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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외로웠겠군요.”
“그 덕분에...지금까지 살아있지.”
영화 ‘색,계’를 본 후 뇌리에 깊이 박힌 두 주인공의 대사.
근래에 열중해서 본 영화중의 하나이다.
끝없는 의심과 경계 속에서 그 남자는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을까.
내면의 뜨거움을 싸늘하게 포장하고 냉혹한 얼굴로 살아온 리(양조위).
마음으로 그리던 남자를 두고 몸의 사랑을 택한 왕치아즈(탕 웨이).
불행이 예고된 두 사람의 사랑은 격정적인 정사 신으로 관객을 설득한다.
그 남자처럼 외로워야 오래 살아남는다.
외롭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누군가와 소통하려고 애쓰다간 결국 무너진다.
아무에게도 내 상처를 보여주지 말아야한다.
누구에게도 외롭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다르지.........때로는 180도 딴판으로.
그녀, 최진실은 분노와 외로움이 그렇게도 견디기 어려웠을까.
눈에 밟히는 두 아이를 두고 어떻게 레테의 강을 건넜을까.
그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안재환과 최진실이 만났다면 무슨 얘길 했을까.
잘난 남자와 예쁜 여자가 그렇게도 못난 짓과 미운 행동을 하다니.
지친 마음으로 압박붕대를 목에 걸 때, 그리고 독한 연탄불을 피울 때
그 순간만큼 그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외로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 소울 메이트가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위무를 받고
혹시라도 마음을 바꿔 먹을 수도 있지 않았을는지.
그녀의 전 남편은 이미 그 역할을 방기했고, 그의 아내는 옆에 없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에서
할아버지는 인디언 소년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보고 싶으면 밤하늘의 늑대별을 바라봐라.
거기 내 마음이 있을 거야.”
시리우스를 보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체로키 인디언처럼
그들에게도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홀로 버려진 듯 외로운 세상에서 별빛 하나에 그의 안위를 물을 수 있는 대상을.
당사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라도 참으로 마음 시린 사건들이었다.
산세베리아란 웰빙식물이 있다.
작년 어느 학부형이 선물로 준 것이라며 아내가 집에서 키워보라고 주었다.
두껍고 길쭉한 잎들만 쭉쭉 뻗은 게 보기 별로라서 거실 한편에 세워두었다.
생김새는 좀 그래도 음이온을 방출하여 공기정화에 좋다고 한다.
어쩌다 한 번씩 물을 주었을 뿐인데 잎이 번성하여 횃불 타오르는 모양이다.
“어이, 이젠 니네 살림이 불길처럼 일겠다. 이 모양이 확 이는 불길이네.”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산세베리아를 보고 탄복을 한다.
내가 별로 중히 여겨지지도 않았고 보다 더 아끼는 난에 물 줄 때
덩달아 물을 좀 얻어먹었을 뿐인 그 식물이 갑자기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졸부가 되길 바라거나 무슨 미신에 기댄 것은 아니다.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남들이 많이 잃을 때 안 잃었다면 그것도 번 것일까.
초토화되고 있는 주식시장에서 일찌감치 발을 뺀 것은 순전히 운이다.
한동안은 채권투자만 하기로 작심한 건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불거지고 장이 심하게 흔들릴 때였다.
어쨌거나 현재까지의 결과는 친구의 축복 말대로 이다.
불교 승려나 신도들이 좋은 업을 쌓아 더 좋은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 행하는
선행이 ‘공덕’이라는데 친구가 내게 말 공덕을 베푼 결과라고 믿고 싶다.
반대로 한 마디 말이 종내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최진실 사채업자........어쩌고 하는 루머를 퍼트린 모 증권사의 백모양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말이 풍경이라면 그 말을 사진 촬영해 놓은 게 글이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악한 말 공덕을 쌓아버린 그녀의 마음은 참담 그 자체일 듯싶다.
공덕은 보시(布施 dana:승려에게 음식, 옷을 주고 절이나 수도원을 기증하는 일),
지계(持戒 sila:계율을 지킴), 선정(禪定 bhavana)을 통해서 쌓는다.
공덕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질 수 있다.
이것이 곧 회향(廻向)으로서 대승불교에서 중요시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자신이 힘들여 쌓은 공덕을 남에게
돌릴 줄 아는 보살(부처가 될 사람)을 이상적인 불자의 모습이라고 본다.
비록해서 내가 비교종교학에는 문외한이라 잘은 몰라도
다른 종교도 거기서 크게 다르진 않지 싶다.
가을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주식도 떨어지고 서민들 어깨도 쳐진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미구에 닥치면 또 얼마나 심신이 추울까.
독감 예방주사를 맞듯 오랜 만에 소울메이트를 만나러 제1부두로 갔다.
주차장 바깥쪽 인도를 따라 심어져 있는 느티나무들이 낙엽을 흩뿌린다.
여름엔 그늘을 드리워주던 나무가 가을에는 이렇게 성가시다.
봄철엔 수액이 떨어져 잘 지워지지 않아 차주들이 불만이 많았다는데
계절마다 호 불호가 그렇게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형차 주차 공간을 제외한 승용차 주차 공간은 만원사례이다.
이젠 더 이상 월 주차를 받을 수 없어 대기 번호를 발부할 정도.
불황에 조금이라도 싼 주차장을 찾다보니 여기가 호황이다.
그런데 친구는 표정이 그렇게 썩 밝지 않았다.
“혹시........니 가을 타냐?”
“가을은 무슨.......그냥저냥 심드렁하네.”
“아닌데, 뭔가 있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프긴.......근데 실은 마음이 좀 아프긴 했지.”
