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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공경 엡6:1-4
성경은‘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지만, 오늘날 부모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공경하기가 매우 곤란한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녀를 버리고 도망가는 부모, 자녀를 지키지 못해 죽게 두는 부모, 자녀를 죽이기까지 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 어느 때보다 부모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청소년 73%가 특별히 아버지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한 대표적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모르는 사람 같다.’‘아버지는 날 낳아주기만 했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다.’‘너무 무능하고 속물이다.’‘가정의 독재자다.’‘어머니를 때리는 사람이다.’심지어‘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아버지가 어느 때 불쌍하다고 느껴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때’‘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아버지가 TV를 보다가 갑자기 나가 혼자서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였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부모의 권위가 말이 아닙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존경할 만한 부모만 공경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훌륭한 부모만 공경하라”는 것이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비록 내 부모가 무식하고, 무능하다 할지라도, 설령 부모답지 못한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어떤 부모라도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5월은 가정에 대하여 특별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신경도 많이 쓰게 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세워주신 거룩한 공동체, 세상에서 신적 공동체는 오직 두개 뿐인데요,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은 곧 교회입니다. 가정이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을 말할 때 우리는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를 말할 때 역시 가정을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부모와 자녀관계에서 자녀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1절과 2절 보면 두 가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1절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라는 말씀이 나오고 2절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십계명 말씀이 나옵니다. 순종과 공경은 똑같은가요? 전체 맥락으로 보면 같은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조금 다르게 순종과 공경, 이 둘을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순종이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씀이고, 공경이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 두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어린 자녀들이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말입니다. 반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다 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말입니다.
첫째, 부모에게 순종하라.
1절을 다같이 읽어봅니다.“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된 이 여러분,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하기를, 사도바울은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옳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순종의 원리를 하나님이 정해놓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본래부터 가지신 뜻, 창조원리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순종이란 한마디로 권위의 문제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권위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저분에게 순종해야 해! 그러려면, 내가 저분의 권위를 인정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 이것은 뭘까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할 때,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듯이, 이런 뜻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사람은 인격적으로 해야 하고, 민주적으로 해야 맞습니다. 강제적이나 강요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를 수가 있어요. 저 사람의 생각이 있고 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부모가 다 맞는 말만 하는 것이 압니다. 부모가 틀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순종하라는 것은 뭘까요? 권위를 인정하라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부모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다 하라! 그런 뜻 보다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무슨 자세입니까? 저 사람의 말이 꼭 맞고 내가 틀려서가 아닙니다. 논리나 이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분의 권위 밑에 내가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불순종은 뭘까요? 그 자녀의 자세가 무엇입니까? 내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 내 생각과 내 논리에 안맞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이삭은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 앞에 있는 아브라함의 권위가 얼마나 컸으면 이삭이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상황에서 그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종했겠습니까?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삭은 그 권위 앞에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면서 이것이 옳은 일이다 라고 합니까?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을 배우는 훈련을 통하여, 그 인격이 자랍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배웁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 내 생각에 다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고, 이해가 안되면 거부하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권위를 어떻게 인정하고 순종하셨나요, 그 마음, 그 자세를 배우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내려오실 때 하나님께 순종하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히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자신을 완전 하나님의 절대 권위아래 두십니다. 이것이 십자가 죽기까지 순종하신 일입니다. 그 순종을 배우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릴 때, 두세살 때부터 순종하는 법을 훈련받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부모의 권위하에 있구나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녀가 어릴수록 기본훈련, 인사하는 것, 고집부리지 않는 것, 생떼쓰지 않는 법, 내 멋대로 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훈육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죄성, 타락한 본성, 옛사람이거든요.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부모에게 순종하기, 자연스럽게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가만 놔둬도 순종하기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 자녀에게 매와 벌이 필요합니다. 훈련과 훈계, training과 규율이 필요합니다. 잠언 22장을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집안에서 부모와 자녀는 뭔가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노엽게 되는 것은 언제인가요? 언제 혼나고 언제 괜찮은지 부모 자녀간에 약속이 없을 때입니다.
순종훈련이 어렸을 적에 안되고 자녀가 노엽게 되면 사춘기 때 문제가 커집니다. 어린아이가 부모 말을 안듣고 반항한다면 대부분 그것은 그 자녀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의 양육방식의 문제입니다.‘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에는 한결 같이 특징이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아이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집에 정해진 규율이 없습니다. 훈육이 없어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떼만 쓰면 모든 게 해결되는 집입니다. 엄마나 아빠나 할머니가 사랑을 주되 단호하게 안돼!를 못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마음이 너무 여려 혼내면 상처를 받을 거다 라고 짐작해버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릴 때는 순종을 무섭게 배워야 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 규율과 순종을 배우지 못하면 사춘기 때 와서 부모의 권위에 거칠게 도전합니다. 어릴 때 아이가 할 일을 엄마가 미리 알아서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숙제도 엄마가 해주고, 물건도 엄마가 챙겨주고, 모든 결정 엄마가 내려주고 그러면 아이는 모든 것이 편하기 때문에, 엄마가 내 밑에 있구나 느껴집니다. 부모의 권위 밑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녀가 부모를 부리게 됩니다. 내가 위구나! 그러면 사춘기가 되어 부모에게 무섭게 반항하고 따집니다. 부모는 언제 권위가 가장 큰가요? 일관될 때입니다.
