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유럽을 풍미했던 다다가 미국에서 네오 다다라는 이름으로 번안되었다. 원근을 무시하고 화면공간을 파괴했던 입체주의가 먼 선조이다. 미학자들의 면상에 소변기를 던졌다고 큰소리쳤던 뒤샹이 선배격이다.
폐기물들을 모아 메르츠 바우를 만들었던 슈비터스는 역사적 배경이었다. 공업사회의 생산제품을 현실 그대로 전시했던 유럽의 누보레알리즘은 네오다다와 동급생이라 할 수 있다.
뒤샹은 대량생산된 산업제품에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발견된 오브제라는 해설을 붙였다. 등록된 오브제는 산업제품이 선택되었다는 의미가 강조된 말이다. 특정한 시간과 계기에 의해 예술가에게 선택될 때 등록이라는 말을 쓴다.
나아가 데페이스망이라는 이름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데페이스망이란 서먹서먹한 감정을 말한다. 처음 직장에 나간 날 기억나지? 장소도 사람도 분위기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말을 예술적으로 바꾸어 보자.
전혀 미술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물건을 전시장에 놓으면 어떨까. 예술작품으로 오인될 수도 있겠지? 그런 논리로 전시장에 발견된 오브제를 놓을 수 있었다. 그것이 먹혀들어갔던 것이 유럽의 지적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수 없었다. 이백년이라는 세월은 제도를 정비하기에만도 너무 짧은 세월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가장 잘 얽어맬 수 있는지만 연구했던 세월이었다.
영국의 식민지로서 신대륙은 원주민 인디언과의 격전장이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주도권 문제로 대립했었기 때문에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영국과는 간접세, 직접세로 싸워야했다. 독립전쟁을 통한 1783년 미국의 독립, 1860년대 남북전쟁 등을 겪었다.
개척시대에는 영국의 중산층과 함께 모험가, 범죄자들을 다스려야했다. 노예해방 이후에는 흑인문제가 사회 법률적인 관심사였다. 경제부국을 이루면서 부랑자나 사회보장세대에 대한 규제 또한 문제였다.
이러한 모든 규제와 통제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야 했다. 그것이 미국을 그토록 철저히 규제사회로 만든 이유이다.
자유가 왜 규제인가 하고 묻겠지? 자유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관광했을 때 느낄 수 있다. 규제는 미국에서 취업하여 세금을 낼 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그만큼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다. 지금까지 속아왔지?
미국에서는 네오다다라는 이름으로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재탕했다. 뒤샹의 예언자적인 영향력을 암시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했다. 미국 역사 200년으로 세계문화사의 계통발생을 흡수하기에 벅차기도 했을 것이다.
뒤샹은 미국인에게 유럽의 정신이었다. 그것은 세계문화의 동력이기도 했다. 뭐라했더라? 그레코 로망의 인간척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핵심세력이 유럽계의 백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접맥이기도 했다.
왜습(wasp)라는 말 아시지? 백인 앵글로 색슨 계의 프로테스탄트, 즉 신교도를 줄인 말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20%의 실세들이다.
라우센버그는 1953년부터 196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컴바인 페인팅을 제작했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 사상을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서 보면 인물이나 나무, 바위 등이 똑같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컴바인 페인팅에서도 모든 오브제들이 생명을 지닌 동등한 존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랬던가. 레오나르도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이었다. 배경으로서의 풍경은 생성력의 표상이었다. 인물의 깊이를 암시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도입되었다. 사실인즉 레오나르도는 인물만큼 배경에 완숙한 테크닉을 보여주지는 아니한다.
그런데 컴바인이란 결합한다는 뜻이지? 생활 주변의 잡다한 물건이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결합한다는 말이다. 붙이다가 화면 바깥으로 나가면 그냥 나간대로 놓거나 붙인다. 그래서 환경이라는 개념이 덧붙여졌다.
콜라주라고 있었지? 화면 위에 종이나 작은 물건들을 붙였었다. 화면에 전혀 다른 물건을 붙여 착시와 연상을 유도한다.
반면 컴바인은 만능 접착제로 닥치는 대로 붙인다. 나무 금속 종이 등의 원자재도 붙인다. 콜라병 전구 등 소비재뿐 아니라 라디오 선풍기 등 전자전기제품도 붙여나간다. 그러니까 화면을 중심으로 주변시가 중요해진다.
