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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정이철 목사 ⑲ :
정이철 목사 ‘저절로 성화론’은 ‘다른 복음’이 아닌가? ⑨
사계四季 (2018.03.02 15:08)
{바른 믿음} 임진남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거룩(성화)해지는 방법>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6
링크하는 임진남 목사1) 글은 ‘성화에서 성령의 능동 사역 쪽 저울대가 시계 6시 방향으로 곤두박질해 있는 정이철 목사 저절로 성화론, 이단 성화론’과 다르게 균형이 잡힌 글입니다. 그러함에도 저울대가 성령의 능동 사역 쪽으로 기운 글입니다. 중생자 자유의지는 성령께서 새롭게 하신 의지, 성결의 영이신 성령을 좇아갈 수 있는 의지임에도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자유의지의 노력으로 계명을 지켜서 성화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임진남 목사 주장은 오해2)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제 딸내미가 유아세례를 받은, 제 딸내미 母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장 합동 소속 교회였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가 “혹시 총신 서철원 교수님 잘 알아?” 물었습니다.
“느닷없이 왜? 서철원 목사님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소식 들었어?”
“아니, 새로 오신 전도사님이 설교 시간마다 종종 ‘제가 존경하는 서철원 교수님’이라고 하면서 ‘서철원 교수님께서는 총신 수업 시간에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하신다 말이야. 그래서 얼마나 대단하신 교수님인가 해서······.”
“그 전도사님 우리 교회에서 얼마 못 버티신다.”
“왜?”
“서철원 교수님은 박사 학위를 주는 과정이 까다롭기로 이름난 화란 자유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세계적인 석학3)이신데, 화란에서 귀국하시자마자 한국 교회가 복음에서 이탈했다 하시며 순복음 식 기복주의 신앙을 질타하신 목사님, 내 광주신학교 은사님으로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시거든. 그러니까 서철원 교수님께 감명 받아 서철원 목사님을 높이고 따르시는 강도사님이나 부목사님들은 순복음 식 기복주의 신앙에 젖은 담임목사님 눈에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제 예상대로 이 전도사님은 담임목사님 눈 밖으로 쫓겨나셨습니다.
제가 고교 2학년 때인 1979년 가을이었습니다. ‘예장 합동 제64회 총회’에서 ‘총신대 김희보 학장 문서설’을 핑계로 삼은 교권다툼, 영호남 교권싸움으로 예장 합동 총회는 이른바 “주류”ㅡ서울 사당동 총신을 접수한 영남 이영수(대전 중앙교회: 1987년 소천) 목사 파 ㅡ와 “비주류”ㅡ광주신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인 호남 정규오 목사 파ㅡ로 나뉩니다. 물론, 이 나뉨 전에 사당동 총신대는 이미 나눠져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예장 합동 총회 서기와 총신대 재단이사회 서기로 활동하면서 사당동 총신대를 사유화하다시피 해 교수들에게 교권을 휘두르는 이영수 목사(고향: 경북 봉화군), 그를 추종하는 영남 우월 패권 교권주의 세력에 저항해 故 박형룡 목사님 아드님이신 박아론 교수님께서 정규오 목사님과 함께 서울 방배동에 이른바 “복구 총신”ㅡ‘현 천안 백석대학교’ 전신인 방배동 총회신학교ㅡ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장 합동 제64회 총회 분열은 ‘교단 썩어빠진 정치 목사들에게서 자유로운 새로운 신학교’ 탄생을 예고합니다. ‘현 수원 합동신학원’4) 전신인 ‘개혁신학교(가칭)’입니다. 1980년 10월 28일에 서울 남서울교회(담임목사: 홍정길)에서 총신대 신학부 학생들 456 명이 참석해 개교를 한 개혁신학교ㅡ교수: 신복윤, 최낙재, 김명혁, 박형용, 윤영탁 목사, 손봉호 장로ㅡ입니다. 그리고 “비주류”는 사분오열합니다. 이 사분오열 때 태어난 신학교가 예장 개혁5) 서울 청담동 개혁신학원입니다. 다음은 ‘서철원 {하나님 나라의 건설} (광주: 복음문화사, 1985)’ 42쪽~44쪽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잘못된 교회 정치 풍토를 신학교에서 길러내게 되면 문제가 많습니다. 항상 정치가 난무한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이 길러져 나오게 되면,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 기관 노릇을 하기 어려우며 진리와 기둥 노릇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혼탁해져 있는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 묘안이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몇 가지 말씀 드리면, 첫째는 정부가 개정한 사립학교 설립 법을 개정하도록 우리 교단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셋째로, 신학교 교수들에게 합당한 예우는 못할망정 교회 정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나온 것은 제가 한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는 사명 의식과 애향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광주사태가 진행될 동안에 화란 암스텔담에 있었지만, 공정 보도로 세계적 공신력을 가진 BBC 뉴스와 미국의 소리 방송을 계속 들으면서 사태의 추이를 잘 지켜보고 들었습니다. 광주사태가 진행되고 있을 때, 꼭 내 가슴은 총으로 체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이 합동측인 주류측으로부터 축출당해 받는 수모와 어려움을 겪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 반대했음에도 저는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숱한 루머와 모함들이 꼬리를 물고 진행됐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확장과 그분 왕권 확립이라면, 신학교를 정치적으로 조종할 것이 아니라, 사명 수행과 그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쓸 만한 나무를 하나 기르기 위해 12 년~30 년이 걸리지만 찍어 버리기는 단숨에 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인재를 하나 기르기 위해서는 30 년~40 년이 걸리나 손쉽게 찍어 넘기는 것은 입에 붙은 도끼질 몇 번이면 가능합니다. 제가 광주 중앙교회와 정규오 목사님과 광주 숭일학교와 광주신학교 도움으로 암스텔담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제가 개인적인 호소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내 골육이 저를 아끼고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누가 저를 보살펴 주겠습니까?
