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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카탈루냐의 몬세라트
우리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날이 수호성인 조르디의 날(4월 23일)이라 했다. 거리마다 장미꽃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진풍경을 이루었다. 설화에 따르면 “카탈루냐의 옛 왕국에 사나운 용이 살았다. 매년 사람을 제물로 바쳐 용을 달랬다. 어느 해 공주가 제물로 바쳐지게 되자 용사인 조르디가 용의 동굴에 들어가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내었다. 그 때 용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한 송이 붉은 장미가 되어 피어났고, 조르디는 그 꽃을 꺾어 공주에게 전했다.” 로맨스가 담긴 얘기이다. 또한 4월 23일은 영국의 세익스피어와 스페인의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유네스코에서는 이 날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 카탈루냐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습속이 이어졌다. 두 가지 깊은 뜻을 가진 날이었다. 전해오는 얘기와 장사속이 얽혀 새로운 풍속을 창출해 내는 것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가 주도인 카탈루냐 지방은 북쪽은 프랑스와 접경을 이루고 남쪽은 지중해를 따라 펼쳐져 있다. 한때는 독자적인 왕국으로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시칠리아까지 지배했을 정도로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었으며 민족의식과 독립성이 강하였다. 프랑코 총독이 집권했던 시절에 카탈루냐의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없애려고 탄압하자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싹텄다. 그 후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나 지금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카탈루냐에서는 각 급 학교의 교과서와 수업 그리고 대학 강의가 카탈루냐어로 진행된다고 한다. 공용어도 카탈루냐어를 스페인어와 함께 쓰고 있어서 모든 상호나 간판들이 이중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역감정이 축구경기에서는 극명하게 반영되어 레알 마드리드와 축구경기가 있으면 축구팬들의 열광이 대단하다. 바르셀로나 팀이 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마드리드표시(M)를 한 차량들은 온전하게 남아있지 못한단다. 우리나라의 영호남보다 더 지방색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먼저 몬세라트를 방문하였다.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에서 북서쪽으로 60km지점에 있는 회백색 바위산이다. 1,235m 높이에 6만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산봉우리들이 침식작용으로 들쑥날쑥하여 거친 모습으로 솟아올라 있다. 그 모습이 기이하여 로마인들은‘톱니 모양 산’이라 하였다. 그러나 카타루냐 사람들은 신성한 산이라고 부른다. 가우디가 자라면서 이 산을 많이 찾았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했다고 한다.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계곡들 가운데 가장 넓은 곳이 ‘말로계곡’이다. 이곳에 11세기에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세워져 카톨릭 성지로서 종교적 터전이 되었다. 수도원은 산의 중턱 725m지점에 서 있다. 수도원이 있는 위치까지는 버스길이 정비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가에 15개의 조각상이 있었다. 처음 5개는 탄생을, 다음 5개는 고난을 그리고 마지막 5개는 영광을 나타낸다고 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수도원의 광장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이 조루디의 조각상이었다.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했다는 전설의 주인공 성 조루디는 카탈루냐의 수호신인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조르디가 용을 죽인 후 손에 묻은 피를 노란 천으로 닦았다. 후에 그 피 묻은 천이 카탈루냐의 상징인 깃발이 되었다 한다. 조각상의 눈은 항상 살아 있어서 방문객의 움직임을 따라 계속 움직인다고 하였다. 듣고 보니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수도원의 대성당 입구의 대문 위쪽에는 열두제자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었다. 조각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한다. 입구 한쪽 벽에 “성모마리아를 방문하러 몬세랏 성당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판 안내문이 우리를 반겼다. 이 성당 내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라모레네타’라는 검은 마리아 상이다. 이 마리아 상은 성 누가가 조각한 것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무어인들이 스페인을 지배할 때 산타코바동굴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을 12세기경에 양치기 소년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성스러운 동굴이라는 뜻의 이 동굴은 수도원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리아 상은 원래부터 검은 것이 아니고 신도들이 바친 등불에 오랜 세월 그을려서 검어졌다고 한다. 1811년 나폴레옹군의 진격으로 수도원이 파괴되었을 때도 독실한 신도들에 의하여 이 마리아상이 지켜졌다. 188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하여 카탈루냐의 수호 성모가 되었다. 바위가 많은 곳에 기도가 잘 받는다는 소문이 있고,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전설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특히 검은 마리아상의 오른 손에 황금구슬을 올려놓고 있는데 이 구슬을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몬세라트를 방문함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검은 마리아상을 알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의 합창을 듣는 것이다. 몬세라트의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은 13세기부터 시작되어 세계 3대소년합창단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카탈루냐 지역의 5,6세 된 소년들 중에 단원을 뽑아서 변성이 되기 전가지 합창단으로 활동하도록 한다. 합창단으로 뽑히면 평생을 보장받고 명예스럽게 생각한다. 성당에서는 매일 오후 1시에 미사를 봉헌하므로 이때에 소년합창단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영혼들이 뿜어내는 성스러운 음성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오후 늦게 방문하였으므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노점에서 수제치즈와 벌꿀 올리브 등을 파는 상인들이 우리를 보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주요 고객으로 자리매김이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할까? 어쨌거나 자랑스러운 일이다.
몬세라트의 회백색 바위산
베네딕트회 수도원
조루디의 조각상
베네딕트회 수도원 열두제자의 조각상
‘라모레네타’라는 검은 마리아 상
소년 수도자 상
몬세라트의 바위산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