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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과는 달리 "옥녀탕 → 한계산성 → 안산 → 1396봉 → 대승폭포 → 장수대”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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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산성(寒溪山城)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
둘레 약 1.8㎞. 강원도 기념물 제17호. 해발 1,430m의 안산(鞍山)에서 남쪽 계곡을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계곡 쪽에 남문 터가 있고, 성안에는 절터·대궐터·천제단 등이 있다.
한계령을 넘는 원통과 양양 사이의 길목을 차단할 수 있는 요충에 있다. 전설로는 신라 경순왕 때 축조되었다고 하며,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 부흥 운동을 할 때 성을 수축하고 군사를 훈련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 몽고의 침입과 홍건적의 침입 등 잦은 이민족의 침입 때문에 부근 주민들의 입보(入保)를 위하여 수축하였다고 여겨진다. 지금 성벽이 남은 곳은 높이 5~6m나 되나, 천연의 절벽은 성벽을 쌓지 않고 암벽을 이용하였다.
성벽은 아래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오르며 작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아래에서 2m쯤까지는 벽면이 거의 수직을 이루다가 위로 오르면서 85° 정도의 기울기가 된다.
성문은 문구(門口) 너비가 157∼166㎝이고 측벽의 높이가 230㎝인 사각 문형식이다. 성벽의 기초는 쐐기돌로 수평을 맞추듯 작은 돌조각을 사용한 수법이어서 삼국 시대부터의 전통적 방법에 속하지만, 성벽의 윗부분은 여러 차례 수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윗성과 아랫성 2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6,279척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고려사』 조휘열전(趙暉列傳)에는 1259년(고종 46) 몽고군과 조휘가 이끄는 반란군이 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방호별감(防護別監) 안홍민(安弘敏)이 야별초를 거느리고 출격하여 섬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산행기를 구글링하다 발견한 것이 '한계 고성'인데, 그 어디에도 고성에 대한 설명이나 사진이 없어 한계령으로 향하는 능선 중 하나를 '한계고성'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쯤 다른 일로 구글링하다 복구한 고성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코스 등을 유심히 확인 후 봉 감독에게 링크를 보냈다. 그 동무의 답 '나도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네가 먼저 보내서 좋았다.' 해서 바로 1비박 2일 안산 탐험 계획에 합의를 봤다.
그러다 봉 감독이 비박에 대한 부담을 느껴 1일 차 가리봉, 2일 차 안산의 수정 제안을 내놓았다. 물론 1박은 민박! 몇 주 전 가리봉을 가고자 했으나 동행하기로 했던 친구가 포기하는 바람에 못 가 아쉬워했던 차라 무조건 OK! 그런데 또 봉 감독이 갑자기 촬영 일정을 변경해 가리봉을 갈 수 없다고 저녁에 펜션에서 보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의 답은 "혼자 가리봉 오른 후 하산할 테니 차 가지고 와라!"였다.
단독 가리봉 산행을 위해 평소 가지고 다니던 것을 빼고 다른 것을 넣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덕분에 2일 차 산행에 아쉬운 것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봉 감독이 준비하고 내가 지고 가면 그만이지만…
전날 난 가리능선을 탐험하고 봉 감독은 공룡에서 촬영 후 베이스캠프인 장수대 펜션에서 접선했다. 봉 감독이 설악동에서 장수대로 오며 장 봐온 것들로 저녁 준비를 하며 다음날 산에 가져갈 것 중 조리가 필요한 것은 같이 만들었다. 저녁 만찬을 즐긴 후 어떻게 침대까지 갔는지 기억은 없지만 어쨌든 푹 자고 4시 50분경 기상했다. 복장은 바람막이까지 입은 저녁 먹던 그 복장 그대로…. 흰 바람막이에는 여기저기 김칫국물(파김치겠지) 튀었고…. 밖으로 나가 한계계곡과 어제 탐험한 가리능선에 아침 인사를 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사실 아침은 어제저녁에 조리가 필요한 것은 다 만들어 놓았기에 냉동 미역국만 끓이면 됐다.
어제저녁 만찬 중에 그날의 산행에 대해 각자 복기를 한 후 봉 감독이 오늘의 코스를 변경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야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그곳이 지옥이라도 언제든지 환영! 나의 이런 속성을 잘 아는 봉 감독이 초행이고 다른 이의 산행기에서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은 혼자 갈 수 없어 내가 같이하는 동안 답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나의 모토 "다른 이들이 다 가는 길에서 어떻게 산삼을 캐겠나?!"는 봉 감독의 촬영 모토이기도 하다. 그가 변경 제안한 곳은 '아니오니골!' 난 처음 듣는다. 하긴 설악산을 비롯해 산의 은밀한 곳은 대부분 봉 감독에게 처음 들었다. 그리고 같이 갔다! 계곡 명을 듣는 순간 지옥행 예약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바다.
