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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9장 1절로 11절 블레셋 왕이 다윗을 전투에 참여치 못하게 함.
전 시간에는, 다윗이 블레셋 왕에게로 망명한 것과,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이게 점하려 찾아간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2. 오늘은, 블레셋 군대가 다윗 장군을 앞세우고, 사울왕국을 침략하는데, 블레셋 장군들이 다윗이 배반할까 두렵다고 다윗을 전투부대에서 내보내라고 하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블레셋 왕이 다윗을 전투에 참여치 못하게 함>입니다.
4. 성경 순서대로 말씀드리면서,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1.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블레셋 나라는 다섯 도시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의 왕을 뽑아서 연합체제로 다스리는 전형적인 도시 국가였습니다.
이 다섯 도시는 가드,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이었고 (수 13:3), 당시 연합 도시 국가의 대표적인 왕은 가드 왕 아기스였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도시 국가의 통치자들이 각각 군사들을 모집해서 아벡이란 곳으로 집결했다는 말입니다.
2.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이스르엘이란 헬라식 이름으로는 <에스드렐론>이란 곳으로서 비옥하고 넓은 평원이고 이곳에서는 곡식들과 꽃들이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넓은 평원에서 언제나 전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아인 잘루드'(골리앗의 샘)이란 샘이 있습니다.
3.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합류하니까, 블레셋 군대가 사울 왕국을 치려고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있어야 하는데, 마귀 섬기는 원수 나라에 가 있는 것이,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일군들이 교회에 있어야지, 이단들의 집회소에 가 있다든지, 귀신 섬기는 무당집에 가 있으면, 마귀가 그런 중직자를 이용해서 교회를 치려고 덤벼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2절.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1.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세렌)이란 다섯 도시 국가의 통치자들을 가리키며, 다른 곳에서는 방백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5:8,11; 6:4,12,18; 7:7).
2. 이 다섯 도시 국가의 통치자들이 군사들을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갔다는 것은 당시 블레셋 군대가 조직이 잘 되었고 통치체제가 잘 갖추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3. 다윗의 군사들은 당시 5대 도시 국가의 왕인 아기스 왕을 호위하는 호위대장으로 참전하고 있었습니다.
4.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해야 할 다윗이 원수 블레셋 군대와 함께 이스라엘을 치러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5. 이 때, 다윗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야 합니다.
즉, <아기스 왕이여, 저는 못 갑니다. 제가 제 동족을 어찌 칠 수가 있겠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전에 다윗이 아기스 왕에게 <제가 유다 남방을 침략하고 왔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거짓말한 죄가 불어나서, 이제는 아기스왕에게 꼼짝 못하고, 다윗이 자기 백성 치는 전쟁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6. 그러므로, 성도들은 불신자들 앞에서 신앙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주일날 함께 놀러가자고 해도,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일날은 함께 놀러가지 못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먹으라고 해도, <저는 교회 집사이므로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사이다를 마시겠습니다>.
친척 어른들이 <제사 상 앞에 절하라>고 해도, <저는 예수 믿기 때문에, 귀신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해야지, 돌아가신 후에 제사 같은 것은 소용 없습니다>라고 확실한 태도를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예수 믿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어정쩡하게 술 잔을 받아놓았다가는, 계속 술 한 잔 더 하라고 강요를 당합니다.
성경에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들 앞에서 신앙적 태도를 분명히 밝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성령님과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예화>
제가 잘 아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장로님은 고위 공직자로서 은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과 어디를 함께 가면, 슈퍼에서고 식당에서고 <저는 어디 교회 아무개 장로입니다>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함께 간 사람이 참 이상하게 생각이 듭니다.
<아니, 장로님,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왜 저는 아무개 장로입니다 하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어린애 같이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그런데요, 그 장로님은 참으로 지혜로운 처신을 하신 겁니다.
즉, 어디가나 자신이 어디 교회 아무개 장로라는 것을 밝히기 때문에, 누가 술을 권하지도 않고, 엉뚱한 데 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장로님이 참 지혜로우신 처신을 하시는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예화>
옛날 선배들에게 들은 말입니다.
지금은 다방 출입이 죄라고 아무도 생각지 않지만, 40-50년전만 해도, 목사나 장로님이 다방을 출입하면,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장로님이 추운 겨울에 심방을 갔다가, 차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다방에 들어갔답니다.
