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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은 왜 매일 화나 있을까
김양희 기자입력 2023. 7. 1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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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의 인생 뭐야구]아무리 잘하는 팀도 열 번에 세 번은 지는 야구… “팀은 자아의 연장선”이기에 화날 수밖에
2023년 5월23일 서울 잠실야구장 앞에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성적 부진 등과 관련해 홍준학 단장 경질 등을 요구하는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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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23일 서울 잠실야구장 앞에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성적 부진 등과 관련해 홍준학 단장 경질 등을 요구하는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야구팬은 왜 항상 화가 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인데, 화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풀어놓았다. 하긴, 야구는 화가 많은 종목이다. 경기 자체에 여백이 많아서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게다가 프로스포츠 가운데 연간 경기 수가 제일 많기도 하다. 케이비오(KBO)리그의 경우 1년에 144경기(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더 많아진다)를 하는데,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해마다 50경기 이상은 진다. 최소 50일 동안 해당 팀의 팬은 우울하거나 짜증 나거나 체념하거나 화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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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팬들이 득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22시즌을 보자. ‘와이어 투 와이어’(시즌 내내 1위 유지) 우승을 차지한 에스에스지(SSG) 랜더스는 정규시즌 때 52패(88승4무), 한국시리즈 때 2패(4승)를 거뒀는데 SSG 팬들은 적어도 54일 동안은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참고로 프로축구 케이(K)리그 우승팀 울산 현대는 2022년 정규리그 때 38경기에서 열 번만 졌다.) 3년 연속 꼴찌를 한 한화 이글스 팬들은 어땠을까. 한화는 무려 96패(46승2무)를 당했다. 한화가 졌던 ‘96일’은 1년의 26.3%. 10년 넘게 하위권을 맴돈 한화 팬들이 ‘득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 그러면 일상이 너무 우울해진다.
응원팀이 이겼다고 팬 모두가 기쁜 것도 아니다. 2023시즌 초반 엘지(LG) 트윈스가 그랬다. 염경엽 신임 감독의 작전 야구 때문에 누상에서 주자의 횡사, 객사가 이어지면서 불만이 생긴 팬이 적지 않았다. “이겨도 기쁘지가 않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여유롭게 이길 수 있던 경기를 막판 투수 교체나 실책 탓에 졸전 끝에 가까스로 이겼을 때도 실망하는 팬이 나온다. 야구 경기 하나에 온갖 감정이 뒤엉켜 이긴 날에도 같은 팀 팬들이 설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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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개개인의 ‘화’는 때로 트럭시위 등으로 이어진다. 2023년에도 한화, 기아(KIA), 삼성 팬들이 트럭시위를 했다. 트럭시위의 일일 비용은 대략 80만~100만원. 팬 커뮤니티에서 반나절 정도면 모을 수 있는 액수다. 코로나19 유행기에 비대면의 일상화로 ‘몸’은 안 가고 ‘문구’만 보내는 트럭시위가 보편화한 감이 없지 않다. 야구장 앞이든, 모그룹 사옥 앞이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든 활자화해 ‘화’를 잔뜩 담은 트럭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한 구단 관계자는 “모그룹 앞에서 하는 트럭시위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응원팀 승패에 따른 스포츠팬의 감정 변화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영국 서식스대학의 경제학자 피터 돌턴 등은 축구 경기 승패에 따른 팬들의 감정 상태를 객관적 데이터(300만 개 표본)로 추출했다. 이겼을 때 평소보다 3.9점 정도 더 행복하다고 느끼며, 패했을 때는 슬픔의 강도가 7.8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승리의 기쁨은 찰나이고, 슬픔의 그림자는 꼬리가 길어서 승리했을 때 얻는 기쁨의 4배를 강탈해간다고 한다. 야구팬들은 오죽할까. 야구 시즌은 6개월가량 이어지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뭔가에 영혼을 투자하는 것
미국 켄터키주 머리주립대학 심리학자인 대니얼 완 교수는 <스포츠행동학회>(Journal of Sport Behavior)에 발표한 논문(‘스포츠 관중 연구’)에서 “스포츠팀에 대한 팬의 일치감은 사람들이 그들의 국적, 민족, 심지어 성별과 동일시하는 방법과 유사성을 보인다. 팀과의 동질감은 팬들이 팀과 심리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느끼고 팀의 성과가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까, 핵심은 ‘동질감’이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의 로버트 J. 피셔 마케팅학 교수는 이러한 동질감·일치감에 대해 “동질감은 우리가 자신을 보는 방식의 일부이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를 가족(팀)의 일원으로 본다면 더욱 그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연결은 매우 오래가고 강력하다”고 말했다. 매일 져도, 매년 꼴찌를 해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이미 매일 보는 ‘가족’ 같은데.
미국 인디애나대학 블루밍턴의 심리·뇌과학 부교수인 에드워드 허트는 아예 “팀은 자아의 연장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1990년대 초 팀 충성도가 개인의 능력과 자존감에 대한 믿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자기 팀이 승리하는 것을 지켜본 팬은 자기 팀이 지는 것을 지켜본 팬보다 자신의 업무 성과와 개인적 자부심이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다. 허트 부교수는 “우리가 당시 발견한 가장 강력한 사실은 팬들이 팀의 성공을 개인의 성공과 비슷하게 본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응원팀의 승패는 물론이고 플레이 하나하나에 화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하겠다. 가뜩이나 야구라는 스포츠는 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그리고 공 사이사이 여백에 여러 ‘IF’(만약)를 집어넣을 수 있다.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2005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인 주인공 벤은 야구를 보는 행위에 대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뭔가에 영혼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간, 돈, 영혼을 다 갈아 넣은 듯한데 늘 적자인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평균적으로 열 번 중 세 번은 진다. 괜찮은 타자여도 열 번 중 일곱 번은 못 친다. 그리고 모든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꽂는 투수도 없고, 스트라이크존 안에 든 모든 공을 쳐내는 타자도 없다. 야구란 건 실패의 연속이다.
내일의 야구는 아무도 모르니까
당연히 화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못 놓는다. 잘하는 팀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팀 세탁’도 못한다. ‘우리 팀’ ‘우리 선수’ ‘우리 구장’에서 켜켜이 쌓아온 일상의 시간을, 추억을 차마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특정 팀의 팬으로 정해진 이들은 특히 더 그렇다. 야구는 마치 고향과 같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받고 힘들어도 내일 혹은 내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을 수 없다. 응원팀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우승 한 번 못해도 가을, 겨울에 뿌린 희망으로 봄이면 ‘올해는 혹시나’ 하는 꿈을 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팀이기 때문이다.
그깟 공놀이라서 화내고 울분을 토해내도 그깟 공놀이라서 마음이 쓰이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올스타전 휴지기(7월14~20일)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후반기를 기다려보자. 2023년은 진짜 재밌는 리그가 펼쳐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단, ‘스포츠는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을 잊지 말자. 화내더라도 적정선은 지키자는 뜻이다. ‘내일의 야구’는 아무도 몰라서 ‘오늘의 화’가 머쓱해질 수 있으니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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