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계족산, 식장산
1. 일자: 2023. 1. 23 (토)
2. 산: 계족산(419m), 식장산(598m)
3. 행로와 시간
[계족산 : 장동산림욕장(09:12) ~ (정자쉼터) ~ 계족산성(10:00~28) ~ 성재산(399m) ~ 임도 5거리(11:03) ~ 계족산(11:23) ~ 용화사 저수지(12:00) / 8.04km]
식장산 : 송담추어탕(12:50) ~ 식장산(13:59) ~ (세천계곡) ~ 도로 갈림(14:12) ~ 세천저수지(15:03) ~ 세천공원(15:10) / 6.75km]
< 계족산, 식장산 산행을 준비하며 >
대전의 보만식계 종주는 기회가 되면 도전할 곳으로 갈무리 해 둔 산행지다. 오늘은 그 중 식장산과 계족산 두 산을 찾는다.
계족산은 산성을 품은 400m급 산으로, 정상에 서면 서쪽의 계룡산 암봉들, 북쪽의 유성, 서남쪽으로 대전시내와 경부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보이고, 동쪽으로는 대청호 주변의 산들과 호수의 조망이 볼만하다 한다. 정상인 봉화정과 남동쪽 원형능선을 따라 3km 거리인 계족산성이 있다. 6년 전에도 장동산림욕장을 들머리로 산성과 성재산을 거쳐 올랐었고, 그때는 산림욕장으로 내려왔는데 이번은 용화사로 하산한다. 7.5km 넉넉잡아 3시간의 산행이 예상된다.
식장산은 대전 동쪽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정상에서 독수리봉~국사봉~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다. 백제가 성을 쌓고, 군량미를 저장하고 신라와 대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이 기록을 근거로 식장산으로 불렀다 한다. 시장산은 특히 산림청이 집계한 국내 4,440개 산 중에서 먹을식(食) 자가 들어 간 유일한 곳이라 한다. 흥미롭다. 식장산은 처음이다. 산악회에서는 6.9km 거리에 3시간을 예상한다.
< 희망사항 >
1일 2산이다. 작년 설날에도 고덕산과 갑하산 산행을 했으니 2탄이다. 계족산과 식장산 모두 산림청 지정 200대 명산이다. 200대 명산 산행지가 하나 둘 쌓여간다. 반가운 일이다.
계족산은 인연이 있는 산이다. 계족산성에서 내려다 보는 대청호의 풍경이 그윽한 곳이다. 식장산과는 처음 연을 맺는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따듯하던 날씨가 설을 앞두고부터 추워지고 있다. 꽁꽁 언 그러나 청명한 겨울 산행을 기대한다.
< 대전 가는 길에 >
설이 지났다. 긴 기다림도 무색하게 차례 지내고 떡국 먹고 이내 집으로 향하게 된다. 명절의 만남도 의례도 예전과는 다르게 단출하게 변해가고 있나 보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명절 연휴에도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다. 예정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들머리에 도착했다. 눈에 익은 장동산림욕장을 알리는 문주가 반가웠다.
< 계족산 산행 >
황토로 길게 단장한 산림욕장 길을 따라 걷는다. 길 따라 늘어선 키 큰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푸른 계절에 오면 이 길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힐링이겠다. 나무 데크와 긴 계단을 지나 임도 갈림에 선다. 임도 따라 트레킹로가 원형으로 이어지나 보다. 계단을 치고 올라 계족산성으로 향한다. 잠시 후 커다란 성벽과 마주한다. 올려다 본 하늘이 무척 시원하다.
높다란 성벽이 경사를 이루며 낮아진 곳에서 올려다 보는 풍경에는 키 큰 소나무와 젊은 연인의 모습이 잡힌다. 그 뒤로는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멋지고 시원한 풍경에 반한다. 삼각대를 세우고 홀로 사진 몇 컷을 찍고는 성곽 정상으로 오른다. 너른 광장이 펼쳐진다. 멀리 대청호가 얼굴을 내민다. 커다란 산들이 파노라마 치며 먼 풍경을 만든다. 화려한 풍광에 취한다. 이 맛에 산에 오른다.
계족산이 명산 반열에 오른 이유는 바로 이 계족산성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화려함 때문이리라. 산과 호수와 마을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의 다이나믹이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성곽 끝 모퉁이에서 바라보는 대전 시가지 풍경도 시원하다. 보고 가다 또 멈추고 또 보고를 반복한다. 흐리고 바람이 세다는 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따스하다. 복 받은 날이다.
30여분 꿈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성재봉으로 향한다. 길이 나뉜다. 정자와 전망대가 있는 길로 들어섰으나 웃자란 나무 탓으로 풍경은 없다. 성재봉은 399m의 봉우리로 사방이 확 트인 길가 봉우리였다. 성재봉을 내려서니 5거리 갈림이 등장한다. 길이 어지럽게 나뉜다. 계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트레킹로와 산길이 한참동안 병존한다. 산길을 택해 정상에 선다. 정상석 뒤편으로 지나온 계족산성의 성곽이 선명하다. 인증 사진을 찍고는 뒤편에 있는 정자에 선다. 정상보다는 이 봉화정이 더 유명한 것 같다. 정자에 오르니 대전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밭이란 말이 실감난다.
