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니스프리
우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 아일랜드에는 걸출한 작가들이 많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만 해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사뮈엘 베케트, 조지 버나드 쇼, 셰이머스 히니 등 넷이나 있을 정도인데요. 특히 예이츠는 아일랜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일 뿐 아니라, 독립운동에 참가했던 민족주의자였으며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상원의원까지 지낸 정치가였습니다. 예이츠가 서른넷이었던 1899년에 발표한 《갈대밭의 바람》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는 시집입니다. 여기에 수록된 〈하늘의 천〉이라는 시는 한국문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 예이츠, 〈하늘의 천〉 겹쳐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애송시 중 첫손에 꼽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 김소월, 〈진달래꽃〉 꿈과 진달래꽃의 차이일 뿐 놀라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예이츠가 〈하늘의 천〉을 썼을 때,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썼을 때, 두 나라 모두 식민통치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시 속의 그대를 독립으로, 꿈과 진달래꽃을 독립을 위해 나갈 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연정을 고백하는 시로 해석해도 무방하지요.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싶은데, 사실은 김소월이 예이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국내에 예이츠의 시를 최초로 번역해서 소개한 사람이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김억이었고, 김억은 김소월의 오산학교 시절부터의 스승이었습니다. 이처럼 한국 서정시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에게 받은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가 하면 흡사 정지용의 〈향수〉를 연상시키는 시가 있습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중에서 이 시로부터 나온 이상향이 ‘이니스프리’, 아일랜드어로 ‘자유의 섬’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 예이츠가 시상을 떠올렸던 곳은 대도시 런던에서였습니다. 런던의 거리를 걷다 어디선가 나지막이 물소리가 들렸는데, 그 물소리가 그동안 잊고 있던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그 추억이란 유년시절에 보았던 호수였고, 그래서 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마지막 구절 예이츠가 대도시 런던의 거리에서 이니스프리를 떠올린 것이 우연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에 그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 소로처럼 자본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자신의 의식주를 손수 해결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이츠가 살고 싶은 곳은 월든이 아니라 이니스프리였지요. 이니스프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이츠는 1865년 아일랜드의 슬라이고(Sligo)에서 태어났고 그의 묘지도 이곳에 있는데, 대서양과 ‘럭 길(Lough Gill)’이라는 이름의 호수 사이에 위치한 항구 마을입니다. ‘럭(Lough)’이 아일랜드 말로 ‘호수’라는 뜻이니 정확한 호수 이름은 ‘길(Gill)’입니다. 길이 8킬로미터, 폭 2킬로미터 크기로 스무 개가량의 무인도가 있고 그중 하나가 ‘이니스프리’입니다. 섬 전체의 둘레가 100미터도 되지 않는 데다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시설도 설치되지 않아, 우리로 치면 한강의 밤섬처럼 초목만 무성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예이츠가 왜 하필이면 이런 작은 무인도에 가서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콩밭을 일구고, 꿀벌 집도 짓고, 밤이나 낮이나 호수의 물이 나지막이 찰랑대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고 했는지 생각해보면, 세계 자본주의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던 런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건물, 너무 많은 차, 너무 많은 사람에 치이고, 소유할 수 없는 돈, 누릴 수 없는 시간, 배신하는 노동 등에 지칠 때 종종 그런 이상향을 꿈꾸는 것처럼. 글 |
첫댓글 공감합니다
공감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선생님..^^
가슴 한가운데에서 짜릿함이 서서히 피어 올라오네요 고맙습니다.^^
마음으로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