"아니오니"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는 살벌함. 이후 구글링에 의하면 '계곡이 너무 좋아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는 설과 '너무 험하고 위험해 나올 수가 없다'는 설이 있다지만, 내가 보기에 전자는 꿈보다 해명이고 후자에 더 믿음이 갔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초행이라 길도 모른다. 산꾼의 산행기에 의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북능선 지식을 바탕으로 찾아가야 한다. 해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먹거리를 많이 넣기 위해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일 등을 뺐고, 봉 감독은 늘 들고 다니던 삼각대(촬영이 아니라 답사가 목적이라)를 차에 두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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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청소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장수대를 떠나 옥녀탕 휴게소에 도착한 시각이 6시 17분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넓은 주차장과 휴게소 그리고 입장료를 받던 매표소가 옛날 옥녀탕의 명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이틀 내 여기에 왔다. 배낭을 짊어지고 휴게소를 뒤로 돌아 매표소를 지나 바로 암벽을 기어오르며 산행을 시작했다. 암벽에 올라 계곡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30여 분을 올라 6시 49분에 한계산성에 도착했다.
안산 방향 좌측에 있는 산성을 보며 처음에는 이런 오지에 산성을 쌓은 인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계곡으로 내려가 땀과 먼지를 씻기로 했다.
30여 분밖에 걷지 않았지만, 땀은 비 오듯 했고 암벽을 기어 다니느라 먼지도 많이 묻었다. 적당한 소에서 온몸을 말끔히 씻은 - 추워서 10초를 견디기 힘들었음 - 후 갈림길에서 고양이 바위를 우회하는 길인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만난 한계산성, 계곡 좌측에서 봤던 산성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이 엄청난 걸 누가 뭘 위해 만들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 궁금증은 고양이 바위 직전까지 이어졌다. 즉 산성이 고양이 바위 직전까지 있다는 얘기다. 북한산 주 능선을 따라 쌓은 북한산성이 암벽을 따라 쌓은 한계산성에 비하면 애들 장난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북한산성 북문에서 백운동암문(위문) 구간 중 염초봉에서 바람골에 이르는 지역이 한계산성과 비슷하다. 이 정도라면 산성 내에는 더 대단한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오지에 대단한 뭐가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주민을 소개하는 장소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중 혤름협곡 전투에 나오는 나팔산성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이후 구글링을 통해 찾은 산성 자료 중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하면 '부근 주민들의 입보(入保)를 위해….'라는 내용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도 마찬가진가? 물론 왕을 지키기 위한 거지만, 이거 봉이 아니라 내가 국사과 같은데….
산성 문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산성을 따라 안산을 향해 올라갔다.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그 코스 자체가 산성을 따라 나 있었다. 21세기 산꾼이 줄이 없으면 올라가지도 못하는 암벽을 따라 산성을 쌓은 것이다. 물론 직벽에 산성을 쌓을 이유는 없지만. 시속 800m의 속도로 안산 능선까지 거의 3.4km 중간중간 바위봉을 기어오르는 깔딱을 5시간 7분이나 걸려 올라갔다. 물론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휴식을 하기도 했다.
바위 봉우리를 넘다 약간의 알바를 하기도 하며 들머리 기준 1.7km 정도 거리에 있는 암벽을 기어오르니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돌무더기로 쌓은 돌탑 세 개로 만든 제단이 나타났다. 누가 언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개의 돌탑 모두에는 투박한 비석이 있었는데, 가운데 탑은 비석을 보호하는 형태로, 좌우의 탑은 비석이 기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글 새김이 조잡하고 관리가 되지 않아서 탁본하지 않으면 읽기가 힘들 정도여서 간신히 이름 정도만 확인했다. '김(전?)세경' 이었나?
