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는데
오늘은 제법 바람이 시원하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만으로도 견디기 수월하니 말이다.
그래도 태양열은 여전히 데일 것처럼 뜨거워 밖에 나가기가 겁난다.
이럴 땐 집안에서 시원한 냉콩국수라도 한그릇 먹는다면...
문득, 얼마 전 태백에 다녀오다 들른 '막국수 집'이 생각났다.
메밀의 구수한 맛이 살얼음 살짝 띄운 국물과 함께 더위에 지친 내 입맛을 사로잡았던 곳.
순수한 국내산 메밀을 반죽해 손님을 앉혀 놓은 채 수동 기계로 즉석에서 뽑아내 삶아주니
메밀의 순수한 맛인 구수함과 담백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던 집이었다.
손님이 다 볼 수 있는 곳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반죽을 넣어 국수를 뽑아낸다.
메밀은 순수 국내산만 쓰기 때문에 손님을 무한정 받을 수 없다보니 어떨 때는 재료가 떨어져
되돌아간 단골도 있었다고 한다.
감자전을 주문하니 감자 역시 즉석에서 강판에 갈아 부쳐주신다.
감자전에 막걸리가 빠지면 허전하지~~
옛날 아주 어렸을 때, 막걸리 심부름을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양은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걷다보면 출렁거려 쏟아지기 일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아까워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대로 홀짝홀짝 마셔대던 일.
그땐 그 맛이 왜 그리도 좋았던지...
집에 도착했을 즈음이면,
얼굴이 발갛게 변해 있는 줄도, 자신이 살짝 취한 줄도 모르고
마시지 않은 척 주전자를 내밀던 일...
양은 주전자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오버랩 되어 나를 그 때로 데려다 준다.
세월이 변했듯, 막걸리의 맛도 그 때의 맛은 아니지만,
좋은 벗들과 함께 하는 막걸리 한 잔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난 추억이 되어줄 것이다.
감자전과 메밀전.
지금 사진으로 보니 어느 게 감자전이고 어느 게 메밀전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구수하고 고소했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아쉬웠던 건, 둘 다 너무 짰다는 사실.
아마 주인아주머니께서도 그날의 폭염에 살짝 입맛을 잃었던 듯...^^
드디어~~~
기다리던 메밀 막국수가 등장했다.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국물맛이 끝내줬던 막국수(요즘 매운 음식에 약해진 나는 이걸 먹었다)와
매콤상큼한 양념이 일품이었다는 비빔 막국수가 더위에 기진맥진해 있던 우리의 식욕을 와락~ 끄집어 낸다.
각종 야채와 해산물을 듬뿍 넣어 우려냈다는 국물의 맛은, 그동안 먹어본 냉면이나 막국수 국물과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뭔가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한 맛이 먹을수록 깊이를 느끼게 했던...
비빔 막국수를 시킨 다른 분의 얘기를 들으니 양념맛 또한 아주 좋았다고 한다.
나도 원래는 비빔 매니아를 자처했는데...
흠흠~ 지금 생각하니 매콤상큼한 양념의 비빔을 맛보지 않은 게 약간 후회가 된다.
이건 왠 사리?
하지만 막국수의 '사리 추가'가 아니다.
메뉴에 버젓이 등장한 '동이국수'다.(내 기억이 맞는다면~)
원래는 접시에 보이는 양의 두 배가 정량이지만, 이미 각자 한 그릇 씩 자기 몫의 막국수를
먹은 터라 절반만 나온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 서비스~ㅎㅎ)
먹는 방법 : 사리 한 덩이 씩 각자의 접시에 담고 고명-조선간장 양념, 깨소금, 김가루-을
얹어 살살 비벼 먹는다. 거기에 고소한 참기름 몇 방울 뿌리면 비비기도 쉽고 훨씬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미 감자전에 메밀전에 막국수까지 이것저것 잔뜩 먹은 후라 특별한 맛이라고 할 수는 없었
지만, 만일 메인으로 동이국수를 시킨다면 특별한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
매운 것을 싫어하거나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먹어볼 만하다는 총평.
그렇게 큰 집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유명한 맛집도 아닌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
이름마저 너무나도 순박한 '정가네 막국수'가 오늘따라 왜 이리 생각나는지...
더위가 다 물러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먹어볼 수 있으려나...
정가네 막국수
위치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 4리 152-19
전화 : 033-336-6562 / 010-3075-0425
첫댓글 올해는 특히 많이 생각납니다 막국수가요
서울에서 먹는건 강원도에서 먹는맛이 왜 안나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이집은 면발이 아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