아이 양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됨입니다. 약속을 하고 자꾸 핑계대면서 약속을 어기면 권위가 떨어집니다. 이랬다 저랬다 안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생활교육 훈육이 가장 많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 누가 시키는것입니까? 부모가 시킵니다. 어른 보면 인사하는 습관, 밥먹고 양치하는 습관, 손 씻고 밥 먹는 습관, 나누고 양보하고 사과하고 받아주기, 이 성품훈육은 부모책임입니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 갑니다. 세 살까지 좋은 버릇을 만드는 일은 완전히 부모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맡기셨습니다. 부모는 청지기 역할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 주신 권위와 판단과 지혜를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르칠 때, 따뜻함과 단호함으로, 그리고 자상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훈육을 시키면 자녀는 순종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둘째, 부모를 공경하라.
2절을 다같이 읽어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1절은 순종하라 그랬는데 2절은 공경하라 그랬습니다. 이것은 약속이 딸려있는 첫 계명이니라 그랬습니다. 공경이란 높이고 존중히 여기라 이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십계명 중에서 제5계명을 다루는 것입니다. 5계명은 다른 것과 달리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주어져 있습니다. 6계명-10계명까지를 보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 명령 잘 지키면 이런 약속이 있다, 그런 게 없습니다. 5계명만 유독 하나님이 축복의 약속을 걸어놓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 부모공경이라는 명령이 가장 가벼이 무시될 가능성을 보신 것 같습니다.
부모공경을 하면, 왜 복을 받습니까? 부모공경을 하는 그 태도가 곧 주님을 공경하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어린 자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성한 자녀, 다 큰 자녀가 나이들고 늙고 힘없는 부모에게 할 태도라고 보입니다. 이 십계명, 주님의 명령은 이집트사람들과 다르게, 구별되게 살라는 명령입니다. 이집트사람들은 부모가 늙고 힘없고 쓸모없어지면 함부로 대했습니다. 로마시대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power입니다. 강한 것은 좋은 것, 약한 것은 나쁜 것입니다. 약하면 무시합니다. 그것이 이집트나 로마의 가치관입니다.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갑과 을! 대한민국은 갑질이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늙고 약하고 힘없으면 을입니다. 이집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너희는 이제 이집트노예가 아니다, 이제 내 백성이다, 이제 너희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입니다. 약하고 힘없고 늙은 부모를 높이고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라. 그 태도를 내가 보고, 네게 복을 내리겠다! 그러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이 땅에서 잘 되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은, 나이든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드려라는 뜻입니다.
혹‘아내의 빈자리’라는 책을 아십니까? 죽음으로 먼저 떠난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가족들이 하늘나라로 보낸 편지를 엮은 것입니다. 여기에‘이재종’이란 사람이 쓴 가슴 뭉클한 사연의 글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갑작스런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못 챙겨주어 마음이 허전하여 하루를 보내고 늦게 들어와 침대에 벌렁 누웠는데 순간,‘푹’소리를 내며 빨간 국물과 불어터진 라면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졌습니다. 펄펄 끓은 컵 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일어난 과정은 무시하고 아이를 불러 마구 때렸습니다. 계속 때리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이 울면서 한 한마디가 손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평소에 가스레인지에 불을 함부로 켜면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하고 데워진 물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주려고 식지 않게 이불로 덮어놓았는데 아빠 올 때 너무 반가워 깜빡 잊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이 방문에 오랫동안 머리를 기대어 넋 놓고 서 있었습니다.