신학자를 정치적 유희물로 삼는 것은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장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신학자를 제거하고 교단 신학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 상관 때문에 하나의 이해 집단, 곧 분파로 남겠다고 하는 것이지, 공교회로 존속하겠다는 바른 결의가 아닙니다.
‘박영돈 교수님을 이단 제소하고자 하는 정이철 바보 무리들, 썩어빠진 정치 목사들 행위는 허수아비 논법에 따른 거짓증거임’을 아는 제가 그들 행위를 심각하게 여기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서철원 교수님 말씀대로 거목을 쓰러뜨리는 것은 “입에 붙은 도끼질 몇 번이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서철원 교수님 총신 제자 임진남 목사가 등장한 까닭으로 한국 교회사까지 이야기하며 글이 길어지게 됐습니다. 저는 ‘링크한 임진남 목사 글은 장성하지 못한 신자들에게 박영돈 교수님 성화론과 개혁 교회 성화론이 다름을 각인하는 효과, 세뇌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2년 봄이었습니다. 광주신학교에서 있었던 ‘학위 취득과 귀국 기념 강좌’에서 이른바 “광주사태”를 언급하시면서 눈물을 적시시던 서철원 교수님 모습은 제 기억에 각인돼 있습니다. 그 각인은 ‘광주학살 살인 정권 밑에서 감히 그 누구도 이른바 “광주사태”를 두고 공식 석상에서 언급하지 못하는 살벌한 때였건만, 청교도 후예답게 불의한 살인 정권에 저항하는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던 참 선지자, 참 선지자의 영(정신)을 가지셨던 서철원 교수님’이라는 생각으로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내 골육이 저를 아끼고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누가 저를 보살펴 주겠습니까?” 하신, 서철원 목사님 눈물겨운 호소에서 우리는 당연히 ‘성화에서 중생자 능동 사역’을 떠올려야만 합니다. ㅡ1982년 봄에 귀국하신 서철원 목사님께서는 “예수 천당” 식 값싼 복음에 사로잡혀 하나님 심판에 두려움이 없는 예장 개혁 썩어빠진 정치 목사들에게 시달리시다가 약 10 년이라는 서울 청담동 개혁신학원 교수 생활을 접고 결국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예장 합동으로 가셔야만 했습니다.ㅡ 그런데 ‘존 머레이 {조직신학 ②} [제23장: 점진 성화]’에서 옮기는 다음 글6)에서 우리는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정이철 목사가 어떤 하나님 말씀들을 삭제해 한국 교회 조직신학 거목 박영돈 교수님을 두고 입에 붙은 도끼질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자 안에 여전히 내재하는 죄와 신자가 아직 정해진 목표(완전 성화)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현세에서 신자의 상태는 정적인 현상(status quo) 유지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진보의 상태, 즉 성격상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측면 모두를 포함하는 진보의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는 풍부한 증거가 성경에 있다. 그것은 금욕과 성화 양자를 포괄한다.
