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교향곡
교향곡은 웅장한 편성으로 청중을 압도한다. 품위 있는 곡들은 시작에서 완성까지 역사를 살피는 재미가 있다. 감상가가 음악을 접하게 되는 과정 또한 추억과 로맨스가 얽혀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작곡가마다 마지막 곡은 있다. 그리고 그 곡에는 농익은 쾌감과 완성도 높은 영혼의 외침이 있다.
클래식을 듣다 보면 언젠가는 베토벤 교향곡 9번 라단조 작품번호 125 『합창』을 만난다. 나는 너무 일찍 『합창』을 만나 한동안 진가를 모르고 지냈다. 폴 앵커를 좋아하던 나에게 소녀가 LP판 한 장을 건네주었다. 건네주는 소녀에게서 싱그러운 풀밭 냄새가 스며왔지만 왜 내게 이런 걸 주는가 싶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턴테이블에 올려놓아도 해설집 없이 혼자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어려웠다. 세 살, 일곱 살 터울 누나들이 있었지만 교향곡이 생소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다. 해설집 없이 듣기에는 귀가 뚫리지 않았다. 판을 선물 받았으니 무언가 감상소감을 전해야 하는데 할 말이 마땅치 않아 오히려 소녀를 만나는 게 서먹했다.
『합창』은 그렇게 속절없이 나를 지나갔다. 교향곡에 눈을 뜬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였다. 취주악의 단출함에 현악이 가미 되면서 전체가 풍요로워지는 조화를 알았다. 대학시절 알바를 겸해 DJ를 하면서 유명악곡을 섭렵하였다. 일하기는 팝이 쉬운 듯하였으나 3분이 멀다 하고 판을 갈아 끼워야 했다. 그만큼 곡이며 가수 소개도 바빴다. 쉬고 싶으면 신청곡에 상관없이 교향곡을 틀었던 기억은 지금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나에게 새로운 음악세계를 열어주었다. 베토벤 일생은 물론 작곡 배경까지 세밀히 설명되어 있었다. 많은 음악가들 중 베토벤에 매료된 까닭은 곡이 가지는 박진감과 흥분이었다. 베토벤은 슬픈 주제로 곡을 쓰거나 우울한 스토리를 깔고 작곡을 하거나 단호하게 시작하였다. 그는 죽음을 이야기 할 때도 명확하고 또렷하게 표현했다.
오페라는 아리아만 골라 듣기도 하지만 서곡이 전체를 대변한다. 한편 협주곡은 카덴차CADENZA 부분을 소화하는데 전문적 소양을 요한다. 교향곡은 악장별 특징을 골라 듣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베토벤 5번은 1악장, 9번은 4악장 하는 식이다. 베토벤이 살아온 일생을 몇 번이나 거듭 읽고 나니 연민이 일기도 하였다.
베토벤이 22살 되던 해 실러가 쓴 시 「환희에 부침」에 감동을 받고 작곡을 결심하였다. 53살에 곡을 완성했으니 구상에서 완성까지 무려 30여 년이 걸린 셈이다. 특히 4악장은 귀머거리 장애인이 엄두나 낼만 한 악상인지 상상조차 벅차다. 25살에 작곡한 가곡 「사랑의 응답」, 38살에 작곡한 「합창환상곡」을 바탕으로 하였으니 3악장 보다 4악장에서 젊은 힘을 더 느낄 수밖에 없다.
실러가 신을 찬미하면서 백성들이 번창할 것을 축복한다. 시가 반복되면서 변주기법으로 합창이 이어진다. 실러를 인용하기 전 이제 악기로만 말 하지 말고 시로써 대화하자며 베토벤이 고유의 싯귀를 접목시킨다. 이 부분이 위대한 것은 독일어를 전혀 몰라도, 그리고 신을 부정하는 사람일지라도 신령스러운 파도를 느낀다는 점이다.
교향곡은 2악장에서 느리게 연주되고 3악장에서 빠르게 연주되는 게 보통형식이었다. 베토벤은 이와 반대로 2악장을 빠르게, 3악장을 느리게 만들었다. 이는 4악장에서 합창이 빠르고 힘차게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하기위한 의도로 보인다. 4악장이 미리 만들어져 있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푸치니가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를 지휘하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데 비하면 베토벤은 초연을 직접 지휘했으니 행운아였는지도 모른다.
근래에 이르러 연주 DVD가 많이 판매되고 있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품은 감성을 현장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녹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청중의 숨소리마저 전달하는 장면에서 실황보다 낫다는 점수를 준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재생해 볼 수 있는 편리함이 감상 묘미를 더한다. 나는 그중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녹음을 즐긴다. 소녀가 보내온 눈짓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4악장에서 몸을 떨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끝날 때면 지금도 스스로 지휘자가 되기도 테너가 되기도 한다.
1817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에서 베토벤에게 새로운 교향곡 작곡을 의뢰하였다. 그동안 스케치 상태로 묵혀 두었던 9번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 오케스트라에 합창을 접목한 최초의 심포니가 베토벤에겐 마지막 교향곡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 악보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곡이 초연되었을 때 베토벤은 이미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지휘하는 본인이나 연주를 지켜보는 청중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환호는 그 자체가 이미 감동이었다. 3악장 아다지오 몰토 칸타빌레(Adagio molto e cantabile-더욱 느리게 노래하듯이) 부분에서 지휘자에 따라 시간차가 많이 난다. 1982년 카라얀이 “CD 한 장의 적절한 길이는 베토벤 9번을 한 장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작자에게 충고한 바 있다. 그 후 CD 한 장을 재생하는 시간이 80분으로 표준화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2년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의미 있는 연주회가 열렸다.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2차 세계대전 참전국 연합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하였다. 그 후로 연말이면 자주 연주되는 전통이 수립되었다. 「환희의 송가」는 교회에서 특별한 행사 때마다 연주되고 있다. 나는 매번 그 초연 순간을 상상하며 『합창』을 듣는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귀머거리 악성이 지휘봉을 휘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