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Vanishing Point 消失点
원근법은 멀고 가까운 것과 깊이를 표현하는 기하학적 방법이며 소실점은 선과 선이 만나면서 무한으로 사라지는 가장 먼 지점이다. 회화에서 소실점은 화면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화면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점이다. 소실점을 기준으로 표현가능성과 표현불가능성이 나뉜다. 소실점은 주로 회화에서 쓰인다. 회화의 소실점을 사영기하학에서는 무한원점(point of infinity, 無限遠點)이라고 한다. 무한원점은 무한의 어떤 장소에서 평행선이 만난다고 가정한 점이다. 그러면 선은 긴 타원으로 표시될 수 있다. 무한원점은 실제가 아닌 가상의 점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 반면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에서는 평행선이 만나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 가상의 지점을 무한원점이라고 한다. 가령 철로의 무한원점은 멀어질수록 간격이 좁아지면서 합친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점이다.
소실점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이 사라지는 것으로 인지할 뿐이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철로의 먼 곳을 어떻게 그릴까? 소실점에 답이 있다. 화가들은 먼 곳을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시력은 수평선[지평선]에서도 4km를 넘기 어렵다. 4km가 넘는 직선 철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철로의 끝을 만나는 것으로 표현한다. 철로가 놓인 현실은 가로 x, 세로 y, 높이 z의 3차원 공간이다. 이 3차원 공간을 평면 2차원으로 그리려면 입체감, 공간감,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이 소실점을 설정하는 것이다. 수평선과 소실점을 기준으로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다면, 3차원 현실을 2차원 평면에서 그릴 수 있다. 이것을 확인하려면 모눈종이와 같은 격자창[image plane]을 세워놓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면 된다.
격자창에서 모사하면 가까운 곳과 먼 곳은 비율에 따라 크기가 조절된다. 먼 곳의 사물은 소실점에서 사라진다. 이런 방법을 투시도법이라고 한다. 투시도는 공간을 통일하고 조화와 균형을 가능케 한다. 원근과 소실점을 그리는 방법으로는 1점 투시법, 2점 투시법, 3점 투시법이 있다. ①1점 투시는 시점 하나로 사물을 보는 것이며 소실점은 하나다. ②2점 투시는 수평의 일직선에 위치하는 시점 1과 시점 2로 사물을 보는 것이며 소실점은 둘이다. ③3점 투시는 2점 투시와 함께 위에서 보는 조감법(bird eye’s view)이나 아래에서 보는 충관법(worm’s view)으로 보는 것이며 소실점은 셋이다. 그러니까 소실점은 인간의 눈이 인지하는 공간표현방법이다. 소실점이 없으면 기하학적으로는 기형이 된다. 소실점은 수평선(horizon)과 함께 이해될 필요가 있다. 수평선은 천문학적 수평선, 실제 수평선, 가시적 수평선으로 나뉜다.
수평선은 관측자의 시선에서 고도 0도의 지표 좌표를 말한다. 수평선은 천공(Zenith)과 직각일 때 안정감과 균형감을 준다. 또한 수평선은 중력의 작용 방향과도 직각이다. 수평선에서는 바다[땅]과 하늘이 만난다. 인간은 수평선의 어느 지점까지 볼 수 있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볼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수평선 위에 있는 소실점이다. 그러나 소실점에 가 보면 사물은 실제 크기로 존재한다. 이것을 화면에서는 흐릿하게 표현하거나 만나는 것으로 표현하여 사라지는 것으로 처리한다. 소실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다. 사진의 조리개는 멀고 가까운 것을 조절한다. 그리고 렌즈는 비율 그대로 상평면(image plane)에 재현한다. 이것이 파인더인데 인간의 망막과 같은 기능을 한다. 그래서 작은 사진에도 원근과 길이는 정확하게 표현된다. 그것은 사진이 거리에 따른 비율 단축(foreshortening)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원근표현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원근법의 핵심인 소실점을 체계화한 것을 브루넬레스키다. 브루넬레스키(P. Brunelleschi, 1377~1446)가 소실점을 설정하여 원근을 체계화했고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는 소실점을 설정하여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성 삼위일체>를 그렸다. 이것이 정중앙 1점 투시의 표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는 소실점을 선원근법과 색원근법을 반영한 명작이다. 소실점은 르네상스의 회화, 건축, 조각을 풍부하게 한 기법이었다. 소실점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네덜란드의 화가 호베마(M. Hobbema, 1638~1709)가 그린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 길(The Avenue, Mīddelharmīs)>이다. 이 작품을 보면 가까이 있는 나무는 크게, 멀리 있는 나무는 작게 보인다. 그리고 넓은 길은 멀어지면서 한 점으로 합쳐지는 것과 동시에 사라진다. 이 작품은 기하학적 투시도와 소실점을 통한 원근을 살린 명작이다.(김승환)
*참고문헌 Leon Battista Alberti, On Painting, edited and translated by Rocco Sinisgalli, (Cambridge University Press, New York, 2011).
*참조 <르네상스>, <무한>, <미/아름다움>, <미학⦁예술철학>, <빛>, <순수예술>, <예술>, <예술가>, <예술지상주의>, <원근법>, <유미주의>, <투시도법>, <판단력비판-미(美)란 무엇인가?>, <표현>, <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