“가만있자 전에 말했지........니가 최진실이란 여배우 팬이라고.”
“그랬지.......”
“니 얼굴에 딱 쓰여 있다. 니도 어느 50대 팬처럼 따라죽고 접냐?“”
“죽긴 왜 죽어, 내가. 재작년에 죽은 친구 와이프가 생각나서.......”
“그 사람도 목맸구나?”
“아니.........”
“가까운 친구야?”
“음, 비교적 출세한 친구이기도 하지. 내 이야길 할 게, 함 들어봐.”
그해 가을 이맘 때 어느 날,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밖은 아직 희붐해지지도 않은 새벽.
이런 시각의 전화는 불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 난데, 너무 급해서 전화했어....”
북경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거기는 여기보다 아직 더 이른 한 새벽,
갑자기 머리끝이 쭈뼛 섰다.
“OO 와이프가 방금 교통사고로 죽었다는데……그게 정말이냐?”
OO는 우리 아파트 뒷동에 사는 고향 친구였다.
친구의 부인은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미인이었다.
“아니 우리 동네 소식을 외국에서 먼저 알다니……그런 일이 어디 있노.
니가 잘못 알았겠지.“
“OO이 중국 출장 중이잖아, 북경지사에 와 있었는데 방금 전화 받고 나갔대.”
사태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날 밝길 초조하게 기다리며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불과 두어 시간 만에 드러난 사건의 전말.
“오늘 새벽 어떤 여자가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렸대.”
그랬다.
그녀는 교통사고가 아닌 투신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외국 출장 중인 남편이 쇼크를 받을까봐 교통사고라고 전화로 알린 듯.
OO가 알려준, 고인이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여인과 통화를 했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왜 죽었는지 나도 몰라요. 나에게까지 숨겨야 하는 비밀이 있었을까요.
너무 야속해요. 내가 그녀의 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렇게 죽도록 괴로우면 누구한테라도 말이라도 좀 해 보질 않고........”
영안실에서 만난 친구도 아내가 투신한 이유를 모르더군.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아무런 원망도 변명도 없었더라고.
화장해서 자주 가던 산에 뿌려달라는 말밖엔.
출상 때 친구는 말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고...........
해외출장이 잦았던 남편. 아이들은 다 커서 집을 떠나 제 갈 길을 가고....
빈 둥지 증후군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것일까.
내성적인 성격에 남에게 절대로 폐 끼칠 줄 몰랐던 그녀.
깔끔하고 예의 바른 그 성격 때문에 아무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얘기할 수 없었을 게다.
“아니 왜 자기 아파트는 두고 남의 아파트에 가서 죽었대?”
속 모르는 사람들은 갖가지 추리소설을 써댔다지.
망연자실.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고 최진실, 안재환.......이은주 등도,
죽음의 구체적인 모습도 생각했다.
나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떠나게 될까.
가을엔 떨어지는 게 왜 이다지 많단 말인가.
경찰청이 밝힌 작년 자살 통계치는 13,407명, 하루 평균 36명이 넘는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예, 예. 한참 통화하더니 친구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뛰어나간다.
이럴 때 주차할 손님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가 나가자 말자 승용차가 한 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손님들은 한 가족인 듯 일본여행을 간단다.
오늘 가서 4일 후에 온다고 해서 들은 풍월대로 35,000원을 받았다.
손님들은 근처 식당에 식사를 하고 짐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잠시 후 친구가 카렌스 한 대를 몰고 들어와서 파킹 후 사무실로 왔다.
“내가 손님 한 팀 받았다.”
“어? 그래........? 수고했다.”
“일본 여행 간다고 해서 오늘부터 해서 5일 치 35,000원, 맞지?”
“음. 하루 치 더 받았군. 24시간 기준이니 4일분만 받으면 되는데.”
“에구, 그럼 어쩌지? 식사하고 짐 가지러 온다곤 했는데.”
“잘 됐네, 그럼 그때 7000원 돌려드리지 뭐.”
“아, 그럼 되겠다.”
“봐. 나도 똑 같은 일정인 여행객인데 28,000원 받았잖아.”
아까 친구가 받은 전화는, 플래카드에 1일당 7000원이라고 써 둔 걸 본
여행객이 국제여객터미날에 들어가 물으니 1일당 만원이라니까
차를 좀 가져가서 파킹해달라는 전화였다고 한다.
아줌마 여행객 다섯 명인데 엔고에 얼마라도 절약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현실에 적응해서 사는 친구의 얼굴에서
어느새 우울의 그림자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래 살아있는 우린.......열심히 사는 거야.
우리 영혼이 따뜻해지도록 서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다음 주 진해 부킹된 거 연락 받았제?”
“그럼, 모처럼 진해 가는데.....기다려진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제일 많이 간 곳이 거기지?”
“음, 앞으로도 가장 많이 갈 곳이고.....”
블라인드 홀인 1번 홀부터 선명하게 퍼블릭코스의 풍광이 떠오른다.
연습장에서 이미지 라운드를 할 때 가장 많이 도는 골프장이다.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진해만에 자리 잡은 익숙한 코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짧아진 햇살이 어느새 중앙동 빌딩들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그 그림자 위로 우수수 낙엽이 날렸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시리우스가 그 사람들의 마음처럼 빛날 것이다.
부두 쪽에서 뱃고동이 길게 울리고.......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글도 오래 전에 골프스카이에 게재한 글입니다)
첫댓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며 신체적 (홀몬) 변화로 인한 우을증 을 겪는건 의학적 으로 증명이 되였지만
대한민국선... 정신과 병원을 기피 하는 현상 때문에 자살율이 높은것 같다는 저의 생각 입니다. 유명 할수록
더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