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지막까지 웃은 염불인
나의 누나 왕수문(王秀文)은 1928년 하북성(河北省) 옥전현(玉田縣) 남관촌(南關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우리 여섯 남매를 두셨는데, 누나는 집안의 맏이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효성스러워 부모님께 한 번도 말대꾸하지 않았으며, 웃는 것을 무척 좋아하여 누구를 만나든 늘 웃는 얼굴이었다. 당시에는 식구도 많고 집안도 가난하였기 때문에 학교는 1학년까지만 다녔으며, 글자는 거의 하나도 알지 못하였다.
누나는 젊었을 때 매우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뛰어났다. 해방 직후 현의 합작사에서 솜을 나누어 주어 실을 잣게 하였는데, 누나가 잣은 실은 굵기가 고르고 균일하여 합작사 사람들이 모두 현에서 가장 잘 잣은 실이라고 칭찬하였다. 스물여섯 살에 결혼하였으며, 매형은 교사였다. 처음 시집갔을 때 매형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다. 매형은 자주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였지만 누나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매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게 뭐가 힘들다고 그래요? 나는 하나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는 우리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누나는 일찍이 관세음보살을 모신 적이 있었는데 신심이 매우 깊었다. 집에 먹을 양식이 없을 때조차 어떻게든 음식을 마련하여 관세음보살께 공양하였다. 누나가 남의 시비를 말하는 것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누구를 만나든 늘 웃는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누나가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1995년 나는 북경 법원사(法源寺)에서 삼귀의(三皈依)를 받았다. 귀의한 뒤에는 자주 많은 불교 서적을 집으로 가져왔고, 그렇게 하면서 누나와 매형도 차츰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1997년 누나는 당산시불교협회(唐山市佛教協會)에서 귀의하였다. 그 뒤 정토 염불법문을 알게 되어 오로지 염불하며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였다.
처음에는 매형이 누나에게 『대비주(大悲咒)』를 외우는 법을 가르쳐 주어 한동안 외웠지만, 나중에는 그만두고 오로지 한마디 명호만 불렀다. 그 뒤 다리가 불편해져 2005년 이후로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못하였고, 절을 하며 예배할 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염불하였는데, 때로 매형은 누나가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을 보면 염불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면 누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 염불하고 있어요. 나는 잠잘 때도 염불해요!”
때로 우리가 함께 불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누나는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다른 데는 아무 데도 안 가. 오직 서방극락세계로 갈 거야!”
올해(2007년) 음력 2월 초하루는 누나의 일흔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누나는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갈 때는 너희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
홍원사(弘願寺)의 염불기원카드(念佛祈願卡)는 자신을 위해 일곱 장 분량을 염불하였고, 그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염불하였다. 누나는 매형과 같은 발원을 하였다.
“살아 있을 때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은 뒤에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하겠다!”
3월 21일 아침 6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매형은 누나가 언제부터인지 이미 호흡과 심장박동이 멎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얼굴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그전까지 누나에게는 아무런 병고의 징후도 없었고 평소와 다른 행동도 없었다. 심지어 전날 밤 12시에도 딸이 아이에게 물을 따라 주고 있을 때 누나는 웃으며 딸에게 말하였다.
“나도 한 그릇 따라 줘!”
그때 딸은 속으로 ‘어머니가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물을 달라고 하시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어머니가 이미 숨을 거둔 것을 본 딸은 어떻게든 어머니를 살려 내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120에 전화를 걸었다. 의료진이 한동안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때 보니 누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혀를 깨물어 피까지 나고 있었다.
나는 문득 현에 조념단이 하나 결성되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누나는 생전에 일심으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였으니, 나는 반드시 누나가 그 소원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매형과 상의한 뒤 온 가족의 동의를 얻어 곧바로 조념단의 거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사들은 곧 도착하였는데, 20여 명이 세 조로 나뉘어 끊임없이 아미타불을 부르며 조념하였고, 중간중간 법문도 해 주었다. 그 뒤로 거사들이 계속해서 찾아와 점점 많아졌으며, 풍윤현(豐潤縣)과 당산시(唐山市)에서도 소식을 들은 거사들이 달려왔는데, 나중에는 모두 30~40명가량에 이르렀다.
조념은 밤 12시가 넘도록 계속 이어졌다. 그때 다시 누나의 얼굴을 보니 찌푸렸던 미간이 펴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정수리를 만져 보니 따뜻하였고, 몸은 나의 몸보다도 더 부드러웠으며(팔을 들어 보이며), 다리는 결가부좌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사들은 조념하는 동안 어떤 이는 누나의 온몸이 온통 붉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어떤 이는 여러 불보살님께서 맞이하러 오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는 각자 아무 말 없이 예배하며 절을 올렸다.
다음 날에는 촬영기사를 불러 조념하는 모습과 누나의 몸이 부드러운 모습도 모두 영상으로 촬영하였다.
정오 무렵 조념을 마치기 전에 우리 거사 수십 명은 아미타불 접인상(接引像)과 누나의 영정을 받들고, 번(幡)과 개(蓋)를 든 채 길게 줄을 지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며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마을은 시가지에서 매우 가까워 오가는 행인들이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후 3시에 화장장으로 가서 화장하였다. 화장한 뒤 한두 근이나 되는 사리화(舍利花)를 수습하였는데, 대부분 청유리색(青琉璃色)을 띠고 있었으며 서로 부딪치면 ‘땅땅’ 하는 소리가 나 마치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그 가운데는 제법 묵직하여 손에 들어 보면 작은 돌멩이 같은 것도 있었고, 수수알만 한 크기의 반투명한 사리자도 몇 알 있었다.
