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에게 저주하는 자를 위해 축복합니까?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합니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케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우리에게 원수 같이 대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친절하게 대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한 두번 복음을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후나 했었다해도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천국 가는 날까지 그렇게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 4:12)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만이 주인 되심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닫고 내게 원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때 힘들어 주님 앞에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시처럼 나를 찌르던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바탕은 그 사람들이 아닌 그 사람들 배후에 있는 악한영들을 원수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가시처럼 찌르던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습니다. 축복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들보다 옛날에 나는 더 악하고 더 못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21)
하나님 원수인 마귀의 자식이었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말씀에 주리던 우리에게 그분의 살인 생명의 떡을 주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셨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영혼의 목자 되시는 어린양 예수님, 당신의 피와 살을 주셔서 억만 번이나 감사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어떤 사람은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감사는 커녕 오히려 심한 말과 듣도보도 못한 더러운 욕설로 몇 번씩 내게 전화를 해서 퍼부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또 내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사랑했습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27:2)
악을 악으로 갚는 곳에는 사랑이라고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그곳에 성령님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강물처럼 흘러 넘칩니다. 선하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 긍훌과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
둘째, 사랑이 없는 곳에는 분쟁, 시기, 다툼 뿐입니다.
지옥의 속성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지옥의 속성들이 뭡니까? 바로 마귀의 나라가 아닙니까? 천국의 속성들은 하나님 나라 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천국은 사랑리 넘치는 곳입니다. 축복과 평화가 넘칩니다.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셋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성령으러 기뻐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게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 10:21-24)
우리는 모두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복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하자 성령님 때문에 기뻐 뛰며 춤추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활짝 열아 전에 보지 못한 성령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 만큼 내 인생의 기쁨과 행복과 만족이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담아 얼마 전에 시 한편을 썼습니디.
찬양 속에 거하는 삶
엉키고 설킨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인 내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성령님의 은혜를 어떻게 잊으리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복음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나는 복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여,
춤추며 기뻐 뛰며 찬양하고 당신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며 엎드리는
저를 보십니다. 이 삶이 제가 사는 한없는 기쁨과 행복입니다.
영원히 나의 주님만 불꽃 튀기게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