고 애통한 마음으로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쳤던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해마다 절기법에 따라 성전에 와서 겉치레 제사를 지낼지라도, 내면의 변화가 없다면 공의의 법에 따라 이 거룩한 도성에 징계의 재앙을 내려 괴롭게 할 수밖에 없다는 아버지의 아픈 한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이 배반의 길을 걸어갈 때 '애통함으로 한탄하시는 순간'에 그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이제 신약 성경으로 넘어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신 대표적인 5가지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실 때나 땅에 계실 때나 이름을 두 번 연거푸 부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습관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여섯 번째로,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르다야, 마르다야 하시는 음성입니다. 나사로의 두 누이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예수님 일행이 방문하셨습니다. 언니인 마르다는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자 부엌에서 분주하게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언니의 분주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예수님의 발치에 단정히 앉아 들려주시는 말씀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귀담아듣고 있었습니다. 혼자 일을 하느라 마음이 분주하고 짜증이 났던 마르다는 예수님께 나아가 시비조로 말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때 주께서 인자하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손님 대접을 위해 음식을 여러 가지 차리느라 스스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고 단 한 가지만으로 족하니, 영혼의 양식을 먹기 위해 집중하는 마리아의 영적 선택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말라는 다정한 타이름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겉으로 좋은 봉사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마음의 평안을 잃고 남을 정죄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조급해하며 불필요한 간섭을 하려 할 때', 부드럽게 타일러 깨닫게 하시고자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일곱 번째로, 예수님은 수제자 시몬 베드로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나오는 시몬아, 시몬아 하시는 음성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언제나 앞장서서 큰소리치기를 좋아했던 열정적인 제자였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다른 제자들은 다 주를 버릴지언정 자신은 죽는 데까지도 함께 가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연약한 인간적 한계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처절하게 부인하고 배반할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애틋하고 염려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그의 본명인 시몬을 부르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혹독한 시험이 너희에게 닥쳐올 것이나 내 기도로 인해 너희가 완전히 파멸되지 않을 것이니,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고 회개하여 돌이킨 후에는 낙심한 다른 형제들을 격려하고 굳게 세워주는 참된 지도자가 되라는 예언적 당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가 시험에 빠져 넘어질 것이 우려되는 '심히 염려스럽고 안타까운 순간'에 그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 뜰에서 한 미천한 여종이 "너도 예수의 당이라" 다그칠 때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를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때 새벽닭이 꼬끼오 하고 울었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 밖에 나가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 시온산 밑 가야바의 집터 옆에는 베드로의 회개를 기념하는 '닭울음 교회(갈리칸투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성전 뜰 조형물에는 닭과 베드로, 그리고 그를 다그치던 여종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아픈 실패를 통과한 베드로는 훗날 로마에까지 가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기까지 교회의 위대한 기둥으로 사명을 다했습니다.
여덟 번째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을 향해 두 번 외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는 절규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의 마지막 시기에 감람산 언덕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셨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헤롯 성전이 빛나고 종교적 열기로 가득해 보였으나, 정작 그 내면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영적 눈먼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다가올 도성의 참혹한 파멸을 미리 내다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구약 시대의 '아리엘' 한탄과 일맥상통하는 음성입니다. 품어주려 해도 품에 들어오기를 거절하고 끝내 배신의 길을 걸어가는 완악한 백성들을 바라보시며 '사랑의 거절로 인해 가슴 찢어지는 비통한 눈물을 흘리실 때', 예수님은 그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아홉 번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나오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는 부르짖음입니다. 제구시(오후 3시)쯤 되어 온 땅에 어둠이 짙게 깔렸을 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신 채 죄의 형벌인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라는 영혼의 극심한 고통 통증을 겪으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고통의 극치 속에서 크게 소리 질러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비록 이 외침은 구약 시편 22편 1절에 기록된 다윗의 메시아적 예언 시를 인용한 기도의 표현이지만, 성부 하나님과 단 한 순간도 끊어진 적 없던 성자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자리에 서서 철저히 버림받는 분리의 고통을 겪으시며 터뜨리신 절규였습니다. 이처럼 '생명이 끊어지는 극심한 고통과 영적 단절의 순간'에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열번째로,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도 지상에 있던 박해자 사울의 이름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사울아, 사울아 하시는 하늘의 음성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은 기독교인들을 말살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 착각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들고 시리아 다메섹에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 잡아다 처형하려고 기세등등하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다메섹 도성에 거의 다다랐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강력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말을 타고 가던 사울은 그 자리에서 땅에 거꾸러졌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큰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셨습니다. 사울이 두려움에 떨며 "주여 누구시니이까" 묻자 대답하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당신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이 겪는 핍박을 자신의 고통과 완벽하게 동일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회를 잔멸하려 폭주하는 사울을 멈춰 세우시고 눈을 멀게 하신 뒤, 사흘 동안 다메섹의 직가(Straight Street)라는 거리에서 아나니아 선지자를 만나 안수 기도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강력한 부르심을 통해 박해자 사울은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사도 바울로 완전히 변화되어 초기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교회가 핍박을 당할 때, 그리고 '죄인이 파멸의 길로 폭주하는 것을 강력히 멈춰 세우고자 하실 때' 그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우리는 이처럼 구약에서 5번, 신약에서 5번, 성경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인간의 이름을 특별히 '두 번씩 연거푸 부르신' 10가지 대표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여기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매우 특별한 마음의 동기와 영적 타이밍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고대 성경의 인물들을 두 번씩 부르셨던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혹은 사명을 잃고 릇된 길로 폭주하려 할 때, 주님은 우리의 귀가 아닌 '마음의 귀'를 향해 여전히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두 번씩 연거푸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를 바른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애타게 부르시는 그 자비로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실 때마다, 옛 어린 사무엘처럼 마음의 무릎을 꿇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신실하게 응답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두 번씩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의미 연구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오늘의 이 배움이 여러분 모두의 확고한 영적 확신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유익한 성경 어휘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