일 년 전 아이와 그 일이 있고 난 후, 내 나름대로 내 곁을 떠난 아내 몫까지 하려고 더욱 신경 썼습니다. 아이도 티 없이 맑게 커가고 아이의 나이 일곱 살, 얼마 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와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부르며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화가 나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아이는 한마디 변명도 않고 잘못을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은 유치원에서 부모님을 모셔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글을 다 배웠다고 너무 기뻐하며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글을 써 대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아이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을 아내를 생각하니 난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는데 또 아이가 한차례 일을 저질렀습니다. 회사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우표도 없이 편지 300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나는 다시는 들지 않으려 했던 매를 또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아이는 변명을 하지 않고 잘못했다는 소리만 했습니다. 이후 우체국에서 편지를 모두 가지고 와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하늘나라 엄마에게 편지 보낸 거라고..’순간 울컥 나의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어 울음을 참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 동안 편지를 써왔는데 우체통보다 키가 작아 써오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재보니 우체통이 손에 닿기에 그 동안 써온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하늘에 계시니까 편지를 써서 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자고.. 그리고는 밖에 나와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썼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태우던 편지 하나를 읽어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그런데 나는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할까봐 아빠한테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나를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그래서 날 아빠가 마구 때렸는데도 난 끝까지 얘기 안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아빠도 나만큼 엄마가 보고 싶은가봐. 근데 엄마, 점점 엄마 얼굴이 잘 생각이 안나. 엄마, 내 꿈에 한번만 얼굴 보여줘, 응?”여러분, 아이에게 엄마, 아빠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읽고 제 모습을 들어다봅니다. 이 아이는 7살이지만 벌써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공경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부모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공경입니다. 그런 부모가 우리 곁에 있어서 불러보고 싶은데 부르지 못할 때의 안타까운 심정을 아십니까? 저의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빠, 아버지 이름을 많이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없어서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니까 이젠 더 부르기가 어색합니다. 그래도 늘 부르고 싶은 이름입니다.‘아버지, 어머니...’오늘 같은 날은 이름만 부르지 않고 이렇게 덧붙여 외치고 싶습니다.‘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황교진씨는 현제 제자교회 집사이고 나이는 55세입니다. 어머니는 77세입니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동대문 시장에서, 20년 넘게 옷 장사를 하셨습니다. 밤과 낮이 바뀐 채 교생하시는 어머니였습니다. 숭실대학교4년 건축공학과 졸업과 졸업시험을 앞두고, 대학원진학도 확정된 상태에서 어머니가 1997년 뇌출혈로 쓰려졌습니다. 그 당시에 입원비가 매우 비쌌고,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는 식물인간이라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대학병원의VIP입원환자보다 더 잘 모시어야겠다고 기도하며 다짐했습니다. 가습기, 공기청정기, 의료기구를 집에 준비해놓고 간호를 시작합니다.
집에서 시장보아 와서 음식을 믹서기로 갈아 먹이고, 냄새가 나지 않게 목욕을 시켰습니다. 기도와 사랑으로 잘 간호하였습니다. 심방하신 집사님들이 어머니가 건강하다고 칭찬하였고, 의사되는 성도는 의료기술이 아니라 의술보다 더 뛰어난 예술이다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간호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므로 팔 굽히기, 윗몸일으키기 등 운동을 부지런히 하여 무거운 어머니를 간호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뇌사 상태가 아니고, 말귀를 알아듣는 상태입니다. 눈을 깜박거리며 의사소통을 합니다. 눈빛이 맑을 때는 잘 알아듣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해 드립니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니라 집에서만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을 더 가까이했습니다. 7년 동안의 병상일기를“어머니는 소풍 중”이라는 책으로 내었습니다. 책제목의 뜻은 언제 가는 즐겁게 소풍을 가셨다가 곧 돌아오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몸이 언젠가는 기적이 일어나서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뜻에서 책제목을 지었습니다.
그가 쓴 책을 보고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찾아왔습니다. 대소변, 가래로 더러운 것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찾아와서 잘 건호를 하다가, 10개원 뒤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사에게 더 착한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의 책을 읽고, 대성그룹 김명훈회장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회장의 어머니도 병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회사에 채용하였습니다. 근무시간에도 어머니 면회시간을 허락 해주었습니다. 취직도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좋은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8년간 간호를 하다가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요양병원에서 간호하고 있습니다. 병원비가 매우 많이 듭니다. 그런데 치료비를 원급으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집에 쌀이 떨어질지언정 병원비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엄마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를 보냈듯이 이제 제가 엄마를 씻기고 재우고 엄마의 손발이 될게요. 이제 당신 때문에 저는 직장도 얻었고 아내와 이쁜 아들까지 얻게 됐어요. 세상은 걸림돌로 여기지만, 우리 모자에게는 모든 고통이 주님께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지요. 당신과 함께 지낸 제 청춘이 제겐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신다고 합니까? 안가신다고 합니까? 안가신다고, 너희끼리 다녀오라고 하십니다. 그거 그대로 믿고 아이들 데리고 가면 안됩니다. 어머니 맥도날드 갈건데 가실래요? 아니다 집에 있을란다! 모시고 가야돼요? 떼놓고 가야돼요? 모시고 가야죠.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모 순종은 무엇입니까?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자세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혹 틀렸을 때도, 그 권위를 무시하여 대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부모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으로 무시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부모공경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장성한 자녀가 늙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속마음을 헤아려드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기, 부모를 공경하기로 결단하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땅에서 잘된다!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어릴 땐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장성하면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님의 속마음을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져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