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어의 종류로는 먹장어류·아귀목·농어목·대구목·연어목·이아푸스류·뱀장어목·은상어류·돔발상어류 등 약 1,300종이 있다. 특히, 포리아칸토노투스류와 세토스토마류인 어류는 심해에서만 살고 있다. 심해어들이 사는 환경은 수압이 매우 높고 빛의 양이 적거나 아예 없으며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의 적응 방식을 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적응 방식은 체색적응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해에 서식하므로 체색은 매우 밝은색 계통이다. 예를 들어 멜라노세투스(Melanocetus)란 이름의 아귀류는 붉은색의 체색으로 빛이 없는 세계에 적응하고 있다. 심해새우나 게와 같은 갑각류도 체색이 붉은색이다. 대부분의 심해어들은 몸에 매우 잘 발달된 발광기관을 가지는데, 이 발광기관은 발광세포, 집광세포, 색 조절기, 조리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광기관은 종간의 인식과 무리짓기나 짝짓기에 이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해어 중에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위가 상당히 큰 것도 있다. 사코파린크스(Saccopharynx)라는 심해어는 엄청나게 큰 입으로 자신보다 큰 먹이를 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위의 크기가 몸길이의 절반에 가까워서 한 번 먹이를 먹으면 오랜 기간 동안 먹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적응되었다. 또 이들은 몸의 크기에 비해 큰 눈을 가진다. 그 이유는 빛이 약하게 있는 곳에서 빛들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사는 종은 아예 눈이 없는 것들도 있다. 심해어의 또다른 특징은 입이 매우 크고 안으로 구부러진 강한 이를 가진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한 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적응된 것이다. 또 입이 위쪽으로 향해 발달해 있는데, 그 이유는 심해에서는 먹이가 위쪽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심해어 [deep sea fish, 深海魚] _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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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지 한 달이 되던 날, 관리자인 b는 커피나 한잔 하자며 나를 따로 불렀다. 막상 가보니 하자는 커피는 없었고, 난데없는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 출신이 전라도, 그것도 광주 및 그 인근이라는 것과, 부모는 현대판 火田民 비슷한 사람들이며, 나는 소위 ‘지잡대’를 나왔고, 그 이름을 발설해봤자 한 번에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없는 비인기 희소학과에서 학사도 모자라 석사까지 하며 세월을 허송했음을 담담히 말했다. 입사 전 면접자리에서부터 껄끄러운 눈과 가시 박힌 말투로 나를 유독 차갑게 대하던 b에게, 나는 ‘그냥 잡아 잡수라’며 작심하고 모든 惡手를 한꺼번에 다 둔 셈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이의 얼굴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수줍은 ‘우윷빛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스치더니, 자신의 ‘출신성분’이 나의 그것과 몹시도 비슷한 처지임을 ‘고백’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이 회사에는 내가 아는 한, ‘전라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대놓고 전라도 출신임을 밝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고 해야 옳겠다. 이런 상황에서 b의 은밀한 고백은 그러므로 큰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였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게 흠이 되는 세상이 더는 아닐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득이 될 것도 없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어느 날 갑자기 전라남도 해남 산골마을로 피난 가듯 떠난 뒤로 이십여 년을 전라도 이곳저곳에서 살고 나서, 또 한 몇 년은 국경 너머의 이곳저곳을 떠돌다 다시 서울에 들어앉게 된 나로서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옅은 편이지만, 그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외부자의 호기심을 넘어선 정도로 깊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 땅에서 길게 살아버렸지 않은가 말이다.
오늘은, 목욕을 하다가 (이상하리만치 이상한 생각은 목욕통에서 자주 떠오른다) 한 생각이, 아니, 차라리 한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심해어(深海魚)’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전라도 사람들, 특히 남도 사람들의 어떠함은 바로 심해어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샤워줄기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기막힌 압력 속에 상시 노출 된 곳, 산소가 부족한 곳, 빛이 없는 곳, 먹이가 적은 곳.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전라도 땅이라는 사회적으로 深海化된 환경에마저 인간은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전라도 사람들이 지닌 그 특유의 음색과 발성을 나는 심해어의 발광기관이나 큰 입, 그리고 강한 이빨에 견주어 본다. 심해어는 “또 입이 위쪽으로 향해 발달해 있는데, 그 이유는 심해에서는 먹이가 위쪽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라는 점은, 먼 옛날 전라도 땅 가운데서도 ‘막장’으로, 가령 보길도 같은 섬으로 유배 온 이들에게 만연해 있었을 법한 ‘혹약(或躍)’의 심리가 사회저변에 일반화될 수밖에 없었을 전라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지침이 된다 하겠다.
몸에 비해 큰 눈과 위를 지닌 심해 생명체의 어떠함까지를 전라도 살이에 부과된 고단함에서 발생한 적응방식의 일환으로 굳이 끌어당기자니, 긴 세월 전라도 땅에서 애증의 더부살이를 했던 나의 신세가 더 처량히 질 듯 하며, 그리는 못할 노릇이다. 深海라는 전라도와 深海魚라는 전라도 사람들에 대하여 구구절절 말할이 많지만, 그만 두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지 싶다. 나 역시, ‘리아칸토노투스’류나 ‘세토스토마’류와 같이, 괴이한 라벨이 아가미 언저리에 큼직하게 붙어있는 '특수어류'에 속해 버린 인간으로서, 심해어의 사정을 사람의 언어로 설명하기가 이쯤에서는 그저 막막하다.
스물 몇 살 때, 주소를 전남 가거도, 소위 소흑산도로 옮긴 적이 있었다. 눈을 뜨면 더는 갈 곳 없는 해안선에 포위된 처지임를 깨닫고 하는 수없이 산꼭대기로 절로 걸음이 향해지던 그곳에는, 나는 장판처럼 잔잔히 펼쳐진 너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산기슭에 주저앉아 이웃 섬인 흑산도에 계셨던 손암(巽庵) 정약전 선생을 종종 떠올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서적’이라는 메마른 설명구를 달게 된 자산어보(玆山魚譜)가, 실은 전라도 끝자락에서 태어나 그곳의 거친 자연과 생활을 묵묵히 감당해야만 했던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생활양식을 꼼꼼히 매만진 우리나라 최초의,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유일의 ‘인문적 전라도 체험/관찰기’인지도 모른다. 손암 선생이라면, 그곳의 ‘물고기’와 그곳의 ‘사람들’이 둘이 아님을 분명 꿰뚫어 보셨을 것이다. 그랬기에, 배소(配所)에 갇힌 이의 통렬함보다 더한 운명을 별스럽지 않게 살아내는 이들의 삶에, 그네들과 꼭 닮아 있는 그곳의 ‘바닷것’의 특수한 생태를 통해, 깊이 다가가고자 하셨을 것이다.
오늘도 나의 관리자 b의 어색한 서울말이 어깨 너머로 들린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도 차마 손에 잡힌다. 광명천지 ‘서울’에 입성해 수십년 세월을 보내버린 당신이건만, 어느 깊은 바다 속을 아직도 헤매고 계신 것일까. 나는 소리없이 b를 향해 묻는다. 순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어둑하던 내 눈앞이 다 환하다.
오, 그대, 서울살이 深海魚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