금욕과 관련해서 신약 성경에 그 구절들이 등장하는 문맥 때문에 특히 두드러지는 두 구절이 있다. 하나는 로마서 8장 13절 하반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으면 살리니”다. 또 하나는 골로새서 3장 5절 상반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다. 이 두 구절은 죄에 대한 단번의 죽음과 그에 따른 그리스도 안 새 생명의 영역으로 이전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된다. 로마서 6장은 이 확정 성화를 강조하는데, “너희는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씀이 핵심이다. 그러나 로마서 8장 13절에서 바울 사도께서 신자들을 향해 말씀하시면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에 신자들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신다. 이것은 바울 사도께서 이미 로마서 6장 6절에서 “죄의 몸이 죽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욱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성령의 힘과 은혜 안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께서 “영으로써”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점을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들이 참여해야 하는 활동이며,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격렬한 활동이다.
···(중략)···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권면은 선행하는 범주적 명제들로부터 나온 권면이다. 로마서 8장 13절과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서 신자의 활동이 요구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골로새서 2장 20절과 3장 3절에 적힌 죄에 대한 확실(확정)한 죽음에도 죄의 사욕과 더러움으로부터 신자가 해방되지 않기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죄들을 죽이는 도살장의 일에 능동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설 연휴 때 쉬려다가 쓴 <정이철 목사 저절로 성화론은 다른 복음이 아닌가? ①>, 이 글은 무척 쓰기 힘든 글이었습니다. ‘초등학생 2학년보다 못한 글쓰기를 하는 정이철 목사, 정이철 목사 허접한 글들을 두고 시간과 힘 낭비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하룻강아지 정이철 목사가 자신의 이단성은 모른 채 한국 교회 조직신학 거목 박영돈 교수님을 두고 “이단성 있는”이라는 듣보잡 도끼를 휘두르자, ‘정이철 목사 글들은 내가 마음대로 난도질할 수 있는 허접한 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이철 목사가 박영돈 교수님을 두고 이단성 있다고 정죄한 마당에 가만히 있는 것은 내 비평의 은사를 멸시하는 또 다른 교만이다.’는 생각이 들어, 20세기 개혁 신학 보물로서 ‘단회 순간중생 시 확정(단회, 결정) 성화’ 진리를 밝히신 故 존 머레이 목사님 점진 성화론을 떠올리며 힘을 내게 됐습니다. 다음은 제 <정이철 목사 저절로 성화론은 다른 복음이 아닌가? ①>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개혁 교회 교리가 드러나지 않는 ‘정이철 <저절로(자동으로) 성화론 ①, ②>’를 읽노라면, ‘정이철 목사가 총신에서 개혁 교회 교리 공부는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총신 시절 때부터 서철원 교수님이나 다른 교수님들 강의를 들으면서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정이철 신학도에게는 교수님들 여러 가르침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들렸겠구나.’하는 생각도 합니다. 특히, ‘서철원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는 서철원 교수님 “자동으로”라는 단어만 정이철 신학도 귀에 꽂혔을 것이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철원 교수님께서 예장 개혁에 계실 때 몇 교회나 신학생들에게 베푸셨던 강설, 이 강설들을 모은 몇 강설집을 보면, 서철원 교수님께서 “자동으로”7)를 무척 좋아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철원 교수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어 “자동으로”는 우리 역시 좋아해야만 하는 단어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 조직신학의 거목’으로 높이는 서철원 교수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것보다는 성화에서 성화의 근원이신 성령 하나님, 성령의 능동 사역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동으로”라는 단어를 가지고 성화에서 성화의 근원이신 성령의 능동 사역을 강조하시는 서철원 교수님께서는 성결의 영이신 성령을 좇는 중생자 능동 사역 역시 강조하십니다. 예를 들자면, ‘위 존 머레이 {조직신학}에서 인용한 글’에서 보듯 故 존 머레이 목사님께서 점진 성화를 설명하면서 금욕을 강조하시는 것과 똑같이 서철원 목사님 역시 성화에 필요한 금욕의 하나로서 절제하는 생활의 중요함을 역설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는 것, 입는 것, 돈의 사용, 과도한 욕망의 발동을 절제해야 합니다. ···(중략)··· 우리는 욕망의 법을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변화한 새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은 늘 절제의 생활입니다.