용화사로 향하는 하산 길로 내려선다. 초반에는 분명하던 길이 지도를 보며 지름길로 들어서자 희미해지고 거칠어진다. 낙엽으로 등로가 사라진 곳이 여럿이다. 게다가 돌 비탈이 심하다. 어렵게 험로를 내려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너른 임도와 만난다. 그 밑이 용화사였고 도로를 따라 좀더 내려서니 방죽 밑에 주차장이 있었다.
시간과 거리가 예상보다 길었다.
< 식장산 산행 >
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한 후 대전 중구 옥계동에서 산행은 다시 시작된다. 신호등을 건너 마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 산에 들어선다. 대장과 일부 일행들은 고산사를 들려 오겠다 한다. 망설이다 계곡길을 택했다. 길은 희미하고 무척 가팔랐다. 한참을 힘겹게 오르자 고산사 0.2km 이정과 만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절 구경을 하고 올 걸 그랬다. 사라진 길을 만들듯 올라 온 지라 후회가 된다.
식장산은 고도 550m를 이겨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군부대 철탑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지점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정상 부근에 올라도 별 풍경이 없다. 도대체 왜 이 산을 명산이라 하는지 아직까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야경이 좋은 곳이라 하는데 도무지 시야가 트인 장소를 찾을 수도 없다.
만인산으로 향하는 이정이 보인다. 19km, 있으나 마나 한 안내다. 너무 멀다. 그냥 방향만 알려주면 될 일인데…. 어렵사리 정상에 올랐다. 그나마 진짜 정상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인증 샷을 찍은 후 대장이 말한 전망대를 찾아 나선다. 바위 벼랑이 있다. 이정은 없다. 난간에 서니 잠시 너울지는 산과 멀리 마을이 조망된다. 이후 다시 숲길이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그 전망대인가 보다. 실망이다. 그나마 일행들은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친 이곳이 이 산에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터였다.
갈림에서 선다. 좌틀하여 세천공원 쪽으로 방향을 튼다. 거친 돌길을 내려서니 KT통신탑과 만나는 도로가 나타난다. 세천공원까지 남은 거리가 중구난방이다. 3.4km 이정을 지나자 3.9km가 나타난다. 화려한 안내목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산꾼은 원한다. 길 사정도 유명세에 비하면 전혀 정비되지 않은 수준이다. 희미한 등로를 헤치며 내려간다. 세천공원이 얼마나 좋길래 곳곳에 안내판이 있다.
산길이 끝나고 임도와 만난다. 오랜 만에 발 밑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후로는 계속 너른 길이 이어지더니 중간에 작은 저수지를 지난다. 언 호수에 뿌리를 내린 거울나무가 애처롭지만 늠름하기도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겨울나기는 힘겨운가 보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길 그 어디에서도 인상적인 풍광은 없었다. 세천공원은 그저 그런 유원지였다. 허탈했다.
< 에필로그 >
주차장 부근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을 돌아보면 계족산은 기대보다 더 좋았다. 특히 계족산성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명품이었다. 식장산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도대체 산림청은 무슨 기준으로 명산을 선정하는지 의구심 마저 들었다. 특징이 없는 산이다. 보만식계에 대한 로망도 사라진다. 분명 내가 모르는‘한 방’이 있던가 아니면 내가 오를 코스가 아닌 더 좋은 길이 있으리란 생각을 하며 허탈함을 달랜다.
‘오은선의 한걸음’이란 책을 읽고 있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오르는 과정을 냉철한 시각으로 돌아보는 회고록 성격의 책인데, 그 속에 묘사된 일부 산악인들의 정의롭지 못한 행태들로 인하여 논쟁이 일고 있는 책이다. 그들 중 일부는 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라 더욱 시끄럽다. 풍문으로 들었던 고산 등반을 둘러 싼 시기와 갈등과 암투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음 아프면서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미화되지 않은 8000미터 고봉에서의 산악인의 갈등과 좌절과 용기와 성취가 솔직히 기록된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에서의 심리 묘사에 많음을 공감을 했다.
책에는 엄홍길 추천사의 추천사도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건 변하는 인심을 합리화하려 산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오늘 강물은 어제 흐른 강물이 아니지만 산은 변함이 없다. 강은 시간이고 산은 시간의 멈춤이다. 산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모든 걸 품는다. 의연하다. 집념과 의지의 초심을 잃지 않고 욕망과 실패 심지어 편견과 질투까지 받아낸다. 태연하다. 오은선도 산을 닮았다. 작지만 위대한 산. 오은선을 닮은 산 같은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감동적이다. 짧은 글에 많은 울림이 있다. 엄홍길 선배를 다시 보게 한다.
산악인 엄홍길과 오은선의 공통점은 히말라야 14좌를 올랐고 살아 돌아야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행의 완성은 등정이 아니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더욱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