제단에 우리가 가진 최고의 먹거리(얼린 막걸리, 자두)로 제물을 차리고 '나라의 태평성대'와 '가족의 안녕'과 '친구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음복 후 자세히 제단과 탑을 관찰했다.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으며 8시 54분부터 9시 18분까지 대략 20여 분 동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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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재촉해 주변에 야생화나 새로운 나무나 풀이 보이면 사진을 찍으며 산성을 따라 올랐다. 그리고 곳곳에서 산양의 발자국과 배설물을 볼 수 있었다. 산양이 살기 딱 좋은 입지였다. 다시 말해 인간이 다니기에는 너무 힘든 코스다! 산성의 끝 바위 봉우리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20분이다. 안산 방향 옥녀탕 계곡 기준 우측편 산성의 길이가 2km가량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글에는 총 7km에 달한다고도 하고. 위로 고양이 바위를 보며 능선이라고 믿고 올라간 바위 봉우리 너머에 대략 400~500m의 깔딱이 더 있었다. 둘 다 지쳐 그 깔딱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거기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건너편 가리능선을 보며 어제 하산길인 느아우골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마지막 10여 미터의 암벽에는 위 끝부분 1m가량만 줄이 있고 나머지는 알아서 올라가야 하는데 대단히 위험했다. 전환점이 될만한 모든 장소의 사진을 남겨 나중에 자료로 삼고자 했지만, 여기서는 사진 찍을 여유도 없었다. 둘이 나눈 대화 이 코스는 절대 누구를 데려오면 안 된다!
암벽을 지나 대략 100여 미터를 더 가 드디어 능선에 올랐다. 그 시각이 11시 32분이다. 전망대에서 사진도 찍으며 안산을 향해 갔다. 안산의 마지막 깔딱을 오르기 위해 고개를 향해 내려가다 널찍한 평지에 자리를 펴고 앉아 휴식하기로 했다. 지난번과 같은 장소다. 자두와 햄을 안주로 남은 막걸리를 마시고 안산을 배경을 사진을 찍었다. 물론 시원한 커피도. 우리 둘 다 한번 올랐던 정상에 대해서는 연연해 하지 않는지라 아니오니골에 집중하기 위해 안산을 버리기로 했다. 안산을 갔다 오면 30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까짓 30분 별거 아니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왔던 길 돌아가기(같은 이유로 지리산을 가도 천왕봉에는 잘 안 오른다.)가 되어 정상을 버리기로 했다. 봉 감독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오늘 아니오니골을 답사하고 싶은 심정이 강해 최대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장소를 떠나 대승령 방향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봉 감독이 암벽에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는 솜다리를 발견하고 내게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사진을 찍고 떠난 시각이 12시 16분이다. 능선 위에는 따로 견고한 철망으로 인간이나 동물의 접근을 막은 구간이 있다. 거기를 지나며 이 안에는 뭐가 있길래 이렇게 철저히 보호하고 있을까 둘이 얘기를 나눠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해서 안내문의 내용을 확인했지만, 뭐가 있다는 내용은 없고 출입금지라는 글만 있었다.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말아야지.
철조망을 지나 바위 언덕에 올라 서쪽으로 뻗은 서북능과 중청, 대청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녕하세요"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숲 너머에서 들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아니면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인사로 알고 답을 안 하고 숲 너머를 보니 중년 여성이 있었다. 옆으로 돌아가니 여성이 솜다리를 보러 왔는데 어디 가면 볼 수 있는지 물어 우리가 사진 찍은 위치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솜다리를 보기 위해 김포에서 어제 내려와 대승령과 귀청을 샅샅이 훑었는데 발견하지 못해 오늘 여기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대승령에서 만난 등산객이 우리 둘이 옥녀탕 암벽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안산 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줬다는 것이다. 봉 감독이 솜다리는 공룡에 많고 어제 만난70대 여성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 놀랐다는 얘기를 하니 그 여성 왈 "내 나이도 올해 64살입니다." 그 나이에 홀로 설악을 주름잡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헤어졌다. 그 시각이 12시 28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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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령을 향해 가다 십이선녀탕 갈림길에서 십이선녀탕 쪽인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길을 따라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온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태의 길을 따라가며 주변의 야생화를 찍기도 했다. 몇 개의 언덕과 봉우리를 넘어 마침내 우리의 목적지 아니오니골 정상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1시 23분이다. 나로선 아니오니골이란 걸 어제 처음 들었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도 없어 봉 감독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산에 다닌 경험에 의해 길을 찾을 뿐이다. 해서 다음날 구글링을 통해 정보를 찾아보니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곳은 심마니 또는 정말 소수의 산꾼만 다니는 길이었다. 고로 그 길에 대해선 어떠한 산행기나 정보도 없었다. 이후 확인한 산행기 대부분은 들머리가 능선이 아니라 계곡 입구였고 그중 30% 정도는 음지골과 연계했고 나머지는 돌아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위치에서 음지골 쪽으로 더 가 갈림길에서 내려가는 것이 쉽게 가는 길이다. 이거야 사후에 안 사실이고…
우리가 길이라고 생각한 것을 따라 내려갔지만, 정글을 뚫고 내려가는 것으로 도저히 길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아마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심마니나 산꾼이 헤매며 다녔을 만한 것을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누군가 우리가 다녔던 흔적을 보며 길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계곡의 너덜을 나무와 풀이 가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가운데 우리를 가로막는 풀과 나뭇가지와 쓰러진 죽은 나무를 뚫고 내려가 물을 만난 시각이 2시 13분이다.