가족들은 이처럼 수승한 광경을 보고 모두 매우 기뻐하였으며, 조념해 준 거사들에게도 한없이 감사하였다. 그런데 화장한 뒤에는 더욱 많은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다. 이제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골라 이야기해 보겠다.
화장한 다음 날 아침, 매형이 열쇠로 대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열쇠 하나가 열쇠고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매형은 ‘집안 식구들 중에 누가 이런 장난을 했을 리도 없는데, 어떻게 빠졌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매형이 이 일을 세 아들에게 이야기하자 모두 반신반의하였다. 그런데 이틀 뒤 큰아들이 열쇠로 택시 문을 열려고 하다가, 뜻밖에도 열쇠가 아무 이유 없이 열쇠고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삼칠일(三七日)에도 또 똑같은 열쇠가 같은 방식으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그들도 이것이 아마 이미 왕생한 어머니가 신통도력(神通道力)으로 자신들에게 삼계와 육도의 윤회에서 벗어나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누나의 둘째 며느리는 원래 불교를 별로 믿지 않았기에, 당시 사람들을 불러 조념하려고 했을 때에도 그다지 내켜 하지 않았다. 누나가 왕생한 지 십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둘째 며느리는 갑자기 방 안의 책상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가까이 가 보니 갑자기 온 방 안에 기이한 향기가 가득 퍼졌는데, 그 향기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날 이후로 불교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라졌으며, 이제 백일이 다 되어 가는데 뜻밖에도 스스로 시어머니를 위해 방생하겠다고 나섰다.
또 둘째 아들이 어느 날 차로 화물을 운반하고 있었는데, 화물은 누가 보아도 높이 제한을 초과한 상태였다. 가는 도중 한 경찰이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둘째 아들은 ‘이번에는 야단을 맞는 것은 물론 벌금까지 물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차에서 내려 경찰에게 다가갔는데, 경찰은 꾸짖지도 않고 벌금을 부과하지도 않은 채 뜻밖에도 부드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하였다.
“천천히 가세요. 천천히 가세요!”
그러고는 그대로 보내 주었다. 둘째 아들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으며, 함께 있던 화물 주인도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경찰은 여태껏 본 적이 없어요!”
누나의 사위 가운데 한 사람은 불교를 믿는 거사였다. 삼칠일(三七日) 무렵 어느 날 밤 12시쯤, 풍윤현(豐潤縣)의 몽우우유공장(蒙牛牛奶場)에 화물을 실으러 갔다가 화물칸에서 문득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장모가 생각났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조념해 준 것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장모님! 만약 장모님께서 서방정토에 왕생하지 못하셨다면 여러 거사님들께 정말 면목이 없을 겁니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물칸 전체에 향기가 가득 퍼졌다. 사위는 ‘내 코에 무슨 이상이 있나? 아니면 착각인가?’ 하고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운전기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지? 어떻게 이렇게 향기로워?”
그때는 이미 밤이 깊었고 더구나 우유공장이었으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집에서 피운 향 냄새일 리는 없었다.
우리 남관촌에는 예전부터 이상하게도 되풀이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마을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한 사람이 뒤따라 죽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늘 두 사람씩 연이어 죽었으며, 20여 년 동안 줄곧 그러하였다. 그런데 누나가 왕생한 뒤 지금까지 이미 백 일이 지났지만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없었으니, 이번에 처음으로 그 전례가 깨진 것이다.
예전에 매형은 몸이 좋지 않아 한두 주에 한 번꼴로 감기에 걸리곤 하였는데, 누나가 왕생한 뒤 지금까지 석 달 동안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집안에 사람이 죽으면 본래 상을 치르는 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오히려 경사를 치른 것 같았다. 누나는 생전에는 이름 없이 평범하게 살았지만, 왕생한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제도하였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광경을 직접 보고 불교를 믿지 않던 데서 믿게 되었고, 신심이 얕던 사람은 더욱 깊이 믿게 되었다.
우리는 나중에 누나가 왕생할 당시의 실제 모습을 담은 영상을 수백 장의 CD로 제작하였다. 지금은 당산(唐山) 각지는 물론 요녕성(遼寧省)의 일부 현과 시에까지 유통되고 있다. 듣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누나는 평생을 웃으며 살았다. 어려서부터 웃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몇 년 전 어느 날 매형의 한 동료가 매형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왕 할머니는 언제 보아도 늘 웃고 계시니, 마치 부처님 같아요!”
이제 누나는 세상을 떠날 때에도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을 남기고, 웃으며 아미타불을 따라 극락세계로 갔다. 참으로 끝까지 웃었으며, 그 동료가 했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아 정말 성불하러 간 것이다!
(인지(仁枝) 구술, 종도(宗道) 법사 정리, 2007년 8월 19일)
첫댓글 가진거 없고 글자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이 더 수승하게
왕생하시는듯 합니다
조념염불단이 참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합장
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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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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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 참 좋아요. 무엇을 하든 전수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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