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옥
해장국은 그야말로 명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모듬전과 비교해보니 이 식당의 주종목임도 확실하다. 알짜배기 건더기가 가득한 데다가 개운하면서 깊은 맛을 내는 국물맛이 참으로 대단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잘 거 없다는 속담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1937년에 시작했다는 자랑이 껍질이 아닌 실속으로 음식맛에 그대로 담겨 있다. 서울 음식에도 인심이 있다.
1. 식당대강
상호 ; 청진옥
주소 : 서울 종로구 종로3길 32
전화 : 02-735-1690
주요음식 : 해장국
2. 2024.7.16.저녁
먹은음식 : 양지해장국 12,000원, 모듬전 25,000원
3.맛보기
실한 건더기를 이렇게 듬뿍 넣은 해장국을 이처럼 오래된 노포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 못했다. 1937년 개장 노포 품격을 넘어 한국의 인심, 서울의 인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차오르는 감사가 맛을 더했다. 좋은 음식, 좋은 집이다.
처녑에서 콩나물, 시래기, 선지에 각종 내장에 다양한 건더기가 뚝배기 가득이다. 듬뿍 얹은 파총 맛도 국물맛과 건더기 맛을 높인다. 국물맛은 또 얼마나 깔끔하고 깊은지. 그 오랜 역사에도 놓치지 않고 이어오는 맛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 서울에도 이런 집이 있다. 서울은 남의 음식이나 갖다 파는 곳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 음식을 이렇게 눈감으면 코베어갈 곳에서도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역사와 명성에 명실상부한 음식이다.
깎두기 맛은 좀 밋밋하다. 본론에 힘을 다 쏟은 탓인가. 아직 채 익지 않은 듯한 맛, 국물맛도 해장국 맛을 살리기에는 1% 부족하다. 그래도 해장국과 벗해 먹기에 많이 서운하지는 않다.
밥이 그득하다. 국물에 말아도 고슬고슬한 밥이다. 토렴을 위한 밥, 내력있는 밥이다.
모듬전은 역시 주인공만 못하다. 기름이 많고, 소세지 등 내용도 가격에 비해 그리 실하지 못한 거 같다.
왼쪽은 창업자 이간난 여사이다. 가녀린 여인이 큰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셨다. 그 힘은 음식솜씨에도 있지만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이려는 따뜻한 마음이 우선이라고 생각해본다.
4. 먹은 후
1) 해장국 어원
해장국은 술을 마신 뒤 속을 풀기 위한는 국이다. 속풀이, 한자어 해장은 해정(解酲)에서 온 말이다. 解 풀 해, 숙취 정 酲의 해정, 숙취를 풀어주다는 의미에서 해정탕(解酲湯), 解酲주, 解酲床이 쓰였다. 解酲은 한국식 한자어라니 아마 중국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은 거 같다. 동사도 해장하다가 아니고 해정하다가 쓰였다.
비슷한 말로는 해정탕 외에 성주탕 [醒酒湯]이 쓰인다. 해정은 모음조화를 쫓다가 해장으로 변한 거 같다. 국은 탕과 같은 개념이다. 좀 더 고급한 음식을 지칭할 때 탕이 더 많이 쓰인 차이 정도만 있다. 요즘은 해정국이 거의 쓰이지 않아 어원이 궁금했었다.
해장(解腸)국이라고도 하는데, 장을 풀어준다, 속을 풀어준다는 말이 숙취를 풀어준다는 말보다 해장국의 의미와 기능에 더 가까운지는 의문이다. 解腸은 고전전적에서도 같은 의미 용례를 찾기 어렵다. 반면에 解酲은 해장국의 해장과 같은 의미로 쓴 매우 많은 용례가 확인되며 중국의 고사에서도 확인된다.
다음은 계곡 장유의 시 "희와 현공의 시고에 제한 시 삼십 운[題希窩玄公詩稿三十韻]"의 일부이다. 계곡집(谿谷集)25권에 실려 있다. 번역은 한국고전종합 사이트에서 전재한다.
재자들 더러는 감정도 풍부하였지만 / 才子或多情
견고하고 정결한 절조 무슨 흠이 있었던가 / 何嘗累堅貞
한유(閑裕)한 정취 국풍을 능가하고 / 閑情出國風
도잠(陶潛)의 시에 비춰 봐도 흠 잡힐 일 없다 하리 / 未可疵淵明
평생토록 술 마시기 좋아했는데 / 生平嗜麴糵
해정주(解酲酒)로 자그마치 다섯 말의 술 / 五斗堪解酲
그러나 언제고 술 담글 밑천 없어 / 苦乏種秫資
항아리 술 채울 길 늘상 없었다오 / 無以滿甁甖
흥미진진하여 싫증나지 않는 그의 말 / 津津語不厭
귀를 기울이게 하는 시가(詩歌)의 아취(雅趣) / 風調令人傾
하늘이 만물 내며 재질 부여하여 놓고서는 / 皇天賦萬品
번역자는 '해정주'에 주를 달았다. 해정주 …… 술 :
진(晉) 나라 유령(劉伶)이 한 번 술을 마시면 한 섬이요 해장할 땐 다섯 말의 술을 마셨다는 “五斗解酲”의 고사가 전해 온다. 《世說新語 任誕》
따라서 해장국은 해정탕에서 유래하는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거 같다. 그러나 어떤 어휘든지 어원은 밝혀 말하기 어렵다. 초기 유명 국어학자가 어원사전을 필생의 작업으로 생각했다는데,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타계하셨다.
해장국이 해정탕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 같고 오히려 해장(解腸)국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해장하자'는 술 마시지 않은 사람들도 쓰는 말이다. 속을 풀자, 따끈한 국물로 추위도 몸도 녹이자의 말로도 쓰기 때문이다.