물이 중요한 이유는 그때부터는 계곡이 넓어지며 그나마 방해물이 줄어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략 50분 동안 정글을 뚫고 내려왔다.
그 50분 동안 정글을 헤매면서 나물의 왕이라는 병풍취 군락을 발견했다. 귀해서 원주민도 먹기 힘들다는 병풍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긴 심마니의 할애비라도 여기는 오지 않을 것이니 우리에게 발견되었겠지. 그 중 먹음 직해 보이는 것 몇 장을 뜯어 들고 내려갔다. 어디에 넣어 보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손에 들고 가 정글을 뚫고 계곡의 난간을 기어 다니느라 다 망가져 결국 버려야 했다.
이후 봉 감독이 병풍취에 대해 조사를 하고서 나에게 보낸 문자 "병풍취..잎 아래 대궁 껍질을 벗겨 나물이나 짱아찌 해먹으면 천하일미라네..헐 그것도 모르고 대궁을 싹둑 잘라버렸네 ..나중에 거기 다시한번 가자", "어린순을 쌈으로 먹으면 아주 맛있다고.. 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오는 그 부분에 꽤 있을듯..내년 5월 이곳에 다시 한번 가기로!!! 확정!! ㅎㅎ"
그리고 너덜 위에 생긴 정글을 뚫고 내려오며 산을 같이 다니는 친구에 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한 친구는 이런 환경을 극도로 싫어해 데려왔으면 다신 우릴 보지 않았을 거라는데 둘 다 동의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친구는 아주 신이 났을 테지만, 조급한 성격에 사고의 위험이 크다는 평이 나왔다. 사실 너덜에 풀이 우거져 바닥이 보이지 않는 길은 감각적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는데 서두르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삐기 쉽다. 그래서 결론은 "흥수 정도가 적임이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아래의 대화는 안산을 오르며 나눈 대화다. 봉 왈 "내일 피나무 찍으러 계방산 간다." 그에 대해 "흥수 지금 계방산 오르고 있을 거다.", "출근 안 했냐?", "야, 오늘 휴일이다.", "산에만 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실 내가 어제 흥수에게 장수대로 넘어와 오늘 같이 안산을 오르자고 했지만 이미 계방산 산행을 예약한 상태라 오지 못했다. 모두에게 아쉬웠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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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물을 본 이후에도 오랜 시간 정글이 이어졌다. 다른 계곡에 비교해 그 정도가 심하게 느껴졌다. 해서 '아니오니'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나마 계곡다운 풍광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각이 2시 28분이다. 그리고 길 같아 보이는 것도 보였다. 주변에 날파리를 비롯한 온갖 곤충이 날아다니는 중에 배도 고프고 지쳐 여기서 밥을 먹자고 했지만, 봉은 벌레가 없는 더 넓은 곳에 가서 먹자고 했다. 내가 보기에 더 넓은 곳이 나오는 순간 날머리가 멀지 않아 보였지만 봉 감독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앞서 내려가던 봉이 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씻고 밥을 먹자고 한 시각이 2시 56분이었다. 벌레야 날아다니지만, 자살을 선택한 벌레 좀 먹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작은 폭포 아래 소에 자리를 잡고 온몸의 땀과 먼지를 말끔히 씻고 라면과 밥 김치 등을 꺼낸 후 산초를 비롯한 나물과 햄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산초라면 별미다!
친구가 준 초화주를 나누어 마시며 어제저녁에 한 밥도 같이 먹었다. 씻고 배를 채우고 나니 어느 정도 피로도 풀리고 체력도 회복되었다.
밥 먹은 자리를 말끔히 치우고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수렴동이나 십이선녀탕보다 짧았지만, 계곡에 안전시설이 거의 없어 시간은 더 걸렸다. 사실 두 계곡에 비교해 볼 것이 많지가 않고 길을 만들기가 어려워 시설을 갖추어 개방하기보다는 아예 통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시설이라곤 아주 위험한 암벽 경사지에 심마니 또는 산꾼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조잡한 밧줄 정도가 다였다.
