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1896)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은 182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복음주의 운동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아일랜드교회의 영국 성공회 성직자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를 중심으로 교파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진 성공회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영국 플리머스에 본부를 둔 새로운 형제단을 조직하였습니다. 플리머스 형제단은 성서 제일주의, 중생, 기성교단 조직체계 철폐, 무기명 헌금, 매주일 성찬식 거행, 침례 등 보수적인 기독교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896년 12월, 플리머스 형제단 “느리마츠”(1863~1921)가 입국하여 경기도 수원을 중심으로 “기독동신회”를 조직해 플리머스 형제단을 소개하였습니다.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형제단 선교사는 “매카피”(Wilbur Thompson McAfee,1917~2009) 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농장경영을 겸직하며 한국 농촌계몽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매카피는 “남사중학교”를 설립하고 경기도 마송군 오산읍에 “오산기독병원”을 설립하였으며, 1974년에는 경기도 사후동에 “무료요양소”를 설립하여 결핵환자와 지체장애인들을 치료하였습니다.
1961년, 매카피는 경남 거창 장팔리에 12명으로 시작된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후 주변을 중심으로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형제단 교회를 전파하였습니다. 1963년, 경기도 평택으로 이주하여 사후동에 “선교학교”를 설립하여 청년중심으로 성경교육을 한 후, 이들을 농촌운동과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1965년, 미국으로부터 “한국 엠마오성경통신학교”를 인가받은 메카피는 문서선교사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1968년에는 미국의 선교기관인 “CMML”(Christian Missions In Many Lands, Inc.)의 지원으로 의료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1979년, 한국선교의 지도자인 매카피는 병환으로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2009년 생을 마감하기 까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에드윈 제임스”(Edwin Arthur James, 1912~1988) 형제단 선교사는 웨일즈 북부 뱅고(BangorCity)시 센터럴홀(Central Hall)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중 1962년, 부산에 도착하여 매카피와 함께 경남 거창에서 사역한 후 8월에 상경, 10월 부평지역 청년들과 함께 “노량진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제임스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대형천막과 조립식의자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여 트럭에 싣고 다니며 전국 순회집회를 하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신앙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 가려는 제임스 선교사의 노력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플리머스 형제단은 자비량선교를 통하여 맨투맨 전도를 하였습니다. 이로서 1961년, 거창과 서울을 시작으로 서울 39개, 강원 11개, 경기 60개, 충청도 25개, 전라남북도 44개, 부산경남북 47개, 제주 4개 등 230개(2014년)의 형제단 교회가 설립되었고, 1990년 이후, 중국,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네팔, 몽골, 호주, 필리핀, 동티모르, 남아공화국, 파라과이, 인도네시아 등지에 29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또한 GNTV를 통하여 방송선교 활동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