주변시란 어떤 물건을 볼 때 135도 각도 안에 있는 주변의 것도 곁눈질로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림 자체의 형식은 산만해지겠지. 그러나 그 의미나 내용은 풍요하게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것이 컴바인의 미학이다. 고물상에 가면 살 것도 없으면서 볼게 많지? 컴바인은 그러니까 고물미학이라 할만하다.
그렇게 미국인은 레디메이드를 받아들여 전치, 확대했다. 전치란 다른 재질이나 매체로 바꾸는 것이다. 죤스는 청동으로 전구를 복제하여 색칠까지 했다. 성조기나 맥주 캔 등은 죤스의 손에서 그려지는 동시에 손때가 묻는다. 이윽고 죤스의 것이 된다.
확대란 대형구조물로 만드는 것이다. 클라이스 올덴버그는 부삽을 기념비마냥 엄청난 크기로 뻥튀기했다. 문화적 배경이 없는 민족이 선진문명을 해석하는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제우스의 벼락처럼 그것은 대지에 꽂혀 있다.
유럽만이 아니고 동양정신 역시 게걸스런 미국인이 눈독을 들였다. 유럽미술이 아프리카나 이베리아의 원시미술을 수용한 것은 차용이었다. 내용과 사상에 상관없이 빌려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술 더 떠서 동양풍의 신비사상을 미국식으로 개조했다. 문제는 차용이냐 개조냐가 아니라 의식의 깊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의 무게라는 것은 이백년 동안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죤 케이지와 동양철학이다.
케이지는 실용적으로 번안된 맥노톤의 번역서를 읽었다. 노자의 도덕경과 남화경에서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찾아낸다.
무용지용은 만물을 움직이는 이치는 실용적인 관점을 제끼고 볼 때 보인다는 사상이다. 실용적으로 쓸모가 없는 나무가 베어지지 않고 장수한다. 그릇에서 실제로 쓰이는 것은 그릇이 아니라 안쪽의 빈 공간이다.
골짜기는 자궁과 마찬가지로 비어 있기에 만물을 기를 수 있다. 그러니까 쓸모 있음과 없음을 대비시키면서 우주의 생성과 화육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노자의 사상이다.
케이지는 그것을 쓸모없음의 쓸모있음-useful uselessness라고 번역했다. 글자 그대로 이해했다. “쓸모없다고 팽개쳤던 것이 사실은 쓸모가 있느니라”라는 내용이다. 못쓰게 된 자전거가 있었다. 버리기 아까워 처마밑에 걸었더니 집찾기에 좋다고 칭찬하더라. 그런 식의 쓸모이다.
그렇게 케이지는 듣기 좋은 악음보다는 소음을 찬양했다. 도끼로 피아노를 부시는 소리가 연주보다 아름답다면서 피아노를 부셨다. 음표보다는 쉼표가, 연주보다 침묵이 값지다고 생각했다. <침묵연주>가 있다. 연주자가 4분 31초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가 나가는 연주이다.
무용지용의 사상은 초점확산(unfocusing)으로 번안되었다. 1952년 행위미술인 이벤트와 음악적 행위미술을 표방하고 나섰던 플럭서스 등의 행동지침이 되었다. 초점 안 맞는 사진을 보면 사람이나 배경이나 똑같이 흐릿하게 보인다.
작품을 보는 사람이 화면 안의 특정한 주제나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화면 및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의 골격이 되는 사상이기도 하다.
케이지는 주역도 받아들였다. 대단한 학구열이지? 물론 미국식으로 번안된 맥노톤의 번역서를 읽었다. 그 중에서도 케이지가 받아들인 주역은 역점이라는 점치는 방법이었다.
역점易占은 숱한 반복 끝에 결정되는 괘사를 통해 정관의 지혜를 얻으려는 사상에서 비롯한다. 천도(天道)라 부르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중용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케이지에게는 접근방식이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복서(卜筮)라는 이름의 서죽과 산목을 썼다. 다듬은 나무나 대나무를 말한다. 케이지는 후세에 사용되었던 동전으로 점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음표, 뒷면이 나오면 쉼표를 악보에 그렸다.
윗쪽으로 떨어지면 높은 음, 앞쪽으로 떨어지면 낮은 음이었다. 그것이 동양정신의 서구화라는 것이었다.
도판: 존케이지 4'33'' 악보-네이버 이미지에서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