어떤 곳은 길도 희미한 우회로를 따라 죽죽 미끄러지며 올랐다 내려왔다. - 그곳에서 뒷발로 돌무더기를 밟았는데 무더기가 무너지면서 커다란 돌이 굴러 앞에 있던 왼발의 장딴지를 쳤다. 지금도 장딴지가 아픈데, 내일 월악산에 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 양쪽이 거대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은 아슬아슬하게 바위와 물을 건너며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 순간 물소리가 사라졌다. 계곡은 넓은데 물은 전혀 없는 건천 300여 미터를 지나니 다시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곳곳에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산사태 흔적이 즐비했다. 그 산사태 덕에 길이 매년 아니 매월 바뀌는 것이 아닐까? 과거 산행기 사진에 있는 바위를 우리는 거의 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목욕탕처럼 보이는 거대한 소 옆 나무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 계곡에서 합법적인 인간의 창조물을 처음 봤다. 물론 내려오면서 소주병과 비닐 쓰레기는 몇 개 보았다. 나무에 달린 리본도…. 오히려 리본이 몇 개 없어 고생을 더 했다. 하긴 그들도 길을 모르니 리본을 달 수 없었겠지만. 그 플래카드에 수영금지라고 적혀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 보니 "개구리 포획금지"였다. 응, 개구리를 잡지 말라고? 봉 왈 특별한 개구리가 사나 보다! 주변에 석청을 채취하는 벌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마니 기도터에 도착한 시각이 6시 50분이다. 기도터가 사실상의 아니오니골의 들머리로 보면 된다. 그리고 민박과 펜션을 지나 도로에 도착한 시각이 7시 5분으로 오늘 산행을 종료했다. 오토캠핑장을 겸한 펜션에 도착해 봉 감독이 단골 기사에게 전화해 구만동으로 오라고 요청했다.
계곡이 험하고 위험해 그리고 다른 계곡에 비교해 볼 것도 부족해 - 우리에게는 천국 - 사람이라곤 구경도 못 했지만, 우리의 모토 "다른 이들이 다 가는 길에서 어떻게 산삼을 캐겠나?!" 대로 봉 감독이 보기에는 천국의 계곡이었다.
온갖 나무와 꽃!
보고를 발견한 것이다.
3
내가 주변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는 동안 봉 감독은 다리와 도로를 건너 구만동 정류장에 서 있었고 내가 다리를 건너며 보니 왼쪽에서 택시 한 대가 오고 있었다. 우리가 부른 택시 같아 잡아타고 유턴을 해 건너편의 봉 감독에게로 갔다. 그리고 다시 옥녀탕 주차장으로 가 차를 갈아탔다.
저녁으로 지난번에 실패한 된장찌개가 맛있는 집에 가고 싶었으나 아예 문을 열지 않아 용대리로 돌아가 갓시래기국밥 한 그릇씩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날짜별 산별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봉 감독은 애초 예정되어 있던 계방산 피나무 촬영을 연기하고 아니오니골을 촬영하기로 했다. - 오늘 들은 정보에 의하면 9시에 계곡으로 진입해 원 없이 촬영 후 온몸의 먼지를 두 번 깨끗이 씻고 내려왔다고 했다. - 덕소에 내려 정각에 도착한 무궁화를 타고 청량리로 간 후 집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20분이다. 대략 42시간 만에 집에 들어왔다.
봉이나 나나 아주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 나는 1박 2일 오지 탐험을 봉은 3박 4일 촬영과 답사로….
험하고 위험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절대 가면 안 되는 코스다.
한계산성에서 둘이 했던 대화 "산성까지가 등산객의 한계다!"
그리고 난 이틀에 걸쳐 지옥의 계곡 "느아우골"과 "아니오니골"을 탐험했다.
결국 애초 계획과는 달리 "옥녀탕 계곡 → 한계산성 → 천제단 → 안산 능선 → 십이선녀탕 갈림길 → 십이선녀탕 정상 → 아니오니골 정상 → 아니오니골 → 구만동" 12km 코스를 탐험했다.
첫댓글 이건 미쳤다고밖에 할 말이 없네.
아니오니골, 듣느니 처음이고 외국지명 같기도 해. 정말 험한 곳을 다녀왔네.
두 산신령 같아.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살지만, 내 땅 잘있나 한 번씩 점검하러 가는...ㅎ
덕분에 숲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저런 험한 곳 말고, 그냥 초록 속에 잠겨서 초록 바람을 쐬고 싶은)이 생기네.^^
김부자터골이라 부르기도 함. 과거에 부자가 살았다고
저 부자에는 설이 많은데.
아버지와 아들, 돈 많은
계곡으로 봐서는 아버지와 아들 그럴듯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