···(중략)···
우리 그리스도인 정상의 삶은 절제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주님 재림에 대비하는 삶은 금식과 작정 기도※) 등이 아니라 절제하는 정상의 삶인 것입니다. 이 절제하는 삶이 바로 우리 죽음을 대비하는 삶이요, 심판주를 만날 준비를 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절제하는 삶을 살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욕망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절제를 생활의 법으로 삼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9)
그러므로 양심의 증거와 믿음의 확신이 일치하게 됩니다. 양심의 증거와 믿음의 확신이 일치할 때 양심의 진술이 올바르고, 또 선한 양심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셨으니, 이 믿음과 양심이 합치해야 함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그리드도인들에게서 믿음에 따라 양심을 세우는 일은 필수입니다. 그러려면 늘 자신을 살펴 자기 양심을 예리하게 해 자기 가치 판단과 행동이 믿음에 합하는지, 곧 그리스도의 법에 일치하고 또한 그분의 법 정신에 따라 행동하고 사고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분 뜻에 맞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늘 자기 양심을 살피고 그리스도의 범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판단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핌으로 양심을 더욱 예리하게 하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10)
‘화란 자유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으신,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받으신 서철원 교수님 경력이 상징하는 대로 호남이 낳은 한국 교회 개혁 신학의 거목이신 서철원 교수님’, 그분 총신 제자들 정이철, 고경태, 임진남 목사가 ‘서철원 호남 신학 우월 패권주의’라는 또 다른 지역감정에 흠뻑 젖어 더 이상 제 고향 호남과 제 스승 서철원 교수님을 욕 먹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서철원 교수님 말씀대로 “늘 자기 양심을 살피고 그리스도의 법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판단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핌으로 양심을 더욱 예리하게 하”는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완고한 양심, 화인 맞은 양심을 회복해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정이철 목사 저절로 이단 성화론은 스승 서철원 교수님 성화론을 왜곡한 성화론임을 또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임진남 목사가 등장한 까닭으로 <정이철 목사 저절로 성화론은 다른 복음이 아닌가?>는 다음 회에 마무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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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영돈 교수에 관해 고신과 개혁교단들에게 올리는 공동호소문]에 이름을 올린 목사이기에 ‘님’은 생략합니다. 링크한 글 맨 아래에 적힌 임진남 목사 경력을 보니, 호남 김제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임진남 목사 역시 서철원 교수님 총신 제자이군요.
2)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성령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의지의 노력만으로 계명을 지켜서 성화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가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 바른 주장입니다.
3) 서철원 교수님 신학을 모르시는 분들은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제 표현을 두고 조롱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서철원 교수님께서 화란 암스텔담 자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실 때 화란대학 전체를 통틀어 ‘최우등(Cum Laude)’으로 졸업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 1980년 11월 11일에 남서울 교회에서 공식 개교하고, 한 주 뒤인 11월 18일에 초대원장으로 故 박윤선 목사님께서 취임하셨습니다. 참고로, 본문에서 서술한 예장 합동과 예장 합신의 역사는 제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병수 {합신 30 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30 년 이야기} (수원: 도서출판 영음사, 2011)’를 참고해 정확을 기했습니다.
5) 2005년 가을 예장 합동 총회에서 예장 개혁은 비주류 제1회ㅡ예장 합동 (비주류) 제64회ㅡ 총회장이셨던 김일남 원로목사님(목포 제일교회: 2008년 소천)을 앞장 세워 백기 투항 통합을 합니다. 이 통합 소식을 듣자마자 ‘아, 합치더라도 예장 합신과 합치지, 왜 꼭 예장 합동이어야만 했을까? 왜 많은 분들에게 “호남의 성자聖者”로 높임을 받으시는 김일남 목사님께서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셨을까?’ 안타까워했던 제가 “백기 투항”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통합은 예장 합동 제64회 총회 분열을 두고 자신의 죄로 여기며 큰 책임을 느끼셨던 정규오 원로목사님(광주 중앙교회: 2006년 소천) 뜻을 받든 일이었지만, 주류측 교권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은 그 책임을 느끼지 않고 승전가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습니다. 현재 예장 합동 김영우 목사가 이영수 목사와 똑같이 총신대를 사유화해 교권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김영우 목사 사태, 조폭(용역)들까지 동원해 ‘김영우 목사 교권에 저항하는 신학생들과 교수들’을 짓밟으려고 하는 사태를 두고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6) 존 머레이 {조직신학 ②} 박문재 역 (경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308쪽~309쪽.
7) 서철원 교수님 몇 강설집에서 이 단어가 나오는 쪽들은 지면 낭비임으로 적지 않습니다.
※) ‘서철원 교수님께서 금식과 작정 기도 그 자체를 배격하신 것’으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행위(성화) 없이 오직 “믿음”만 외치는 신앙인들, 순복음 식 값싼 복음주의자들, 기복주의 신앙인들 위선의 행위로서 금식과 작정 기도를 배격하신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9) 서철원 {그리스도의 사역} (서울: 한국 로고스 연구원, 1990) 232쪽~233쪽.
10) {그리스도의 사역} 207쪽.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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