각 집에는 텔레비도 많이 없던 시절이라서 다방에 가면 텔레비도 보려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장로님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려고, 서로 짜기를 목사님은 사장님, 장로님은 과장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한참 다방 안에서 몸을 녹이면서, 사장님 과장님 하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다방에 안수집사님이 들어오더랍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집사님을 먼저 보고 <어이 이 계장 이리와>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집사님이 어리둥절해서, <아니 목사님 장로님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아무리 장로님이 <이 계장> 하면서, 입을 막으려고 해도, 집사님은 더 큰 소리로 <장로님 왜 이러세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장로님이 홍당무가 되어서, 얼른 다방을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신분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3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1.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군사들을 <이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호칭한 것은 다윗의 군사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처럼 블레셋 군대의 장수들이 다윗과 그 군사들을 보고,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따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아기스 왕이 블레셋 장수들에게 <다윗이 나와 함께 몇 년을 있었지만, 다윗의 허물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2. 아기스 왕이 다윗을 가리켜서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라고 호칭한 것은 당시에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핍박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사울왕의 핍박을 못 이겨서 자신 아기스에게로 망명해 왔음을 강조하고 있는 말입니다.
3. 그가 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아기스 왕은 다윗이 아기스 밑에 있는 지가 <여러 날 여러 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1년 4개월이었습니다(27:7).
그런데 아기스는 여러 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4.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다윗은 원수 나라 왕 아기스에게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치밀하게 충성했습니다.
즉 다윗은 실상 아기스를 속이고 ‘그술, 기르스, 아말렉’ 에 대해서 약탈행위와 살인행위를 저질렀지만, 아기스가 보는 데서는 아무런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이처럼 믿는 성도가 불신자에게 허물이 없다고 평가 받는 일은 대단히 칭찬 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래야 전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튼 아기스는 6절에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할 정도로 다윗을 통해서 여호와의 종교에 대해서 호의적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침략하러 가는 것을 보아서 참된 여호와 신앙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스 왕은 다윗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선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을 사실입니다.
5. 이처럼 아기스 왕은 다윗이 허물이 없었다고 했지만,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6. 요셉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요셉이 애굽나라 군대장관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도, 그 주인은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창세기 39장 3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감옥에 갔을 때도, 그 옥사장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창세기 39장 23절.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결국 애굽의 왕도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41장 38-39절.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7. 다니엘도 바벨론 왕이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다니엘 2장 47절.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8. 그런데, 블레셋 왕 아기스는 다윗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나 다니엘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당대 사람들이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다윗이 블레셋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블레셋 왕 아기스는 다윗에게 허물이 없다고 인간적인 칭찬만 했지,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노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세상 불신자들이 성도님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봅니까?
아무쪼록, 세상 사람들이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보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1. 여기서 '방백'이라는 단어(사르)는 '군주, 우두머리, 지휘관'의 뜻으로서, 왕보다는 낮은 계급의 소유자를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창 12:15; 출 1:11; 삼하 2:8).
이처럼 블레셋 나라는 다섯 도시 국가의 통치자들의 연방체제로 운영되었고, 그 중에서 아기스은 대표적이 왕이었습니다(6:4,16;수 13:3;삿 3:3).
그러나 의사 결정은 이 다섯 통치자들의 회의에서 결의해야 시행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섯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을 반대하면 다윗은 참전할 수 없었습니다.
2. 다섯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윗이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블레셋 방백들의 머리를 자름으로써 사울왕과 화해할 것이란 추측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전에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기 위해서(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이백을 그에게 바친 일이 있었습니다(18:27).
이처럼 다섯 방백들은 아기스 왕과는 달리 다윗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방백들의 말이 옳을 것입니다.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 다윗은 이스라엘 군사들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태도를 돌변해서 블레셋 군을 쳐부수게 될 것입니다.
3. 다윗이 지금까지 아기스 왕은 속여 먹었으나, 블레셋 방백들은 속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즉, 다윗의 진실을 그 방백들이 파악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에서 이중생활을 하면, 들통이 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4장에는, 말을 하거나 봉사할 때,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4. 한편 이 때,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가 아니었더라면, 다윗은 전쟁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다윗은 후일에 이스라엘 왕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와 책망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라도, 다윗은 깨닫고 회개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말렉 군대에게 가족을 모두 빼앗기고서야 정신이 번쩍 나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30장)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이 성도님들 책망하고 욕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달으라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5. 다윗은 시므이의 터무니 없는 주저를 듣고서,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시므이가 나를 주저할 수 없다고 겸손히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10절. 왕이 가로되....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아무쪼록, 사람들에게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라도, 겸손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1. 블레셋 방백들은 말을 계속하면서, <이스라엘 여인들이 춤추면서 노래하기를,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를 만만이로다’고 노래했던 바로 그 다윗이 아닙니까?> 라고, 대들었습니다.
즉, 사무엘상 17장에서 본 대로, 과거에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이스라엘 여인들이 개선장군 다윗을 환영하던 바로 그 장본인이 지금 여기 서 있는 다윗이 아니냐고 따져 물은 것입니다.
이전에도 21장에서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혼자서 블레셋으로 망명하러 갔을 때, 아기스 왕의 부하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이 말을 했을 때 아기스 왕은 부하들의 이 말을 듣고 다윗의 망명을 의심했던 것입니다(21:12).
그래서 다윗은 미친 체 해서 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도망쳐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이란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간이 얼마나 콩알 만해졌겠습니까?