언중이 생각하는 어원, 그것이 어원이 되어갈 수도 있다. 어원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적 의미이고 그것이 갖는 현재의 사회적 의미라는 것은 누구보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2) 해장국 문화
우리나라는 해장국이 유독 발달한 나라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속풀이 국이 많다. 전주 콩나물해장국에서부터 부산 해운대 복국, 하동 재첩국, 서울 청진동 선지해장국, 서울 무교동 북엇국과 배춧국, 양평 뼈다귀해장국, 서산 태안의 우럭젓국, 목포 무안 연포탕, 순천 짱둥어탕, 여수 광양 갯장어탕, 영동 보은 괴산의 올갱잇국, 속초 주문진의 곰칫국, 강릉 물회 국수, 양양의 섭국, 제주 갈칫국과 돼지국수 등등.(윤덕노, 음식생활사)
생선으로는 북엇국, 복국, 대구국, 볼태기국, 쇠고기로는 선짓국, 양짓국, 소머릿국, 도가니탕, 채소로는 콩나물국, 뭇국, 배춧국, 우거짓국, 김칫국, 조개류로는 바지락국, 다슬깃국, 조갯국, 재첩국, 해조류로는 김국, 파랫국, 미역국, 매생잇국, 등등도 해장국으로 꼽기도 한다.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 ③...청진 해장국의 추억, 연합뉴스 24.7.1.)
이들 음식을 다 해장국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양한 것만은 사실이다. 속을 풀기 위한 해장은 콩나물국이 압권이다. 콩나물에는 아미노산과 아스파라긴산이 많아 숙취 해소에 좋다고 현대 과학에서도 입증해주었다.
이곳 해장국은 숙취 해소보다 술로 허해진 속을 달래는 용도인 거 같다. 속을 뜨듯하고 개운하게 속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술 마시느라 실속없이 허해진 속을 채우는 용도로 써도 무방할 것같이 실한 내용물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옆자리 손님들은 상당수가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후루룩 마시는 국물이 아니라 담소를 벗하는 안주로 먹고 있는 것이다. 속풀이국은 순차적으로도 병렬적으로도 가능한 거 같다. 한겨울에 이런 뜨듯한 국물을 만나면 술생각이 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 그러다 혹여 과음하면 다음날 새벽에 또 속풀이 술국을 먹어야 한다. 뫼비우스의 띄처럼 술과 연결되는 고리에 걸려 있는 것이 술국, 해장국인 셈이다.
이 해장국은 콩나물해장국과 달리 내장 고기 건더기에 선지까지 온갖 영양을 다 갖추었으니, 밤새 일하며 속빈 사람에게 아침이 되고 뜨끈하게 약주와 한잔 하고 싶은 사람에게 안주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음식이다. 3대째 이어지는 청진옥의 역사는 이런 따뜻한 음식과 거기 담긴 인정이 동인인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따로 국밥으로 내주지만 이전에는 토렴해서 국물에 밥을 말아준 것 같다. 옛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밥을 국물에 말아줬다고 기억하고 있다. 전주 콩나물국밥집 현대옥은 아직도 토렴해서 말아준다. 군포의 군포식당은 손님에게 물어본다. 토렴인지 따로인지. 이곳에서는 물어보지 않고 따로 준다. 이제 술국의 기능보다 식사의 기능, 안주의 기능이 더 강화되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럴 만하게 실한 음식이라 술꾼 아닌 사람의 저녁으로도 충분하다. 전주의 현대옥이, 삼백집이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오후에는 문을 닫는 것도 확실한 해장의 개념일 건데 이 집은 애당초 통금시간만 빼고 문을 열었으니 아침 해장과 저녁 술안주의 기능이 중첩되어 있었던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금도 청진옥은 24시간 영업이다.
청진옥 해장국은 1937년 청진동 89번지 일대 시장에서 이간난 할머니가 '평화관'이라는 이름으로 국밥을 말아 팔던 것이 시초라고 한다. 45년 청진옥으로 개명했고, 2016년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예전 청진동 나무시장을 찾아 무악재를 밤새 넘어온 나무꾼들을 주고객으로 청진옥의 역사가 시작됐다.
국내 국밥집 노포의 대부분은 시장이나 역전거리, 그게 아니면 도축장 주변에 있다. 그중에서도 시장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데, 이집도 시장을 끼고 번창했다. 그렇게 성업중인 음식점은 대부분 거리를 이룬다. 청진동 해장국 거리의 주역이 바로 청진옥, 잘 나가는 식당이 경제와 전통 계승과 음식문화의 확산에 기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제는 이런 문화는 한식 한류의 저류로 세계로 확산된다. 시장이나 역전거리는 식당의 필요성이 강력해서 생겨나고 성장하지만, 창업의 공신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 맛을 알아내어 찾아주는 고객들의 공헌이다. 고객들은 맛있고 저렴하고 푸짐한 음식을 일차적으로 선호한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집이 맛집으로 자라나고 노포가 된다.
서울애서는 푸진 인심이 점차 사라지고 야박해지는데, 이집의 음식은 인심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앞으로도 100년, 200년 아니 그 이상 갈 거 같다. 따뜻한 음식에 나타난 한국음식 지형의 전형성, 도타운 한국인심의 전형성이 음식 한류를 접한 세계인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주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3) 주변 구경
종각 일대
종각 주변 야경. 오래 전에 누가 한국의 일등 관광상품은 가을의 맑고 푸르고 높은 하늘이라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서울의 야경, 화려하면서도 안전하고 역사적 깊이가 있는 야경 또한 최대의 관광상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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