2. 바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않고, 이중생활을 하다가, 불신자들에게 정체가 탄로나서, 잘못하면 당장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블레셋 방백들과 아기스 왕이 <그렇다. 다윗을 먼저 죽이자>라고 했다면, 정말 다윗은 꼼짝 없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때 다윗은 이스라엘 땅을 떠나서, 블레셋 나라로 망명한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을 것입니다.
한편, 다윗이 과거에 하나님 의지하고, 골리앗을 죽인 사실 때문에, 이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과거의 신앙 체험을 회상함으로써,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신자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라고 인정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7절.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1.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란 표현은 자신의 말의 진실성을 확증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맹세의 한 방식입니다(26:10).
이것을 볼 때 아기스 왕이 다윗을 통해서 히브리인들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호의적이었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만 가지고 아기스 왕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스가 참된 여호와 신앙을 가졌다면 결코 여호와 백성인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정직하여>(야솨르)란 말은 악의나 사심이 없다는 뜻인데(출 15:26;신 12:28;수 9:25), 그 뒤에 바로 <악이 있음을 보지 못했다>고 반복한 것은 아기스가 보기에 다윗은 아주 정직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볼 때 아기스 왕은 다윗을 참으로 정직한 사람으로 신임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기스 왕에게 철저히 충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가 다윗에게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그래서 전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욕 먹지 않고 칭찬 받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전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주은 집사님은 직장에서 말로 전도하지 않았어도 타교회 다니던 집사님 가정이 명성교회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할렐루야!
3.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네가 정직하여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는 말을 했을 때, 다윗은 양심이 뜨끔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정직하고 악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아기스를 속였고, 부정직했고 악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처럼, 다윗이 거짓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많이 찔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의 심정을 <여름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32편 2-4절.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4.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죄악을 고백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시편 32편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요한일서 1장 8-9절.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5. 이 때 아기스 왕은 다윗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겠지만, 실상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했을 것이고 내심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정말 다윗은 거짓말 하다가, 자기 백성을 죽이는 데까지 갈 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볼 때,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인간적인 생각대로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8절.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1. 이 때 다윗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은 방백들의 의심을 없애려는 것이고 또한 아기스 왕의 말의 진실성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2. 아무튼 다윗은 아기스왕이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기어코 전장에 나가서 싸우겠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얼마나 다윗이 잘못된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가지고, 블레셋 왕을도와서 기어코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말입니까?
3. 이 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보고서, 가만히 물러났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아말렉 군대가 다윗의 가족과 신하의 가족을 모조리 사로잡아가고, 다윗 자신은 신하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이 봐도, 다윗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이 얼마나 형편없는 불신앙인으로 보였을 것입니까?
4. 이처럼, 다윗이나 우리나 똑 같이 형편없는 죄인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복을 받은 것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은 < 내 영혼아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시편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다윗 왕국에 대한 영원한 언약을 말씀하셨을 때, <내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감격했습니다.
사무엘하 7:18.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한편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것은 다윗 자신도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9-10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1.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아기스 왕은 다윗을 하나님의 사자(천사)로 여겼습니다.
다윗의 진심을 몰랐으나 다윗은 외식하는 행동만 가지고도 블레셋 왕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도 불신자를 감동시켜서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 당시 방백들의 반대는 밤중에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새 날이 밝기 전에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만일 그 때까지도 블레셋 진지를 떠나지 않으면, 다윗과 군사들을 죽이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어지간히도 이중적이고, 양심을 속이고 있는 불신앙적인 다윗에게, 최후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이 원수의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다윗의 잘못된 행동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생활을 간섭하십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어떤 성도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담배를 끊게 만드십니다.
어떤 성도는 예수 믿기 전에 그렇게 화투를 좋아했는데, 예수 믿은 후로 노름만 하면, 계속 잃게만 해서, 놀음을 포기하게 만드십니다.
어떤 성도는 죄악된 길에 다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어서, 더 이상 죄악의 길로 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을 사랑으로 간섭하십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된 행실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거나,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고 생각되거든, 어서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한 해 동안도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절.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1. 다윗이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였습니다.
즉 다윗이 장차 왕이 되기 위해서 자기 백성과 싸우지 않게 하시고, 다윗은 모르고 있었지만 아말렉 족속에게 잡혀간 가족들을 되찾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였습니다.
2. 이제 다윗이 빠진 블레셋 군과 사울의 군사가 주전 1010년에 드디어 길보아 전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울왕과 요나단이 죽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본국에 돌아가 유다 왕이 되고 7년 후에 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3. 그런데 마지막 장면은 뭔가 거꾸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블레셋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반대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다윗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지 못하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갑니다.
예컨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무시하고,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멸시하는 풍조는 뭔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아가도록 결단하십시다.
올해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떳떳하게 살아갑시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먼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뜻대로> 올바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께서 여러 성도님들을 통해서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